알콜중독자가 초기경전 한구절에
탐진치의 소멸이 불교의 목표라 합니다. 번뇌의 대표주자를 소멸함으로써 불사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탐진치의 소멸이 곧 수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탐욕과 성냄입니다.
십이연기에 따르면 탐욕과 성냄은 느낌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 났을 때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느낌이면 거머쥐려 하기 때문에 탐욕이고, 괴로운 느낌이면 밀쳐 내려 하기 때문에 성냄이라 했습니다.
탐욕과 성냄만 정복하면 사실 수행의 완성이라 볼 수 있습니다. 탐욕과 성냄을 소멸시켜 가는 과정이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위빠사나 수행처에서는 늘 느낌을 알아차리라고 합니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즐거운 느낌인줄 알고,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괴로운 느낌인줄 알라고 합니다. 느낌이 갈애로 전개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한번 습관 들여 놓은 것은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주가 대표적입니다. 술 마시면 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이 가는 것은 일종의 집착 입니다. 십이연기에서 집착은 갈애를 조건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습니다. 느낌에서 갈애의 루비콘강을 건너면 오로지 앞으로 달려갈 뿐 입니다.
술을 끊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재성박사에 따르면 어느 알콜중독자가 초기경전의 한구절을 보고 깨끗이 끊었다고 합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니까야를 열어 보았는데 한 구절에 필이 꼽혔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가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가 없다.
수행승들이여,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대들은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 라고 관찰해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가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가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참으로 오랜 세월을 그대들은 괴로움을 맛보고 아픔을 맛보고 허탈을 맛보고 무덤을 증대시켰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이제 그대들은 모든 지어진 것에서 싫어하여 떠나기에 충분하고 초연하기에 충분하며 해탈하기에 충분하다.” (S15.11)
경에서 핵심구절은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 입니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 한량없이 유전하고 윤회하는 과정에서 한때 나도 알콜중독자로 살았던 때가 있었을 것 입니다. 지하도에서 구걸하는 걸인의 모습을 보고 “한때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불행한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알콜중독자가 바로 이 경의 한구절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 (amhehipi evarūpaṃ paccanubhūtaṃ iminā dīghena addhunā)” 에서 필이 꼽힌 것입니다.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180도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재성박사에 따르면 수십년 술에 의지해서 살아 온 사람이 서점 한귀퉁이에서 니까야경전을 우연히 열어 보다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 났다고 합니다. 삶의 기로에 있을 때 친구나 선배나 스승의 말 한마디에 인식의 전환이 일어 날 수 있듯이, 니까야 한구절이 어떤 알콜중독자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전 알콜중독자는 경전 한구절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진리로 알아 가르침을 좀 더 알고자 이제까지 번역된 수 십 권의 니까야를 모두 샀다고 합니다. 그것도 전박사에게 직접 산 것이라 합니다. 전박사에게 전화를 하여 사무실로 찾아 간 것입니다. 전박사 사무실에서는 창고를 갖추고 판매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번역된 모든 니까야를 사 간 것입니다.
부처님은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을 보면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관찰해야 함을 말씀 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대상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부자이며 행복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 라고 관찰하라고 했습니다. 이래야 맞습니다. 이렇게 관찰해야 가난하고 불행한 자에 대하여 우월감을 갖지 않고, 부자이며 행복한 자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지 않습니다. 우월감, 동등감, 열등감이리는 자만을 갖지 않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관찰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2016-08-1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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