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의지할 스승이 없을 때, 빠알리니까야를 스승으로
누구나 올리는 유튜브
요즘은 인터넷시대를 넘어 ‘유튜브시대’이다. 클릭 몇 번 만 하면 누구나 유튜브에 올릴 수 있다. 실제로 수 많은 불교음악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 놓은 바 있다. 인터넷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자료를 보면 조회수가 갈수록 증가하여 올린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만회가 넘는 것도 있다. 이 밖에도 연등축제에 대한 동영상도 다수 올렸다.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서이다.
유튜브시대에 수 많은 불교관련법문이 올려져 있다. 그 중에는 들을 만한 것도 있지만 마치 부처님당시 육사외도의 가르침처럼 ‘사견(邪見)’인 것들도 많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유튜브에 마구 자료를 올려 놓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올려진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가치가 없는 쓰레기들로 넘쳐난다. 불교관련 자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클릭 몇 번 하면 누구나 올릴 수 있는 공간에 담마아닌 것으로 넘쳐 날 때 잘못 불교를 접할 수 있다.
유튜브시대이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시대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여다 볼 수 있는 손안의 작은 컴퓨터에서 ‘자재만현스님’ 법문동영상을 접하였다. 이전부터 스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스님만의 독특한 교리를 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인터넷에 부정적인 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유튜브동영상을 보았다.
자재만현스님 법문동영상
유튜브에는 자재만현스님 동영상이 수 없이 올라와 있다. 한달에 두 번 법문하는데 법문할 때 마다 올려 놓아서일까 동영상이 무척 많다. 한시간 이상 되는 수 많은 동영상을 다 볼 수 없다. 몇 편을 보니 대략 법문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부정적 글 그대로이다. 대승불교에서도 어긋난 것이고, 초기불교와는 팔만사천리나 떨어지는 듯한 법문이다.
자재만현스님의 이미지는 온화하고 자비로운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노인이 나이 들면 산전수전 다 겪다 보니 지혜로워 진다고 하는데, 자재만현 스님은 달변에다 불교적 지식까지 갖추고 있으니 누구나 보아도 믿음직해 보인다. 더구나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법문은 매우 친근감을 갖게 해준다. 또한 계행이 매우 청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성종단이 계행이 청정하지 않아 비난 받고 있는데, 스님의 법문을 들으니 계행만큼은 기성종단 보다 나은 듯 하다.
몇 편의 법문동영상으로 그 사람을 다 평가할 수 없다. 가장 정확하게 알려면 함께 있어 보아야 한다. 그 사람의 계행에 대해 알려면 함께 살아보아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오래 살아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지혜로운지는 토론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겪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영상 몇 편을 보니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왜 불교계에서 비난하고 비판을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금시초문 법문을 듣고
일을 하면서 한쪽 모니터에 유튜브동영상을 띄어 놓고 귀로 들었다. 특이할만한 내용은 메모해 두었다. 메모한 것을 보면 “무색계 네 하늘을 넘어 가야 아라한압니다.”라 했다. 2016년 6월 19일자 법문 초입부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아라한이 되는 것에 대하여 무색계를 넘어 가야 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아마 초기경전이나 아비담마논장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스님은 또 “84번뇌를 잠재운 것이 수다원과입니다.”라 했다. 역시 금시초문이다. 오로지 스님의 법문만을 들려 주는 동영상에서 스님이 한 말이 곧 가르침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메모한 것을 시간대 별로 죽 적어 나갔다. 모든 것을 다 언급할 수 없다. 그 중에 기자와 작고한 고승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기자가 고승에게 “귀신은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묻자, 고승은 “집착하면 있고 집착하지 않으면 없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자재만현스님은 망언으로 규정하고 “귀신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사 등으로 죽은 귀신이야기를 했다. 증음계를 떠다니는 귀신을 말한다.
보살인가 한다고
만현스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승경전에 기반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대승경전을 초월한 자신만의 불교관을 말한다. 만현스님에 따르면 20년 전 불과를 얻었고, 10년 전부터는 현지사를 만들어 ‘영산불교’라는 새로운 불교를 포교하고 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기성종단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은 듯하다. 또 인터넷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적극 방어하는 듯 하다. 그런데 종종 아라한 이야기를 한다. 초기불교에서 아라한이 최고의 경지이지만 그 위에 보살이 있다는 것을 얘기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들은 윤회를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왜? 다겁생으로 지어 놓은 악연이 있고 원결이 있어요. 업장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올 확률이 많습니다. 삼계에서 벗어나 버릴 수 있는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보살인가를 받아야 해요. 우리 현지사에서 십년 밖에 안됐는데 보살이 칠팔십명 탄생했어요. (박수) 우리불교의 불교가 영산불교에요. 자, 들어 보세요.
우리 영산불교의 교리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저 상락아정의 극락세계는 모릅니다. 거기 보다 한차원 높은 약사정토를 모릅니다. 거기보다 더 가 있는 붓다의 세계를 전혀 모릅니다. 무착, 세친도 모릅니다. 부처님은요 우주적인 분입니다. 우주주 입니다. 저 내노라 하는 학자들이 모르는 것이 불신이에요. 부처의 몸.
부처님의 가피가 없으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부처님이 현지사에 와 계십니다.”
(자재만현스님, 2016.06.19)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대법회 - 현지사 고성분원)
자재마만현스님은 아라한 위에 보살이 있다고 했다. 이는 대승불교에서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산불교만의 독특한 교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피가 없으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부처님이 업장을 씻어 주지 않으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만현스님에 따르면 아라한이라 해도 과거전생에 지은 업장이 있기 때문에 절대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초기불교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내용이다. 맛지마니까야에 따르면 연쇄살인자 앙굴리말라도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고 되어 있지만 영산불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오로지 부처님 가피가 있어야만 죄업이 씻겨 져서 삼계 너머 있는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데 그것도 정토삼부경에서 말하는 극락정토 보다 더 수승한 곳에 있다고 한다.
자재만현스님 법문을 들어 보면 마치 신흥종교를 보는 듯 하다. 불교인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스님만의 독특한 불교관이 들어 있는 새로운 불교이다. 이를 이름 하여 영산불교라 한다. 그렇다고 스님은 교주처럼 행세하지 않는다. 반드시 부처님을 내세우고 있다. 스님이 새롭게 해석한 부처님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재만현이 하는 법문 꼭 오셔서 내 정수리 위에 서셔서 여러분의 업장을 보시고 업장을 씻겨 주는 빛을 방사하고 계십니다.”라 했다. 이렇게 본다면 만현스님은 부처님의 대리인처럼 보인다. 부처님을 대신해서 아라한 보다 더 놓은 지위의 보살인가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체에 대한 이야기
만현스님의 동영상 법문을 몇 편 보지 않았지만 대승불교와도 초기불교와도 다른 것이다. 영산불교라 하여 새로운 불교의 교리를 선보이고 있는데 가장 생소한 것이 ‘영혼체’에 대한 것이다. 2016년 7월 17일자 법문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주적 진리는 이렇습니다. 하늘을 가게 될 때는 3번 영체가 갑니다. 그 때 1번 2번은 속으로 겹쳐져 버려요. 1, 2, 3번은 항상 뭉쳐 다녀요. 영원히 죽을 수 없어요. 윤회의 주체가 될려면 이런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성중 아라한 하늘을 가서 태어날려면 2번으로 가야 합니다. 2번으로 갈 때는 3번과 1번이 그 속으로 겹칩니다. 극락세계에 갈 때는 1번 영체가 가게 되어 있어요. 1번 영체도 부족해요. 그 환경에서. 그래서 극락세계 내 아기보살이 생기는 거에요. 이것은 천고의 비밀입니다.”
(자재만현스님, (2016.07.17)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대법회 - 현지사 부산분원(무아와 윤회의 주체))
네 개의 영체가 있다고 했다. 네 가지 영체가 조합해서 사후에 천상이나 극락에 태어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우주의 진리라 했고 또 천고의 비밀이라 했다.
만현스님은 대승경전에 대한 지식이 매우 해박하다. 종단에 있을 때는 선방에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아뜨만 등의 전문술어를 써 가며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영체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영체를 설명하기 위해 특히 부파불교의 무아윤회관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식만으로 윤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찰라생찰라멸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드시 몸체가 있어야함을 말한다. 그래서 “식은 몸뚱이가 없으면 살수가 없어요”라 했다.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네 가지 영혼주체가 있어야 윤회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극락정토, 그것도 더 멀리 있는 약사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꼭 같이 오세요”
자재만현스님은 법문을 매우 잘 하는 편이다. 누구든지 들으면 해박한 불교지식과 차근차근 부드럽게 말하는 달변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법문을 하면 전국에서 몰려 든다고 한다. 이에 스님은 꼭 함께 올 것을 강조한다. 십년전에 영산불교를 만들어 포교하고 있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법문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함께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한사람 두사람 친구들 지인들 꼭 같이 오세요. 오늘 나온 분들은 절대로 나오십시오, 현지사에서 잘 살 수 있는 많은 법들이 있습니다. 인재를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관음기도법도 있구요, 사업이 잘 되게 하는 길도 있고요, 업장소멸하는 길도 있고요, 윤회를 벗어나고 보살이 되는 길도 있어요. 현지사와서 법문듣고 현지사에 귀의하고 부처님께 진짜로 귀의해서 스님들이 시키는대로 여러분 꼭 남은 생을 그렇게 사십시오. 그러면 스님 말씀 한대로 금생도 다음생도 윤회를 벗어나고 저 극락정토에 까지 가서 왕생합니다. “
(자재만현스님, (2016.07.17)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대법회 - 현지사 부산분원(무아와 윤회의 주체))
법문에 따르면 주로 보이지 않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영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경전에도 없는 이야기로서 오로지 법문을 들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가르침을 널리 펼치지 위해 반드시 같이 오라고 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 시키기도 한다.
자재만현스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단지 유튜브동영상법문 몇 편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부처님원음에서 너무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고 했다. 부처님은 ‘자귀의법귀의’를 말씀 하셨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S22:43) 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다. 가르침 외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에게 의지하지도 말라는 것과 같다.
굳이 사람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승가공동체에 의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개별스님에게 의지하면 실망하기 쉽다. 왜 그런가? 스님들이 천년만년 스님으로 산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가공동체에 의지하면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여법한 승가가 있기에 오늘날까지 진리의 수레바퀴가 굴러 왔다. 만일 사람들이 승가공동체가 아닌 사람에게 의지한다면 절대 오래 가지 못한다. 설령 교세가 확장되어 신도가 많더라도 당대를 넘기지 못한다. 대부분 신흥종교들이 2대나 3대로 가는 것이 극히 드문 이유일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종교의 강한 보수본능때문이다.
종교는 가장 보수적인 것이라서 가장 보수적인 종교만이 살아 남는 것이다. 그것은 계행을 지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스님 홀로 살며 계행을 지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홀로 독살이 하는 스님에게 자자나 포살 등 계행은 의미가 없다. 모여 살아야 한다. 모여 살며 공동체의 삶을 살아 갈 때 계행과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뛰어난 스님이 새로운 교리로 인기를 끌더라도 당대를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불자들은 붓다, 담마, 상가, 즉 삼보를 의지처, 귀의처, 피난처로 해야 한다.
차라리 경전을 스승으로 삼아라
스승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천만불자가 있지만 모두에게 스승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극소수만이 스승을 모시고 있다. 대부분은 스승 없이 지낸다. 스승이 없는 시대에 어떤 기준으로 스승을 선택해야 할까? 어떤 이에 따르면 스승의 선택기준으로 “첫째, 어느 경전에 근거 하고 있는가, 둘째, 어느 주석서에 근거 하고 있는가, 셋째, 어느 스승으로 부터 전수 받았는가, 넷째, 언행이 일치 하는가”를 따져 스승을 정해야 된다고 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스승없이 스스로 깨달은 자는 일단 제외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에 따르면 스승을 선정하는 기준이 설명되어 있다. ‘짱끼의 경(M95)’에 따르면 “나는 이것을 안다. 나는 이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말하는 자를 경계하라고 했다. 스승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자들인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동영상을 보면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많다. 만일 이렇게 말하는 자를 따른 다면 어떻게 될까? 부처님은 “봉사들이 줄을 선 것과 같이 앞선 자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선 자도 보지 못하고 뒤에 선 자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선천적으로 눈먼 봉사의 뒤를 따르는 봉사들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이 없는 시대에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따라야 할까? 이에 대하여 맛지마니까야에서는“장자들이여, 그대들이 신뢰하는, 마음에 드는 스승이 없다면, 이러한 논파할 수 없는 가르침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 좋습니다.” (M60) 라 했다. 어느 마을에 육사외도들이 나타나서 서로 자신들 스승의 가르침이 최고라고 말하자 부처님은 논파할 수 없는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을 말한다. 믿고 의지할 만한 스승이 없다면 차라리 경전을 스승으로 삼으라는 말과 같다.
스승이 없는 시대에 부처님의 원음이 실려 있는 빠알리니까야가 스승이라 볼 수 있다. 불자라면 삼보에 의지하고, ‘법귀의 자귀의’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 의지해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스승을 잘못 삼았을 때 그것은 두고두고 불행과 고통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번 생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생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승이 없을 때는 차라리 초기경전을 스승으로 해서 모시는 것이 낫다. 믿고 의지할 스승이 없다면 빠알리니까야가 스승인 것이다.
2016-08-19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순간을 즐겨라? 이순간을 알아차리자! (0) | 2016.08.28 |
---|---|
“나는 살아 있는 한 진실을 말하리라”거짓말에 대하여 (0) | 2016.08.24 |
힘없는 자의 유일한 무기는 글 (0) | 2016.08.19 |
알콜중독자가 초기경전 한구절에 (0) | 2016.08.18 |
일생을 식욕과 성욕으로 살았을 때 (0) | 2016.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