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귀찮고 피곤한 일은
글을 쓸 때마다 ‘나’와 ‘모든’에 대하여 일일이 해명하고 규정하고 선언하는 일은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글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만일 누군가 경전에 쓰여 있는 ‘나’라는 것에 대하여 시비를 건다면 ‘나’에 대한 해명을 일일이 했어야 할 것이다. 초전법륜경에서 “나는 흔들림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었다. (akuppā me cetovimutti, S56.11)”라는 부처님의 아라한선언이 있다. 이때 나를 뜻하는 ‘메(me)’에 대하여 ‘이는 자아로서의 나가 아니라 오온으로서 나이다’라고 문구마다 일일이 선언해야 한다는 것은 문장의 흐름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귀찮은 일이 된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Evaṃ me sutaṃ)”라 하였을 때 메(me)에 대하여 누군가 “불교에서는 오온을 말하는데 왜 아뜨만을 뜻하는 나로 표현하였는가?” 라고 시비건다면 이에 대하여 일일이 대꾸한다는 것도 역시 번거로운 일이 된다.
글을 쓸 때 ‘모두’ 또는 ‘다’라는 말을 사용하였다면 누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할 것이다. 누군가 “스님들이 고액의 도박을 하고 밤샘술판을 벌였다”고 하였을 때 또 누군가는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누군가 ‘그 지역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다’라 하였을 때 누군가는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 반박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행가 중에 ‘남자는 다 그래’라 하였을 때 누군가 ‘남자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법구경에 “어느 누구나 폭력을 무서워한다. 모든 존재들에게 죽음은 두렵기 때문이다.”(Dhp129) 라는 게송이 있다. 게송에서 ‘모든’을 뜻하는 말이 ‘어느 누구나’와 ‘모든 존재들’이다. 이 ‘누구나’와 ‘모든’에 대한 빠알리어가 ‘삽베(Sabbe)’이다. 삽베는 전체, 전부 등으로 표현 되어서 문자적으로 예외가 없음을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하거나 모든 존재들이 죽음을 두렵다고 볼 수 있을까?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마찬가지로 폭력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주석에 따르면 “모든 존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 여기서 어법은 예외가 없음을 인정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모두 모여라.’라고 북소리로 집합을 알리면, 왕자들과 대신들을 빼놓고는 모두 모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폭력과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더라도, 다음의 네 가지 즉, 혈통이 좋은 말, 혈통이 좋은 코끼리, 혈통이 좋은 황소, 거룩한 님은 예외로 하고,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DhpA.III.49) 라 되어 있다.
거룩한 님, 즉 아라한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아라한에게는 자아에 대한 실체적 관념이 사라져서 죽어야 하는 존재를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혈통이 좋은 존재들은 자아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해서 그들 자신에게 적대할 존재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왕이나 대신들이 해당된다. 따라서 어느 누구나 폭력을 무서워하고, 모든 존재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니다.
군대에서 ‘집합’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 “모두 집합해!”라고 말하였을 때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집합을 명령한 사람 보다 더 높은 사람도 집합대상에 포함될까? 그런 일은 없다.
글이나 말에서 모두, 전체, 일체, 전부라고 표현 되어 있지만 이는 어법상이고 실제로는 예외가 있음을 말한다. 누군가 ‘그 학교는 깡패학교다’라 하였을 때 이는 어법상일 뿐 전체학생이 깡패라는 것은 아니다. 또 ‘스님들이 도박을 하였다’라고 하였을 때 모든 스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님이 “내가”라고 했다 하여 무아를 설한 부처님을 비난한다면 상식이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아라한의 경에 잘 나타나 있다.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거룩한 수행승이
‘나는 말한다.’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S1.25)
부처님이 내가 라고 말하는 것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다.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 특정한 그룹을 지칭했을 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글을 쓸 때 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예외가 있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2016-08-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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