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마을 메가트리아에서 무상(無常)을
키 높은 소나무가
매일 아침 걷는 학의천 길에 아파트단지가 거의 완성되어 갑니다. 지난 수 년 동안 단지가 시작될 때부터 죽 지켜 보아 왔기 때문에 산증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규모아파트단지에서 눈여 본 것은 소나무입니다.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키 높은 소나무가 고급아파트단지에 심어져 있습니다. 특히 아파트 얼굴이라 볼 수 있는 대문이 있는 곳에 심어진 소나무들은 보기에도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습니다.
멋진 모습의 소나무와 대규모아파트단지가 건설된 부지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난 수 년간 건설과정을 지켜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주택과 소형아파트와 재래식시장이 밀집된 허름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부동산광풍이 불었습니다.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을 때 거대한 구역 전체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무려 4,25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덕천마을 메가트리아라 합니다. 이른바 레미안아파트라 불리웁니다.
유령의 도시에서
아파트건설 처음과 끝을 지켜 본 입장에서 늘 느끼는 것은 무상(無常)입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함을 말합니다. 이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천지가 개벽된 듯한 모습을 보고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단지가 완성되고 난 후 입주민들은 이전 역사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살던 곳이 어느 날 텅 비었습니다. 매일 지나가는 길에 발견한 것입니다. 그 동안 숱하게 지나쳤지만 어느 날 눈을 돌려 옆을 보니 유령의 도시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빈집들만 남았습니다. 아마 서서히 다른 곳으로 이사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입니다. 거의 다 이주했을 때 눈을 돌리니 도시가 텅 비어 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지나가는 길에 빈도시에 한번 들어가 보았습니다. 빈도시 사거리에는 상가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이주할 때 그대로 놓아두고 간 것입니다. 교회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간판만 있을 뿐 사람들을 볼 수 없어서 그야말로 유령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도시에는 구호가 난무했습니다.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고 나서부터 극심한 철거반대투쟁이 있었습니다. 철거를 반대하는 플레카드가 이곳저곳에 나부끼고 벽에는 정부정책을 비난하는 구호가 난무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에 대하여 해마다 느낀 점을 종종 글로 표현 했습니다.
텅빈도시에 대하여 2012년에는 ‘노끈을 삼킨 나무, 생명현상과 네겐트로피(Negentropy)(2012-10-22)’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의 적막함에 대해서였습니다. 2013년에는 ‘텅빈도시의 절대고독,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2013-02-16)’라는 제목으로 올린 바 있습니다.
글에서 텅빈도시에 대하여 글과 사진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아파트단지가 완성되었을 때 이것도 하나의 역사가 될 것 같아서 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어느 네티즌도 텅빈도시에 대하여 ‘덕천마을'이라는 제목으로 글과 사진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아마 유년기의 추억이 있던 장소 같습니다.
유령의 도시에도 봄은 찾아 왔습니다. 모두 떠난 빈집에서도 꽃이 피었습니다. 누가 보아주건 말건 폐허가 된 빈집에서는 목련이 피고 벚꽃이 피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날 때 가재도구를 챙겨갔지만 마당에 심어 놓은 나무는 그대로 두고 간 것입니다. 라일락꽃 향기는 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습니다. 아파트단지가 완성되고 나면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에 남기기 위하여 ‘폐허속에 피는 꽃(2013-04-18)’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쾌속상승하는 아파트
유령의 도시는 오랫동안 방치 되었습니다. 사시사철 늘 지나 다니는 길에 보는 유령의 도시는 스산했습니다. 특히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추운날에는 으스스하기도 했습니다. 불이 꺼진 밤길에 지나치기가 무서울 정도이어서 늘 반대편 인도로 다녔습니다.
유령의 도시에 어느 날 펜스가 쳐졌습니다. 안을 들여다 보지 못할 정도로 높은 펜스입니다. 그리고 망치 소리가 들렸습니다. 건물 해체 작업에 들어 간 것입니다. 2014년의 일입니다. 불과 몇 달만에 주택과 아파트 그리고 상가가 있는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학의천 다리가 있는 코너에 있던 양식집은 버티고 버티다가 어느 날 포크레인에 푹 주저 앉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키 높은 소나무 여러 구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마침내 아파트 건설이 시작 되었습니다. 엄청난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이곳 저곳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망치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그래도 유령의 도시로 방치 해 놓은 것 보다 나았습니다. 건설현장에 활력이 돌았습니다.
덕천마을 재개발구역은 2014년 철거가 시작되었고 2015년부터 건물이 올라갔습니다. 2014년이 철거와 기초기반시설을 다진 기간이라면 2015년 부터는 본격적인 아파트건립기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15년부터 시작하여 현 시점에 이르기 까지 아파트가 한층 두 층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 가는 아파트를 보니 마치 아파트가 쾌속상승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 시점에서 아파트는 거의 완공되어 가는 듯합니다. 조경작업이 한창 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파트의 품격을 높여 주듯이 키가 큰 소나무가 아파트의 싱징과도 같은 아치형 대문 양 옆에 심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 갈 상가건물도 동시에 완공되어 갑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입주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전의 덕천마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예전의 덕천마을은
덕천마을 대규모아파트단지 건설현장을 지나다니면서 죽 지켜 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래시장이 있는 등 전형적인 서민 주거단지이었으나 개발의 광풍으로 천지가 개벽된 듯 완전히 다른 모습니다. 도중에 텅빈 유령의 도시도 보았습니다. 유령의 도시에서도 봄이 오자 예외 없이 꽃이 피었습니다.
이전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추억도 살아졌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건설되는 도시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살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을 고향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재개발하여 천지개벽이 된 덕천마을은 이전에도 사람사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젊은 사람은 가게 앞에서 과자 안주에 소주를 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퇴근 무렵에 본 그 사람은 달관하는 듯한 표정으로 늘 가게 앞 허름한 자리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어느 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나이든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곳에는 교회도 있었고, 세탁소도 있었고 시장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맥주와 양주를 파는 카페집도 여러 개 있었습니다. 예전의 덕천마을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덕천마을에서 무상을
이제 새롭게 단장한 아파트 단지 앞을 걸어 갑니다. 지나가면서 돈의 힘을 실감합니다. 거대한 자본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건설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아침부터 이곳을 터전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입주가 시작되면 새로 가구나 전자제품 등을 장만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건설은 바람직 한 것입니다. 아파트 단지 건설로 인하여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변한다는 그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곳도 언젠가는 변할 것입니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서 자란 곳이 변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매우 서글플 것입니다. 덕천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고향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건설된 단지에서 태어난 자에게는 이곳이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생노병사하듯이 사물도 성주괴공합니다. 모든 것이 무상합니다. 덕천마을 재개발현장에서 무상을 보았습니다.
2016-09-0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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