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수행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16. 9. 30. 09:55

 

수행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글만 쓰다 보니 종종 수행해야 한다는 충고를 받습니다. 글쓰기 보다 수행하는 것이 오염원을 소멸시키는데 있어서 훨씬 빠르다고 합니다. 이런 말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수행을 소홀히 했습니다. 어쩌면 게을러서 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매주 두 번 수행모임에 참석합니다. 하나는 도이법사의 위빠사나수행이고, 또 하나는 무상사 서울분원의 선수행모임입니다. 하나는 위빠사나이고 또 하나는 선수행입니다. 하나는 아라한이 최종목표이고, 또 하나는 부처되는 길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수행전통을 매주 번갈아 가며 접한지 한달 다 되었습니다.

 

이번주 목요일 무상사 서울분원에 갔습니다. 불교관련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두산위브빌딩입니다. 빌려쓰는 공간은 꽤 넓습니다. 삼십명 가량 수용가능한 공간입니다. 시작은 6시 부터입니다. 예불이 끝나고 7시부터 수행이 시작 됩니다. 거리가 있어서 7시를 목표로 참석합니다.

 

수행을 하기 전에 간단히 몸을 풉니다. 지도법사를 따라 일종의 스트레칭을 합니다. 스트레칭이 끝나면 포행을 합니다. 위빠사나에서는 경행이라 합니다. 빠른 걸음걸이가 특징입니다. 그것도 짧게 합니다. 대게 좌선 40분에 포행 10분입니다. 위빠사나의 경우 좌선 1시간에 경행 1시간이 보통입니다. 위빠사나에서 경행은 일종의 명상으로서 알아차림입니다. 그래서 한발 한발 내 딛을 때 의도와 동작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경행명상(walking meditation)이라 합니다. 반면 선수행에서 포행은 단지 몸풀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좌선이 두 번 있었습니다. 40분 간격으로 두번 있는 좌선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몇 차례 다니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위빠사나에서는 배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계속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석 없이 맨바닥에서 하다 보니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경우 아픈 곳에 집중하면 됩니다. 망상이 들었을 때 망상이 든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자세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그다지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상사 모임에서는 방석이 마련되어 있어서 편안 했습니다. 어쩐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선수행모임에서 좌선방식은 벽을 바라보고 앉는 것입니다. 조명을 약간 어둡게 하고 물소리가 나지막하게 나는 테이프를 틀어 줍니다. 그러나 잘하고 못하고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호흡에 집중하느냐가 관건 입니다.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위빠사나수행처에서 권고한대로 배의 호흡을 지켜 보았습니다. 배의 호흡을 보다보면 전반적으로 다 호흡을 보게 됩니다. 호흡이 꼭 코 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코에 집중하면 사마타의 길로 가는 것이고 배에 집중하면 위빠사나의 길로 가는 것이라 하지만 처음에는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호흡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호흡은 노력한다고 보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호흡을 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안됩니다. 마치 홈트레이딩을 하는 자가 초단타매매를 하면서 돈좀 벌어보겠다고 애쓰지만 애쓸수록 까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경우 내려 놓아야 합니다. 턱 내려 놓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호흡이 보입니다. 이렇게 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 수행을 왜 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힘들게 다리 꼬고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초기경전을 근거로 해서 말한다면 욕계를 탈출하는 것입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로 이루어진 삼계에서 삼계를 탈출하는 것이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이지만 우선 욕계탈출입니다.

 

그렇다면 욕망의 세계를 탈출하면 욕망의 세계보다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요? 초기경에 따르면 감각적 욕망의 충족 보다 더 아름답고 탁월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아잔브람은 “ 불교 명상의 즐거움이 대학 시절 여자친구와 나눈 섹스의 쾌감보다 100배는 큰 황홀함이었어요. 그러니 어찌 출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신문, 2015-10-17) 라 했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선정삼매의 즐거움에 대하여 아난다여, 어떠한 것이 그 즐거움보다 훨씬 훌륭하고 탁월한 다른 즐거움인가? 아난다여, 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떠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그 즐거움보다 훨씬 훌륭하고 탁월한 즐거움이다.” (M59)라 했습니다.

 

 

 

 

Meditation

 

 

좌선이 끝나고 법문이 있었습니다. 폴란드출신 오진법사의 법문입니다. 영어로 나지막하고 빠른 말투로 말하면 한국인법사가 이를 통역해 줍니다. 모임에는 종종 외국인도 있어서 영어위주로 말합니다. 지도법사가 외국인이어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 봅니다.

 

두 명의 지도법사는 인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진법사는 숭산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숭산스님과의 인연은 1981년 폴란드방문 때라 합니다. 그때 당시 오진법사는 대학생이었는데 숭산스님의 강연을 듣고 감명받아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재가지도법사로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현각스님보다 먼저 주거식선원에 들어 갔다고 합니다. 또 한분의 법사는 한국인여성으로 올해 무상사 대봉스님으대부터 인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무상사의 법사는 어떤 위치일까요? 자료에 따르면 관음선종에는 승속을 가리지 않고 수행정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 타이틀을 부여하는데, 그 가운데 인가를 받은 지도법사(JDPS) 그리고 지도법사가 된지 최소한 5년이 지난 후 자격이 주어지는 선사(Zen Master)의 타이틀은 안거나 용맹정진 시 신도들에게 공안인터뷰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공안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선원을 개원할 수 있는 기능이 생겨남을 뜻하며, 또한 인가를 받은 지도법사와 선사는 다른 선원에서의 초청으로 빈번히 여행을 하며 안거를 이끈다. (이종권님, 인터뷰 - 프로비덴스 젠센터 주지 청혜스님, 미주불교신문, 2001)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재가법사가 되려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승으부터 인가를 받는 것이라 합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열 가지 질문을 했을 때 만족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재가법사가 되면 공안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오진법사는 법문에서 숭산스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고 또 하나는 오직 할 뿐!(Only doing it)”입니다. 오직 모를 뿐에 대하여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모를 뿐이라는 말은 그리스 철학자들도 사용하던 말이라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너는 누구냐?(who are you?)”라고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짖꿋은 제자가 스승에게 당돌하게도 당신은 누구입니까?(who are you?)”라고 역질문 했다고 합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누군지 모릅니다.(I don’t kow)”라 말하면서 그러나 나는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숭산스님의 제자들이 늘 하는 말은 오직 모를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하며 정진할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두리뭉실하기도 하고 막연하기도 합니다. 이는 디테일하게 설명해주는 위빠사나와 대조적입니다.

 

두 수행처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앉아 있다 보면 다리 통증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운동을 하여 몸을 만들듯이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면 자세가 잡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단 십분만이라도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일종의 숙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행은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혼자있으면 게을러지기 때문에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숭산스님은 거주식 선원을 만들었습니다. 함께 모여 살며 수행하는 수행공동체를 말합니다. 현각스님 등 많은 외국인 스님들이 거주식 선원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 살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숭산스님은 감자를 하나의 솥단지에 함께 넣고 휘젓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개별적 수행보다 함께 모여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진척이 빠름을 말합니다.

 

서울 수행모임에는 외국인 1명을 포함하여 약 15명 가량 모였습니다. 종종 외국인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전 모임에서는 우크라이나출신이 다녀 갔습니다. 한국에 온지 6년 되었고 컴퓨터프로그래머라 합니다. 화계사 국제선원에 4년 다녔는데 최근 폐쇄 되는 바람에 무상사 서울분원에 찾아 왔다고 합니다.

 

모임에 참석하다 보니 가장 고령입니다. 대부분 젊은 세대입니다. 3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염두에 두면서 참석하고 있습니다. 서울분원이 만들어진지 6개월 가량 되었다고 하는데 외국인 지도법사와 외국인들도 참여하는 모임이 신선합니다.

 

 

2016-09-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