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는 찻집에서, 화암사 정혈차(淨血茶)를 마시며
화암사에 가면 인상적인 바위를 만난다. 화암사 바로 건너편 코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생긴 모습이 매우 남성적이다. 하나의 작은 바위산으로 되어 있어서 거기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매우 강렬해 보인다. 화암사의 상징과도 같은 바위산을 또 보게 되었다.
화암사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처음 간 것은 법회모임의 순례법회 때 이었다. 그때가 2009년도의 일로서 블로그에 “화암사의 천년가는 9층탑불사, 진신사리탑이 아니기를(2009-03-23)”라는 제목으로 기록해 놓은 바 있다. 제목이 암시 하듯이 사리탑에 대한 것이다. 그때 당시 불사를 하고 있었는데 주지스님이 순례팀을 맞이하여 법문해 주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절에 가면 스님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일개 순례팀을 맞이하여 법문까지 해 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불사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다. 천년 갈 수 있는 9층탑을 대웅전 앞마당에 세우는 것이 목표라 했다. 이처럼 자상하고 친절한 주지스님의 설명이 있어서일까 불사에 흔쾌히 동참하는 법우님들이 여럿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2009년 이후 7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화암사 대웅전 앞 마당에 서 있다. 마당에는 백색의 9층 석탑이 높이 솟아 있다. 대웅전과 주변경관에 잘 어울린다.
화암사 주지스님이 9층탑 불사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2009년 당시 법문에서 알 수 있다. 스님에 따르면 화암사는 기가 센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특히 화암사 맞은 편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에서 뿜어 나오는 기가 너무 세서 그 기운을 완화 하기 위한 방편으로 탑불사를 추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바위산 이름을 ‘수바위’라 했다.
바위산 이름이 왜 ‘수바위’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스님에 따르면 숫컷바위라는 뜻이다. 솟구친 바위산이 남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암사에서 기도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이 탑불사를 추진하게 된 동기는 비보사찰의 성격이다. 다른 절과 달리 불뚝 솟아 오른 거대한 바위에서 뿜어 나오는 강한 기운을 억누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기운이 너무 세서일까 사찰과 주변에서 종종 화재가 났다고 한다. 그 강한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바위산과 대웅전 중간에 비보성격으로서 탑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스님의 원력은 달성 되었다. 오래 전에 탑불사는 완성 되었지만 이렇게 탑을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9년 당시 주지스님은 탑불사를 설명하면서 천년 가는 탑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런 스님의 바램에 공감했다. 그러나 진신사리탑이라는 명칭이 들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때 당시의 생각을 블로그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10월에 구층탑 불사가 원만하게 회향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진신사리탑'과 같은 이름이 붙여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신사리탑은 왠 만한 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에 대한 폐해도 많이 발생한다. 진신사리의 진위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5대 보궁을 제외하고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여기저기에 진신사리탑이 난무 한다면 신뢰만 더 추락 시킬 뿐이다. 1000년을 바라보는 작품에 진신사리탑이라는 말이 들어 가지 않기를 바란다.”(진흙속의연꽃, 화암사의 천년가는 9층탑불사, 진신사리탑이 아니기를, 2009-03-23)
이런 바램은 이루어진 것 같다. 9층탑 주변 어디에도 진신사리탑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천년 가는 탑을 만든다고 했을 때 대부분 진신사리탑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으나 이곳 화암사에서는 그런 명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09년에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화암사에 서 있으면 장쾌하다. 강한 힘을 상징하는 커다란 바위산 수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너머에는 설악의 상징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쳐져 있다. 연봉을 따라가다 보면 관동지방의 평원이 한눈에 보인다. 시원스럽게 펼쳐진 자연풍광에 호연지기가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듯 하다.
규모가 있는 절에 가면 찻집을 볼 수 있다. 이곳 화암사에도 찻집이 있다. 창문너머로 수바위가 보이는 전통찻집이다. 경치와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화암사 찻집은 차분하고 안정되 보인다. 이런 것에서 차한잔은 여유를 마시는 것과 같다.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는 찻집에 있는 것 같다.
찻집에는 보이차 등 갖가지 종류의 차가 있다. 그 중에 ‘정혈차’가 눈에 띄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입구에서 정혈차에 대한 설명문을 보니 ‘티엔티엔 정혈차’라 되어 있다. 한자어로 ‘천천정혈다(天天淨血茶)’이다. 천천을 중국어 발음으로 ‘티엔티엔’이라 한 것이다.
정혈차는 ‘피를 맑게 해준다’는 뜻이다. 설명문을 보니 해양심층수를 이용하여 대나무잎과 뽕잎, 그리고 솔잎으로 만든 ‘설악의 명차’라 한다.
차를 마시면 몸이 정화 되는 것 같다. 뜨거운 차를 마시면 마실수록 몸속의 노폐물이 쓸려 내려 가는 것 같다. 차를 한사발 정도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 한번 보고 나면 몸이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 정혈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쑥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다. 차 한잔에 몸과 마음이 정화 되는 것 같다. 절에 가면 절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찻집에서 차한잔과 함께 여유를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16-10-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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