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행복했다”허정스님과 함께 한 일요법회
토요일에 집중 되어 있는 행사
현대를 살아는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대부분의 행사가 토요일에 몰려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 결혼식이 토요일에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에 결혼식이 많았다. 그러나 주오일제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일요일결혼식을 보기 힘들다. 실제로 그렇다. 최근 몇 차례의 결혼식이 모두 토요일에 열렸다. 앞으로 참석하게 될 결혼식 역시 토요일이다.
결혼식만 토요일에 열리는 것이 아니다. 등산모임도 토요일이다. 동기동창 등산모임이 있다. 매달 한번 있는 모임이다. 토요일 산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토요일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토요일에도 대부분 일한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 큰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주오일제라 하여 토요일도 쉬는 날일지 모르나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토요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날이 일요일이다. 두 다리 쭉 뻗고 늦잠을 즐길 수 있는 날도 일요일이다. 그런 일요일은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날이기도 하다. 대부분 교회나 성당 다니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산에 가는 사람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또는 삼삼오오 간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 풍경을 보면 잘 차려 입은 사람들과 등산복입은 사람들로 확연하게 갈린다. 그러나 대부분 일요일 하루만큼은 느긋하게 집에서 쉬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모든 행사는 토요일에 집중되어 있다.
결혼식도 등산모임도 공부모임 등 각종모임이 토요일에 집중 되어 있다. 특히 겹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한쪽에 참석하면 다른 쪽에서는 서운해 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대한 타개책은 일요일행사를 활성화 하는 것이다. 등산모임이라면 일요일을 활용하는 것이다. 일요일 종교행사에 한번 빠졌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한번 있는 등산모임이나 결혼식 등에 참석하는 것이 폭넓은 안간관계 형성을 위해 바람직하다. 일요일날 가족과 한다고 하지만 특별한 행사를 위해 한번쯤 양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요일 행사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 특히 자영업이나 장사 등 먹고 살기 힘든 자들을 위해서라도 일요일 모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토요일 쉬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일요일은 마음 놓고 쉬는 날이다.
바른 말 하면 삭죽이는 세상
일요일 천장사로 향했다. 허정스님의 마지막 법문이 있는 날이다. 종단에 바른 소리를 한다하여 주지직이 교체 된 것이다. 한교계신문에서는 “쓴소리 했다고…천장사 주지 결국 교체”라는 제목으로 보도 되었고, 또 한매체에서는 “결국, 허정스님 서산 천장사 주지 쫒겨나”로 보도 되었다. 두 매체 모두 종단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소위 해종언론이다. 그러나 두 매체는 종단에 대하여 언론탄압이라 맞서고 있다. 종단 지도부에 쓴소리 했다고 하여 주지를 교체한 것에 대하여 법회에 참석하기 앞서 천장사 단체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나라에 할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셋푸쿠’라 합니다. 한자어로 ‘절복(切腹)’입니다. 일본 시대드라마를 보면 종종 할복장면을 봅니다. 할복을 명 받으면 흰 옷을 갈아 입고 자리에 앉습니다. 이때 할복을 도와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이샤쿠’라 합니다. 목을 쳐주는 역할 입니다. 대게 친한 친구나 친척이 맡습니다. 고통 없이 죽게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할복은 단지 시늉만 내는 것이고 실제로 가이샤쿠에 의해서 죽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일본시대드리마를 많이 보았습니다. NHK의 50부작 대하드라마 입니다. 특히 16세기 전국시대와 19세기 막말유신초가 가장 많습니다.
전국시대는 힘이 곧 정의인 시대 입니다. 힘이 센자의 말이 곧 법이자 정의 입니다. 현재 한국불교를 보면 힘이 정의인 시대 같습니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불이익 받습니다. 살려 두지 않고 아예 말살하려 합니다. 허정스님케이스가 그렇습니다.
힘이 곧 정의인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것은 침묵하는 것 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면 무자비한 보복이 뒤따릅니다. 허정스님이 그런 케이스 입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래도 누군가 바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한사람 쯤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만일 모두 다 침묵한다면 한국불교는 정말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꿈틀거림이 있었습니다. 허정스님입니다. 한국불교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 힘이 곧 정의인 세상에서 그래도 한사람 쯤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종단에서 한사람 쯤은 바른 말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도 괜찮을 것 입니다. 한국불교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그 한사람 마저 죽여 버렸습니다. 할복을 명한 것 입니다.
한국불교는 죽었을까요? 종교인구 총조사 발표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흉흉한 소문이 들립니다. 십년전과 비교해서 반토막 났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바른 말 하면 삭죽이는 세상 입니다. 한국불교, 과연 희망이 있는 걸까요?”
천장사 가는 길에
10월 16일 일요일 아침 일찍 천장사로 향했다. 그러나 잠을 설쳤다. 잠을 잘 못 잔 경우 그 날 하루가 힘겹다. 특히 장거리 운전의 경우 되돌아 올 때 졸음과 싸워야 한다. 더구나 월요일 화분을 옮기다가 허리에 무리가 가서 몇 일 힘들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복부에 통증까지 가미 됐다.
복부통증은 때로 온다. 수 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극심하다. 복가슴에서 복부에 이르기까지 딴딴해지는 듯 하며 통증이 시작 되면 그 날은 무척 힘들다. 그저 누워 편히 쉬는 것이 상책이다. 편히 쉬면 그 다음 날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이날 천정사 가는 날 하루 종일 복부통증과 싸워야 했다. 통증이 일어 났을 때 알아차리려 노력했다. 비록 육체적 고통이라는 제1의 화살은 맞았을지언정 정신적 고통이라는 제2의 화살만은 맞지 않겠다는 것이다.
천장사 가는 길은 사뿐하다. 해미 인터체인지에서 고북면 방향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너른 도로에 차만 몇 대 지나다닐 뿐이다. 가는 길에 천장사 이정표가 계속 보인다. 고북농공단지 입구에 매우 인상적인 바위를 보았다. 동물모양 같다. 사자모양같기도 하고 상상속의 동물 해태 같기도 하다. 천정사 가는길 삼거리에 세워진 저 바위 형상은 어떤 것일까?
천장사 가는 길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가지가 V자 모양으로 벌어져 있는데 지나치기 아쉬워서 차를 세웠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수령이 3백년 된 것이다. 설명문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이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동네주민들의 안녕을 바라는 것이다.
천장사 가는 길에 보는 농촌풍경은 목가적이다. 드문드문 있는 집들이 있지만 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가끔 자동차만 달려 갈 뿐이다. 가을이지만 새로운 농작물을 심었는지 밭이 온통초록이다. 들녁에는 벼가 익어 간다. 누렇게 물든 황금들녁에 벼이삭이 제몸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추수가 임박한 것 같다.
쎄빠지게 올라가면
천장사 제2주차장에 도착했다. 제1주차장은 마을 입구에 있어서 버스주차가 가능하지만 제2주차장은 천장사 바로 아래에 있어서 승용차만 가능하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길이지만 초심자의 경우 못 올라 올 수 있다. 처음 천장사를 방문했을 때 그랬다. 악셀레이터를 살짝 밟고 올라 갔는데 도중에 서 버린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2주차장까지는 악셀을 세게 밝고 올라간다.
제1주차장에서 제2주차장 까지 도보로 약 이삼십분 걸린다. 그런데 제2주차장에서 천장사까지는 급경사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쎄 빠지게” 올라가야 한다. 숨이 헐떡 거려 가슴이 쿵덕쿵덕 거리는 것이다. 거의 30도 가량의 경사진 길을 십분 가량 힘들게 올라가면 하늘이 숨겨 놓은 절이라 일컬어지는 천장사가 나타난다.
천장사에 도착하니 일요법회팀원들이 반가이 맞이 해 준다. 지나 2년 동안 가까이 했기 때문에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러나 이날 천장사주지 허정스님의 마지막 법문이 있는 날이라 몹시 초조해 보이는 듯 하다. 앞으로 일요법회팀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는 것 같다.
일요법회에서 초전법륜경을
오전 10시에 일요법회가 시작 되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요법회팀원들과 새로 온 법우님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아래 마을에 사는 노보살님들도 함께 했다. 약 30명 가량 된다. 이날 새로 참석한 법우님들 중에 10명은 경희대불교동아리 출신들이다. 가족들과 함께 온 것이다. 서울에서 온 두 분의 부부팀은 천장사허정스님의 마지막 법문이라 해서 왔다고 한다. 한 사람은 100일 기도를 하는 사람이다. 불교포커스 대표 신희권기자도 참석했다.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오랜 만에 B법우님도 참석 했다. 서울팀으로서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간호 때문에 3개월 동안 참석하지 못했는데 허정스님의 마지막법문이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다.
일요법회에서 초전법륜경을 강독했다. 일요법회 교재로 삼고 있는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이다. 초전법륜경은 전문이 아닌 축약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전문에는 삼전십이행상이라 하여 사성제가 세 번 굴린 형태로 되어 있으나 교재에는 한번 굴린 것만 표현되어 있다.
초전법륜경을 독송하고 토론에 들어갔다. 고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은 왜 괴로움에 대해 말씀 했을까 그리고 깨달음은 무엇일까에 대하여 토론했다. 그러나 자신의 견해를 말한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깨달음과 관련하여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대체 불교적 깨달음은 무엇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 설법만 듣고도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확인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깨달았다는 사람을 보기 힘들까? 이에 대하여 ‘과보심’으로 설명했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을 크게 불선심, 선심, 과보심, 작용심으로 분류해 놓았다. 이중에 과보심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이전생과 관련된 생이지, 즉 타고난 지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89가지로 분류할 때 과보심이 들어가 있다.
과보심은 전생의 업의 결과로 익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숙심’이라 한다. 서로 달리 익는 업의 마음을 말한다. 그렇다고 업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선과보심은 불선한 대상을 만나면 불선업을 짓기 쉽고, 선과보심은 선한 대상을 만나면 선업을 짓기 쉽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병을 보면 술이 마시고 싶어지고 그것을 못 참아 술을 마시게 된다. 담배, 마약 등 중독성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도둑질하는 것도 전생의 업이 익은 과보심으로 본다. 도둑질 하는 과보의 마음이 잠재 되어 있어서 조건만 형성되면 도둑질 하는 것이다.
선업을 짓는 자들은 대게 전생에서 탐, 진, 치가 옅어진 상태로 태어난 자들이다. 선업을 지을 가능성 많은 과보심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무탐, 무진, 무치를 원인으로 해서 태어난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은 부처님 설법 한번만 들으면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과보심에 따른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라 무엇일까?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탐, 진, 치가 소멸된 상태이다. 탐, 진, 치가 소멸 되었다는 것은 무아(無我)를 말한다. 자아관념이 타파 된 자에게 탐욕이나 성냄, 사견 등이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불교적 깨달은 탐진치가 소멸된 상태이다. 그러나 탐진치는 단번에 소멸되지 않는다. 점진적으로 소멸된다. 따라서 불교적 깨달음은 ‘돈오점수’이다.
불교수행의 목적은 탐진치의 소멸이다. 이는 무아를 말한다. 무아는 열반과 동의어라 볼 수 있다. 불교수행의 포커스는 무아에 맞추어져 있다. 불교공부의 키는 무아이다. 부처님이 늘 강조하는 것이 무상, 고, 무아이다. 삼법인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이 무아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유아를 말하지만 불교에서만 무아를 말한다. 무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불교수행이나 공부는 늘 헤메이게 되 있다. 불교의 핵심 키워드는 무아이다.
모든 것을 무아로 보면 다 해결된다. 내 것, 또는 나라고 할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무아이다. 무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면 갈등이 일어날 수 없다. 모든 문제는 내 것, 나의 자아라고 보는 것 때문에 발생한다.
기념촬영을 하고
일요법회가 끝나고 기념촬영을 했다. 앞으로 언제 이런 법회가 있을지 알 수 없다. 대부분 사찰에서 일요법회를 하지 않는다. 설령 하더라도 경전을 강독하며 토론식 법회를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지난 3년 동안 일요법회가 빠짐 없이 봉행 되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교통도 불편한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시골절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논의 했다는 사실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점심공양을 하고
산중에서는 밥을 빨리 먹는다. 대게 오전 11시에서 11시 30분이 식사시간이다. 이는 조식시간이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오전 6시부터 약 30분간이 아침먹는 시간이라 보면 된다. 저녁 먹는 시간은 오후 5시이다. 세상사람들 보다 한 두 시간 빠른 것이다. 이날 모처럼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래서일까 공양식당도 꽉 차는 것 같다.
밍크코트를 입지 않아도
사람들은 일요일 먼 곳까지 찾아와 법문을 듣고 밥을 먹는다.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은 거의 세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다. 그럼에도 이 깊은 산골에 까지 찾아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지스님 때문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절에 갈 때 “스님 보고 절에 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보려고 절에 갑니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어느 절에 가든지 부처님을 뵐 수 있다. 부처님 보러 절에 가지 스님보고 절에 가는 것은 맞지 않다. 이는 부처님이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S22.43) 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자귀의법귀의를 말한다.
부처님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라고 했다. 삼보에 의지하고, 귀의하고, 피난처로 삼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의지하고, 귀의하고, 피난처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스님도 예외가 아니다. 만일 스님을 의지처, 귀의처, 피난처로 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함경에 따르면 불법의 쇠퇴를 가져 올 수 있다고 했다. 스님에게 의지 했는데 스님이 계행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신도들이 떠날 것이다. 스님에게 귀의 했는데 스님이 환속 했다면 어떻게 될까? 신도들이 불교를 떠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의지 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된다. 스님에게 의지해서도 안된다. 불자들이 의지해야 할 대상은,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이다. 특히 승가는 재가불자들뿐만 아니라 스님들도 의지의 대상이 된다. 스님이 스님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도 승가에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라고 분명히 말씀 하신 것이다.
불자들이 절에 가는 것은 부처님 뵈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절에 모셔진 부처님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불상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주지스님도 모두 다르다. 부처님을 닮은 스님이 있는가 하면 동떨어진 스님도 있다. 그래서일까 어느 불자는 “여기 스님은 모두 밍크코트 입은 사람만 상대 하는데 난 능력이 없고 보시도 못하니 조용히 법당에 앉았다 그냥 가요”라고 말한다.
천장사에 가면 밍크코트를 입지 않아도 주지스님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차담까지 할 수 있다. 절에 무심코 들렀는데 주지스님이 “차나 한잔 하시죠?”라며 차대접을 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하여 일요법회에 참석한 법우님도 있다. 천장사에 가면 주지스님과 함께 항상 차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상사 순례법회팀
오후가 되었다. 무상사 순례법회팀이 도착했다. 외국인스님들 수행도량 무상사에서 전세버스 두 차로 약 70여명 가량 온 것이다. 오전에 서산 부석사를 순례하고 오후에 천장사로 온 것이다. 천장사 다음에는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원래 무상사순례팀에 참여하려고 했다. 지난 9월부터 아는 법우님의 초대로 무상사 서울분원에 다니고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폴란드출신 오진법사가 수행지도를 하고 있다. 좌선과 법문, 그리고 공안인터뷰위주이다. 이런 인연으로 무상사순례법회에 참여 하려고 했다. 그러나 천장사주지 허정스님의 마지막 법문이 있어서 방향을 천장사로 잡은 것이다.
무상사에 대봉스님이 있다. 미국인 출신으로 숭산스님 전법제자이다. 현재 무상사 조실로 있다. 작년 재가단체에 있을 때 무상사로 순례법회 간 바 있다. 그 때 빙둘러 앉아 차담을 했는데 법문을 들은 바 있다. 두 번째로 본 것은 지난 5월 해미읍성에서 열린 연등축제 때이다. 세종시에 있는 무상사에서 외국인 스님들이 부스를 마련하여 참선지도를 해 준 것이다. 그때 대봉스님과 대면 했다. 이번 천장사에서 세 번 보았다. 처음 보면 초면이고, 두 번 보면 구면이라 한다. 세 번 보았으니 이제 확실히 얼굴을 익히게 된 것 같다.
어른 스님과의 대화에서
10월 16일 일요일 천장사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산중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시골절이 하루 종일 북적인 것이다. 오전에 마지막 법회가 있었고, 오후에는 무상사순례팀 70여명이 들이닥쳤다. 그 와중에 주지인수인계가 있었다. 천장사로 새로 부임한 주지스님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법랍 15년의 비교적 젊은 스님이다. 수덕사에 포교국장 소임을 맡고 있다가 갑자기 발령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신임주지스님은 전임과 모든 면에서 반대된다. 전임의 경우 종단에 대하여 쓴소리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 결과 밉보여 주지연임을 시켜 주지 않은 것이다. 외압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총림의 어른 스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 하지 않은 행동이다. 그래서일까 전임주지와는 정반대되는 성격의 주지스님을 새로 임명한 것이다.
수덕총림의 어른 스님과 호법국장스님이 주지 인수인계 때문에 왔다. 마침 일요법회팀원들과 법당 마당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어른 스님은 주지교체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누구나 공이 있으면 과도 있기 마련이다. 어른 스님은 주로 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어른 대우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드러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했다. 이에 일요법회팀원 중의 한명이 “주지스님은 정법에 따라 말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천장사에 60년 다녔다는 아래 마을 노보살님은 “그래도 허정스님이 와서 신도가 늘어났지유”라며 말했다.
아래 마을에 사는 노보살님은 천장사에 다닌지 60년 되었다고 했다. 시집 오고 나서부터 천장사에 다닌지 60년 된 것이다. 천장사의 산역사라 볼 수 있다. 그 동안 수 많은 스님들이 주지로 살았다고 한다. 가장 인상에 남는 스님이 20년 주지를 산 Y스님이라 한다. 나이도 비슷했는데 어느 날 주지를 그만 둔다고 했을 때 몹시 아쉬어 했다고 한다. 그 주지스님은 수행도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신도들에게도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방생법회를 가면 버스가 7대 출발할 정도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의 일이라 한다.
천장사에서 20년을 산 Y스님이 떠나고 난 후 새로 주지스님이 들어 왔다고 한다. 어느 주지스님은 2년 살다 간 경우도 있고, 어느 주지스님은 계행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산중에 있는 시골절 주지가 그다지 매력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거의 방치되다 시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4년전 허정스님이 천장사 주지로 발령 받으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전에는 일요법회라는 것이 없었는데 일요법회를 만들어 경전을 강독하고 템플스테이 제도를 만든 것이다. 연등축제를 만들어 참여를 유도 하는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천장사 60년 다닌 노보살님의 눈에 신도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어른 스님에게 말한 것이다.
“그 동안 행복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종단에 쓴소리 했다하여 교체된 것에 대하여 어느 매체에서는 쫒겨 났다고 했다. 종단 최고권력자에게 맞선 것이 화근이다. 그렇다고 쫒아 낸 것은 그릇이 작아 보인다. 요즘 말로 ‘쩨쩨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종단에 가끔 쓴 소리 하는 스님 한명 정도는 남겨 둘 아량이 아쉬운 것이다.
바른 말 하면 삭죽이고, 또 바른 말 하면 삭죽인다면 누가 감히 나설까? 그들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목 좋은 사찰을 독차지 하고 종단 요직을 독점 했을 때 한국불교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 될 것이다. 누군가 나서서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은 쓴소리하다가 쫒겨 났다. 종단과 맞선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종단의 최고책임자와 동급이 된 것이다. 앞으로 큰 일하라고 키워 준것일까? 떠나는 허정스님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인연 있는 스님들이 사는 곳을 찾아 가는 것이 전부이다. 주지직에 있으면서 큰 불사를 하지 않아서일까 모아 놓은 재산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일요법회하고, 종단에 쓴소리 하는 등 열심히 산 것이다. 그 결과는 쫒겨 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무엇 보다 일요법회팀원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이다. 미국에 출장가 있는 어느 법우님은 단체 카톡방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허정스님께.
우연한 산행 중에 천장사라는 절에 들려 공양을 하고 차담에서 스님과 법우님들을 처음 봤을 때 저를 보고 스님과 법우님들께서 정성스레 합장을 하시지만 저는 목례로 답하는 때도 있었는데...
그런 시간이 조금 지나 일상에 분주함 속에서도 일요법회를 참석하는 게 소박한 꿈이었는데... 오늘 천장사에서 허정스님의 마지막 일요법회와 송별회라니요~ 어쩌면 일요법회와 송별회에서 허정스님을 뵙자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남들은 지금 그대로가 괜찮다고 하는데 살다보면 중요한 선택을 하지요~ 소수의 비판이 두려워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그런 이들을 위해 옳은 소리를 하면서 비판을 자주하지만 내심 가장 여린 마음을 갖고 계시지요!
남을 가르쳐 어쩔 수 없이 남의 뜻에 결정짓는 삶도 원하지 않고 진정으로 스스로 의미 있고 행복하길 원하고 마음으로 알리고 행동하는 선지식과 가족 같은 좋은 도반을 이제는 잦은 만남이 없다는 것에 슬프고 허전한 마음을 이루 다 글로 전하질 못 하겠습니다.
허정스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애틀에서 OOO(태평)드림
거사님의 글에 따르면 허정스님과의 인연에 대하여 눈물이라는 단어까지 써 가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 동안 행복했다”는 것이다. 왜 행복했을까? 다른 곳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 초기경전을 독송하고 토론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차담을 하고, 함께 순례를 떠나는 일정이 매주 일요일 반복 된 것이다.
주지스님과 함께 떠나는 순례는 서산지역은 물론 충청도 전역 가보지 않은 사찰이 없을 정도이다. 산중 깊숙이 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사찰을 찾아가 그곳 주지스님과 차담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 등을 듣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울에 사시는 법우님들은 그 먼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매주 내려온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불가사의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는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마치 소풍가는 아이처럼 일요법회 참석하는 것이 설레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세월이 만으로 2년 된 것이다.
천장사의 주인은 신도들이다
천장사일요법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주지스님이 바뀜에 따라 일요법회도 사라지는 것일까? 참으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순례법회 떠나듯이 다른 사찰에서 모여서 법회를 해야 할까? 이런 점에 대하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갖가지 의견이 나왔다.
중지를 모으면 지혜가 나온다. 여러 사람들이 의견 제시를 하는 가운데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다. 그것은 천장사는 신도들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천년고찰 천장사가 특정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주지스님이 오지만 살다 가면 그뿐이다. 그러나 아래 마을에 사는 노보살은 주지가 바뀌건 말건 계속 천장사를 다녔다. 아마 백년전 불자도, 이백년 전 불자도 그랬을 것이다.
스님들은 오고 가지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다. 지난 60년 동안 천장사를 다닌 노보살님에게 있어서 천장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스님들이 오고 가지만 지역에 사는 불자들은 천장사를 지금까지 지켜 왔다. 천장사에 다니는 불자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천장사는 신도들의 것이다. 앞으로도 일요법회는 계속될 것이다.
2016-10-1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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