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공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춘천 삼운사에서
구봉산 전망대에서
비갠후의 산하대지, 본래청정 입니다. ‘이 마음은 본래 빛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뇌로 오염된 마음이 깨끗해 졌을 때 빛난다고 합니다. 주석에 따르면 빛나는 마음을 바왕가의 마음이라 합니다. 한자어로 유분심이라 하고 또 잠재의식이라고도 합니다. 최근에는 ‘존재유지심’이라고도 합니다. 한존재를 존속케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실체화 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게 보면 조건발생한 마음입니다. 일생의 마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육근이 청정하지 못했을 때 이 마음은 오염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근을 청정하게 하면 오염된 마음은 깨끗해진다고 했습니다. 본래 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설령 그 마음이 남보다 열등한 마음이라 해도 번뇌에 오염되지 않았다면 청정한 것입니다. 비갠후의 산하대지를 보면 청정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설령 인공구조물로 가득한 도시일지라도 비갠후의 산하대지의 품안에 있을 때 청정해 보입니다. 구봉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춘천시내가 그랬습니다.
새벽이 되면 세상이 고요합니다. 흙탕물이 착 가라 앉는 것 같습니다. 오개라 불리우는 감각적 욕망, 적의, 해태와 혼침, 흥분과 회한, 회의적 의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숙면 함으로 인하여 선정에 드는 것 같습니다. 비갠후의 하늘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산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잘 조화 되어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가까이서 보면 온갖 오염으로 가득하지만 멀리서 보면 조화롭습니다. 만추의 늦단풍도 그렇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말라 비틀어져 언제 떨어질지 모르지만 멀리서 보면 울긋불긋 합니다.
분지의 도시
춘천에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는 춘천은 아름다운 도시 입니다. 춘천이 호반의 도시라 하지만 멀리서 보면 분지의 도시 입니다. 특히 춘천휴게소에서 바라 보는 춘천은 한폭의 그림 같습니다. 비록 하얀 아파트단지 등 인공구조물이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시의 파노라마를 보면 자연과 인공의 조화입니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 쌓인 자연환경의 영향이 큽니다. 춘천고속고로 끝자락에서 소양강댐으로 향하는 국도와 연결 되는 시점,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힐끔 바라보는 파노라마는 늘 압권 입니다. 특히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보는 파노라마는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 합니다.
자연과 인공의 경이로움
춘천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작은 도시이지만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같은 규모의 서울 위성도시와 비교 되지 않습니다. 위성도시의 경우 베드타운 성격이 짙지만 춘천은 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습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 입니다. 소양강 댐에 서면 자연과 인공의 경이로움에 감탄 합니다.그래서 국민관광지가 되었겠지요.
춘천에 가면 소양강처녀가 있습니다. 친척 중에 십팔번이 소양강처녀 입니다. 노래 부르기 할 때 오로지 한곡 아는 것 입니다. 누구나 따라 부를지 알기 때문에 국민가요라 볼 수 있습니다. 소양강댐에 가면 소양강처녀가 있습니다.
물의 도시
멀리서 보는 춘천은 그림입니다. 가까이서 보는 춘천은 어떨까요? 역시 사람 사는 곳입니다. 호반의 도시라 하여 물과 관련 있는 도시 입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강변으로 갑니다. 강변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도 새로 생겨났습니다. ‘스카이워크’라 합니다.
이미 50만명이 다녀 갔다는 스카이 워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물위를 걷는 것 입니다. 바닥을 투명재료를 사용하여 강물이 흘러 가는 것을 보이게 해 놓았습니다. 물위를 걷는다기 보다 공중에 떠서 걷는 것 같아 스카이워크라 했겠지요.
고래등 같은 삼운사
이동 중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발견 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절인 것입니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산의 산자락에 있습니다. 고래등 같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기와집입니다.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도시나 대형교회와 성당으로 넘쳐 납니다. 이에 반하여 불교의 절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보니 그런 우려가 깨끗이 씻겨 나갑니다. 춘천에 있는 ‘삼운사’입니다.
삼운사 앞에 서니 위풍당당한 위용에 압도됩니다. 네 개의 층으로 된 콘크리트 구조물 입니다. 울긋불긋 단청이 되어 있어서 한눈에 보아도 절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듯 합니다. 도심에 있는 대형사철입니다. 천태종 소속입니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내부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양측에 있는 둥근 형태의 전각은 계단전용 공간 입니다. 회전식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서양의 고성 계단이 연상됩니다. 계단도 예술품 같습니다. 온벽면에 탱화를 그려 놓아 지루한 줄 모릅니다. 단지 오르내리는 기능적 측면만 강조되는 계단이 대부분인데 이곳에서는 예술로 승화 시켜 놓은 듯 합니다.
가장 위에 법당이 있습니다. 4층에 있는 법당은 엘리베이터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나이든 노보살님들을 위한 것이라 보여집니다. 4층 법당은 운동장처럼 넓습니다. 뻬곡히 앉으면 천명은 수용할 듯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하여 양쪽에 협시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법당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천태종 창시자상 입니다. 오늘날 한국천태종 창시자 상월각 조사의 상이 단독으로 커다랗게 봉안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부처님 보다 더 높게 보이는 분 같습니다.
종파불교를 지향하는 일본불교에서는 개산조의 영향이 절대적 입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지 않습니다. 그대신 개산조의 탄생기념일을 성대하게 치룹니다. 종파불교의 가장 튼 특징일 것입니다. 이곳 삼운사에서도 종파불교의 특징을 보았습니다.
삼운사는 도심사찰 입니다. 도심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대형사찰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 입니다. 불교의 교세가 날로 위축되고 더구나 타종교의 위풍당당한 건축물과 비교했을 때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도심에 유치원 등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춘 대형사찰을 보았을 때 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은 됩니다.
자연과 인공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춘천은 작고 아담한 도시 입니다. 그러나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문화의 불모지대라 볼 수 있는 위성도시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더구나 고산준령의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의 도시 입니다. 춘천이 물의 도시, 호반의 도시라 하지만 춘천휴계소길에서 보는 춘천의 파노라마는 분지의 도시입니다. 겹겹의 주변산세와 함께 장대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건축물을 접했을 때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기적에 감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서는 자연이나 인공구조물에 대한 감탄은 드뭅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무상, 고, 무아의 가르침을 실현 하게 위한 용도로 활용됩니다.
맛지마니까야 ‘고씽가법문의 큰 경’을 보면 “벗이여 아난다여, 고씽가쌀라 숲은 아름다워서, 밤에는 밝은 달이 비추고, 쌀라 꽃이 만개하고, 하늘의 향기가 퍼지는 듯합니다.”(M32) 라 되어 있습니다. 고씽가 숲의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청정한 삶을 살아 가는 제자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보름날 밤의 아름다운 고씽가숲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다나에 망고나무숲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 제자가 메기야가 산책하다 아름다운 망고나무숲을 발견했습니다. 숲을 보고 나서 “이 망고나무 숲은 아름답고 즐길만하다. 이 망고나무 숲은 정진하길 원하는 가문의 아들이 정진하기에 알맞다.”(Ud34) 라며 부처님에게 홀로 떨어져 정진하기를 원합니다.
메기야는 아름다운 망고나무숲에서 정진했습니다. 그러나 바램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정진했지만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에 휩싸였습니다. 아름다운 망고나무 숲에 머물 때 ‘감각적 쾌락에 매인 사유, 분노에 매인 사유, 폭력에 매인 사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고 해서 반드시 수행이 잘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메기야가 망고나무숲을 보고서 머물고자 했을 때 욕망이 개입되었습니다. 자연을 감상하면서 감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발동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망고나무 숲에 살면서 욕망은 더욱더 일어 났습니다. 욕망에 매인 사유가 일어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노에 매인 사유도 일어나고 폭력에 매인 사유도 일어났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속에 홀로 사는 수행자에게 좋지 않은 생각이 연속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욕망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았을 때 취하려는 마음을 내었을 때 욕망이 발동한 것입니다. 욕망을 없애는 것이 수행임에도 자연의 경이에 대한 욕망을 가졌을 때 욕망이 더욱더 증장된 것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초기경전에서는 좀처럼 자연예찬이나 인공물 예찬은 보이지 않습니다. 설령 아름다운 자연이 있을지라도 단지 한번 보는 것에 그칠 뿐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누군가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아, 아름답다’라고 했을 때 이미 욕망이 개입된 것입니다. 탐, 진, 치를 소멸하는 가르침에서 욕망으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삼운사 3층 법당에 있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이 좋은 예입니다.
2016-11-0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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