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

점심약속은 지켜야 한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0. 24. 10:52

 

점심약속은 지켜야 한다

 

 

사람들은 쉽게 약속한다. 가장 쉬운 약속이 점심약속이다. 그러나 잊어 버리기 쉽다. 그때 당시에 분명히 점심약속을 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 것은 어쩐 일일까? 아마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할 때 상황과 지금 상황이 다른 것이다.

 

누구나 쉽게 점심약속을 한다. 그리고 쉽게 잊어 버린다. 그러나 상대방은 기억하고 있다.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점심약속한 자가 거짓말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비록 가볍게 약속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 따라 실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점심약속은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한 약속

 

점심약속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갖가지 약속을 한다. 대부분 지키려 노력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지키려 하고 그다지 이익이 없어 보이면 무시하기도 한다. 불사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불사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불사가 하나 있었다. 두 번 납입하고 그쳤다. 벌써 11년 전 일이다. 또 한가지 불사가 있었다. 그것은 종불사이다. 아마 2002년쯤 으로 기억한다. 산악회에서 설악산 갔었다.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대청봉에서 백담사에 이르는 코스였다. 백담사 전에 영시암이 있다. 마침 영시암에서 종불사를 하고 있었다. 등산객과 봉정암 순례객을 상대로한 불사이다. 불사에 동참했다. 그러나 납입은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불사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약속하고 쉽게 잊어 버린다. 친구들과 약속도 그렇다. 모여서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저런 약속을 한다. 다음에 한턱 내겠다는 약속이 많다. 분위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점심약속과 같은 것이다. 해남 황토농장 약속도 그렇다. 귀촌하여 친환경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집을 방문하자고 약속한 것이 벌써 일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통혼례식장에서

 

오랜 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요즘 모였다 하면 대게 경사 아니면 조사이다. 모두 바쁘게 살고 있어서일까 단체카톡방에 있는 멤버가 모두 모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말로 반타작은 하는 것 같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이 되어 줄 때 고마운 것이다. 친구아들 결혼식이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열렸다. 다른 식장과 달리 전통혼례방식이다. 시간도 여유롭다. 지난해 딸혼례식을 이곳에서 올렸는데 이번에 아들도 같은 장소에서 올린 것이다. 그런데 친구본인도 이곳에서 혼례식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부모와 자식 모두가 한 장소에서 이십 몇 년간의 시차를 두고 전통혼례를 올린 것이다.

 

 

 

 

 

 

 

애들 잘 크냐?”

 

혼례식에 참석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애들 찰 크냐?”라고 물어 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지금쯤 모두 성장해서 앞가림을 할 나이인데 애들 잘 크냐고 묻는 것이 어색한 것이다. 그러나 곧 밝혀 졌다. 애들은 자식들이 아니라 손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결혼 하여 가장 먼저 아이를 낳고 가장 먼저 출가시킨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다.

 

 

 

 

 

 

 

 

무엇이든지 선두를 달리는 사람이 있다. 같은 과를 졸업한 동기중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사람이 있다. 가장 먼저 사회에 진출한다든가 가장 먼저 결혼을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가장 먼저 자식을 갖는 것도 선두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먼저 시집이나 장가 보내는 것도 선두에 해당된다. 그러다 보니 3세를 보는 것도 선두가 생겨났다. 그래서 애들 잘 크냐?”라고 말한 것이다.

 

한 세계를 파괴 하려면

 

선두를 달리는 사람을 보면 마치 알을 가장 먼저 깨고 나오는 것 같다. 자연다큐 프로를 보면 새는 부화하기 위해 알을 차례로 낳는다. 알을 낳는 데도 순서가 있는 것이다. 먼저 난 알도 있고 나중에 난 알도 있다. 그런데 부화의 순서는 다르다는 것이다. 어미새가 차례로 알을 품어 주지만 알껍질을 먼저 깨고 나오는데는 순서가 없음을 말한다. 알을 낳은 순서와 무관하게 먼저 알껍질을 깨고 나온 새끼가 가장 손위인 것이다.

 

알껍질 깨는 것과 관련된 소설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볼 수 있다. 소설에서 병아리 부화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데미안의 병아리 부화이야기는 초기불교경전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 데미안은 1916년 출간 되었다. 청년 헤르만 헤세가 삼촌 집에 놀러 갔다가 그때 당시 독일어로 번역된 맛지마니까야 마음의 황무지에 대한 경(M16)’에서 병아리 부화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한다. 참고로 독일에서 맛지마니까야가 번역된 것은 1902년 칼 오이겐 노이만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우리나라 보다 무려 100년이 빠른 것이다.

 

병아리가 부화할 때 알껍질을 깨고 나온다. 이에 대하여 데미안에서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라 했다. 알껍질 깨는 것에 대하여 자신이 구축해 놓은 세계를 파괴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알껍질 깨기는 쉽지 않다. 병아리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껍질을 깨야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 누가 대신 깨주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부리로 쪼아 깨야 한다. 어미닭이 깨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미닭은 지켜만 볼 뿐이다. 따뜻한 체온으로 알이 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부리로 깨 주지는 않는다. 이는 한 마리의 암탉이 있는데 여덟 개나 열 개나 열두 개나 계란을 올바로 품고 올바로 온기를 주고 올바로 부화시키면, 그 알탉은 ‘오! 나의 병아리들이 발톱이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할텐데.’라고 원하지 않더라도 병아리들이 발톱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다.”(M16) 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존재가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려 할 때 진통이 따른다. 유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통을 말한다. 이 몸과 마음이 내것이라고 여기는 세계관에서 이 몸과 마음이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통찰 했을 때 한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래서 데미안에서도“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라 했을 것이다.

 

누가 최상자인가?

 

무엇이든지 선두를 달리는 자가 있다. 결혼도 일찍하고 아이도 일찍가지고 자식의 결혼도 일찍 시킨다. 그리고 손자도 일찍 본다. 같은 출발선상에 있었지만 나중에 보면 멀리 벌어져 있다. 마치 알껍질을 먼저 깨고 나오는 것과 같다.

 

같은 새끼라도 성장속도가 다르다. 먼저 알을 깨고 나왔더라도 비상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알을 낳는데 순서가 있지만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어미가 주는 먹이로 자라지만 비상하는데 역시 순서가 없다. 세상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다. 그러나 죽는 데 순서가 없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에는 순서가 있지만 세상의 이치를 깨치는데는 순서가 없다. 먼저 깨치는 자가 최상자인것이다. 그래서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한 마리의 암탉이 있는데 여덟 개나 열두 개나 계란을 올바로 품고 올바로 온기를 주고 올바로 부화시킬 때, 어떤 병아리가 병아리들 가운데 첫 번째 발톱이나 부리의 끝으로 알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알껍질을 깨고 나온다면, 그 병아리를 손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손아래라고 할 수 있습니까?(A8.11) 라 했다. 먼저 깨달은 자가 최상자인 것이다.

 

황토농장 방문에 대하여

 

오랜 만에 해남친구가 서울에 올라왔다. 천리나 되는 먼 거리에서 친구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저 멀리 목포에서 KTX타고 온 것이다. 요즘 고구마 수확철이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쁠텐데 참석한 것은 아마 고마움을 표현 하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친구 중의 한명이 고구마를 12박스나 구매했다고 한다. 직원이 수 백 명 되는 벤체기업을 운영하는 친구이다. 직원들에게 줄 선물용으로 구매했을 것이다. 또 어떤 친구는 자신의 자녀를 위하여 고구마 두 박스를 신청할 것이라 한다. 이런 고마움과 친척 결혼식 참석 등으로 겸사겸사해서 올라 온 것이다. 가급적 경조사에 참석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천리길을 마다 하고 올라 왔을 것이다.

 

친구들이 피로연장에 모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앞서 언급한 점심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쉽게 약속하고 쉽게 잊어 버리는 약속을 말한다. 분위기에 따라 이야기 하다 보니 또 점심약속과 같은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황토농장 방문에 대한 것이다.

 

황토농장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벼운 점심약속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아직까지 지키지 않은 약속이 많다.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어느 것은 잊어 버렸는지 모른다. 본인은 잊어 버렸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점심약속은 지켜야 한다

 

이제까지 많은 약속을 했다. 글로서 표현한 것도 있다. 법구경을 빠알리어로 다 외워 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1품의 쌍의 품과 과 제2품의 방일하지 않은 품만 외웠을 뿐이다. 나머지도 언젠가는 외워야 한다. 평생 갈지 모른다.

 

점심약속은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래서 제석천의 일곱가지 서원을 보면 나는 살아 있는 한 진실을 말하리라”(S11.11) 라 했. 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서원과 같다. 분위기에 따라 말한 점심약속도 약속은 약속이다. 점심약속은 지켜야 한다.

 

 

2016-10-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