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단풍과 가을앓이
요즘 연락 받았다면 애사 아니면 경사입니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조사가 많습니다. 2주전 조사에 다녀 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들은 말은 “자손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돌아 가신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일날 아침 갑자기 쓰러져서 오전중에 운명을 달리 한 것을 보고 한말 입니다. 구순이 다 된 노모상을 당한 법우님의 말 입니다.
작은 법회모임에서 총무직을 맡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총무는 실무자입니다. 모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경사에 빠짐 없이 참석 합니다. 한편으로 참석을 독려 하기도 합니다. 총무를 맡은지 두 해 째인데 그 동안 크고 작은 애경사에 참석 했습니다. 경사이면 함께 기뻐해주고 애사이면 함께 슬퍼해주는 것입니다.
공감을 얻으려면
소임을 맡고 보니 지난 시절이 부끄럽습니다. 늘 소극적으로 살아 왔습니다. 애사나 경사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친소관계를 따져 보았습니다. 친한 관계이면 참석하고 소원하면 무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경사 연락을 받았을 때 참석한 곳이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정신과전문의 전현수박사에 따르면 공감을 강조합니다. 공감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글을 보고 공감버튼을 누를지는 순전히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글에 대하여 자신과 견해가 일치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버튼을 누릅니다. 공감이 많은 글일수록 좋은 글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공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신과전문의에 따르면 가능한 애경사에 많이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애사에 많이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대게 경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지만 애사의 경우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원한 관계이었거나 덜 친했던 사이임에도 애사에 참석했다면 매우 고마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애경사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풀어 가는 열쇠라 합니다.
가을앓이
11월달 입니다. 일년 열두달 중에 가장 슬픈 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락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관찰하는 것인데 대게 11월 20일을 전후하여 낙엽이 집니다. 은행나무가 기준입니다. 20일을 전후하여 그야말로 우수수 떨어지는데 추풍낙엽을 실감 합니다. 도시의 가로수 상당수가 은행나무인데 20일 전후로 낙엽이 일제히 졌을 때 그야말로 앙상한 뼈대만 남습니다.
은행나무가 앙상해졌을 때 심한 가을을 탑니다. 마치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허(虛)와 ‘무(無)’가 엄습합니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심하게 ‘가을 앓이’를 합니다. 낙엽이 우수수 질 때 인생을 생각합니다. 사람의 일생도 낙엽 같은 것이라 봅니다. 봄에 싹이 나서 여름에 푸르름을 자랑하지만 가을에 노랗게 변색되면서 비바람이 불면 맥 없이 떨어지는 것이 사람의 일생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익은 과일처럼
사실 낙엽을 인간의 죽음과 관련 지어 표현한 문구는 보기 힘듭니다. 나무의 잎파리는 너무 많고 그다지 극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목숨을 열매로 표현한 경우는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시입니다.
“결국 익은 과일처럼
떨어져야 하는 두려움에 처합니다.
이처럼 태어난 자들은 죽어야 하고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어집니다.”(stn576)
죽음에 대하여 익은 과일이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습니다. 자연의 순리 입니다. 열매를 맺으면 씨를 남깁니다. 씨가 발아 하기 위해서는 땅에 떨어져야 할 것입니다. 빨간 홍시가 나무에 걸려 있을 때 언제 떨어질지 모릅니다. 무게를 지탱할만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익었다는 것은 떨어질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음을 말 합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노년에 이른 자가 지금 건강해 보일지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앙상한 나무에 걸려 있는 홍시와 같습니다. 홍시가 어느 날 갑자기 툭 떨어지듯이 지금 멀쩡한 사람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죽음이 찾아 올지 모릅니다. 특히 노년에 이르렀을 때 언제 찾아 올지 모릅니다.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으나
죽음은 나이와 무관하게 언제 들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하는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애처롭고 짧아 고통으로 엉켜 있습니다.”(stn574) 라 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대수명이 85세라면 어느 누구도 기대수명대로 살도록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으나 먼저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음을 말합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노년이 되면 죽음은 확실하게 기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늙으면 반드시 죽음이 닥치는 것입니다. 뭇삶의 운명은 이러한 것입니다.” (stn575)라 했습니다. 늙으면 죽음이 바로 옆에 있음을 말 합니다. 마치 익은 열매가 어느 날 ‘툭’'하고 떨어지듯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죽음과 직면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석양의 단풍
도시의 단풍이 절정입니다. 구청앞 공원에 있는 단풍나무가 불타는 듯 시뻘겋습니다. 은행나무는 온통 노랑색 입니다. 석양에 빨간 단풍나무와 노랑은행나무가 반짝입니다. 지는 해에 빛나는 단풍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절정의 단풍이 곧 지고 말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엑스터시후의 ‘허(虛)와 ‘무(無)’같은 것입니다.
11월 20일을 전후하여 단풍은 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단풍은 지지 않았습니다. 절정의 단풍이 지는 햇살에 눈물 나도록 아름답게 비칩니다. 절정이 지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순간은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 입니다.
2016-11-1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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