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거지성자는 어디에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1. 17. 11:26

 

 

거지성자는 어디에

 

 

 

몇 주전 조카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식장에서 오랜 만에 사촌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나이 많은 사촌들입니다. 그 중에는 비슷한 또래들도 있습니다. 사촌 누이가 있습니다. 매형이랑 함께 왔길레 전재성박사 아세요?”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어렴풋이 기억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그 거지하고 사귄 사람!”이라 했습니다.

 

매형은 80년대 초반에 독일 퀼른대로 유학 떠났습니다. H대에서 상법을 전공했는데 학자의 길로 가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떠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결혼식 올리고 처가에서 석달 가량 살다가 유학길에 오른 것입니다. 유학을 떠 났을 때는 이미 애가 배에 있었습니다. 유학을 떠난지 5년만에 일시 귀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둘째 애를 가졌습니다.

 

매형은 독일에서 10년 공부 했습니다. 참으로 긴 세월입니다. 사오년도 아니고 십년 걸려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모두 잊어 버리고 있을 때 돌아 왔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 온 것입니다. 아빠 없이 자란 모습이 안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비난도 했습니다. 공부 뒷바라지를 사촌누이가 다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생활 하면서 학비를 보내 준 것입니다. 현재 H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매형이 기억하는 전재성박사는 거지와 사귀는 사람 정도로 봅니다. 거지를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때 당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성자처럼 보이는 거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듯 합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넘어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사귄 경우는 전재성박사가 유일하다고 봅니다. 이는 전재성박사의 자전적 에세이 거지성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생무상을 넘어 인생절망을

 

최근 종로3가에 자주 갑니다. 매주 한번 있는 도이법사의 위빠사나 강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붓다에서 개설한 미붓아카데미 강좌 중의 하나 입니다. 종로3가 종로세무서 맞은편 종로오피스텔 10층에 있습니다. 석달 목표로 개설된 이 강좌에는 이제 세 명 남았습니다. 첫 날 10명 가량 참석 했으나 도중에 다 떨어져 나가고 C거사와 미디어붓다 이학종대표기자, 그리고 본인 이렇게 세 명이서 참석하고 있습니다. 다음주면 회향합니다.

 

종로3가를 지날 때 마다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갈수록 고령화 되는 시대에 종로3가는 노인들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 등 노인을 위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형편 없이 늙어 버린 노인들이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면 인생무상을 넘어 인생절망을 봅니다.

 

종로 3가에는 노숙자도 많습니다. 특히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사이 담벼락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수염은 더부룩하고 얼굴은 꽤죄죄합니다. 어떤 이들은 누워있고 또 어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 처지가 될 줄은 꿈에도

 

일로 인하여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친구입니다. 그는 한때 벤처회사 사장으로 잘 나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김대중정부시절 청와대에 초청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한번은 광화문 부근을 지나다가 차를 멈추었다고 합니다. 노숙자가 썩은 듯한 음식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내려서 노숙자에게 만원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서 소주 사마시지 말고 따뜻한 밥을 꼭 사먹으세요?”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소주 사 마셨을 것이라 확신하듯이 말합니다.

 

노숙자들이 돈이 생기면 술을 사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라 합니다. 사회친구 역시 그런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서 밥사먹으라고 당부하면서 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돈을 받은 노숙자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잘 나가던 사회친구는 부도가 났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노숙자와 다름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때 노숙자를 동정하여 선행을 베풀었는데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거지와 걸사의 차이는?

 

거리의 노숙자를 보면 두 가지 이미지가 떠 오릅니다. 하나는 거지의 이미지이고 또 하나는 성자의 이미지입니다. 마치 창녀와 성녀처럼 극과 극의 이미지 입니다. 빌어 먹는 것에 있어서는 거지가 틀림 없지만 무소유의 삶에 있어서는 성자의 이미지 입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무표정의 노숙자에게서 성자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지와 성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어느 날 바라문걸식자가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저도 걸식자이고 그대도 걸식자입니다. 우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S7.20) 라고 물었습니다. 똑같이 탁발에 의지하며 살아 가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은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은 시로서 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그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악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걸식 수행자가 아니네.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살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 (S7.20)

 

 

게송에서는 ‘걸인(乞人, bhikkhaka)’ 과 ‘걸사(乞士, bhikkhu)’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견(邪見)을 가지고 걸식하는 자는 거지와 다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밥을 빌어 먹어도 정견(正見)을 가진 자는 걸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거지와 걸사의 가장 큰 차이는 청정한 삶입니다. 거지는 막행막식하며 살아 가지만 성자는 계행을 지키며 청정한 삶을 살아 갑니다. 거지는 누구에게나 손을 벌리고 남의 집을 불쑥불쑥 들어 가지만 걸사는 때 아닌 때 먹지 않고 집앞에 조용히 서 있을 뿐 입니다. 또한 걸사는 자신이 선택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습니다. 걸사는 다만 무소유와 청정한 삶을 위해 거지처럼 사는 것입니다.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

 

전재성님의 책 거지성자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숙에 대한 것입니다.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은 엄동설한에 밖에서 자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걸사는 밖에서 잘 수 있습니다. 그것도 잠을 잘 잘 수 있습니다.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겨울의 노숙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지성자의 주인공 페터 노이야르는 겨울날씨가 영하 18도까지 내려 가도 학교 숲에 있는 나무아래서 잤다고 했습니다. 다만 비가 오면 학교 도서관 낭하로 옮겨 잤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페터 노이야르는 추위를 견딜 특별한 비법이 있었을까요? 호기심 많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저 청년은 내가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자니까 무슨 신비한 비법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있더군. 그래서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네. 나도 어렸을 때는 한겨울에 창문을 여는 것 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해 주었지. 그리고 나처럼 되려면 비법을 터득할 것이 아니라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말해 주었네.(거지성자, 247)

 

 

페터 노이야르에 따르면 겨울철 노숙에 대하여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단지 가르침을 따르면 된다고 했습니다.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입는 것, 얻어 먹는 것, 잠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 청정한 삶

 

종로3가를 지날 때마다 노숙자들을 봅니다. 불과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종로2가 인사동길과 대조적입니다. 도로 저편에는 행복한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러나 도로 이편에는 음울한 분위기입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차안과 피안이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도로 이편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때로 성자의 모습을 봅니다. 북풍에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노숙하는 자들에게서 무소유의 삶을 봅니다. 그러나 청정한 삶이 없다면 노숙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청정한 삶을 빠알리어로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라 합니다. 청정범행이라고도 합니다. 팔정도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거지와 성자가 다른 것은 청정한 삶에 달려 있습니다. 거지이면서도 동시에 성자인 것은 무소유의 청정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진정한 거지성자가 있을까요?

 

 

 

2016-11-17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양의 단풍과 가을앓이  (0) 2016.11.18
다시 뛰는 미디어붓다  (0) 2016.11.18
고독한 수행자  (0) 2016.11.15
오로지 이 길로 갈 수밖에 없는  (0) 2016.11.14
바쁘다는 핑계로  (0) 2016.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