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식물에도 격(格)이 있다, 또다시 만개한 행운목꽃을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1. 26. 09:47

 

식물에도 격()이 있다, 또다시 만개한 행운목꽃을 보며

 

 

 

이른 아침 사무실 문을 열자 상큼한 향내가 확 풍깁니다. 행운목에서 핀 꽃의 향기입니다. 상큼하기도 하고 시큼한 것 같기도 하고 무어라 말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과를 먹은 자가 사과를 한번도 먹어 보지 않은 자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행운목꽃만의 독특한 향기가 사무실에 가득합니다. 너무 강렬한 향기에서 환기를 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가운 날씨임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두 개의 가지에서

 

2주전 꽃대가 보였습니다.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꽃대가 쑥 솟아 나온 것입니다. 꽃대는 쑥쑥 솟아 나왔습니다. 마치 간난아기가 자라는 것처럼 성장속도가 보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길어 지는 꽃대에서 마치 탁구공이나 골프공 모양의 꽃다발이 형성되었습니다. 밤송이 같기도 한 꽃다발에는 수 많은 꽃잎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밤송이 같은 동그란 꽃다발을 보면 수 많은 가시가 달려 있는데 가시와 같은 것이 꽃잎입니다. 그런데 가시 같은 꽃잎은 보기에 한 개로 보이지만 한개가 아닙니다. 저녁이 되면, 어두워 지면 놀랍게도 펼쳐 집니다. 마치 성냥개비 같은 꽃잎에서 다섯 개의 꽃잎이 활짝 펼쳐 집니다.

 

 

 

 

 

 

행운목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작년에도 피었고, 재작년에도 피었습니다.행운목꽃이 처음 핀 것은 2010년입니다. 화원에서 약 5만원 주고 사온 것입니다. 목대가 두꺼운 것을 샀습니다. 자동차안에 들어 갈 정도로 키가 크지 않았습니다. 2007년에 샀는데 만 3년이 된 2010 11월 처음 꽃이 핀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꽃을 접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꽃이고 더구나 냄새가 매우 강렬해서 무척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한번 꽃이 피고 나자 매년 피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두 번 피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는 한 해 거르기도 했습니다.

 

올해 핀 행운목꽃을 보니 두 개의 가지에서 피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한 개의 가지에서 피면 다른 가지는 쉬는 것이 보통입니다. 가지마다 번갈아 가며 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가지 두 개에서 피었습니다.

 

 

 

 

 

 

식물에도 격()이 있다

 

행운목꽃이 필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식물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식물도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움직이는 생명은 아닙니다. 동물처럼 정신작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강렬한 향내를 발산했을 때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교계신문 기사에 따르면 식물도 오감이 있다고 했습니다.

 

과학 전문 번역작가 양병찬님에 따르면  식물도 인간처럼 오감을 갖고 있으며, 지능이 있으며, 다른 식물이나 곤충과 상호작용하고 있다.”라 했습니다. 식물도 오감과 지능을 가진 존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양작가에 따르면 식물이 동물에 비해 하등한 존재로 취급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식물은 노아의 방주에도 실리지 못했고 식물은 감각이 없다는 이유로 바위 같은 무생물의 범주로 취급당했다고 합니다.

 

최신 연구에 의하면 식물에도 뇌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시그널링(Science Signaling)’지에 따르면 식물의 뿌리가 외부 신호를 분석해 명령을 내리는 이른바컨트롤 허브(조절 중심)’ 기능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양작가에 따르면 식물에도 윤리가 적용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인격(人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물에게 동물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소에게 우격(牛格)을 적용하고, 돼지에게 돈격(豚格), 닭에게 계격(鷄格), 개에게 견격(犬格)을 적용하듯이 식물도 식물격(植物格)이 있어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식물권과 관련하여

 

식물권과 관련하여 초기경전에서 잘 묘사 되어 있습니다. 디가니까야에 따르면 그는 종자와 식물을 해치는 것을 여윕니다.”(D2) 라 했습니다. 숫따니빠따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든 생물에게 자애를 베풀어야 하리라.” (stn967)라 했습니다.  또 동물이건 식물이건 어느 생물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또 죽이거나 죽이도록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stn629)라 했습니다.

 

율장대품에서는 네 가지 행해서는 안될 일이라 하여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은, 심지어 풀잎이라도, 주지 않은 것을 훔칠 목적으로 갖자 말아야 한다.”(Vin.I.97) 라고 했습니다. 걸식으로 사는 수행자가 산야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열매나 식물의 종자를 단지 먹거리로 생각하여 채취한다면 도둑질로 보는 것입니다.

 

지는 꽃을 보면서

 

사무실에는 행운목꽃 향기로 진동합니다. 사무실 안에 앉아 있으면 감각이 마비되어서인지 잘 모르지만 외부에 있다고 문을 여는 순간 강렬한 향내가 후각을 자극합니다. 행운목꽃 필때 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십일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행운목꽃은 결국 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꽃이 질 때 차마 보아 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합니다. 마치 피눈물 흘리는 것처럼 꽃잎이 뚝뚝 떨어질 때 차라리 꽃대를 쳐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놔 두려 합니다. 지는 것을 보면서 무상(無常)을 보기 위함입니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있는 것입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꽃은 지고 맙니다. 눈물을 흘리듯이 꽃 잎을 떨어 뜨리지만 무상하게 변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지는 꽃은 제행(諸行)이 무상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올해는 꽃이 져도 꽃대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내버려 둘 것입니다.

 

 

2016-11-2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