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열등감과 자만과의 관계는? 마음의 그림자 콤플렉스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1. 30. 14:07

 

열등감과 자만과의 관계는? 마음의 그림자 콤플렉스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 젠더에 대한 콤플렉스, 지역에 대한 콤플렉스, 직업에 대한 콤플렉스 등 매우 다양합니다. 먼저 젠더에 대한 콤플렉스입니다.

 

페미니즘

 

남성으로 살며 은연중에 여성에 대한 일종의 우월감 같은 것이 깔려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성차별에 따른 것이라 봅니다. 여성과 젠더라는 말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여성과 젠더라는 단체 대표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성차별과 소외자로서 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 하는 단체라 볼 수 있습니다. 성문제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 해법을 찾고자 함을 알았습니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그리 심각하세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입장이 된다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불이익 같은 것입니다. 입장에 따라 콤플렉스가 생겨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력콤플렉스도 그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학력 콤플렉스

 

가장 심한 콤플렉스는 아마 학력일 것입니다. 학벌사회에서 소위 가방끈이 짧으면 여러모로 불이익을 받습니다. 가문이나 출신 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위가 없으면 취직에 제한 받습니다. 학위가 없으면 배우자 선택에도 역시 제한 받습니다. 소위 난사람, 든사람이 되려면 긴 가방끈이 필요합니다. 박사 정도는 되어야 대접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박사님, 박사님하며 호칭을 불러 주는지 모릅니다.

 

마음의 그림자

 

콤플렉스란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복잡한, 단지, 종합의, 복합의’의 뜻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는 ‘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으로 설명됩니다. 일반적으로 ‘열등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콤플렉스에 대하여 이부영 교수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무의식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수한 콤플렉스가 있다. 태어난 뒤 그 사람이 살아온 개인적인 생활 속에서 억압된 것, 잊어버린 것들로 구성된 개인적인 무의식과 이미 태어나기 이전에 결정된 인간 행태의 보편적이며 원초적인 조건인 원형들로 구성된 집단적 무의식이 있다.”

 

(아니마와 아미무스 32-33p, 이부영 교수)

 

 

무의식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콤플렉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콤플렉스는 한 존재의 삶의 과정에서 ‘억압 된 것’이라 합니다. 이는 우리말로 ‘한()’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마음의 그림자입니다.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의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무의식적인 나의 마음을 그림자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없는 듯이 보이지만 늘 따라 다니는 마음의 그림자를 남 보듯이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그림자를 결코 분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그림자를 이해 하는 것이 결국 의식화 작업이고 또 자기 완성으로 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메커니즘에서 그림자에 해당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이부영 박사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구조

 

 

 

이것이 마음의 메커니즘(구조)입니다. 마음이 둥근 공처럼 생긴 것이라고 볼 때 마치 양파껍질을 까듯이 한 꺼플씩 벗겨 보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의 학력

 

세간에서는 학력이 출세의 조건이 됩니다. 그렇다면 출세간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스님의 학력에 대하여 글을 쓴 바 있습니다. 2013년에 스님의 유학과 박사학위(2013-01-14)’라는 제목의 글 입니다.

 

글에서 학위를 취득하지 않은 스님들에 대해 비판 했습니다. 인도유학간 스님들이 장기간 살면서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세간의 잣대를 댄 것입니다. 재연스님의 동국대정각원 토요법회를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고 소감을 밝힌 것입니다. 인도 뿌네대학에 장기간 유학한 바 있는 재연스님은 학위와 관련하여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저만 학위가 없어요. 잘못 알고 소개할 때 박사라고 하는데 사실 박사아니거든요. 제가 뿌나에 제일 먼저 갔어요. 사실 제일 먼저 간게 아니고 여기 앉아 계신 이지수교수님 있죠? 이지수 교수님이 거기 계셨고 전 그때 이지수 교수님에게 이야기해서 뭣좀 보내 달라고 했더니 입학원서를 보내 줬더라구요.

 

뭐 선방에 놀다가 그렇게 하다가 갔는데, 그래서 제가 갔을 때는 이지수교수님이 돌아 왔고 그러다 보니까 한국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몇 년을 저 혼자 살았는데 기숙사에서 살면서 보니까 아무도 없고 한국말 할 기회도 없고 하니까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따 누가 우리말 한 사람이 와 갖고 저녁내 쓸데 없는 소리 밤새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간절히 그 생각이 낳는데, 나중에 삼년이 지나니까 그때쯤 내가 막 부추기고 꼬드기고 해서 스님들이 하나씩 불어나가지고 나중에는 거의 스므명 정도 같이 살게 됐어요.

 

지금 그 스님들 모두다 중요한 일들 하고 계시죠. 그 스님들 다 박사학위를 했는데 저하고 우리 빠알리 니까야 번역 가장 많이 하시는 각묵스님이라고 있어요. 각묵스님하고 둘만 박사학위 논문을 안썼어요.

 

제가 싫더라구요. ‘아이 중이 비구면 됐지 그것 따로 피에치디(Phd.)붙이면 무엇하냐’ 싶기도 해서 ‘난 안해’ 그랬더니 우리 각묵스님이 괜히 자기도 ‘나도 안할래요’ 그러더라구요.(청중들 웃음) 그래서 끝끝내 안했는데, 아무튼 저랑 실상사 같이 살았어요. 지금도 실상사에 살고 계십니다. 저는 선운사로 도망 나왔고..

 

(재연스님, 2012 4 7일 정각원 토요법회 , 일시 : 2012 04 07일 토요일 주제 : 초기불교의 깨달음 법사 : 재연스님 촬영, 편집 : 동국대학교 교육방송국, DUBS)

 

 

재연스님에 따르면 1985년부터 1993년 까지 인도에서 13년간 유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사학위가 없다고 했습니다. 유학가면 반드시 학위를 따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라 생각했습니다. 유학 간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살러 간 것이라 생각 됐습니다. 세속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놀러 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비구면 됐지

 

세속에서는 학위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것도 명문대이면 금상첨화입니다. 난사람 또는 든사람이 되면 대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인지 보다 높은 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올인 하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버려야겠다는 생각마져 버리고 출가한 수행자에게 학벌이 필요 있을까요? 놀랍게도 우리사회에서는 스님의 학력이 위세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스님을 소개할 때 학력과 학위 등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학력, 이력, 경력에 대한 소개를 보면 출세간이나 세간이나 다름 없다고 보여집니다.

 

인도유학 13년의 재연스님은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법회에서 아이 중이 비구면 됐지 그것 따로 피에치디(Phd.)붙이면 무엇하냐라 했습니다. 그때 당시 이를 비판 했습니다. 세속적 잣대를 들이댄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자에게 굳이 학력이라는 것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재연스님의 말대로 비구면 됐지라고 말한 것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에 한번 다녀보라고

 

어떤 이는 대학원에 한번 다녀보라고 권유합니다. 불교관련 석사과정부터 박사과정을 말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튀어 나옵니다. 또한 이 나이에 학위 받아서 뭐하게?”라는 말도 따라 붙습니다.

 

십년공부해서 학위를 딸만한 당위성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나이도 나이이지만 무엇보다 생업이 있어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학위는 젊었을 때나 취득하는 것이지 나이들어 학위 취득하는 것이 그다지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열등도 자만이라니!

 

누구나 한 두 가지 이상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종교와 젠더 대표는 여성에 대한 성의 차별을 초기경전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초기경전에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콤플렉스에 대한 답이 초기경전에 있습니다. 그것은 자만(mana)’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몇 해 전 인터넷으로 본 동국대정각원 토요법회에서 빠알리경전 번역가 전재성님은 열등감도 자만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까지 우월감만 자만으로 알고 있었는데 열등도 자만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말 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빠알리 경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만과 관련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자기를 남과 비교하여

동등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stn799)

 

 

자만은 수행의 과정에서 버려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자만은 아라한이 되었을 때 최종적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자만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 알게 해줍니다.

 

자만은 “내가 누군데!”라는 것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대게 우월한 자의 자만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자만에는 태생의 자만, 배운자의 자만, 부자의 자만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등도 자만이라 했습니다. 물론 동등도 자만 입니다.

 

열등의 열등은

 

우월감, 동등감, 열등감 모두 자만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모두 아홉 가지 자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월감에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우월의 우월, 우월의 동등, 우월의 열등 이렇게 세 가지 자만이 있습니다. 열등감에도 세 가지 자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등의 열등은 어떤 것일까요? 주석에서는 이렇게 설명 해 놓았습니다.

 

 

노예 등에서 생겨난다. ‘나는 태생에 의해서 노예상태이다. 그러나 나에게 부모의 노예의 지위는 없다. 내가 왜 노예라고 불리는가.’라고 교만을 만든다. 그리고 노예와 동일하게 도살자 또는 짠달라와 같은 천민도 교만을 만든다.’

(디가니까야 2539번 각주, 합송의 경 D33, Smv.999-991, 전재성님역)

 

 

열등중열등에 대하여 열등한 자 가운데 나는 열등하다는 교만이라 했습니다. 아마 최악의 열등감일 것입니다. 학력, , 지역 등에 대하여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열등감이 아니라 자만일 것입니다.

 

수행의 과정에서

 

아홉가지 자만 중에 우월중우월, 동등중동등, 열등중열등 이렇게 세 가지는 거룩한 길의 경지(아라한)에서 부수어진다고 했습니다. 아라한이 되었을 때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여섯 가지는 흐름에 들었을 때 즉, 수다원이 들었을 때 부수어 진다고 했습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아라한이 되어야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자만 입니다. 태생자만, 학력자만, 부자자만, 지역자만, 성자만 등 자만은 수행의 과정에서 없어집니다. 세간에서 학력등이 위력을 발휘하지만 출세간에서는 무력화 됩니다. 재연스님 말대로 비구면 됐지 그것 따로 피에치디(Phd.)붙이면 무엇하냐라는 말이 크게 다가옵니다.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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