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 7차 촛불에 참가하고
매번 패배만 맛 보다
일요일 아침 떠오른 태양의 햇살이 찬란합니다. 비록 거리의 가로수는 앙상하고 초겨울 추위에 옷깃을 여미지만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그것은 결국 국민이 승리 했기 때문입니다. 매번 패배만 맛 보다 처음으로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어제 토요일 12월 9일은 7차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일곱 번째 촛불에 나갈까말까 고민했습니다. 12월 9일 탄핵이 압도적으로 통과된 마당에 굳이 나갈 필요가 있을까 고민한 것입니다. 편하게 집에서 종편방송이나 보면서 지켜 보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기로 했습니다. 1차 촛불에서부터 4차, 5차, 6차 까지 참가하여 기록을 남겼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거리는 멀고 날씨는 추웠지만 ‘명학역’으로 출발 했습니다.
이제 명학역에서 시청역을 목적지로 하는 1호선 수도권 전철을 타는 것은 익숙합니다. 토요일이면 으레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갠지스강에 하나의 모래알 같은 존재이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이고 모였을 때는 커다란 강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촛불의 강’입니다. 참가 해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입니다.
이제 LED촛불이 대세
늘 그렇듯이 시청역에서 내렸습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서울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가 가장 먼저 반겨줍니다. 대로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보다는 덜 모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모인 편입니다. 탄핵안이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되었기 때문에 굳이 추운 날씨에 나올 필요가 없음에도 나왔다는 것이 놀랍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아마 좀더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1차부터 6차까지 촛불집회를 현장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한가지 변화를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촛불입니다. 10월 29일 1차 촛불때는 거의 대부분 ‘양초촛불’이었습니다. 종이컵에 양초를 꼽아 불을 붙인 형태를 말합니다. 그때 당시 삼사천명이 참가하리라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열 배 가량 많이 온 삼사만명이 참가 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후 매주 촛불이 열릴 때마다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촛불은 자꾸 진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양초촛불이 대세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수가 더해 갈수록 LED촛불이 늘어 갔습니다. 특히 강원도 춘천에 지역구를 둔 여당의원의 발언이 LED촛불의 수요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 발언 이후 LED촛불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2월 10일 7차 촛불이 열리는 시점에 거의 반 이상은 LED촛불인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LED가 주류로 된 것 같습니다.
LED촛불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양초 모양을 한 것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LED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타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컬러풀한 색깔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LED촛불을 왕관처럼 쓰고 다니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촛불 차수가 높아짐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LED가 신제품 경쟁하듯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생계형 노점상
촛불집회 현장은 생생한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첫 촛불이 타올랐을 때는 노점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수가 증가될 때 마다 생계형 노점이 급속히 증가 했습니다. 대부분 오뎅, 꼬치, 군밤 등 먹거리를 파는 노점입니다. 매주 수십만명이 운집하는 광장의 한켠에는 생계형 노점이 줄지어 있어서 마치 야시장에 온 듯 합니다.
노점에서 오뎅을 사 먹었습니다. 일인분에 3천원합니다. 뜨끈한 국물에 함께 먹으니 속이 든든합니다. 그래도 허기가 져서 이번에는 군밤을 샀습니다. 한봉지에 5천원합니다. 비록 노점상이 통로를 막아 놓고 장사에 열중하고 있지만 그들도 한마음이라 봅니다. 생계형 노점에서부터 기업형 노점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노점 없는 촛불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수십만명이 운집한 곳에서 따끈한 오뎅국물 파는 노점이 없다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을 것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탄핵안이 압도적 표차로 가결되었음에도 국민들은 또 다시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그만 해도 될 법한데 또 다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절반의 승리라 생각해서 일 것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손이 시릴 정도로 영하의 날씨에 단단히 무장하고 또 다시 나온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여성진행자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외칩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는 내려와라! 재벌도 공범이다! 김기춘을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칩니다. 아직까지 탄핵통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듯 보입니다.
인증샷과 기념사진
국민들은 승리 했습니다. 비록 절반의 승리라 할지라도 승리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이날 나온 사람들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비장한 각오이었지만 이번 촛불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승리를 즐기는 축제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일까 촛불인파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아예 전문적으로 기념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도 등장했습니다. 작은 무대를 마련해 놓고 더구나 조명장치까지 마련하여 찍어 주는 것입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팔레트 판 위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박근혜를 구속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아마도 역사적인 ‘촛불명예혁명’에 참여 했다는 것을 길이 남기고자 함일 것입니다.
세월호 아픔이 남아 있는 곳
이날 7차 촛불에는 약 70만명 참가 했다고 합니다. 지난주와 비교하여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이지만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로운 것 같습니다. 이제는 촛불이 매우 익숙한 듯합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있는 곳 까지 가 보았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각종 부수가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텐트가 수 십 개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동상 앞에서 세월호 참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형 촛불탑이 세워지고
이순신장군 동상 뒤에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형촛불입니다. LED로 만들어진 일종의 촛불탑입니다. 이번 촛불에 새롭게 점등된 것입니다. 아마 촛불집회가 계속 된다면 촛불탑은 계속 점등 될 것입니다.
이순신장군동상을 전후로 세월호와 관련된 것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7시간과 함께 ‘세월호를 잊지 말자’라는 뜻에서일 것입니다.
노랑 옷을 입은 망자들
세월호의 진상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7시간 뿐만 아니라 왜, 어떻게 침몰하게 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모두 공감하는 세월호 비극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억울한 죽음’입니다. 그래서일까 촛불탑 바로 옆에는 억울하게 숨져간 넋을 달래는 듯 노랑 옷을 입은 망자의 모습을 형상화 해 놓았습니다.
이날 7차 촛불은 사실상 세월호 유족들을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족을 대표한 대변인의 3분 연설이 있었습니다. 대변인은 그 동안 받은 고통을 말하면서 더 독해질 것이라 했습니다. 탄핵통과 된 것은 시작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아직 밝혀 진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드러날 때까지 독한 마음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세월호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기 그지 없습니다. 같은 연령대의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월호 관련 집회에 열심히 참가 했습니다. 그리고 수 십 개의 글을 썼습니다. 그 중의 일부입니다.
1)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남과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2016-04-18)
2) 왜 하필 그 시간 그 자리에? 재난에 대한 초기불교적 해법(2014-04-26)
3) 낭만의 바다와 통곡의 바다, 자신을 섬(島, dipa)으로 만들어야(2014-06-01)
4) 죽어도 죽지 않는 죽음(不死) (2014-06-25)
5)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세월호 미공개 동영상(2014-07-18)
6)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서울광장 세월호특별법제정문화제(2014-07-20)
7)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죽은 자와 산 자의 듀엣 김장훈의 ‘거위의 꿈’(2014-07-25)
8) 감성이 마른 기득권자들이 보아야 할 동영상, 김장훈-이보미의 ‘거위의 꿈’ (2014-07-28)
9) 국민휴가 마지막 날 광화문에서(2014-08-11)
10) 자식이 죽으면 몇 년 상을 치루어야 할까? 세월호 힐링콘서트 김장훈의 ‘내사랑 내곁에’(2014-08-16)
11) 천주교시복식 참관기(2014-08-17)
12) 가난하고 힘없는 유민아빠는 살아야 한다(2014-08-20)
13) 나쁜 아빠 만들기, TV조선 ‘악마의 편집’을 보고(2014-08-27)
14) 하이에나가 된 TV조선(2014-08-30)
15) 광화문광장에서 본 사람들 (2014-08-31)
16) 약자들이 억울하다고 느낄 때 몰락의 징후가, 최상자가 정의롭지 못하면(2014-09-22)
17) 삼등항해사는 무엇을 보았길래, 세월호급변침을 보도한 후지TV(2014-09-24)
18) 세월호유가족들의 눈물은 언제 마를까?(2014-09-04)
19)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미소를 띄우며…”세월호유가족을 외면하는 대통령 (2014-10-29)
20)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EBS ‘가족쇼크’ 단원고 세월호유가족(2014-11-20)
백일 째 되는 날 서울광장에서 집회는 무척 슬펐습니다. 17세의 아이가 절규하듯이 ‘살고 싶다’는 동영상을 접했을 때, 가수 김장훈이 영혼듀엣을 불렀을 때 사람들은 모두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했습니다. 또 유민아빠의 수척한 모습을 보면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했습니다.
처절한 싸움을 했으나
세월호 가족들의 싸움은 처절했습니다. 종종 인터넷과 방송으로 접하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습니다. 대통령 면담을 위하여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수 십일 동안 노숙을 하고, 국회에서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에 눈물의 하소연일 했지만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눈물도 피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품어 주기를 바랐으나 기대난망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모 신문에서는 “참으로 야멸차고 매정하며, 독하고 냉정하다.(한겨레, 2014-08-25)”라고 표현 했습니다.
대통령이 ‘야멸차고 매정하며, 독하고 냉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뒤에 비선실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비선실세는 세월호의 노랑색깔만 보아도 싫어했다고 합니다. 이는 대통령도 마찬가지라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2년 넘게 세월호 유족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월호피로감으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부모의 심정으로 열심히 참가 했고 참가한 것에 대하여 소감문을 작성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과 동영상이 언젠가는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관심이 적어졌습니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이 정권하에서는 밝혀 질 수 없다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래서 애써 피하고 무의식적으로 멀리 한 것인지 모릅니다. 이는 사회분위기와다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세월호에 대하여 심정적으로 안타까워 하지만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보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세월호 이야기 꺼내는 것을 금기시 합니다. 마치 빨간조끼를 입은 금속노조원들의 팔뚝질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철통 같은 철권의 통치에 세월호는 점차 잊혀 가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세월호를 멀리 하기 시작 했습니다. 일종의 세월호피로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족들이 승리한 날
국회에서 탄핵결의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되었을 때 노랑 옷을 입은 부모들이 가장 먼저 함성을 질렀습니다. 심지어 어느 부모는 감격에 복받쳐 눈물까지 터뜨렸습니다. 그렇다고 죽은 자식이 돌아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남은 것은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는지 밝혀 내는 것이라 봅니다.
그 동안 세월호에 무관심 했던 것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부모된 심정으로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려 했으나 장기간 표류함에 따라 그 날이 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치 ‘도둑처럼’ 온 것입니다. 도저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철권통치가 촛불의 함성에 맥없이 고꾸라진 것입니다. 거대한 촛불의 흐름에,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에 맥없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마침내 그날이 온 것입니다. 승리의 날입니다. 국민이 승리한 날이고, 세월호 유족들이 승리한 날 입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만들어 보자고
승리의 날에 초청가수도 신이 난 듯 합니다. 가수 이은미는 애국가를 비롯하여 열정적 노래와 함께 “대한민국이여, 다시 태어나라!”라고 외쳤습니다. 도중에 발언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강렬한 톤으로 한상균석방을 주장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촛불시위하다 구속된 민주노총위원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날이 조계사에서 잡혀간지 딱 일년 되는 날이라 했습니다. 한상균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 했는데 조계종 수뇌부가 달갑게 여기지 않아 자진 출두한 날이라 합니다.
한상균위원장은 일년 먼저 촛불을 든 이유로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일년째 복역중이라 합니다. 부위원장은 한상균석방을 주장합니다. 이에 호응하듯이 여성진행자는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합니다. 지금 촛불을 들고 있는 수 십만 국민들이 인터넷 검색창에 ‘한상균 석방’이라는 문자를 써 넣자는 것입니다. 검색창에 써 보았습니다. 약 30분이 지나자 다음 실시간 검색어에 ‘한상균석방’이 2위로 랭크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떼창하며
촛불이 승리한 날입니다. 사람들은 부담없이 축제를 즐깁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더 있지만 지금 이순간만큼은 여유럽고 넉넉한 마음으로 추위에도 불구하고 즐기는 듯합니다. 이때 소위 운동권 가요라 불리는 노래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산자여 따르라’라는 노랫가사로 잘 알려진 ‘님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만든 노래라 합니다. 먼저 간 자의 넋을 달랜다는 개념으로 선택된 노래인데 세월호로 희생된 자들의 추모분위기도 담고 있는 듯합니다. 합창단이 처음에는 느린 템포로 불렀습니다. 이절부터는 급템포로 경쾌한 리듬입니다. 이때 방송이 잠시 중단 됐습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부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소위 말하는 ‘떼창’입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흔들며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라며 떼창을 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노년층이나 부모를 따라 온 초등학생이나 생음악으로 모두 따라 합니다. 70만명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 “산자여 따르라”라는 구절로 유명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당신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
2차 촛불 때 도올 김용옥은 매우 인상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그것은 명예혁명입니다. 갑자기 불어난 촛불을 보고서 아마 혁명을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국민에 의한 혁명, 그것도 폭력이 없는 무혈의 명예혁명입니다. 도올의 주창한 것처럼 국민들은 마침내 명예혁명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이름을 짓는 다면 아마 ‘촛불혁명’이라 볼 수 있습니다. 11월에 타 올랐기 때문에 ‘11월 혁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듯이, 역사는 참여하는 자의 것입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추위가 닥쳐도 궂은 날씨에 매주 참가한 촛불들이 만들어낸 역사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날을 기려 명예혁명, 촛불혁명, 11월 혁명 등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이런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사람들은 인증샷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모두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2016-12-1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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