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진보의 역사일까 퇴보의 역사일까
종교의 경쟁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신도가 많다든가 성전이 크면 경쟁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성전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신도가 많아도 오래 유지한 종교는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유사이래 수 많은 종교가 명멸했습니다.
종교가 사라진 이유는
한때 어느 지역의 사상을 장악했던 종교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로아스터교가 있었습니다. 예언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짜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종교입니다. 한때 페르시아에서 크게 융성해서 사산왕조의 국교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종교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청정하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리가 오염 됐을 때 사라졌을 것입니다. 본래 가르침에서 멀어졌을 때입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것도 본래 가르침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힌두교화된 밀교가 힌두이즘 속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종교의 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됩니다. 때로 정반대로 해석한 교리가 등장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처님이 제법에 대하여 ‘무상, 고, 무아’를 설했음에도 이를 ‘상, 락, 아’로 받아 들인다면 전혀 다른 종교로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삼법인에 대해 불교인지 아닌지 판가름 하는 잣대와 같다고 합니다.
불교는 진보의 역사일까 퇴보의 역사일까
어떤 이들은 불교가 ‘진보’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불교진보의 산물로서 중관학, 유식학, 여래장사상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진보론자의 주장을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은 완전한 것이 못됩니다. 미완성의 깨달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불교주의자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 가르침 그 자체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완성된 것입니다. 깨달음이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것이라면 부처님은 깨달음을 선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초전법륜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고성제에 대하여 “이것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라 했습니다. 마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은 고성제에 대하여 “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는 상세히 알려져야 한다.” “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가 상세히 알려졌다.”라며 두 번 더 굴렸습니다. 이렇게 고성제에 대하여 세 번 굴려 확인 했는데, 똑 같은 방법으로 집성제와 멸성제와 도성제에 대해서도 세 번 굴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 즉 ‘세 번 굴린 열두 가지의 형태(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로 확인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생노병사 등 괴로움의 원인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라며 고성제를 설했습니다. 부처님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에 대하여 괴로움의 발생이라 하여 “반드시 버려야 한다.”라고 집성제를 설했습니다. 부처님은 갈애의 소멸이 괴로움의 소멸이라 하여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라며 멸성제를 설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올바른 견해 등 팔정도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라 하여 “반드시 닦아야 한다.”라며 도성제를 설했습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실현됐을 때 누구나 깨달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님입니다.”(stn558)
부처님은 사성제를 세 번 굴려서 열두 가지 형태로 확인 되었을 때 마침내 깨달음을 선포했습니다. 초전법륜경에 따르면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게 원만히 깨달았다고 선언했다.”(S56.11) 라 했습니다. 인간은 물론 하늘나라 천신, 심지어 악마에게까지 선포한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부처님의 깨달음 자체는 완전한 것이고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하여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無上正等正覺: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라 합니다.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후대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여 깨달은 진화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오염됐습니다. 이는 사실상 ‘불교의 퇴보’입니다. 후대 논사들이 깨달음을 보완 했다고 하지만 이는 깨달음의 오염이자 가르침의 퇴보입니다. 부처님 당시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는 가르침이 오염됨에 따라 계속 퇴보 해 왔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이래 불교는 사실상 퇴보의 역사를 걸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 설법만 들어도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초기경전에 수 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후대 깨달았다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심각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으로 봅니다. 현상에 대하여 ‘무상, 고, 무아’로 보아야 하나, 정반대로 ‘상, 락, 아’로 본다면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은 오늘날 경, 게송, 응송 등 구분교 형태로 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원음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접하다 보면 매우 분석적이고 체계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침을 Systematic 하다고 합니다.
위기에 처한 한국불교
한국불교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조짐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세대가 지나면 소수종교로 전락할지 모릅니다. 종교도 시장경쟁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종교로서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이웃종교와 비교하여 종교시장경쟁력이 형편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 방식대로 따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을 크게 짓고 신도를 많이 확보하기 보다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종교가 청정했을 때 가장 큰 경쟁력이 생겨납니다.
부처님 당시 대부호들이 앞 다투어 보시 했습니다. 제자들의 경행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마음이 기뻐지고 마음이 청정해져서 저절로 보시하고픈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죽림정사와 기원정사 보시가 대표적 예입니다.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 법이 오래 머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과거칠불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세계에서는 한부처님 가르침만 통용됩니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하나의 세계에서 두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동시에 출현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고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A1.285) 라 했습니다. 한세계에서는 오로지 한부처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가르침이 변질되어 쇠퇴하여 사라지면 이 세계는 암흑으로 변해 버립니다. 가르침은 남아 있지 않고 삿된 견해만 판치는 세상이 됩니다. 수행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정법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사마타는 있어도 위빠사나는 없습니다. 불교가 타종교와 차별화 되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사마타는 어느 종교에서나 있습니다. 대상에 집중하면 기독교인의 경우 예수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위빠사나에서는 무상, 고, 무아로 관찰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삼법인은 불교의 잣대입니다. 삼법인 없는 불교는 불교가 아닙니다. 삼법인 없는 불교는 무뉘만 불교입니다. 혹시 우리는 무뉘만 불교를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볼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추락한 것은 가르침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 봅니다. 가르침이 오염 되었을 때, 가르침이 청정하지 않았을 때 종교시장에서 경쟁력은 상실됩니다. 한국불교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청정한 삶이 가장 큰 경쟁력
옛날 한반도는 불국토 이었습니다. 신라시대 불교가 전래 된지 일이백년 만에 전국이 불국토가 되었습니다. 마치 전래 된지 130년 밖에 안되는 개신교가 전국에 십자가 천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기세이었습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강력한 경쟁상대가 나타났습니다. 방심한 사이에 1위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2백만명 차이입니다.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한국불교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분명한 사실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부처님 그분 가르침대로 사는 것 외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청정한 삶이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2016-12-29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는 만큼 알려준다 (0) | 2017.01.05 |
---|---|
백신인가 면역력인가, 청정국토를 실현하려면 (0) | 2017.01.03 |
당신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 7차 촛불에 참가하고 (0) | 2016.12.11 |
열등감과 자만과의 관계는? 마음의 그림자 콤플렉스 (0) | 2016.11.30 |
“끝내 이기라” 명예혁명은 이루어 질것인가, 5차 촛불에 참가하고 (0) | 2016.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