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알려준다
교계에도 신문이 있습니다. 약 칠팔개 정도 됩니다. 그 중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도 신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신문입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때로는 기관지라는 말도 합니다. 마치 당보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론 본연의 임무인 비판 기능은 사라지고 단지 조직이나 단체의 동정이나 소식을 전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고위층의 의중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기관지라 할 것입니다.
조계종 기관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불교신문에는 읽을 만한 기사나 칼럼도 있습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누적된 자료도 매우 풍부합니다. 그 중에 ‘수미산정’이 있습니다. 주로 스님들이나 명망있는 재가자들의 글이 실립니다. 대부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수미산정에서 자우스님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전법함에 부지런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차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소홀했다. 스님들조차 교리를 가르치고 법문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물론 자신의 수행에 대한 겸손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아는 만큼 실천하고 나누는 용기가 필요 하다.”
(자우스님, 수미산정, 불교신문 2017-01-04)
자우스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특히 “아는 만큼 실천하고 나누는 용기”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대게 스님들이나 불자들은 앞에 나서기 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아는 만큼 알려 주어야 하나 공부가 덜 됐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습니다. 알아도 나서지 않은 것이 미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타종교인은 조금만 알아도 알려 주려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길거리에서 ‘예천불지’를 외치는 자는 제외입니다.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필명으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글입니다. 11년 전 불교에 대하여 잘 몰랐을 때에도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경전에 근거한 글쓰기입니다. 무식한 것이 용감하다고 마구 갈긴 것은 가르침을 근거로 한다는 든든한 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매일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계신문에 칼럼까지 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충고도 받습니다. M스님의 경우 이제 의무적 글쓰기는 그만하고 완성도 높은 글을 쓰라고 점잖게 충고합니다. 일주일에 한편 올리는 칼럼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노이즈 마케팅한다”든가 심지어 “반풍수 같은 글이다”라고 폄하 합니다.
이름 석자를 알리려거든 실명으로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지금까지 필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목적을 가졌거나,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바랬다면 실명으로 글을 썼을 겁니다. 그럴 경우 “노이즈 마케팅한다”라는 말이 맞을 겁니다.
반풍수라는 말은 모욕적 용어 입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을 경계해서 하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초기경전을 근거해서 글쓰기 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는 만큼 알려주자” 입니다.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되는 인터넷시대입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아는 만큼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알려 준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왔습니다. 매일 글을 쓰다보니 글도 느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수행 등 더 많은 것을 알려거든 강호의 숨은 고수를 찾아 가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우스님의 “이제는 아는 만큼 실천하고 나누는 용기가 필요 하다.” 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2017-01-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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