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보아주는 사람
“진흙속의연꽃이 대체 누구냐?” 지난 달 종교인구감소 관련 세미나에서 미디어붓다 최기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현재 미디어붓다에 ‘진흙속의연꽃의 블교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동국대 박교수가 한말이라 합니다. 박교수에 따르면 실명도 밝히지 않고 필명으로만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하여 매우 궁금 했던 것 같습니다. 대체 무엇 하는 사람인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서 물어 본 것이라 합니다.
주경스님을 만났습니다. 총무원장 직선제관련 차담을 요청 했는데 흔쾌히 동의해 주어서 총무원청사에서 만났습니다. 스님은 현재 조계종총무원에서 기획실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직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한국불교미래는 어떤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불자인구가 3백만명이나 감소하고 더구나 2백만명 차이로 개신교에 1위를 내준 것은 충격적인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주경스님도 진흙속의연꽃에 대해 매우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차담에 요청해 준 것도 아마 개인적인 호기심도 작동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것은 순전히 글 때문 입니다. 블로그와 교계신문의 칼럼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글을 오래 전부터 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글로서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만나자 마자 마치 구면인 것처럼 이야기가 술술 풀렸습니다.
인터넷시대를 맞이하여 블로그에 매일 글을 올리고 있는 ‘보통불자’입니다. ‘보통’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평범한 불자이기 때문입니다. 수행만 하는 스님도 아니고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닌 자가 매일 글을 올리다 보니 필명이 많이 알려 졌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쓴 글이 3천개에 달하고; 500만명 이상이 조회했으니 교계신문에서는 ‘파워블로거’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고무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글 잘보고 있습니다.”라는 말 입니다.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되는 인터넷시대에 올린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마 솔직한 글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대게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은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불리한 것까지 드러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한 초기경전을 근거로 담아 내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건질 것이 있다’라고 생각해서 일지 모릅니다.
주경스님과 1시간 1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불교미래에 대해 물어보려 했으나 글이 메인 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스님도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글 이야기로 옮겨 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직선제 등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스님에 따르면 쉽지는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통과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중앙종회’의 보수적 성격 때문이라 합니다. 총무원장스님이 요청한 것도 부결시킬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곳이 종회라 합니다.
사람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한번 형성된 얼굴이 바뀌지 않듯이 사람의 성향 역시 바뀌지 않습니다. 이 얼굴 이 성향이 늙어 죽을 때까지 유지 되는 것도 이전생에 지은 행위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파란곡절이 일어 났을 때 바뀔 수 있습니다. 또한 크게 깨닫는다면 역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을 살아 간다면 성향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모든 제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한번 만들어 놓은 제도를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개헌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때 뿐입니다. 총무원장직선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득권층에서 스스로 알아서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강한 보수성에 기인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지킨다’는 뜻의 가짜보수를 말합니다. 큰 문제만 없다면 현제도를 지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개혁이 어렵다고 합니다.
혁명적 상황이 되지 않는 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혁명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 되었을 때 개혁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위로부터 개혁입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강한 보수성으로 인하여 거의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방법은 끊임 없이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글로서 압박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자의 최대 무기는 ‘입’이라 합니다. 요즘은 정보통신시대이기 때문에 글이 가장 영향력 있습니다.
주경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반대편에 서서 반대의 입장을 강력하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혹시라도 글로 인하여 불편함이나 불쾌를 느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과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글의 취지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재조에 있거나 재야에 있거나 블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감정적 문제는 털어 버리고 가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마칠 때 선물을 했습니다. 늘 준비 하고 있는 음악씨디 입니다. 기획실 직원들과 총무원장 스님에게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으로부터는 책을 한권 선물받았습니다. 2016년 11월 출간된 ‘마음활짝’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고승이 읊은 게송을 풀이하고 현실의 삶에서 느낀 것을 짧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가장 애송하는 게송이 있다고 합니다. 보화선사의 게송입니다.
明頭來明頭打 명두래명두타
暗頭來暗頭打 암두래암두타
四方八面來旋風打 사방팔면래선풍타
虛空裏來連架打 허공리래연가타
밝게 오면 밝게 치고
어둡게 오면 어둡게 친다.
사방팔방에서 오면 회오리처럼 치고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처럼 친다.
(보화선사)
보화선사는 중국 당나라시대 선승이라 합니다. 게송은 걸림 없는 무애의 삶을 노래한 것이라 합니다. 특히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 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번뇌에 대하여 도리깨치듯이 사정없이 쳐내는 것이라 합니다. 이 게송을 보니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려 있는 팔풍이 생각납니다.
팔풍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를 말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득과 불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과 같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가 전개됨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원리에 대하여 팔풍이라 합니다. 대부분 여덟 가지에 대하여 바람 부는 대로 살아 갑니다. 그러나 현자는 팔풍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단지 알아차리면 됩니다. 나에게 비난이 일어났을 때 “이러한 비난이 나에게 생겨났는데, 그것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다.”(A8.6) 라고 있는그대로 분명히 알면 된다는 것입니다.
주경스님은 책을 건네 주면서 사인해 주었습니다. 책 첫장에 필명과 실명을 언급하며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친필 사인을 해 주었습니다.
보통불자로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고립되어 글만 쓰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지 이제 3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불자이긴 하지만 스님을 만난 경우는 드뭅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스님이 있다면 ‘명진스님’일 것입니다.
명진스님 역시 오래 전부터 글을 보아 왔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두 손을 꽉 붙잡고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라 했습니다. 명진스님의 특징은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는데 있습니다. 추인을 하며 상대방을 배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게 자신의 말만 하려 하며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잘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진스님은 큰스님입니다.
잘 듣는 것이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때로 침묵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경청하면 의외로 얻을 것이 많습니다. 상대방이 술술 말할 때 건지는 것이 많습니다. 대화할 때 잘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남는 장사’라 볼 수 있습니다. 주경스님도 잘 경청하는 타입입니다. 토론을 잘 하기로 유명하지만 잘 경청해 주어서 많은 말을 했습니다. 주로 글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길어진 것입니다. 누군가 글을 보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크게 고무됩니다. 글을 봐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 입니다.
2017-01-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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