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한국불교에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한 이유는?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2. 29. 10:18

 

 

한국불교에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한 이유는?

 

 

개신교보다 200만명이 적어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한 것은 불교인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대체 어떻게 했길레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인구가 9프로 감소 했다 하는데 거기에 불교가 7프로 차지합니다. 사실상 불교만 대폭으로 감소한 것입니다.

 

 

 

 

 

불자수가 왜 대폭 감소 했을까요? 주류측에서는 무분별한 폭로때문이라 합니다. 비주류 측에서는 일부중의 범계때문이라 합니다. 어떤 이는 인터넷과 일인가구 증가이유 때문이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불교만 200만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불자들이 불교를 떠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기복신앙을 들 수 있습니다. 무언가 바라는 기도를 했을 때 유일신교와 차별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노보살들이 험한 산길 대신 집근처 교회로 발길을 돌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는 노인대학, 노인무료점심제공 등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무감동입니다. 교회에 가면 재미가 있다고 합니다. 논산훈련소에  5천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훈련병들이 일요일 대부분 교회로 향한다고 합니다. 초코파이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훈련소 교회가면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것은 찬송가 실로암합창 입니다. 이에 대하여 실로암 못지 않은 불교콘텐츠를, 자광스님의 ‘군공연단’(2012-09-18)’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씁니다.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실로암 공연을 보면 병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벗어 흔들며 “각개전투” “GOD” “실로암” 를 연창하며 거대한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 버립니다. 이것이 문화공연의 힘입니다. 그러나 절에는 젊은이를 끌어 들일만한 문화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세번째는 전근대적 이미지입니다. 국민들의 눈에는 개신교는 문명의 종교 이미지이고, 불교는 극복해야 할 미신적이고 전근대적 이미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조는 개신교 전래 이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시대를 앞서 가는 것 같고, 절에 가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느낌 같은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기복에 매몰 되어 있고, 아무런 감동이 없고, 전근대적 이미지 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와 공존하는 종교시장에서 매우 불리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세 가지 항목에 대해 반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은 아닙니다.

 

저의 경우로 봤을 때 부처님 근본 가르침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빠알리 삼장을 접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불자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종교로 갖기를 참 잘 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단번에 기복, 무감동, 전근대적 이미지가 극복 됩니다. 이 세상에 부처님 가르침에 견줄만한 것이 없습니다.

 

초기불교를 접하면 한국불교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 됩니다. 부처님 그분을 알면 한국불교가 다시 중흥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한국불교가 사는 길입니다.

 

 

Ya kiñci vitta idha vā hura vā     양낀찌 윗땅 이다 와- 후랑 와-
Saggesu v
ā ya ratana paīta,       삭게수 와- 양 라따낭 빠니-

Na no sama atthi tathāgatena          나 노 사망 앗티 따타-가떼나
Idampi buddhe ratana
paīta         이담삐 붓데 라따낭 빠니-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이 세상과 내세의 어떤 재물이라도,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여래에 견줄 만한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stn224)

 

 

2016-12-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