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승가공동체가 무너졌다, 미얀마에서 온 메세지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 2. 11:18

 

승가공동체가 무너졌다, 미얀마에서 온 메세지

 

 

미얀마에서 메세지가 매일 오고 있습니다. 카톡방에 올려진 글을 보면 미얀마는 확실히 불국토입니다. 종단에 쓴소리를 했다고 하여 천장사 주지직에서 쫒겨 나다시피 한 허정스님의 글입니다. 동안거 기간에 미얀마에서 한철을 보내고 있는 허정스님의 글에 따르면 미얀마는 불국토입니다.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먼저 허정스님은 새해첫날, 사제스님께올리는 형식으로 글을 시작했습니다.

 

 

병신년 한해가 다 가고 정유년이 시작 되었습니다. 올해는 미얀마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네요. 천장사 주지를 하다가 이쪽으로 오게된 그간의 사정은 스님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저는 이곳에서 생활하게 된 것에 대해서 참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스님이 사시는 지리산 절에서는 대중들이 예불은 참석하되 정진은 자율적으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제가 있는 토론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나 정기적으로 토론하는 것에서부터 스님들은 서서히 깨어날 것입니다.”

 

(새해첫날, 사제스님께, 2017-01-01, 불교포커스)

 

 

여기서 사제스님은 선일스님을 말합니다. 허정스님 바로 전에 천장사 주지직을 맡았습니다. 허정스님과는 수덕사 동기라 합니다. 나이는 더 많지만 허정스님이 먼저 출가했으므로 선일스님이 사제가 됩니다. 그러나 친구처럼 지냅니다. 아마 허정스님과 가장 절친이 선일스님일 것입니다. 천장사 신도들과 일박이일 순례도 함께 한 바 있습니다. 현재 지리산 실상사 인근 백장암에서 새로운 결사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청규를 만들어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결사입니다.

 

승가공동체가 무너졌다

 

허정스님은 미얀마 한 꾸띠에 있습니다. 한국스님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스님은 큰 절의 주지직을 8년이나 맡았지만 미련 없이 털어버리고 미얀마에서 2년 동안 수행중이라 합니다. 탁발에 의존하며 하루 한끼로 사는데 마치 오래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매우 익숙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현실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카톡방에 올려 놓은 글을 보면 너무나 차이 나는 현실에 답답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모순되고 왜곡된 승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 미얀마와 비교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곳 수행센타에 살게 되니 우리 승가의 문제점이 더욱 잘 보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 승가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풍족한 승가 청빈한 스님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곤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만드신 승가공동체를 회복하자는 뜻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승가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고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승가에는 두 가지 유산이 전해옵니다. ‘법의 유산물질의 유산입 니다. ‘법의 유산은 말그대로 부처님과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따라 배워서 사과(四果)를 성취하는 것이고물질의 유산은 선배님들이 이룩한 사원과, 임야, 전답등의 유산입니다. 1600년 우리의 불교역사는 수많은 사찰과 문화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역사속에 이어져온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온전히 물려받은 우리종단은 현재승가를 관리하고 미래의 승가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출가자는 세속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무소유의 상태로 승가에 들어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군입대를 하면 군대라는 시스템이 모든 군인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듯이 승가는 모든 출가자들을 의식주를 책임져야 합니다.

 

승가의 유산이 공적으로 바르게 사용되면 수행자는 자연스럽게 화합하고청빈한 생활을 하게됩니다. 이렇게 법의유산과 물질의 유산을 간직한 승가는 재가자들의 안식처와 귀의처가 됩니다. 우리종단은 안식처와 귀의처가 되는 승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삼귀의에서승가를 단순히스님들로 번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승가의 두 가지 유산, 공동체성, 사방승가의 의미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렇게 번역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방승가의 정신에 따라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느나라 사람이건 사찰에 머물 수 있어야 하고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이곳 미얀마에서 저와 다른 외국인스님들이 아무런 댓가 없이 머물며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승가의 성격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계종은 외국인 스님들을 따듯하게 맞이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는 커녕 우리나라스님들 조차 문전박대하고 있습니다. 객비를 얻으러 다니는 전문적인 객승들 때문에 객실을 없애버린 탓입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그겠다는 말처럼 우리가 객실을 없앤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수행자가 절을 찾아도 머물 수 없으니 수행자끼리 만남은 끊어지고 소통이 단절되었습니다. 객승이 오면 뛰어나가 바랑을 받아주었다는 선배스님들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속의 이야기가 되었고 율장의 객스님을 대하는 조항도 쓸모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객실폐쇄는 승가의 의미와 성격에 무지한 선배스님들이 저지른 커다란 실수입니다. 스님들이 모텔이나 호텔에서 숙박을 원하더라도 그것을 막아야 하는데 이제는 돈 몇푼을 쥐어주고 스님들을 모텔과 호텔로 내몰고 있습니다. 모텔에 머물다보면 자연스레 음주 도박등 다른 계율을 범하기 쉽게 됩니다. 우리종단에서 다시 사찰마다 객실을 갖추어 놓는 것을 의무화하고 매년 '올해의 최고 객실'을 찾아내어 상을 주었으면 합니다.

 

승가의 유산과 수입을 일부스님들이 독점하면서부터 스님들은 너도나도 토굴이이라는 개인처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토굴이 많이 생겨날수록 절에는 스님들이 텅텅비고 산중토굴, 아파트토굴에는 스님들이 넘쳐납니다. 토굴을 짓는 위치와 크기등을 제한하는 종법도 없고 개인의 취향 혹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지어지는 토굴은 현재 재가자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의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미계를 받을 때부터 가사를 개인이 구입해야하고 다음 법계로 올라갈 때마다 가사를 개인이 사야합니다. 군대에 입대할 때 자신의 총은 PX에서 본인이 구입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절에서는 실제로 자신의 가사와 승복을 본인이 사야합니다. 가사뿐만 아니라 춘하추동입어야 할 승복도 자신이 구입해야 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승복은 다른 세속의 옷보다 비쌉니다. 종단에서는 대부분 수계를 받는 은사스님이 가사와 승복을 사주고 있다고 변명하겠지만 본인이 샀다는 스님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은사가 상좌들의 가사와 승복을 사주게 한다는 것은 은사는 평소에 돈을 모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돈이 없으면 상좌를 받지 말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래저래 수행자들에게 소유를 부추기는 종단의 잘못된 태도인 것입니다.

 

기본교육을 받는 부분에서도 지방승가대를 가거나 동국대등을 가더라도 학비를 공부하는 학인이 내야 합니다. 이렇게 출가해서도 돈이 들어 갈 곳이 많은 것이 현재의 승가의 현실입니다. 겉으로는 무소유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돈을 요구하는 종단, 출가자들의 의식주를 책임지지 않고 각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종단, 이렇게 한국불교는 승가가 본래의 역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음식문제도 그렇습니다. 선방이 있는 대중처소에서는 공양간에 보살님들이 여러명을 고용하여 풍성한 공양을 하고 있지만 토굴에 사는 스님들은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일입니다. 대중처소가 아닌 토굴을 선택한 이상 손수 끼니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유가 있는 토굴스님은 공양주보살님을 두어 대중처소처럼 잘 먹고 삽니다. 앞으로 큰절로 밥을얻어 먹으러 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만 토굴을 짓게 한다면 혼자 살더라도 대중처소에 사는 효과가 생길 것입니다.

 

승가가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수행자는 철저히 개인화 되고 개인화 될 수록 부익부빈익빈의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풍족한 승가란 선배스님들이 물려주신물질의 유산을 수행자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주는데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승가안에서 부익부빈익빈의 상황이 벌어지고 스님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서 경쟁하게 되는 현재의 상황은 이미 승가공동체가 무너졌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새해첫날, 사제스님께, 2017-01-01, 불교포커스)

 

 

 

 

 

 

우리불자들은 스님들의 세계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또한 알려주지도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잘모릅니다. 또한편으로 불자들은 스님들의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이 아마 출가일 것입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릎쓰고 스님은 왜 출가했어요?”라고 묻습니다.

 

언젠가 해인사 현진스님이 스님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바 있습니다. 이는 스님들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이야기라 볼 수 있습니다. 스님들의 출가와 수행, 일상생활 등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좋은 이야기만 쓰여 있습니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음에도 긍정적인 이야기 위주입니다.

 

미얀마에서 전하는 허정스님의 글은 고뇌에 가득찬 것입니다. 단순하게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스님이야기가 아니라 승가이야기입니다. 불자들이 몰랐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스님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미얀마 불교와 대비시켜 설명 했을 때 한국불교는 확실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승가공동체가 무너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다

 

허정스님의 글에 따르면 한국의 승가공동체는 무너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승가유산과 그에 따른 수입원이 투명하게 관리 되지 않은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소위 힘있는 스님들, 즉 권승들이 승가의 재산을 사유화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승가공동체 회복을 위한 가장 첫 단계는 직선제입니다. 이에 대하여 허정스님은  승가의 역활을 되찾기 위하여 우리는총무원장 직선제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직선제는 현제 상황에서 부익부빈익빈의 잘못된 승가구조를 깨고풍족한 승가 청빈한 스님을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가능성 있는 방법입니다.”라 했습니다.

 

직선제가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한 대안입니다. 그것은  부자승가 가난한 스님의 승가공동체의 실현입니다. 이에 대하여 피흘리지 않고 이룩하는 혁명이라 했습니다. 한국불교는 리모델링의 대상이 아니라 재건축의 대상입니다. 한국불교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혁명의 대상입니다. 모두 허물어 버리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얀마처럼 불국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2017-01-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