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없이 절 없이, 신도가 주인이 되는 불교
한국불교가 왜 2등으로 추락했을까? 그것도 200만명 차이로 개신교에 1위를 내 준 이유는 무엇일까?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견줄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불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교계신문사이트에서 토론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일제히 전했습니다. 소위 여당지라 불리우는 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12월 29일 오후 7시 장충동 우리함께빌딩 2층에서 열린 ‘2015 통계청 종교인구집계 발표에 따른 한국불교 현실의 진단과 과제’라는 긴 이름의 토론회 입니다.
토론회는 ‘참여불교재가연대’와 ‘한국불교언론인연합회(불언협)’에서 공동으로 주관했습니다. 그런데 토론회 부제를 보면 ‘제1차 긴급토론회’라 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긴박 했을까요? 이는 이날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발제문과 사회자의 설명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계종 기관지라 불리우는 불교신문 기사의 영향이 매우 큽니다.
최근 불교신문에 따르면 한국불교가 2005년과 비교하여 300만명이 빠진 것에 대하여 소위 해종언론과 해종행위자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에 소위 야당지라 불리우는 교계신문과 각종 재가단체에서 반발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긴급토론회를 갖게 됐다고 사회자가 설명했습니다.
기득권층에서는 한국불교의 추락에 대하여 비방과 비난을 일삼고 ‘험집내기’로 일관하는 사람들 탓이라 합니다. 반대로 재가단체에서는 기득권층 스님들의 ‘범계행위’ 때문에 불자들이 대거 떠난 것이라 합니다. 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요?
윤승용 이사에 따르면
1부에서는 패널토론, 2부에서는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 됐습니다. 참석한 패널은 윤승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 김경호 지지협동조합 이사장입니다. 김형남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이날 패널토론에서 가장 관심 있게 지켜 본 것은 윤승용이사의 말입니다. 한국불교가 추락한 원인에 대하여 정확하게 짚어 내었고 또한 해법까지 제시했습니다.
윤승용이사는 가장 먼저 “추세로 받아 들이자”라 했습니다. 통계자료에 일희일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는 통계에 대한 불신도 있어서일 것입니다. 2005년 조사에서 1058만명 이었던 불자가 불과 10년 만에 760만명으로 거의 3백만명이 줄어 든 현실에 대하여 단지 ‘추세로 받아 들이자’는 것입니다. 이는 매 6개월마다 발표 되는 종교인구조사에서 불교가 20.2%이고, 개신교가 20.4%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이사가 추세로 보자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환경’이 변화한 것이라 합니다. 10년전과 현재 상황이 같지 않음을 말합니다.
개신교가 일등종교가 된 이유는
10년 전 2005년의 경우 불교에 있어서는 ‘르네상스’시대와 같았다고 봅니다. 그때 당시 ‘웰빙’붐과 함께 대체로 풍요로운 시기이었다고 합니다. 템플스테이가 본격화 되어서 불교입장으로 보아서는 좋은 환경이 조성 되던 때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불교인구는 1,058만 명으로 정부에서 시행하는 종교조사 이래 최고의 수치를 기록합니다. 개신교는 844만명으로 불교 보다 214만명이 적었습니다. 불교가 전체 인구의 22.8%를 차지 하여 일등 종교가 된 것입니다.
2015년이 되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불교인구가 760만명으로 무려 300만명이 빠져 나갔습니다. 반면 개신교는 967만명으로 오히려 123만명이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개신교가 불교를 200만명 차이로 따 돌린 것입니다. 2005년과 비교하여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독교가 일등종교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에 대하여 윤이사는 관리와 단속을 들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신도관리를 하여 똘똘 뭉치게 하는 등 위기관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2005년 당시 개신교인구는 1995년 통계 보다 약 6만명 줄었는데 이를 위기의 신호탄으로 본 것입니다. 이는 반기독교적 사회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급팽창한 개신교가 ‘개독교’라 하여 비난 받던 시기입니다.
결과적으로 개신교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전화위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방심한 듯합니다. 2005년 불교인구가 최대치에 이르고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풍요의 시대에 이르자 이에 덩달아 불교도 발전할 것이라 예측한 것입니다. 그러나 2015년 조사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불교의 대추락입니다.
불교가 추락한 이유는
불교가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하여 윤승용이사는 첫 번째로 사회환경이 바뀐 것에 가장 큰 이유를 두고 있습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 되듯이 전반적인 삶의 질이 악화 된 것입니다. 사회가 풍요롭고 윤택하면 불교인구 증가에 유리하지만, 반대로 삶이 팍팍 해질 때는 불교가 불리함을 말합니다. 그것은 불교가 웰빙종교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으로 봅니다.
불교가 추락한 두 번째 이유로 ‘비근대성’을 들고 있습니다. 비근대성이라는 말은 ‘전근대적’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불교가 전근대적이라는 말은 흔히 개신교와 비교해서 말합니다. 개항기 당시 개신교는 문명의 종교이미지이었습니다. 반대로 불교는 전근대적 이미지이었습니다. 개신교에서 의도적으로 폄하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에게는 불교는 미신적이고 우상숭배나 하는 전근대적 종교로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전근대적 이미지로서의 불교는 지금까지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듯합니다.
윤승용이사가 말하는 불교의 비근대성은 승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전통에 근거하여 옛것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시대는 광속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조선시대의 사고방식이나 제도가 그대로 유지 되고 있을 때 이를 비근대적인 것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불교에서는 변화에 매우 둔감함을 말합니다. 또한 비근대성은 일부중에 의한 불교를 말합니다.
불교가 사부대중의 종교임에도 일부중의, 일부중에 의한, 일부중을 위한 불교로 되었을 때 신도들은 고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부중이 모든 것을 독차지 했을 때 “신도들은 단지 거래를 하는 고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문화재가 있는 사찰의 경우 관람료를 받습니다. 신도에 의지하지 않고도 독자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래서일까 주인에 해당되는 일부증에 대하여 “신도에 신경 쓰지 않는다”라 했습니다. 불교가 추락한 가장 큰 이유라 봅니다.
주인으로 살기
일부중에 의한 불교로 전락했을 때 신도들은 단지 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절에 가지만 내절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법당에 들러 삼배하고 불전함에 돈이나 넣는 기복행위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주인의식이 없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은 옛것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적 사고방식에 기인합니다. 이에 대하여 윤승용이사는 ‘비근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신도들이 주인이 아닌 객으로 또는 손님으로 살았을 때 불교는 ‘나의 종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신도들이 일부중의 손님으로서 또는 고객으로서 전락했을 때 그 결과는 ‘참담한’ 것입니다. 종교인구 총조사를 했을 때 자신을 굳이 불자라고 말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불자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10년 전과 비교하여 무려 300만명이나 빠진 것으로 봅니다.
윤이사에 따르면 스님들이 옛것과 전통만을 고집했을 때 불교인구는 점점 줄어 들것이라 했습니다. 신도에 대하여 단지 금전적 이득을 주는 고객으로 대했을 때 무속인들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다름 없을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주인이 스님들이고 신도들은 단지 고객에 지나지 않음을 말합니다.
신도가 고객에 지나지 않다면 “내 종교는 불교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하여 윤승용이사는 몇 가지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주인으로 살기 입니다. 신도들이 주인으로 살았을 때 불자인구도 늘어나고 불교가 중흥할 것이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일본과 대만불교를 예를 들었습니다.
일본식 재가불교
윤승용이사가 생각하는 불교의 미래는 ‘일본식 재가불교’와 ‘대만식 봉사불교’입니다. 이는 재가불자들의 불교를 말합니다. 재가불자들의 조직을 만들어 주인으로 사는 불교를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주인이 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윤이사는 주장합니다.
일본식 재가불교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SGI(Soka Gakkai International)’입니다. 일본에서는 ‘국제창가학회’라 합니다. 일명 에스지아이는 일련정종의 재가신자 집단으로 출발했습니다. 1991년부터 독자노선을 걷게 됩니다. 특징은 “스님 없이 사찰 없이”입니다. 불교라는 것이 반드시 절이 있어야 하고 불교라는 것이 반드시 스님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합니다. 재가의 불자들로 이루어진 재가불교단체입니다.
한국 SGI에 대한 유튜브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잠실운동장이 신도들로 가득 메워진 것이 놀라웠습니다. 공중파방송에서 소개된 프로에 따르면 현재 한국SGI 신도는 15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인터넷 자료에 서도 “2015년 현재 전국에 350여 개의 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회원 수는 150만 명에 이르고 있다”라고 소개 되어 있습니다. 2015년 불교인구 760만 명 중에 150만명이 SGI신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인구에서 거의 20%에 달하는 비율입니다. 재가불교를 표방하는 불교가 한국에도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스님 없이 절 없이
대만불교에 대해서는 봉사하는 불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제공덕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제공덕회는 1966년 대만 증엄스님에 의해 설립된 단체로서 불교계의 세계적인 NGO단체입니다. 자제공덕회의 특징은 자원봉사가 특징입니다. 가르침을 실천하는 인도주의적 불교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미래 한국불교의 바람직한 청사진은 신도가 주인이 되는 불교입니다. 신도가 주인의식을 갖는 불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신도가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불교가 일부중에 의해 독차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옛것과 전통을 중시하는 한국불교에서는 신도들은 단지 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비근대성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한국불교는 지속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손님에 지나지 않는 재가불자들이 “나는 자랑스런 불자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교조사할 때 기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불자라 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자들이 객으로 손님으로 사는 한 불교의 추락은 가속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스님들이 권한을 내려 놓지 않는 한 개신교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에서도 데드크로스가 발생하면 하향 추세가 지속되듯이 재가불자에 대하여 “신도는 고객이다”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거나, 국민들을 대상으로 입장료 수입을 받으려고 한다면 불교의 퇴보는 가속화 될 것입니다.
한국불교가 비근대적이라는 이미지를 벗으려면 일부중에서 많은 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옛것과 전통만을 고수하는 전근대적 사고 방식 역시 내려 놓아야 합니다. 신도들을 객이 아닌 주인으로 대우 해 주었을 때 신도들은 “저의 종교는 불교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중이 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일관한다면 조만간 한국식 재가불교단체의 탄생도 머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스님 없이, 절 없이”를 표방하는 한국판 재가불교가 될 것입니다.
2016-12-30
진흙속의연꽃
'한국불교백년대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얀마는 불국토 (0) | 2017.01.02 |
---|---|
승가공동체가 무너졌다, 미얀마에서 온 메세지 (0) | 2017.01.02 |
한국불교에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한 이유는? (0) | 2016.12.29 |
추락하는 불교에 날개가 있는가, 데드크로스 발생을 보며 (0) | 2016.12.20 |
한국불교는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6차 촛불에 참가하고 (0) | 2016.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