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굽은 것으로부터 벗어나
“오!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
세 가지 굽은 것들에서 벗어났다.
절구, 절구공이, 그리고
마음이 비뚤어진 남편으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생사에서 벗어났다.
윤회로 이끄는 것은 뿌리째 뽑혔다.”
(테리가타 11, 뭇따비구니, 일아스님역)
일아스님이 번역한 테리가타(장로니게) 11번 게송 입니다. 일아스님이 편역한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주석도 없고 빠알리 원문도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전재성박사가 테리가타를 완역했습니다. 11번 게송을 찾아 보니 일아스님 번역과 많이 다릅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Sumuttā sādhu muttāmhi
tīhi khujjehi muttiyā,
Usukkhalena musalena
patinā khujjakena ca,
Muttāmhi jātimaraṇā
bhavanetti samūhatāti.
“세 가지 굽은 것으로부터
절구로부터 공이로부터
그리고 곱사등이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잘 해탈되었고 훌륭하게 해탈되었다.
생사로부터 해탈되었으니
나에게 존재의 통로는 제거되었다."
(Thig.11, 전재성님역)
뭇따비구니가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게송입니다. 일아스님역과 전재성님역의 가장 큰 차이는 남편에 대한 것입니다. 일아스님은 “마음이 비뚤어진 남편”이라 했고, 전재성님은 “곱사등이 남편”이라 했습니다.
전재성님은 주석을 모두 번역 했습니다. 주석에는 이 게송에 대한 인연담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뭇따비구니는 출가 전에 곱사등이에게 시집갔습니다. 가난한 바라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않아 남편의 허락을 맡고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비뚤어진 남편’이라기 보다 원문대로 ‘곱사등이 남편’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빠알리 원문을 보면 곱사등이에 대한 빠알리어는 ‘khujjakena’입니다. 이 말은 ‘khujja’의 형태로 ‘humpbacked(곱사등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일아스님을 이를 의역하여 ‘비뚤어진 남편’이라고 의역 했습니다.
절구와 공이는 힘든 재가의 삶을 상징합니다. 주석에 따르면 “절구통에 곡식을넣을 때도 등을 굽혀야 하고, 공이로 빻을 때도 등을 굽혀야 합니다. 그래서 절구통과 공이 두 가지를 굽은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남편도 꼽추이므로 세 번째로 굽은 것이라 합니다.
일아스님의 번역에서 첫 번째 구절을 보면 “오!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라 했습니다. 이에 대한 빠알리 구문은 “sumuttā sādhu muttāmhi”입니다. 이 구문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잘 해탈되었고 훌륭하게 해탈되었다.”라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sumuttā’는 ‘well released’의 뜻이고, ‘sādhu’는 ‘good, well’의 뜻이고, ‘mutta’는 ‘released’의 뜻입니다. 일아스님이 ‘오! 자유!’라 번역한 것은 지나친 의역이라 봅니다.
뭇따비구니가 해탈의 기쁨에 대하여 “sumuttā sādhu muttāmhi”라 했습니다. 이에 대한 인연담을 보면 “그녀는 마음이 외부의 대상을 향해서 치닫게 되자, 그것을 제어하면서 ‘잘 해탈했다. 훌륭하게 해탈 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곱사등이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절구와 공이로부터 벗어나 출가한 것이 재가의 삶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출가하여 가르침을 실천하여 생사에서 해탈했을 때 기쁨을 노래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타닛사로빅쿠는 다음과 같이 영역 했습니다.
So freed! So thoroughly freed am I! —
from three crooked things set free:
from mortar, pestle,
& crooked old husband.
Having uprooted the craving
that leads to becoming,
I'm set free from aging & death.
(Thig.11, Thanissaro역)
타닛사로역을 보면 “So freed! So thoroughly freed am I!”라 했습니다. 이 번역은 일아스님의 번역 “오!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와 일치합니다. 더구나 타닛사로는 ‘crooked old husband’라 했는데, 이는 ‘구부러진 또는 비뚤어진 늙은 남편’이라는 뜻입니다. 일아스님은 “마음이 비뚤어진 남편”이라 번역했습니다.
빠알리 게송 마지막 구문은 “bhavanetti samūhatāti”입니다. 여기서 bhava는 존재를 뜻하고, ‘samūhata’는 ‘uprooted’의 뜻으로 ‘뿌리째 뽑히다’의 의미입니다. 전재성님은 “나에게 존재의 통로는 제거되었다.”라 했습니다. 일아스님은 “윤회로 이끄는 것은 뿌리째 뽑혔다.”라 했습니다. 타닛사로는 “Having uprooted the craving that leads to becoming”라 하여 ‘존재로 이끄는 갈망이 뿌리뽑혔다’로 번역했습니다. 빠알리어 ‘bhava’가 ‘becoming’의 뜻으로 일반적으로 ‘존재’로 번역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아스님이 번역한 ‘윤회’라는 말은 지나친 의역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테리가타가 번역되었습니다. 빠알리 원문과 주석을 모두 번역한 것으로 세계최초라 합니다. 이전에 주석을 부분적으로 번역한 것이 있지만 빠짐 없이 번역한 것을 말합니다. 경전을 볼 때 원문만 보아서는 의미를 자세하게 알 수 없습니다. 주석을 보아야만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테리가타의 경우 6세기 초 스리랑카 마하비하라(大寺)에서 담마빨라가 주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담마 빨라는 ‘앗타까타(aṭṭhakath: 義疏)’라는 원주석을 참고 하여 편집했습니다. 담마빨라는 테리가타 서문에서 “이제 장노니의 시들의 의취에 대한 찬석을 달 기회가 왔다.”라고 시작하면서 긴 서문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녀의 참모임이 확립되어 널리 퍼지자, 여기저기 여러 마을, 도시, 지방, 수도에서 훌륭한 가문의 여인들과 훌륭한 가문의 며느리들과 훌륭한 가문의 딸들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과 여법한 가르침과 잘 확립된 참모임에 대해 듣고, 교법에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고, 윤회에 외경을 일으켜 자신의 남편, 부모, 친지의 허락을 받고 교법에 헌신하여 출가했다. 출가후에는 계행과 덕행을 갖추고 스승과 장로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어 견인불발의 정진으로 거룩한 경지를 실현했다. 그들이 감흥어린 싯구로 여기저기서 읊은 시들을 나중에 결집자들이 하나로 모아 제일장 등으로 결집하였다. 이것들을 테리가타라고 한다.” (테리가타 의석 서문, 담마빨라, 전재성님역)
2017-01-0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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