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
오염원으로 가득한 자는 기피대상입니다. 악취나는 자를 가까이 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승가에서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다나 ‘포살의 경(Ud.51)’에 따르면 청정하지 못한 수행승을 끌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
부처님이 미가라마뚜 강당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부처님은 포살일에 수행승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아난다가 초야에 계율의 항목에 대해서 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침묵했습니다. 중야에 요청해도 침묵했습니다. 후야에 요청할 때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부처님은 후야에 “아난다여, 대중이 청정하지 못하다. (Aparisuddhā Ānanda parisā)”(Ud.51) 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속죄하지 않은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따르면 세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 희망이 있는 사람, 희망을 여읜 사람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입니다. 속죄하지 않는 자는 희망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청정하지 못한 대중들에게 계율을 설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보시기에 속죄하지 않는 자, 희망이 없는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마음을 목갈라나가 알았습니다. 목갈라나는 신통으로 대중들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존자 마하 목갈라는 수행승들의 무리 가운데 있는 한사람, 계행을 지키지 않고 악행을 하고 순수하지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을 하고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고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 체하고 청정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청정한 삶을 사는 체하고 안으로 부패하고 탐욕으로 가득 차고 쓰레기로 오염된 한사람을 보았다.”
(포살의 경, 우다나 5-5, Ud.51, 전재성님역)
부처님을 포함한 포살일에 청정하지 못한 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오물장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물장에서 온갖 악취가 풍겨 나듯이 부처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대중이 청정하지 못하다.”라 한 것입니다.
“팔을 붙잡아 문밖으로 끌어내고”
부처님의 지적에 목갈라나는 악취나는 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벗이여, 일어나라. 세존께서는 보셨다. 그대는 수행승들과 함께 지낼 수 없다.”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는 침묵했습니다. 지목 받은 자는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침묵했습니다. 목갈라나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경에서는 “그러자 존자 목갈라나는 그 사람의 팔을 붙잡아 문밖으로 끌어내고 빗장을 잠그고 세존께 계신 곳으로 찾아 갔다.” (Ud.51) 라고 되어 있습니다. 강제로 끌어낸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 강제로 끌어 냈다는 이야기는 놀라운 것입니다. 마치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중 가운데 악취를 풍기는 자와 함께 할 수 없음을 강력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
목갈라는 악취나는 자를 대중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마치 쓰레기를 분리 수거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제가 그 사람을 끌어내었습니다. 대중은 청정해졌습니다.”라며 수행승들에게 계율의 항목을 설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Acchariyaṃ Moggallāna, abbhutaṃ Moggallāna, yāva bāhā gahaṇā pi nāma so moghapuriso āgamessatī
[세존]
“목갈라나여, 아주 놀라운 일이다. 목갈라나여,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그 어리석은 사람은 팔이 잡혀 끌어내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포살의 경, 우다나 5-5, Ud.51,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목갈라나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음에도 목갈라나는 신통의 힘으로 오물장과 같은 자를 찾아 낸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어리석은 사람은 팔이 잡혀 끌어내어질 때까지 기다렸다.”라 했습니다.
계율의 항목을 독송하지 않은 이유
부처님이 바라던 바를 목갈라나가 했습니다. 이제 대중이 청정해졌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계율의 항목을 외우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했습니다.
na dānāhaṃ bhikkhave itoparaṃ uposathaṃ karissāmi pātimokkhaṃ uddisissāmi. Tumheva dāni bhikkhave itoparaṃ uposathaṃ kareyyātha, pātimokkhaṃ uddiseyyātha. Aṭṭhānam-etaṃ bhikkhave anavakāso, yaṃ Tathāgato aparisuddhāya parisāya uposathaṃ kareyya, pātimokkhaṃ uddiseyya.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지금부터 포살에 참여하거나 계율의 항목을 외지 않겠다. 수행승들이여, 지금부터 그대들이 포살에 참여하거나 계행의 항목을 외우도록 해라. 수행승들이여, 여래가 청정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포살에 참여하거나 계행의 항목을 외우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경우도 아니다.”
(포살의 경, 우다나 5-5, Ud.51,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더 이상 포살에 참여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율의 항목도 외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청정하지 못한 오물장처럼 악취 풍기는 자가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나는 지금부터 포살에 참여하거나 계율의 항목을 외지 않겠다.”라고 말씀 했을까요?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na dānāhaṃ bhikkhave itoparaṃ uposathaṃ karissāmi pātimokkhaṃ uddisissāmi: 계율의 항목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의무적 계율의 항목과 교훈적 계율의 항목이 있다. 의무적 계율의 항목은 150가지 의무계율을 말하고, 부처님이 아니라 제자들이 ‘세존이시여, 들으십시오’라고 시작하며 독송하는 것이다.
교훈적 계율의 항목은 제자들이 아니라 부처님이 독송하는 것이다. 교훈적 계율의 항목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
1) 참아내고 인내하는 것이 최상의 고행이며 열반은 궁극이다. 깨달은 님들은 말한다. 출가자는 남을 해치지 않고 수행자는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Dhp.184)
2) 모든 죄악을 짓지 않고 모든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깨달은 님들의 가르침이다. (Dhp.183)
3) 비방을 삼가고 해치지 않고 계행의 덕목을 지키고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알고 홀로 떨어져 앉거나 누고 보다 높은 차원의 마음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깨달은 님들의 가르침이다. (Dhp.185)
이 세 가지 교훈적 항목은 부처님이 독송하고 제자들은 독송하지 않았지만, 제자들도 7년이 지나면 독송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은 20년간 이 교훈적 계율을 독송했지만 경에서처럼 위험을 감지하고 그 이후에는 독송하지 않았다.
(우다나 698번 각주, 전재성님)
주석에 따르면 부처님은 부처님들만 설할 수 있는 교훈적 계율의 항목을 20년 동안 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정하지 못한 수행승 사건으로 인하여 이후에는 독송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경에서처럼 위험을 감지하고”라 했습니다. 경에서는 “여래가 청정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포살에 참여하거나 계행의 항목을 외우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경우도 아니다.”라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청정한 계율의 항목 독송에 청정하지 못한 자가 앉아 있을 수 있는 위험을 말합니다.
죽은 사체를 밀어 내는 바다
부처님이 포살일에 청정하지 못한 수행승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다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바다에는 여덟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놀랍고도 경이로운 것이라 했습니다. 그 중에 청정하지 못한 수행승과 관련된 것이 세 번째 항목입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커다란 바다는 죽은 사체와 함께 지내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바다에 죽은 사체가 생기면 그것을 신속하게 해안으로 옮겨서 육지에 올려 놓듯,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계행을 지키지 않고 악행을 하고 순수하지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을 하고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고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체 하고 청정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청정한 삶을 사는 체하고 안으로 부패하고 탐욕으로 가득 차고 쓰레기로 오염되었는데,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참모임은 그와 함께 살지 않으며, 즉시 모여서 그를 쫓아내며, 그가 수행승의 참모임에 앉아 있더라도, 그는 참모임과 멀어져 있고 참모임도 그와 멀어져 있다.”
(포살의 경, 우다나 5-5, Ud.51, 전재성님역)
한국에서 버린 캔이이나 비닐봉지가 조류를 타고 일본에서 발견 되었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바다 가운데서 쓰레기를 볼 수 없습니다. 쓰레기는 조류에 떠밀려 해안가에 밀려 듭니다. 사체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부처님의 승가는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 가운데 흉물스럽고 악취나는 사체를 볼 수 없듯이 청정한 승가에서 마음이 오염된 자가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똥은 조금만 묻어도 악취가 풍기듯이, 오염된 자와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커다란 바다가 죽은 사체와 함께 지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바다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은 바다를 가르침과 비유했습니다. 부처님이 설한 바다의 여덟 가지 특징과 여덟 가지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바다가 점차적으로 나아가고 점차적으로 기울고 갑자기 절벽을 이루지 않는다:
“점차적인 배움, 점차적인 실천, 점차적인 진보가 있지 궁극적인 앎에 대한 갑작스런 꿰뚫음은 없다.”
2)
바다가 안정되어 있어 해안을 침범하지 않는다:
“내가 제자들을 위해 시설한 학습계율을 나의 제자들은 생계를 위해 침범하지 않는다.”
3)
바다는 죽은 사체와 함께 지내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바다에 죽은 사체가 생기면 그것을 신속하게 해안으로 옮겨서 육지에 올려 놓는다:
“어떤 사람이 계행을 지키지 않고 악행을 하고 순수하지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을 하고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고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체 하고 청정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청정한 삶을 사는 체하고 안으로 부패하고 탐욕으로 가득 차고 쓰레기로 오염되었는데,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참모임은 그와 함께 살지 않으며, 즉시 모여서 그를 쫓아내며, 그가 수행승의 참모임에 앉아 있더라도, 그는 참모임과 멀어져 있고 참모임도 그와 멀어져 있다.”
4)
어떠한 강이든 겐지스, 야무나, 아찌라바띠, 싸라부, 마히 강과 같은 커다란 강이 바다에 이르면 이전의 각각의 이름을 버리고 커다란 바다라 불린다:
“어떠한 네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든 즉, 왕족, 바라문, 평민, 노예이든, 여래가 설한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면, 예전의 이름과 성을 버리고 ‘수행자 싸끼야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5)
바다에 세상의 모든 하천이 흘러 들고 하늘의 비가 쏟아져도 그 때문에 커다란 바다는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많은 수행승들이 잔여가 없는 열반의 세계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지만, 열반의 세계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6)
바다는 오직 한 맛인 짠 맛을 지니고 있다:
“이 가르침과 계율은 유일한 맛인 해탈의 맛을 지니고 있다.”
7)
바다에는 많은 보물 다양한 보물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보물로서 진주, 보석, 수정, 묘안석, 소라, 석영, 산호, 은, 금, 루비, 에메랄드가 있다:
“이 가르침과 계율에도 많은 보물 다양한 보물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보물로서 네 가지 새김의 토대, 네 가지 올바른 노력, 네 가지 신통의 기초, 다섯 가지 능력,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고리,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있다.”
8)
바다에는 커다란 존재들이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커다란 존재로 거대어, 바다괴어, 바다괴물, 아수라, 용, 건달바가 살고 있고 그 키가 일백 요자나의 존재, 이백 요자나의 존재, 삼백 요자나의 존재, 사백 요자나의 존재, 오백 요자나의 존재가 살고 있다.:
“이 가르침과 계율에도 커다란 존재들이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커다란 존재로 흐름에 든 님,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 흐름에 듦의 길로 가는 님, 한번 돌아 오는 님, 돌아 오지 않는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 돌아오지 않음의 길을 가는 님, 거룩한 님,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 거룩한 길을 가는 님이 살고 있다.”
(Ud.51, A8.20, Vin.II.236, 전재성님역)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바다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와 같은 바다의 여덟 가지 특징과 부처님 가르침의 여덟 가지 특징은 우다나 뿐만 아니라 앙굿따라니까야 ‘포살의 경(A8.20)’와 율장소품 ‘의무계율의 송출에 대한 요청(Vin.II.236)’에서도 병행합니다.
청정승가에서
부처님은 “아난다여, 대중이 청정하지 못하다.”라 했습니다. 이는 ‘포살일에 죄를 범한 자는 포살을 행할 수 없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율장소품에서는 “수행승들이여, 죄가 있는 자가 의무계율에 대하여 들어서는 안된다.”(Vin.II.240) 라고 했습니다. 들으면 ‘악작죄’라 했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참회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포살일에 앉아 있다면 가르침과 승가를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율장에서 “의무계율송출의 차단을 허용한다.”라 했습니다. 이는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Vin.II.240) 라는 정형구로도 알 수 있습니다.
청정승가에서 죄를 지은 자가 포살일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바다의 여덟 가지 특징을 가르침과 비교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감흥어로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vivaṭaṃ nātivassati,
Tasmā channaṃ vivaretha
evaṃ taṃ nātivassatī
[세존]
“잘 덮인 것에 비가 젖고
열린 것에 비가 젖지 않는다.
그러므로 덮인 것을 열어라.
그러면 비에 젖지 않을 것이다.”
(Ud.51, Vin.II.240)
이 게송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잘 덮인 것에 비가 젖고 :
“죄악을 저지르고 감추면 거기서 다른 것, 거기서 다른 것 하면서 새로운 죄악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죄악의 비, 오염의 비가 넘치게 내린다.”
2) 열린 것에 비가 젖지 않는다:
“죄악을 저지르고 감추지 않고 열어서 도반들에게 밝히면, 법답게 대처하여 설명하여 복귀시켜주므로 다른 죄악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열린 것에 죄악의 비, 오염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덮인 것을 열어라. 그러면 비에 젖지 않을 것이다:
“죄악을 저질렀어도 참회 하는 자에게 오염의 비가 그의 존재를 꿰뚫고 극단적으로 내리지 않는다. 오염 때문에 젖지 않고 계행이 청정하고 통찰을 확립하여 이해하는 것에 따라 점차적으로 열반을 얻게 된다.”
(UdA306)
2016-12-3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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