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왜 3백만명이 빠졌나? 주인스님과 손님불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7. 2. 3. 10:46

 

3백만명이 빠졌나? 주인스님과 손님불자

 

 

한국불교가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10년 마다 발표되는 종교인구총조사에서 불자인구가 무려 3백만명이나 빠졌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200만명 차이로 1위 자리를 개신교에 내 준 것입니다. 더구나 천주교가 턱 밑까지 치고 들어 온 형국입니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천주교에게도 역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를 내 놓지 않으면 한국불교는 계속 추락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3백만명이 빠졌나?

 

불자수가 무려 3백만명이 빠져 나갔다는 것은 충격입니다.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제도권 종단에서는 불교내부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일을 밖에 알려진 것이라 소위 해종언론이나 해종인물 등 해종세력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불교의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나 단체에서는 승가의 타락으로 인한 대외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견해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종교연구원의 전문가에 따르면 불교의 전근대성과 명상단체의 난립에 따른 영성문화의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불자수가 감소하고 불교가 쇠퇴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살펴보면 모두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쌓이고 쌓인 모순과 거짓과 위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새로운 주장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불자로서 자부심이 결여 된 결과가 이번 종교인구총조사에 반영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기분파불자라 볼 수 있습니다.

 

기분파불자

 

사람들은 기분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기분 좋으면 너그럽고 관대하고 자비로워집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면 정반대가 됩니다. 기분파들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날 상사가 기분이 좋으면 결재도 시원스럽게 이루어지지만,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라면 힘들 것입니다. 기분불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종교인구총조사하는 날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보았을 때 기분불자는 잠시 망설일 것입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불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전문가에 따르면 기분파불자가 생겨나는 이유에 대하여 주인의식 결여로 보고 있습니다. 불교를 믿고 있지만 정말 자신이 불자인지 의문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로서 절에 잘 가지 않은 케이스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자들 대다수가 일년에 한 두 차례 절에 가는 것이 보통이라 합니다. 부처님오신날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몇 번 가는 것이 고작이라 합니다. 이는 매주 교회에 다니는 개신교나 천주교 신자와 비교 됩니다. 어쩌다 한 두 번 절에 가는 사람이라면 저는 불자입니다라고 말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서 기분이 좋으면 불자라고 할 것이고, 그날 기분이 좋지 않다면 굳이 불자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분파 불자, 기분파불자의 입장일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경계인또는 주변인은 있습니다. 천주교의 경우 냉담자라 하여 성당에 나오지 않는 교인이 있습니다. 냉담자가 종교인구총조사할 때 어떻게 답할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어느 종교이든지 경계인이 있지만 특히 불교가 심한 것 같습니다. 경계인, 즉 기분파불자는 정서적으로는 불자이지만 막상 조사에 임할 때는 불자임을 밝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분파불자가 늘어난 것에 대하여 종교전문가는 경제사정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2005년대 중반의 경우 부동산거품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없이 성장할 것 같았습니다. 그에 따라 미래도 밝고 희망차게 보았습니다. 기분이 들 떠 있을 때 종교인구조사 했다면 경계인들은 자신의 종교를 불교라고 밝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근 경제상황은 암울합니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거품은 꺼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기분도 침체될 것입니다. 이럴 때 경계인들은 아마 불자가 아니라고 답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분에 따라 불자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주인과 객()처럼

 

기분에 따라 종교정체성이 크게 흔들린다면 해당종교에 대한 믿음이 결여 되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인의식의 결여입니다. 절에 자주 다니지만 언제나 ()’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낄 것입니다. 불교가 사부대중의 종교라 하지만, 절에 가면 늘 손님으로서 역할 밖에 되지 않는다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절의 주인은 스님이고 신도는 고객이라는 등식이 성립 했을 때, 마치 점집에 간 것처럼 내가 불자인가?”라고 의문할 것입니다.

 

점집이나 무당집 등 무속종교에서는 주인의식이 없습니다. 오로지 손님 또는 고객으로서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한국불교에서 신도들의 위치 또한 무속인을 찾아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의 주인은 절에서 살고 있는 비구와 비구니의 이부중이고, 불교의 손님은 절 바깥에서 사는 우바새와 우바이의 이부중입니다. 절의 주인은 스님이고 신도는 고객입니다. 마치 물건 파는 것처럼 천도재 등 거래 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주인과 손님, 스님과 고객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절의 손님에 불과한 신도의 입장에서는 종교인구총조사 했을 때 불자라고 해야 할지 망설일 것입니다.

 

오성계급이 있다는데

 

불교의 주인은 사부대중임에 틀림 없습니다. 조계종의 종헌종법에 따르면 8조에 본종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파새, 우파이)로서 구성한다.”라고 규정 되어 있습니다. 재가신도들은 손님이나 고객이 아닌 불교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한국불교는 비구승의, 비구승에 의한, 비구승을 위한 불교입니다. 여기에 비구니스님들이 끼여 들 여지가 없고 신도들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사부대중은 평등한 관계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차별 없듯이 사부대중에 계급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계급사회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부처님 당시 사성계급이 존재 했듯이 한국불교에도 계급이 존재합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비구, 비구니, 재가종무원, 종단산하단체 직원, 자원봉사자로 이어지는 5단계의 계급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오성계급이 있는데 여기에 신도들은 끼지도 못합니다. 마치 불가촉천민처럼 계급 바깥에 있습니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신도들은 다만 손님이고 고객일 뿐입니다.

 

불자인구를 늘리려면

 

불자인구 3백만명 감소라는 대참사 일어났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주인의식의 결여입니다. 사부대중의 불교에서 출가자들이 주인이고 재가자들은 손님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을 때 불자인구 3백만명 감소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인구가 감소하면 불교의 주인을 자처하는 세력도 손해 보게 됩니다.

 

불교인구 감소는 불교세력의 감소입니다. 불자수가 감소함에 따라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도 감소할 것입니다. 불교가 제3종교로 전락하여 소수종교가 되었을 때 아무도 쳐다 보지 않을 것입니다. 불자인구가 천만일 때는 대선주자들이나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절을 찾습니다. 그러나 불자가 현저하게 줄었을 때는 아무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소수종교로서 비애를 맛볼지 모릅니다.

 

불자인구를 늘리려면 주인의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일년에 한 두 번 절에 가는 사람도 불자이고, 정서적 불자도 불자입니다. 이들이 종교인구총조사할 때 저는 불자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불자임을 밝힐 때 대폭 늘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비구중심의 계급구조하에서는 불자인구의 추락은 가속화 될 것입니다.

 

불가촉천민과 같은 신세의 재가불자들이 사부대중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주인의식을 가질 때 천만불자로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불자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천도재나 올리는 손님이나 고객으로서 불자가 아니라 동등한 부처님의 제자로서 자부심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가불자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불교만한 종교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처님 가르침과 견줄만한 것이 없음을 알 때 자연스럽게 저는 자랑스런 불교인입니다.”라고 선언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초기경전을 접해야 하는 당위성이라 봅니다.

 

 

이 세상과 내세의 어떤 재물이라도,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여래에 견줄 만한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stn224)

 

 

2017-02-0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