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배를 채우기 위해 출가했나? 반승반속은 귀의의 대상이 아니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 10. 10:56

 

 

배를 채우기 위해 출가했나? 반승반속은 귀의의 대상이 아니다

 

 

 

매일매일 구업짓습니다. 스님들과 승가를 비판하는 구업입니다. 글로서 쓰는 행위도 구업이라 합니다. 필업을 구업의 범주안에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업은 신업과 함께 드러난다는 사실 입니다. 신체적으로 지은 행위, 즉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의업입니다.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는 드러나지 않고 은폐됩니다.

 

의도가 업이 된다고 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것은 업이 되지 않습니다. 경행할 때 모르고 벌레를 밟아 죽였다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일 의도를 가지고 모기를 잡았다면 엄밀히 말해서 살생업이 됩니다. 의도가 실렸느냐 실리지 않았느냐에 따라 죄가 달라집니다. 목적을 가진 조직폭력배가 엄중하게 처벌 받는 이유입니다.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에 대한 처벌이 다른 이유입니다.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의도에 따라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업을 짓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업이 가장 무거운 것임에 틀림 없지만, 그것 못지 않게 드러나지 않은 정신적인 업 또한 무겁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세 가지 업 중에서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가 가장 무겁다고 했습니다. 의도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은폐 되어 있던 의도가 드러난 무거운 업이 오계입니다. 불자들에게 있어서 오계를 어기면 비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악처로 이끈다고 했습니다. 오계를 어기면 현세에서도 비난 받고 내세에서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두 세계에서 고통 받는다고 했습니다.

 

계행을 어기면 비난 받습니다. 특히 구족계를 받은 빅쿠가 계행을 어기면 큰 비난 받습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로 서원한 수행자의 허물은 크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머리카락만한 작은 허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 수행자의 허물이라 합니다.

 

수행자의 허물은 비난 대상입니다.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기 때문에 비난의 강도도 거세집니다. 수행자의 허물을 탓하는 자를 나무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막을수 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허물에 사람들은 분개하고 혐책합니다. 그래서 율장을 보면 사람들이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했다.”라는 정형구가 나옵니다.

 

수행자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난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스님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마 대승보살계의 영향일 것입니다. 스님의 허물을 보아도 못 본체 한다든가, 스님의 허물을 듣고서도 못들은채 하는 것입니다. 비난하여 구업 짓는 것보다 승단내의 자정시스템에 맡겨 두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정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설령 불자들이 말로 표현하지 않을지라도 마음으로는 떠날 것입니다. 불자수가 300만명 줄어든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불교인구가 삼백만이나 줄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0만명 차이로 개신교에 1위를 내준 것입니다. 무엇보다 암울한 것은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한 기독교 인구가 불교인구의 두 배에 달한다는 사실 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민들이 불교를 버렸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불교인구는 인구대비 고작 17%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때 우리나라는 불교국가였습니다. 불교를 국교로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이 불국토 아닌 곳이 없었습니다. 해방후에도 불교가 최대 종교이었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매우 미미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시대에 불교는 크게 후퇴했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고속성장 했습니다.

 

불교가 쇠퇴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철저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교회와 성당과 비교 됩니다. 또 한국불교는 세상사람들괴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소통을 거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피해 멀리멀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결과 무주공산이 된 마을은 교회와 성당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탄탄한 교회공동체와 성당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지역에 기반을 두지 않는 한 한국불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자인구가 17%밖에 되지 않고 2등 종교로 전락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 해서는 안되는 일에 열중 했습니다. 계행을 어긴 것이 가장 큰 것입니다. 불자수가 줄어 들고 불교가 쇠퇴한 근본적 원인은 계행의 쇠퇴라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로 입장료를 들 수 있습니다. 사유지를 지난다고 하여 등산객들에게 문화재관람명목의 입장료 수입을 챙기는 등 소유에 열을 올렸을 때 사실상 반승반속이나 다름없습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반승반속에 대히여 소의 무리를 따르는 당나귀와 같다.’라든가, ‘화장터에서 타다만 장작과도 같다.’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승반속은 배를 채우기 위한 생계형 승려들입니다. 반승반속은 사실상 재가자나 다름 없습니다. 재가자가 재가자에게 귀의 할 수 없습니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청정한 승가에 귀의 해야 합니다. 반승반속의 무리를 향해 매일매일 비판하는 구업을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세존]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잘 설해진 가르침과 계율 가운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출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자여, 그것은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청정한 믿음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를 더욱더 청정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출가자의 네 가지 기초생활수단, 율장대품 Vin.I.58, 전재성님역)

 

 

 

2017-01-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