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경청할 줄 아는 리더십, 명진스님의 길거리 열린법회

담마다사 이병욱 2017. 4. 23. 12:13

 

경청할 줄 아는 리더십, 명진스님의 길거리 열린법회

 

 

4 22일 토요일 이른 아침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수원에서 명진스님 초청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용주사신도비대위에서 스님을 초청하여 경기불교문화원에서 법문을 듣는 날입니다. 오전에 법문을 듣고 오후에는 총무원장직선제 4차 촛불법회가 예정되어 있는 날입니다.

 

수원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명진스님법회는 10시에 열립니다. 시간에 맞추어 사무실 앞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마침 65번 버스가 행궁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40여분 걸려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행궁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렸습니다. 그것은 수원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서입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장안문이 보입니다. 수원사람들은 보통 북문이라 부릅니다. 남쪽에는 남문이 있습니다. 남문의 명칭은 팔달문입니다. 북문과 남문을 잇는 거리가 종로입니다. 서울의 종로와 같은 지명입니다. 아마 서울의 작은 서울, 또는 작은 수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문이라 불리우는 장안문은 언제 보아도 장쾌합니다. 마치 서울이 남대문이나 동대문을 보는 듯 합니다. 처마 끝이 약간 들린 모양이 하늘을 나는 듯하고, 무엇보다 기품 있어 보입니다. 이전에 볼 때도 그랬고 지금 보는 이 순간에도 품격있어 보입니다.

 

 

 

 

 

 

장안문을 처음 본 것은 1985년 여름입니다. 연수를 마치고 회사에 첫 출근한 날 동기들과 장안문 옆 장안공원에 왔었습니다. 그때 당시 11명의 동기들은 풋풋한 희망으로 가득찬 새내기들이었습니다. 그중의 한명을 작년말 TV에서 보았습니다.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미얀마 U대사 였습니다.

 

영업맨인 U가 검찰 포토라인에 선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눈매는 옛날 그 모습이지만 세월이 흘러서인지 나이먹은 티가 납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비리를 저질렀다든가 부정을 하여 포토라인에 선 것은 아닙니다. 실력있고 정의로웠던 그가 단지 시대를 잘못 만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85년부터 92년까지 7년 살았습니다. 7년 살다 보니 수원이 매우 익숙합니다. 특히 북문과 남문에 대한 기억이 많습니다. 그때 당시 3저 호황시대가 있었는데 매달 남문에서 회식이 있었습니다.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80년대 말에는 회사가 매년 50%씩 성장했습니다. 85년 입사했을 때 종업원 2,500명에 매출 2,500원 하던 회사가 92년 퇴사할 무렵에는 종업원이 무려 1만명에 달했고 매출은 1조원를 넘었습니다.

 

북문에서 남문까지 걸었습니다. 남문에 도달하니 북문 못지 않게 위풍당당한 모습에 압도됩니다. 30여년 전에도 참 멋진 건물이다라며 쳐다 보았는데, 30년이 흐른 지금 역시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에 감탄합니다. 아마 50년 사람들도, 100년 전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북문보다 남문이 더 번화가입니다. 남문 로터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서 옛날 수원의 중심지입니다. 남문로터리 바로 옆에 목적지 경기불교문화원이 있습니다. 명진스님 초청법회가 열리는 장소입니다.

 

셔터내려진 경기불교문화원

 

경기불교문화원은 로타리 바로 옆에 있는 건물 4층에 있습니다. 그러나 철문셔터가 내려져 있어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문화원측에서 입장을 불허 했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에 사전 섭외하여 법회장소로 결정되었으나 불과 이틀 전에 취소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판단해 볼 때 외부압력에 굴복한 것이라 보여집니다.

 

 

 

 

 

 

경기불교문화원은 재가불자들이 운영하는 법당입니다. 더구나 법당이 있는 4층의 소유권은 참여불교재가연대의 재산입니다. 무상으로 임대해 주다시피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명진스님의 법회모임을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마치 주인을 못들어 오게 막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불교문화원은 지역스님들과 총무원의 압박에 굴복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임대인이 주인을 못들어 오게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더구나 굳게 닫힌 셔터 안쪽에서는 명진스님이고 뭐고..”라는 식으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명진스님은 총무원과 대립관계에 있습니다. 총무원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더구나 4 5일에는 초심호계원으로부터 제적당했습니다. 이유는 종단에 쓴소리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입장을 불허한 것이라 봅니다.

 

 

 

 

 

 

 

명진스님이 법문을 하면 수 많은 청중이 옵니다. 스님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날 역시 수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불교인들 뿐만 아니라 타종교인도 오고 특히 이 땅에서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 소외 받은 사람들,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사람들, 정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러나 철문에 막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명진스님은 셔터가 내려진 철문앞에서 망연자실한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요지부동입니다. 할 수 없이 길거리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이틀전에 불허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장소가 문제 되었습니다. 찾아 본 것이 연등축제가 열리고 있는 화성행궁 여민각입니다.

 

꼿꼿하게 길거리로

 

조계종에서 제적당한 명진스님은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 스님이 좋아서 찾아온 사람들이 여민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올렸습니다. 이날 명진스님은 풀을 빳빳이 먹인 승복을 입었습니다. 날이 선 승복을 입어서인지 기품이 있어 보이고 전반적으로 매우 청정해 보였습니다.

 

 

 

 

 

 

명진스님은 꼿꼿한 자세로 종로거리, 지금은 정자로라 불리우는 거리를 걸어 갔습니다. 남문로터리에서 약 300미터 거리에 여민각이 있습니다.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청정도량 정법수호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길거리 법회가 열리는 현장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길거리에서 법회가

 

명진스님초청법회는 용주사신도비대위에서 주관한 것입니다. 열린법회라 하여 매월 넷째주 토요일 열립니다. 이전달에는 허정스님을 법사로 법회가 열린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명진스님을 초대하여 경기불교문화원에서 여법하게 법회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법회일을 불과 이틀 남겨 놓고 불허 통지를 받은 것입니다.

 

셔터가 내려진 문화원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스님과 신도들은 쫒겨 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길거리 법회가 되었습니다. 장소는 여민각입니다. 화성행궁 맞은편 커다란 종각이 있는 곳입니다. 스님과 신도들, 그리고 스님과 인연있는 사람들은 여민각에 자리 잡았습니다. 길거리 법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길거리법회는 여법하게

 

길거리법회가 열린날 화성행궁앞은 화려 했습니다. 저녁에 있을 연등축제를 앞두고 부스가 마련되고 석가탑과 다보탑 장엄등이 선보였습니다. 거리에는 울긋불긋 연등이 걸려 있어서 길거리 법회는 외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법회는 여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합창단에 의한 청법가는 없었지만 모인 사람들은 식순에 따라 삼귀의를 하고 반야심경을 낭송하고 잠시 입정에 들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날씨가 좋습니다. 일년중에 최고로 좋은 날, 아름다운 날입니다. 신록이 시작되고 산하대지에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합니다. 거리의 울긋불긋 연등이 걸려 있어서 축제분위기를 자아 내게 합니다.

 

이날 명진스님의 법회가 열린 날 공기는 상쾌했습니다.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서 얼굴에 스치는 감촉이 부드러웠습니다. 따스한 햇살과 미풍, 그리고 청명한 하늘, 화려한 연등과 함께 한 날입니다. 축복과도 같은 날씨에 열린법회가 열렸습니다. 문자그대로 열려 있는 법회, 길거리법회입니다.

 

 

 

 

 

 

 

고통받고 소외된 뭇삶들과 함께

 

명진스님은 법문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온 사람들을 소개했습니다. 가장 먼저 세월호 유가족 호성이 엄마를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용산참사희생자가족을 소개 했습니다. 이외에도 케이블카 반대 관련 사람, 스크린쿼터 관련 사람 등을 일일이 거명하며 소개했습니다. 특히 이날 타종교인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효순미선양 거사님은 가톨릭신자임에도 명진스님 법회할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또 이윤상목사부부도 참석했는데, 특히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20여일 길거리에서 보낼 때 함께 했다고 합니다. 이외도 스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법당이 아닌 길거리 바닥에 앉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세월호희생자와 용산참사희생자 가족에게도 발언 기회를 주었습니다. 국가가 지켜 주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해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명진스님도 길거리에 내몰리게 되었으니 같은 신세라 볼 수 있습니다.

 

경전을 근거로 한 법문

 

열린법회에서 스님은 경전을 근거로 법문했습니다. 스님이 준비한 법문은 고닷따경입니다. 스님이 낭송한 경은 정의를 따르다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낫다.”로 시작됩니다. 이 경을 읽으면서 저를 보고 하는 소리 같습니다.”라 했습니다.

 

스님이 법문의 근거로 삼은 고닷타경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잘 검색되지 않습니다. 어느 페이스북에 ‘Godatta, Thag. p-283’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문자 ‘Thag’로 보아 테라가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Godatta를 키워드로 검색하자 테라가타 Thag.659-672번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닷따경 어떤 내용인가?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테라가타는 생소합니다. 그것은 많이 유통되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빠알리원문 번역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년 2016 11월 세계최초로 전재성박사가 주석을 포함하여 테라가타를 완역하여 출간했습니다. 출간에 앞서 교정작업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테라가타에 고닷따존자의 14연 게송이 있습니다. 명진스님이 말한 정의로운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고닷따존자의 14연 게송을 모두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현선한 준마는

짐을 싣고 무게를 견디니,

짐이 지나쳐도

멍에를 벗어나지 않는다.” (Thag.659)

 

2.

바다가 물로 가득 차듯,

이처럼 지혜가 충만한 자들은

타인을 경멸하지 않으니,

이것이 뭇삶을 위한 고귀한 원리이다.” (Thag.660)

 

3.

시간 속에 있으면서 시간에 굴복하고

존재와 비존재에 굴복하니,

사람들은 괴로움을 겪고,

학인들도 이 세상에서 근심한다.” (Thag.661)

 

4.

즐거운 일로 상승하다가

괴로운 일로 영락한다.

어리석은 자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

그 두 가지 일로 타격을 받는다.” (Thag.662)

 

5.

괴로움과 즐거움 가운데 있는

그 침모(針母)를 정복한다면,

주춧돌처럼 정립되어,

그들은 상승하지도 영락하지도 않는다.” (Thag.663)

 

6.

이득도 여의고 불익도 여의고

명성도 여의고 명예도 여의고

비난도 여의고 칭찬도 여의고

괴로움도 여의고 줄거움도 여읜다.” (Thag.664)

 

7.

연꽃 위의 물방울처럼,

영웅들은 모든 곳에서 더럽혀지지 않고

모든 곳에서 안락을 얻고,

모든 곳에서 패배하지 않는다.” (Thag.665)

 

8.

정법으로 불익을 보기도 하고

비법으로 이익을 보기도 한다.

정법으로 불익을 보는 것이,

비법으로 이익을 보는 것보다 낫다.” (Thag.666)

 

9.

무지한 자가 명예를 얻기도 하고

양식있는 자가 불명예를 얻기도 한다.

양식있는 자가 불명예를 얻는 것이

무지한 자가 명예를 얻는 것보다 낫다.” (Thag.667)

 

10.

어리석은 자로부터 칭찬이 있고,

양식있는 자로부터 비난이 있는데,

양식있는 자로부터의 비난이

어리석은 자의 칭찬보다 낫다.” (Thag.668)

 

11.

감각적 욕망에서 생겨나는 즐거움이 있고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이 있는데,

멀리여읨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이

감각적 욕망에서 생겨나는 즐거움보다 낫다.” (Thag.669)

 

12.

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 (Thag.670)

 

13.

감각적 쾌락의 욕망 그리고 분노를 버리고

다양한 존재 속에서도 마음이 적정한 자들은

세상에 대하여 집착 없이 살아가니,

그들에게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없다.” (Thag.671)

 

14.

깨달음의 고리를 닦고,

능력과 힘을 닦아,

그들은 최상의 적멸을 얻으니,

번뇌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든다.”(Thag.672)

 

 

테라가타 인연담에 따르면, 고닷따존자는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사밧티시의 카라반지도자의 가문에 태어나 고닷따(Godatta)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청년이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재산을 정리하고 오백수레분의 물건을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사로 생계를 꾸려가며 번영하는 공덕을 쌓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고닷따는 황소에 짐을 잔뜩 싣고 가다가 크게 깨우쳤습니다. 황소를 괴롭힌 것을 후회한 것입니다. 인연담에 따르면 이와 같이 뭇삶들을 괴롭히면서 살아서 무엇하랴?”라며 외경이 일어나 일체의 재산을 버리고 한 장로에게 출가했다고 합니다. 출가하여 거룩한 경지, 즉 아라한이 되어 찾아온 출재가자들에게 세상의 원리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면서 이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팔풍(八風)에 대하여

 

고닷따의 14개의 게송을 보면 여섯 번째에 이득도 여의고 불익도 여의고

명성도 여의고 명예도 여의고 비난도 여의고 칭찬도 여의고 괴로움도 여의고 줄거움도 여읜다.” (Thag.664)가 있습니다. 이것이 초기경전에서 말하는 세상의 원리입니다. 세상의 원리란 이득과 불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A8.6)라 하여 세상을 살다 보면 다반사로 일어난 일입니다.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원리에 대하여 팔풍(八風)이라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바람 부는 대로 살아 갑니다. 그것은 이득과 불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라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테라가타 664번 게송을 보면 한가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성도 여의고 명예도 여의고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명예와 불명예라 되어 있습니다.

 

테라가타의 번역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식대로 한다면 명성도 여의고 불명예도 여의고가 될 것입니다. 빠알리원문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원문에는 “na yase na ca kittiyā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yasa‘fame; glory; success; retinue’의 뜻으로 명성의 의미이고, kitti‘fame, renown, glory’의 뜻으로 명예를 뜻합니다. 따라서 “na yase na ca kittiyā명성도 여의고 명예도 여의고의 뜻이 되어 테라가타 번역이 맞습니다.

 

명진스님이 낭송한 고닷따경

 

고닷따존자의 게송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666번 게송부터 670번 까지 6개의 게송입니다. 이 여섯 개의 게송중에 4개를 명진스님이 법문한 것입니다. 명진스님이 낭송한 법문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의를 따르다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낫다.

 

지혜롭지 못하면서

높은 평판을 얻는 것은

지혜가 있으면서 평판을

얻지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

 

욕망에서 얻어지는

쾌락보다는

욕망을 벗어나

자기를 단련하는 괴로움이 낫다.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낫다. 

 

 

 

정의로운 삶에 대하여

 

첫번째 게송은 정의를 따르다가로 시작됩니다. 이에 대응되는 게송은 정법으로 불익을 보기도 하고 비법으로 이익을 보기도 한다. 정법으로 불익을 보는 것이, 비법으로 이익을 보는 것이 낫다. (Dhammena ca alābho yo yo ca lābho adhammiko,  Alābho dhammiko seyye ya ve lābho adhammiko.)” (Thag.666)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정의 또는 정법이라는 말은 ‘Dhammena’를 말하며 영어로‘Justly, righteously’라 합니다. 이 게송에 대한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익을 보는 자에게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 감소되고 착하고 건전한 것이 증가하면, 이러한 불익을 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욱 찬양받을 만한 것이다.’라는 뜻이다.”(Thag.A.II.279, 전재성님역)

 

 

지금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면 바람직함을 말합니다. 반대로 지금 이익을 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불법적인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차라리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하는 것이 더 나음을 말합니다.

 

네 번째 게송은 불의에 살 것인가로 시작됩니다. 이에 대응되는 게송은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 (Jīvita ca adhammena dhammena maraa ca ya,  Maraa dhammika seyyo ya ce jīve adhammika.)” (Thag.670) 입니다. 여기서 불의여법하지 못한이라는 말은 ‘adhammena’를 말합니다. 정의를 뜻하는 dhammena에 부정접두어 a가 붙어서 정의롭지 못한또는 불의의 뜻이 됩니다. 이 게송에 대한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악을 행하지 않고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가르침으로 인한 죽음 즉, 여법한 죽음이 낫다. 그러한 죽음은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아서 여법하고 천상계에 도달하거나 열반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식자들이 칭찬하는 것이다.” (Thag.A.II.280, 전재성님역)

 

 

이 게송을 보면 80년대 길거리에서 시위할 때 구호가 생각납니다. 그때 당시 대학생들은 “무릎꿇고 살기보다 서서죽기 원한다라 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적절히 타협하며 사는 것 보다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운동권 구호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낫다.”라고 멋지게 번역한 것입니다.

 

여법한 삶에 대하여

 

부처님은 여법하게 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법하다는 말은 ‘dhammena’를 말합니다. 영어로 ‘righteously’정의롭게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여법하다는 말은 정의롭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불자들이 여법하게 또는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부처님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은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탐, ,치의 소멸입니다. 그래서 고닷따존자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 그리고 분노를 버리고” (Thag.671) 라 했습니다. 이렇게 탐욕과 분노를 버리면 세상에 대하여 집착 없이 살아가니, 그들에게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없다.” (Thag.671)라 했습니다.

 

고닷따경에서는 가르침대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나옵니다. 이는 깨달음의 고리를 닦고, 능력과 힘을 닦아, 그들은 최상의 적멸을 얻으니, 번뇌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든다. (Bhāvayitvāna bojjhage indriyāni balāni ca,  Pappuyya parama santi parinibbantyanāsavā'ti.)”(Thag.672) 라는 마지막 게송으로 알 수 있습니다. 37조도품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칠각지와 오력, 오근을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닦으면 탐진치가 소멸되는 최상의 적멸을 얻어 완전한 열반(Parinibbāna)’에 들 것이라 했습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입니다. 불교수행의 목적은 열반을 향한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고닷따존자의 14연 게송을 통하여 어떻게 열반에 이르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명진스님은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하여 고닷따존자의 일부 게송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현재 처한 스님의 상황이 게송에서 잘 말해 주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이 게송이 자신에게 꼭 맞는 게송이라 했습니다. 여법하게 살고자 하는 스님이 가장 애송하는 게송이라 보여집니다.

 

재심청구 하지 않은 이유는?

 

명진스님의 법문은 계속되었습니다. 때로는 독설로 종단과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때로는 뭇삶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했습니다. 특히 종단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길거리로 내 몰린 것에 대하여 제적 당한 것 유쾌합니다."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심신청하면 승적 복권 됩니다. 초심징계 받아 들이고 신청 안했습니다."라 했습니다. 구차하게 머리 굽히며 살지 않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명진스님은 지난 45일 조계종으로부터 제적당했습니다. 대체 제적사유는 무엇일까요? 매스컴에 알려진 사유는 “137차 심판부에 이어 이날도 심리에 참석하지 않아 궐석으로 징계가 결정됐다. 호계원법에 따르면 당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심리에 불출석할 경우 궐석으로 심판할 수 있다.” (연합뉴스, 2017-04-06)라 했습니다. 구체적 제적사유는  “수차례 언론 인터뷰와 법회 등에서 종단과 총무원 집행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종단의 위상과 명예를 실추한 혐의라 합니다.

 

명진스님은 이날 열린법회에서 법회참석 바로 전날 밤까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초심호계원의 제적결의에 대하여 이의 신청을 하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재심청구하면 예를 들어 공권정지 2년 또는 5년을 적용할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는 길들이기에 지나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그 기간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합니다.

 

명진스님은 제적당하고 나서 스님들보다는 오히려 알고 지내는 신부나 목사로부터 많은 염려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재심을 청구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승적이 없어지는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재심청구를 포기했습니다. 열린법회 바로 전날 까지 결정하지 못했으나 그날 밤에 최종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런 결심에는 아마 열린법회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명진스님이 전날밤 최종적으로 결심하게 된 것은 아마 경기불교문화원에서 장소를 취소한 것이 결정적 영향이라 보여집니다. 종단의 압력을 받아 장소를 불허한 것입니다. 더구나 심증이 가는 것이 있습니다. 오후에 경기불교문화원에서 김형남변호사와 참여불교재가연대 허태곤 상임대표 등 5명이 찾아 갔었는데 법당 관계자는 명진스님은 제적당해서 장소를 빌려 줄 수 없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명진스님은 종단에 쓴소리 했다 하여 제적당했습니다. 재심을 하면 복권 될 수 있으나 포기 했습니다. 그것은 스님이 법문한대로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낫다.”라는 신념에 찬 게송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스님과 인연 있는 사람들이 함께

 

법문을 시작할 때 보다 법문이 끝날 무렵 사람들이 더 많이 모였습니다. 화창한 봄날, 축복받은 날에 길거리 열린법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처럼 명진스님의 가슴 후련한 법문에 유쾌해 보인듯 했습니다.

 

 

 

 

 

 

명진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기념촬영이 있었습니다. 스님과 인연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이 시대 아픔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스님의 넓은 마음에 감동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온 것입니다.

 

 

 

 

 

기념촬영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소년이 소를 타고 나타난 것입니다. 황소에는 쌍둥이 아빠는 즉각 물러나라라는 구호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 용주사에 등장했던 그 소입니다. 또 동국대에도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경청할 줄 아는 리더

 

명진스님은 청중을 몰고 다니는 마력이 있습니다. 특히 고통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즐겨 따라 다닙니다. 명진스님의 법회가 있으면 어느 곳에나 가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세월호 희생자 중에 성호어머니에게 음악씨디 2종세트를 주었습니다. 불자라고 소개한 것을 듣고 준 것입니다.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불자보살님에게도 씨디를 전달했습니다.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주는 선물용 씨디입니다.

 

점심식사는 여민각 바로 옆 식당에서 했습니다. 이날 무려 76명이 식사했습니다. 식사를 하지 않고 먼저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커피타임이 있었습니다. 명진스님과 대화의 시간입니다. 스님에게 혹시 지금도 제 블로그 보고 있습니까?”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잘 보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라 했습니다. 이에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명진스님과 인연이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초 스님이 종회의원이었을 때 지인과 함께 찾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두산위부 오피스빌딩에 머물고 있었을 때 입니다. 그때 당시 스님은 두 손을 꼭 잡고 바로 이분이 진흙속의연꽃입니까?”라며 대단히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스님에 따르면 이 고뇌의 강을 건너시절부터 글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블로그제목명으로 보아서 그때 당시로 보아 칠팔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꽤 오랫동안 블로그 애독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세 번째로 스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구면이 되어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글을 잘 읽고 있다고 해서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사람들을 만나면 손을 꼬옥 잡아 주면서 격려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 스님의 특징을 들라면 잘 경청하는 스타일입니다. 경청할 줄 아는 리더입니다.  아마 이런 자세가 오늘날 종교를 떠나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열린법회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비록 안은한 법당에서 합창단의 청법가도 없었지만 화사한 연등축제의 현장에서 열렸습니다.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한 진정한 열린법회, 길거리 법회였습니다. 조계종의 제적당한 스님이 길거리로 내몰려서 길거리 열린법회가 한국불교 역사상 최초로 열렸습니다.

 

  

2017-04-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