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은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주는 것
마음이 심란할 때 시장에 갑니다.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에 있는 안양중앙시장입니다. 도심에 있는 중앙시장에 가면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1번 게이트로 들어가 중앙에 이르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청과물가게 청년을 봅니다. 이 바닥에서 닳고 닳아서인지 목소리에 도가 튼 듯합니다. 능숙하게 손님을 다루는 솜씨가 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익살스럽기까지 합니다.
중앙시장에 가면 노점상들이 있습니다. 시장에 진입하지도 못하고 주로 버스정류장 옆에 좌판을 벌여 놓은 것을 말합니다. 대개 한봉지에 이천원 내지 삼천원정도 되는 감자, 고추, 양파 등 먹거리입니다. 봄에는 냉이, 달래 등으로 제철에 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노점좌판을 보면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나 하나 삽니다. 이를 ‘팔아준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일부러 사주는 식도 됩니다. 서민들을 상대로 하는 좌판에서 서민들이 사주지 않으면 살기 힘들 것입니다. 대개 부유한 자들은 재래시장에 오지 않을뿐더러 노점좌판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가서 기름진 음식 등을 한카트 가득 사는 것이 보통입니다.
단호박 가격을 조사했더니
정류장 노점 좌판에서 단호박을 하나 샀습니다. 도라지, 버섯 등 주로 구근류를 파는 곳입니다. 나이가 칠십이 넘어 팔십 가까이 되는 할머니가 단호박을 건네 줍니다. 손은 거칠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합니다. 칠월도 중순에 접어들어 햇살이 강렬한 땡볕에 그늘도 없이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단호박 하나에 3천원 합니다. 김제 것이라 합니다. 단호박 하나를 팔아 주었습니다. 단호박 하나를 팔아 준 것은 단호박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중앙시장에 점심한끼 먹으로 왔다가 일종의 시장조사를 한 것입니다.
중앙시장 내에 청과물 도매상이 있습니다. 큰 가게에는 수십가지 제철 먹거리를 팔고 있습니다. 그 중에 단호박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단호박과는 모양과 크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크기가 갓난아이 머리만큼이나 크고 색깔도 연하여 마치 일반호박처럼 보입니다. 가격은 2천원입니다. 표지판을 자세히 보니 뉴질랜드산이라 적혀 있습니다.
단호박 가격이 얼마인지 더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대형마트인 E마트에 가 보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단호박이 있었습니다. 비닐에 낱개씩 포장되어 있습니다. 손바닥안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작았습니다. 가격표를 보니 2,380원입니다. 노점 좌판에서는 3천원 하니 620원이 쌉니다. 그러나 크기로 따졌을 때 노점좌판 것의 약 60%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대형마트 것이 더 비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격은 뉴질랜드산이 가장 쌉니다. 그러나 맛을 보아서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수입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또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단호박 역시 어디서 어떻게 생산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가격이라도 생산지와 생산한 자의 정보를 안다고 더욱 더 믿음이 갈 것입니다.
택배로 한박스 받았는데
친구로부터 밤호박 한박스를 택배로 받았습니다. 해남으로 귀촌한 친구가 농사지은 것입니다. 친구는 단호박이라 하지 않고 ‘밤호박’이라 했습니다. 친구의 밤호박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10일 전에 ‘단호박인가 밤호박인가? 귀촌 5년차 해남황토농장 부부(2017-06-27)’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두 박스를 주문 했습니다. 한박스는 집으로 배달 요청 했고, 또한박스는 복지단체로 발송해 달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농산물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사서 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장에서 사서 먹는 것도 좋지만 아는 사람으로부터 사서 먹는 다면 더 믿음이 갈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며 농사를 짓는 사람의 농산물은 확실히 품질보증이 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친구도 밤호박, 꿀고구마, 하얀민들레, 참깨. 비트, 마늘 등 농사를 짓는데 주로 지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일종의 농산물 직거래라 볼 수 있습니다.
농산물 직거래 하면
직거래하면 파는 자도 좋고 사는 자도 좋습니다. 서로서로 좋은 것입니다. 믿고 먹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농촌살리기 운동도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에서 사면 마진이 상인들에게 돌아가지만 직거래하면 농사 지은 자에게 이득이 돌아갑니다. 사는 자는 팔아 주어서 뿌듯한 마음을 가져서 좋고, 파는 자는 이익이 많이 남아서 좋을 것입니다.
택배로 받은 박스에는 밤호박 일곱 개가 들어 있습니다. 뉴질랜드산 보다는 작고 대형마트 것 보다는 큽니다. 한박스 4키로 기준으로 택배비 포홤하여 28,000원입니다. 단순하게 계산하여 개당 4천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점 좌판에서 3천원 한 것과 비교하여 천원 비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산지가 분명하고 그것도 제철에 생산된 것이라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언제 출시되었는지 모르는 상품보다는 생산지와 생산자가 확실하다면 더 믿음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 농촌살리기입니다. 도매상에 헐 값에 넘겨 상인들만 배불려 주는 것 보다 직거래 함으로써 귀촌한 사람들에게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왜 홍보하는가?
밤호박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고 단체카톡방에도 소개 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자와 침묵하는 자입니다. 적극 구매층의 경우 글의 취지에 공감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침묵합니다. 그럼에도 관심있게 지켜 본 사람들은 한박스가 아니라 두박스 씩 사간다고 합니다. 이는 친구 처가 보내온 문자로 알 수 있습니다.
친구 처에 따르면 인터넷 글을 보고 주문한 사람이 꽤 된다고 합니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구매합니다. 이에 “작가님, 넘 감사드려요”라 합니다. 블로거에 글을 쓰기 때문에 작가라 합니다.
친구 농산물을 홍보해 주고 있습니다. 가능성 있는 지인에게 개별문자를 보내 정보를 알려 주기도 합니다. 이때 인터넷에 올린 글도 링크합니다. 이처럼 홍보하는 것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탈법과 불법 그리고 부동산투기나 주식투기 등 불로소득이 판치는 세상에서 팔뚝의 힘으로 이마의 땀으로 근면하게 살아 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농산물을 팔아 떼부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급자족하면 다행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시의 지인들이 많이 팔아 준다면 더욱 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황금빛 밤호박 맛을 보니
아무리 맛 있는 것이라 하지만 먹어 보아야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밤호박도 맛을 보아야만 맛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조리해야 합니다. 알려 준 방법대로 찜기를 사용했습니다. 밤호박을 잘르고자 칼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단단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마치 차돌처럼 딱딱해서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통째로 찜기에 넣고 약 20분 기다렸습니다.
돌맹이 처럼 딱딱하던 밤호박이 찜통에서 나오자 비로서 칼이 들어갔습니다. 두 쪽을 내니 속이 황금빛입니다. 맛을 보았습니다. 친구가 왜 ‘밤호박’이라 했는지 비로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밤맛입니다. 약간 팍팍한 느낌입니다. 이를 해남에서는 ‘파근파근하다’라 표현했습니다. 물컹물컹한 느낌의 단호박과는 다른 것입니다.
요즘 부페에 가면 단호박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단호박이 고급웰빙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부페에서 맛본 단호박은 마치 달디단 멜론처럼 물컹물컹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럴경우 단호박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도매시장에서 본 커다란 뉴질랜드산 단호박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해남산 밤호박은 전혀 다른 맛입니다. 해남에서는 ‘파근파근한’이라 하는데 약각 팍팍하면서 단맛이 납니다. 마치 고소하고 달콤한 빵을 먹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맛의 근본 바탕은 밤맛입니다. 밤맛난다고 해서 밤호박이라 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단호박과 밤호박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뒤돌아 보지 않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뒤돌아 보지 않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살던 때입니다. 오로지 자신과 가족 밖에는 모르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 갔을 때 멈출 수도 있고 꺽일 수도 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옆도 보고 뒤도 돌아 보게 됩니다. 그때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라는 마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나중에 지나고 보면 빠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자신의 가족밖에 모릅니다. 기도를 해도 자신과 가족의 건강, 학업, 사업, 치유와 같은 이른바 사대기도 위주입니다. 그러나 옆을 보고 뒤를 돌아 보면 사람사는 모습이 보입니다. 숲에 들어 가면 온갖 새가 지저귀고, 하천을 보면 온갖 물고기와 물새가 노니는 것이 보이듯이, 주변을 보면 늙은이, 병든이, 몸과 마음에 장애가 있는 이들이 보입니다. 한공간에서 한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재래시장에 가면 사람들 사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고 파는 모습을 보면 활력이 넘칩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시장에서 장사하며 살아 갑니다. 그마저 없는 사람들은 길거리에 좌판을 벌입니다. 시장에 가면 일부러 물건을 삽니다. 그래 보았자 이천원 삼천원 합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난 자들과 든 자들은 재래시장에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더구나 길거리 좌판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모두 불량식품으로 보는 경향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철에 나는 먹거리는 모두 약이 됩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산다기 보다 물건을 팔아 준다고 생각하면 기쁩니다.
농산물은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주는 것
여기 팔뚝의 힘으로 이마의 땀으로 정직하게 살아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일구어낸 농산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걸고 판매하는 농산물입니다. 소개할 때는 반드시 농촌살리기 직거래임을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농산물 사는 것이 사대기도하는 것처럼 돈만 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처럼 돌아 오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농산물 직거래이기 때문에 서로 교환하는 것입니다. 서로 주고 받기식입니다.
농산물 직거래 하면 서로서로 좋습니다. 한편에서는 싱싱한 먹거리를 받아서 기쁘고 또 한 편에서는 팔아서 기쁩니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헌금함이나 보시함에 돈을 집어 넣고서는 자신과 가족의 사대소원을 빕니다. 돈을 집어 넣고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물건을 사주는 것입니다. 헌금함에 돈을 넣고 비는 것 보다 노점 좌판의 물건을 팔아 주었을 때 마음이 더 뿌듯합니다. 농촌살리기 직거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비에 바탕을 둔 진정한 보살행일 것입니다. 농산물은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주는 것입니다.
2017-07-07
진흙속의연꽃
'의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은 간단하게 점심은 거하게 저녁은 조촐하게, 청정한 삶을 살려거든 청정한 식사를 (0) | 2017.11.02 |
---|---|
꿀고구마를 일명 ‘첫사랑’이라 하는데, 귀촌 해남친구의 시뻘건 황토농장에서 (0) | 2017.10.02 |
단호박인가 밤호박인가? 귀촌 5년차 해남황토농장 부부 (0) | 2017.06.27 |
카톡방 찌라시와 진정한 보수주의자 (0) | 2016.12.13 |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어요” 스마트폰을 공유하는 부부 (0) | 2016.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