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서쪽으로 서쪽으로 갈데 까지 가보자, 휴가철에 떠난 강화 보문사

담마다사 이병욱 2017. 7. 31. 14:32

 

서쪽으로 서쪽으로 갈데 까지 가보자, 휴가철에 떠난 강화 보문사

 

 

국민휴가주간

 

이른 바 국민휴가철입니다. 매년 대한민국에서는 팔월 첫 째 주는 국민휴가철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 주간 동안 휴가기간으로 정합니다. 큰회사들이 정하면 작은회사들은 따라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팔월 첫 째주가 국민휴가주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휴가주간에 산으로 바다로 멀리 떠납니다. 해수욕장에는 연중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고 뉴스에서 전합니다. 연중 최다 기록은 공항에서도 나옵니다. 국민휴가기간을 이용하여 해외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사상최대를 기록할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국민들 대부분은 집에서 보냅니다. 설령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주변의 산이나 계곡 등 당일치기 코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갈데까지 가 보자

 

국민휴가기간이 시작 되는 일요일 멀리 떠나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 보았자 수도권과 수도권 인근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서쪽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석모대교도 개통되었다 하니 보문사 생각이 났습니다. 강화도 건너 큰섬 석모도에 있습니다.

 

서쪽으로 달렸습니다. 서쪽끝까지 달려 보고자 한 것입니다. 갈데까지 가 보자는 것입니다. 외곡순환고속도로를 타고 김포인터체인지에서 서쪽을 향하여 계속 달렸습니다. 확실히 옛날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몇 년 사이에 도로사정이 몰라 보게 좋아졌습니다. 이른바 도시고속도로가 도심을 가로질러 시원하게 뻗어 있습니다.

 

서쪽방향으로 48번 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니 하성이 나왔습니다. 갑자기 이십여년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직장문제로 방황하던 시절 하성에 가 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단어 하나가 옛일을 깨우쳐 줍니다. 본 것, 들은 것, 냄새 맡은 것 등으로 인하여 옛날 일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서쪽으로 달리다 보니 약간의 정체구간이 있습니다. 강화대교 입구에서 늘 볼 수 있는 병목현상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체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교만 건너면 새로운 세상입니다. 섬 특유의 원시성이 엿보입니다. 칠월말의 강결한 태양아래 짙은 녹음이 육지와는 다릅니다. 몇 일전 비가 왔는지 산하대지는 생명력이 넘쳐 납니다. 논에는 벼들이 빼곡하여 멀리서 보면 그린필드입니다.

 

석모대교 개통소식을 듣고

 

강화도는 기분 좋은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육지와는 다르게 한적하고 풍요롭고 넉넉합니다. 드문드문 흰구름이 떠 있고 강렬한 햇살은 작열합니다. 그러나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 코스나 다름 없는 강화도 서쪽 끝을 향하여 계속 달렸습니다.

 

교계신문에서 석모대교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교계신문에 따르면 동해안 쪽에는 6 30인제양양터널이 개통되어서 동해 낙산사까지 주행거리가 대폭 단축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서쪽으로는 석모대교가 6 28일 개통되어서 보분사까지 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관음성지인 낙산사와 보문사 가기가 이전 보다 훨씬 더 수월해진 것입니다.

 

강화도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에는 여러 차례 가 보았습니다. 모두 배타고 갔습니다. 그러나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의 시간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바다가 육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 석모대교는 어떤 것인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석모대교 앞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해협처럼 거리가 꽤 되는 거리를 다리가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왕복 두 개 차선뿐이라 긴 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6 28일 개통한 석모대교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아직까지 위키백과 등 사전에 정보가 실려 있지 않습니다. 가장 관심 있는 길이는 1,540미터입니다.

 

 

 

 

 

황청포구에서 바라본 석모대교 전경./기호일보 DB

 

 

뉴스에 따르면 석모대교 개통으로 인하여 배로 운송되던 때와 비교하여 열배가 폭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 석모대교를 건너기 위하여 차량이 꼬리를 꼬리를 물고 긴 줄이 형성되었습니다. 오로지 한 개 차로 밖에 없이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서쪽으로 가라, 젊은 그대여(Go West, young man)”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렸습니다. 이럴 때 생각나는 말이 “Go West”입니다. 1979년에 발매된 빌리지피플 노래입니다. 이 노래 제목은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붐속에서 서쪽으로 가라, 젊은 그대여(Go West, young man)”에서 따 온 것이라 합니다.

 

서부는 개척정신을 상징합니다. 서부로 무작정 떠나는 사람은 우리는 서쪽을 향하여 무작정 달렸어요. 멈추는 곳이 우리들이 살 곳입니다.”라 했습니다. 영화대사에서 나오는 말도 “Go Go West”입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한 그들은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태평양에 이르렀습니다. 빌리지피플의 고 웨스트가사 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Go west) life is peaceful there.
서쪽으로그곳엔 평화로운 삶이 있어.

(Go west) lots of open air.
서쪽으로 그곳엔 넓게 열린 하늘이 있고,

(Go west) to begin life new.
서쪽으로 그곳에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어.

 

 

 

관음성지는 왜 해안에 있을까?

 

보문사는 이전에 몇 차례 온 적이 있어서 익숙합니다. 우리나라 33관음성지 중의 하나이고 더구나 동해 낙산사와 남해 보리암과 함께 서해를 대표하는 관음성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음성지는 대개 해안가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해안에는 낙산사, 남해안에는 보리함, 서해안에는 보문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일까 신심 있는 불자들은 성지로 여겨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관음성지가 해안가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입법계품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보타락가산이 있는데, 거기에 관자재보살이 있다. 그대는 그를 찾아가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느냐고 물으라.”(화엄경 입법계품 비슬자라거사, 278, 법정스님역)

 

 

구도여행을 떠난 선남자에게 비슬거사가 한 말입니다. 남쪽으로 죽 가다 보면 어딘 가에 관자재보살, 즉 관세음보살이 있는데 가서 보살도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보타락가산을 주목합니다.

 

보타락가산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불교설화대사전에 따르면 보타락가산에대하여 인도의 남쪽 해안에 있으며 관세음보살의 주처라고 하였다.”( 불교설화대사전)라 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는 곳이 남인도 해안이라 합니다. 아마 남쪽으로 죽 내려 가다 보니 해안에 이르렀고 그곳에 보타락사산이 있는데 그곳에서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음성지는 왜 해안에 주로 있을까요?

 

우리나라 유명관음성지는 해안에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동아시아 불교에서도 동일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유명관음성지도 해안입니다. 이처럼 관음성지가 해안에 있는 이유에 대하여 설화사전에 따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관음경> (만일 백천만억 중생이 금·은·유리 등 보배를 구하기 위하여 큰 바다에 들어가는데 설사 혹풍이 그 선방에 불고 나찰귀국에 표류할지라도‥‥‥)운운한 것이며, (혹은 큰 바다에 표류하여 용어제귀의 난을 만나도 관음의 힘을 염하면 파랑도 빠지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나, 또는 범음 ·해조음 등의 구절을 견주어 보아도 신성한 땅에 관음을 봉사한 신앙이 있을 수 있었다고 믿어진다. 


그런 까닭으로 석란도에 그 정지를 정했던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관음본연경 - 觀音本緣經> (보타락가)가 남해의 섬이라고 설화화해서 옛날 인도인의 이상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상해서 신앙화한 것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보타학가)는 광명산 ·소화수산 등으로 한역하는 외에 해도산 해도라고 번역하고 또는 해안 고절처라고 지칭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히 바다 물과 인연이 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불교의 동전과 관음유행) 불교가 서역에서 점차 동전됨에 따라 관음보살이 뒤따랐으니 관음 성지인 (보타락가)도 동양 각국에 조성 되었다. 바다가 없는 티베트에 들어와서는 (보타락가)로 정()하여 관음의 유행성지로 귀앙했다.

 
중국에서는 절강성 주산열도 가운데 정경이 좋은 섬을 택하여 (보타락가)로 정하고 관음의 성지 영장으로 숭상해왔다. 일본에 들어와서는 기이의 나지산 청안도사 등을 관음의 유행영장으로 삼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동해에 강원도 양양낙사, 남해에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 보리암, 그리고 서해에는 경기도 강화군 삼산면 낙가산 보문사 등 관음의 삼대도량으로 귀앙 되고 있다. (관음성지 보타낙가산, 불교설화대사전)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보면 칠난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수난과 해난이 있어서 물과 관련된 것이 두 개로 가장 많습니다. 큰 물에 떠 밀려 내려가더라도, 폭풍이 일어 해난을 당했더라도 관세음보살을 명호 하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 입법계품 관자재보살편을 보면 관자재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중생들이 나를 생각하거나 내 이름을 부르거나 내 모습을 보게 되면, 다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지이다라고 한다.”(화엄경 280, 동국역경원, 법정스님역) 라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관음성지는 해안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암반 밑에 굴법당

 

유명기도처는 대게 막다른 곳에 있습니다. 서쪽 땅끝에 있는 보문사에는 두 개의 유명 기도처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굴이고 하나는 마애불입니다. 동굴은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천정처럼 거대한 암반 밑에 굴법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표지판을 보니 천년도 넘은 것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4(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했다 하니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보문사 굴법당은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세 개의 아치형 홍예문을 만들고 그 안에는 작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미륵, 나한상들입니다. 백명 가량 앉을 수 있는 너른 공간입니다. 바닥은 매끈매끈한 나무 마루 판으로 되어 있어서 바깥의 폭염과는 달리 서늘합니다. 선풍기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신심 있는 불자들은 절을 하며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어느 불자는 앉아서 알 수 없는 주문을 열심히 외고 있습니다.

 

 

 

 

 

꼬리표에는 갖가지 소원들이

 

막다른 곳에 있는 또하나의 기도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낙가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입니다. 마애불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수 백개나 되는 계단을 폭염에 올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표지가 정해진 마당에 올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보문사에서 가장 영험한 곳이자 서해안을 대표 하는 실질적인 관음성지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애불 올라 가는 계단에는 양옆으로 수 많은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습니다. 꼬리표를 보니 갖가지 소원이 적혀 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이 가족건강입니다. 가족건강 만사형통, 가족건강 소원성취, 입시기도, 각종시험합격발원, 사업번창 등 매우 다양합니다. 마치 아우성처럼 들립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제발 내소원 좀 들어달라고 부르짓는 것 같습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은 일반불자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자력의 종교라는 불교에서 타력적인 요소가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기만 해도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들과 딸도 가려 낳을 수 있습니다. 아들 낳기를 원한다면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 낳기를 원한여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곧 복덕과 지혜가 있는 아들을 낳게 되고”(화엄경 357)이라 했습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시무외자(施無畏子)

 

보문품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을 지극정성으로 부르면 어디든 나툰다고 합니다. 제도할 이에게 나타나 설법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세음보살이 부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라 합니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그에 걸맞는 존재로 화현함을 말합니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큰 도움을 준 자가 있다면 그는 어쩌면 관세음보살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나툰 것인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투는 것에 대하여 이 사바세계에 두려움을 없게 해 주는 이, 즉 시무외자(施無畏子)라 합니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안심케 하고 용기를 주는 자가 시무외자입니다. 시무외자로서 관세음보살은 항상 이 사바세계에서 머물며 산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보문품에서는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이 자유로운 신통력을 가지고 사바세계에 노니느라.”라 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사바세계에서 노닐고 있다고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간절히 부르면 천개의 눈이 있어서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볼 수 있고, 천개의 팔이 있어서 도와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르지 않으면 응하지 않을 겁니다. 뒤에서 엄마하면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엄마가 뒤돌아 보듯이, 누군가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반드시 뒤돌아 보고 알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아니라 여러 번 불러야 할 것입니다. 부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 자주 부르는 사람, 그것도 간절히 부르는 사람에게 그 상황에 걸맞는 사람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마애불 앞에는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여기에 까지 왔습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땅끝을 가다 보니 보문사에 이르렀고 최종 종착지가 마애불이 되었습니다. 서해안 관음성지입니다. 그런데 동해안의 낙산사와 남해안의 보리암에 서 있는 해수관음상과는 달리 마애불입니다. 정식명칭은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입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마애불은 1928년에 조성 되었다고 하니 약 90년 가량됩니다. 그래도 관음성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해수관음상 보다는 역사가 오래 된 것입니다.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보입니다. 신심 깊은 불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 학업, 사업, 치유 등 갖가지 소원이 이루지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유명기도처는 대개 막다른 곳에 있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즉 동굴, 절벽, 해안 등입니다. 동굴법당 역시 기도발이 잘 먹히는 곳이라 합니다. 동굴은 더 이상 들어 갈 수 없는 막장입니다. 천길 낭떨어지처럼 보이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듯 세워져 있는 기도처도 있습니다. 해안가 절벽에 기도처는 파도치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공통적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입니다.

 

막다른 곳에 내몰린 자들이 있습니다. 선택은 죽느냐 사느냐두 가지입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자들이 막다른 곳에 왔습니다. 동굴법당에 앉아 있으면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기도처 아래로 떨어지면 죽음입니다. 해안가 기도처는 바다가 가로 막혀 있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자들,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기로에 처한 자들이 막다른 곳에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그것도 지극하게 간절하게 부릅니다.

 

 

만일 큰 바다에 표류하여

용과 귀신, 물고기의 난을 만나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파도가 능히 삼킬 수 없으며

 

법에 잘못 걸려

형벌을 받아 죽게 되더라도

관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칼이 조각조각 끊어지며”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관음염피력은 불가사의합니다. 폭풍을 만나 배가 파산해도 관음염피력으로 파도가 삼킬 수 없다고 하고, 법적으로 죽을 운명에 처해 있어도 족쇄가 조각조각 끊어진다고 합니다. 죽음의 위기에 이르러서도 오로지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마음만 있다면 모두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는 이러한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신앙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지만

 

관세음보살보문품은 대표적인 타력신앙압니다. 불교경전이면서도 비불교적 요소로 가득합니다. 마치 유일신교에서 절대자에게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 사상을 지배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걸쳐 33관음성지라 하여 수 많은 관음성지가 있을 정도로 옛날부터 관음신앙은 뿌리가 깊습니다.

 

서쪽 땅끝 보문사는 대표적인 관음성지입니다. 더구나 보문사는 조계종 직영사찰로서 분담금을 많이 내는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해안 낙산사, 남해안 보리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관음성지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석모대교가 개통됨에 따라 무려 10배나 차량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문사 경내에서는 오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는 거의 없습니다.

 

보문사에 들어 가려면 주차비 2,000, 입장료 2,000원 하여 기본적으로 4,000원이 들어 갑니다. 그럼에도 휴가철 일요일 사람들은 줄을 이어 들어갑니다. 불자이건 아니건 서쪽 땅쪽 끝의 종착지는 보문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돈 내고 제발로 찾아 오지만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습니다. 찾아 오는 이들에게 사찰설명을 해 준다면 더 신심이 생겨날 것입니다. 여기에다 무료 법문을 개최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천년고찰 강화 보문사에는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이 몰려 들 것입니다. 더구나 석모대교 개통으로 인하여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는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신심 있는 불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문자를 모르던 시절 무지한 중생들을 위하여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신앙을 방편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전부는 아닙니다. 절에서 신도들에게 열심히 기도하세요라는 말도 좋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으면 부처님 원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부처님 그 분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려 주는 것입니다

 

낙가산 꼭대기까지

 

안양에서 강화까지 네비게이션으로 찍어 놓으니 88키로미터 걸립니다. 김포를 거쳐서 강화로, 강화에서 새로 개통된 석모대교를 이용하여 서쪽 땅끝에 이르렀습니다. 자연스럽게 목적지는 보문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문사 중에서도 마애불이 최종종착지입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낙가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불과 267미터 밖에 되지 않는 낙가산 정상에 서니 세상이 발아래 보입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 왔는데 정상이야말로 진정한 땅끝입니다.

 

 

 

 

 

 

 

정상에 서니 발아래 보문사가 보입니다. 커다란 암반 아래는 마애불이 있습니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정상에서 서니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불어 옵니다. 폭염에 비도 좋지만 시원한 바람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한줄기 바람이 마치 감로수같습니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부처님 법을 감로법이라 합니다. 감로법은 다름 아닌 불사법(不死法)’입니다. 불사에 이르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감로법을 아는 자에게는 간절한 기도가 그다지 필요치 않습니다. 상윳따니까야 참사람과 함께의 경(S1.31)’주석에 따르면 바다에서 폭풍우로 인하여 배가 침몰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때 이교도들은 자신의 신의 이름을 부르며 광란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조용히 명상하며 앉아 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인들이 바다를 건너는데, 폭풍우가 몰아쳐서 배가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각각 자신의 수호신을 외쳐 대며 도움을 청했다. 싸뚤라빠는 ‘백명의 외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결가부좌한 채 동요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한 동승자가 그에게 태연자약한 이유를 묻자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승단에 공양을 드리고 귀의했으므로 어떤 두려움도 없다고 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려 달라는 동승자의 부탁을 받고, 그들을 백명씩 일곱 그룹으로 나누어 차례로 부처님의 오계를 가르치고 오계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확실히 귀의하도록 했다. 배는 점점 깊이 가라앉아 모두 죽게 되었고 그들은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도리천)에 태어나 제석천궁에서 살게 되었다. (Srp.I.54)

 

 

이 이야기를 보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해난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해난이 일어 났을 때 이교도들은 자신의 수호신을 외쳐 대며 도움을 청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제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명상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평소 수행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는 것입니다. 틀림 없이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비자야, 비자야, 담마비자야!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끝에 이르렀습니다. 낙가산 정상에서 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것은 담마위자야(Dhammavijaya), 부처님 가르침의 승리, 담마에 의한 정복입니디. 부처님 가르침만이 평화와 행복을 가져 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소까대왕은 정복전쟁을 포기하고 전세계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합니다. 이는 다름 아닌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입니다.

 

 

고 고 웨스트!(Go Go West).

가자 가자 서쪽으로!

김포를 지나 강화로.

강화에서 서쪽끝 석모도까지.

 

예전에는 뱃길이었는데

석모대교가 하늘을 가른다.

갈데 까지 가 보니

관음성지 보문사에 이르렀네.

 

막다른 인생들이

막 다른 곳에 이르렀네.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장 동굴,

벼랑끝 마애불에 기도소리 간절하다.

 

가고 또 가고 갈데까지 가보니

해발 267미터 낙가산 정상이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무래도 감로법에 견줄 수 없으리.

 

땅끝에서 담마의 승리를 발원한다.

담마에 의한 정복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 온다

승리, 승리, 담마의 승리를 위하여!

비자야, 비자야, 담마비자야!(Vijaya, Vijaya, Dhamma vijaya)

 

 

 

2017-07-3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