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도선사 석불의 안쓰러운 연민상을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0. 4. 20:30


도선사 석불의 안쓰러운 연민상을 보고

 

 

도선사에 가면 석불(石佛)이 있습니다. 도선사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전각은 불타 버리고 폐허 속에 남는 것은 석탑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후대 복원되면 다행이지만 상당수가 폐사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바위에 기록을 남깁니다. 돌은 풍우에도 마모 되지 않고 천년 만년 가기 때문일 겁니다. 도선사 석불도 천년세월을 버텨왔습니다.

 

추석날 도선사에

 

오랜만에 도선사를 찾았습니다. 추석 차례가 끝나고 잠시 시간을 활용하여 찾았습니다. 도선사까지 올라가는 길은 가파릅니다. 작은 소형차에 사람이 가득 탄 상태에서 엑셀을 꾹 밟았습니다.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타는 냄새가 날 정도였습니다.

 




추석 당일날 도선사는 매우 붐볐습니디. 절에서도 차례를 지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맑고 청명한 날 도선사에는 울긋불긋 연등으로 가득합니다. 대찰로서 면모가 보이는 듯 합니다. 극락전 앞 향로에는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 있습니다. 커다란 향입니다. 마치 중국사찰에서 보는 향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절은 시대에 따라 유행을 달리 하는 듯 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막대봉처럼 생긴 커다란 향을 피는 사찰이 많아 질 것이라 예측합니다.

 






 

안쓰러운 연민상의 석불을 보고

 

도선사 하면 석불입니다. 이곳 저곳 볼 것이 많지만 결국 종착지는 석불이 됩니다. 석불 없는 도선사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도선사 석불 앞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침 예불시간이어서인지 스님이 관세음보살 정근하고 있습니다.

 



 

도선사석불을 처음 대한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하기 전의 일입니다. 정서적 불자이었던 시절입니다. 그때 당시 삼각산 등산을 마치고 도선사에 들렀습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석불에 이르렀습니다. 석불의 상호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디. 그리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처음 대한 석불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 바위에 새겨진 불상을 보고 운 것입니다.

 

석불을 처음 보았을 때 그 형언 할 수 없는 연민의 상호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석불의 눈두덩이가 대비(大悲)를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안쓰럽게 쳐다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운명적 문제들을 다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도선사 석불의 상호는 연민상 입니다. 자애로운 모습이 아니라 큰슬픔에 대하여 연민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상호입니다. 연민상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이었습니다. 도선사 석불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기도가 아니라 참회도량

 

2000년대초 도선사 석불을 보고 눈물을 흘렀습니다.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은 살아 오면서 처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이루 형언 할 수 없는 석불의 연민상을 보고서 이제까지 삶의 방식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동기를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도선사에 가면 다른 것 보지 않고 석불로 향합니다. 연민상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연민상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석불상 앞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예배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험합격 발원에서부터 사업번창 등 갖가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민상은 참회의 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잘 못 살아온 삶을 반성하는 장입니다. 그래서일까 석판에는 참회도량(懺悔道場)’이라 되어 있습니다. 도선사 석불은 기도의 도량이 아니라 참회의 도량입니다.

 

이 중생계가 다 하는 한

 

불자들은 공양물을 올려 놓고 기도합니다. 주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위에 대한 기도입니다. 또 각종시험합격발원과 입찰발원, 그리고 사업번창 발원을 합니다. 병에 걸린 자들은 치유의 기도를 합니다. 이런 기도를 불보살이 다 들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설령 들어 준다고 해도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상황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같은 신을 믿는 축구대표팀의 기도를 들어 줄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들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것인지 모릅니다.

 

도선사 석불은 832년 제작된 것이라 합니다. 도선국사가 삼각산에 이르러 옆에 우뚝 서 있는 큰바위를 반으로 잘라 30여척에 달하는 관세음보살상을 주장자로 조성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석불상이 1,200년 가량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선사석불은 천년 이상 된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그 자리에서 수 많은 중생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 보았을 겁니다. 갖가지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중생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천년 동안 바라 본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 중생계가 다 하는 한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일까 더욱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지 모릅니다.

 

최상의 공양이란?

 

도선사 석불은 연민상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에 대하여 안쓰러운 모습으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기도가 아니라 참회를 해야 하는 이유라 봅니다. 지금까지 삶을 되돌아 보면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어떻게 공양해야 할까요? 디가니까야 완전한 열반의 큰 경(D16)’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자나 수행녀나 남녀 재가신자가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최상의 공양으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경배하고 예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그대들은 ‘우리는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하리라.’라고 배워야 한다.”(D16)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을 때 쌀라쌍수에서는 때아닌 꽃이 만개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몸에 쏟아지고 흩날렸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바치고 꽃을 뿌리는 것 등을 공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것이 공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부처님이 말씀하신 공양은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최상의 공양”이라 하였습니다.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는 것은 아홉 가지 출세간의 원리(구출세간법 또는 구차제정)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사향사과(四向四果)를 성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가르침을 실천 하는 것에 대하여 최상의 공양(paramāya pūjāya)’이라 했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최상의 공양은 소원성취기도가 아니라 정법을 실천하여 도(magga)와 과(phala)를 이루는 것입니다이런 사실을 도선사 석불은 안쓰러운 모습의 연민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2017-10-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