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라마 글렌 멀린(Glenn Mullin)의 관정법회에 참석하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1. 5. 17:06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라마 글렌 멀린(Glenn Mullin)의 관정법회에 참석하고

 

 

이 세상이 남아있고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저도 계속남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몰아내게 하옵소서!”

 

 

입보리행론에 있는 샨티데바의 기도문 중의 일부 게송입니다. 이 게송을 보면 지장보살의 발원을 보는 것 같습니다. 대승불교의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남김 없이 제도할 때 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발원과 유사합니다. 7~8세기경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 발원문은 달라이라마도 매우 좋아하는 게송이라 합니다.

 

샨티데바의 기도문 게송을 보면 한마디로 자비(慈悲)에 대한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중생계가 다하도록, 세계가 다하도록, 허공계가 다하도록, 열 가지 서원을 다 할 것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티벳에도 그대로 전달 되어 샨티데바의 기도문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봅니다. 또 동아시아에서는 지장보살의 발원문으로도 전개 된 것이라 봅니다. 불교를 지혜의 자비의 종교라 하는데 자비가 더 강조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정혜사에서 티벳불교를 접했습니다. 달라이라마 법제자로 알려져 있는 라마 글렌 멀린(Glenn Mullin)’의 관정법회입니다. 정혜사 주지 도현스님이 마련한 자리입니다. 도현스님은 전재성박사의 니까야강독모임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매주 두 번째 주와 네 번째 주 목요일 저녁 7시에 강독모임이 전재성박사의 삼송역 부근 서고에서 열리는데 지난 2월부터 늘 함께 한 멤버입니다. 정혜사 신도 세 분과 빠짐 없이 참석했고 최근에는 해인사의 두 비구니 스님도 합세하여 현재 다섯 분의 스님들이 강독모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라마의 관정법회에 강독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법우님들과도 함께 했습니다.

 

정혜사 가는 길에

 

정혜사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출발지에서 차로 40키로 가까이 되지만 시간상으는 한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막힘 없이 죽 따라 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혜사는 남양주에 있습니다. 더 자세하게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리입니다. 다산 정약용선생의 유적지가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정혜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있습니다. 정혜사 뒤에 있는 운길산 수종사에서 두물머리를 바라보면 마치 별세계를 보는 듯 합니다. 그래서일까 어느 유럽사람은 두물머리 풍경을 보고서 스위스의 풍광 못지 않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혜사에서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팔당대교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는 끝없이 아파트단지가 펼쳐집니다. 그에 따라 공기도 달라 집니다. 그러나 눈을 돌려 동쪽을 바라보면 산과 강과 협곡으로 된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팔당대교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가면 세간으로 가는 것 같고, 동쪽으로 가면 출세간의 세상으로 접어 드는 것 같습니다. 마치 한쪽 문을 열면 다른 방이 있는 것과 같고, 터널을 지나면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지는 것과 같습니다. 팔당대교 이쪽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서 공기도 다릅니다. 팔당대교를 지나 구불구불한 옛경춘가도를 가다보면 도로 바로 아래에 아름다운 정혜사 나타납니다.

 

휴양지처럼 보이는데

 

이제 가을도 막바지에 접어 드는 11 4일 날씨는 약간 쌀쌀 했습니다. 강과 협곡에 위치해 있는 곳에 있는 정혜사는 팔당대교 저쪽 보다 기온이 낮아서인지 구경춘가도 주변은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입니다. 붉은 단풍나무를 보니 온통 새빨개서 불이 붙은 듯 하고 냉기에 가로의 노랑은행잎은 더욱 더 진하게 보입니다.

 



 

정혜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많습니다. 수덕사 내에 있는 정혜사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정혜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수십개에 달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남양주에 있는 정혜사입니다. 그렇다고 전통사찰은 아닙니다. 절을 처음 보았을 때 절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절이라고 하면 으레 팔작지붕으로 된 전통전각을 떠 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정혜사는 일체 기와가 없습니다. 네모진 건물에 나무로 장식을 했을 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절 같지 않아 보이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휴양지처럼 보입니다.

 

0613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진 절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이곳 저곳 둘러 보았습니다. 휴양지처럼 생긴 절이지만 그래도 법당 등 절로서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큰법당에 가보니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볼로 하여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어서 어느 법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라마 글렌의 관정법회가 열립니다.

 





 

절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대개 비구니 사찰을 보면 정갈하기도 하지만 오밀조밀 잘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현스님이 주지로 있는 정혜사 역시 곳곳에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눈길을 끌게 합니다.

 






























정혜사는 꽃대궐

 

도현스님은 꽃을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 11월 초 차가운 겨울을 앞둔 쌀쌀한 날씨이지만 도량에는 온갖 꽃으로 장엄 되어 있습니다. 정혜사에 다니는 법우님에 따르면 봄이 되면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꽃대궐같다고 합니다.

 


















행복한 힐링캠프 정혜사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있는 정혜사는 아름다운 도량입니다. 그래서일까 초입에 보이는 건물에 행복한 힐링캠프 정혜사라고 큼지막하게 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곳에 오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일지암에 주석하는 법인스님의 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법인스님은 휴심정 칼럼에서 우리 절집에는 예부터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살면 애써 수도하지 않아도 탐욕은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고요.”(느끼며, 행복하며)라 했습니다. 금강산과 같은 아름다운 풍광을 맞이 했을 때 욕심내고 미워하는 일이 부질 없고 어리석게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법인스님의 글을 읽고 은근하게 질투가 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잣거리에서 생존경쟁하기에 바쁜데 스님들은 산 높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하는 일 없이 신선처럼 지내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 한적한 곳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 높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정혜사 역시 훌륭한 힐링장소입니다. 그래서일까 김열권법사가 이곳 정혜사를 집중수행장소로 하는지 모릅니다.

 

관정법회가 시작되고

 

오전 11시 드디어 관정법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법당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백명 가량 되는 사람들 중에는 인근 부대에서 온 병사들도 이십명 가량 있었습니다.

 

머리가 허옅고 풍채 좋아 보이는 라마가 입장했습니다. 나이는 칠십가량 되어 보이는 서양인입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그것은 아마 수행으로 쌓여진 관록과 힘일 것입니다. 라마를 수행하는 한국인 청월님이 통역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전에 조계종승려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라마 글렌 멀린을 스승으로 모시고 사는 재가불자라 합니다.

 












라마 글렌의 관정법문과 관정식은 오전 11시에 시작하여 오후 1시까지 두 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라마 글렌이 영어로 말하면 청월거사가 통역하는 식인데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듣기에 조금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노트를 하는데 이날 준비가 안되어서 스마트폰 메모를 활용했습니다. 키워드만 나열해 놓아도 기억을 되살리기 쉽습니다.

 

스마트폰에 메모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살려 라마 글렌의 법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부족한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 보충했습니다. 티벳관정법회는 처음이기 때문에 용어나 의식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글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라마 글렌 멀린은 누구?

 

라마 글렌에 대하여 궁금했습니다. 풍체좋고 카리스마 넘치는 서양인 라마가 누구인지 먼저 알고 싶었습니다. 오후에 열린 콘서트 한켠에 라마 글렌의 책이 반 값에 판매 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신비한 환생의 유산 위대한 지도자’(민족사)라는 책을 샀습니다. 책의 첫 페이지에 라마 글렌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습니다.

 

라마 글렌은 캐나다 사람입니다. 캐나다 퀴백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후에 1972년부터 1984년 까지 약 12년간 티벳불교 4대 종파 중의 하나인 겔룩파의 스승으로 부터 교학과 수행의 지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20년 동안 다람살라에 살면서 달라이라마 등 수 많은 스승으로 지도를 받았는데, 특히 탄트라라 불리우는 밀교에 대하여 달라이라마의 스승인 깝제 링 도르체창과 깝제 티장 도르체창으로 부터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라마(Lama)에 대하여 

 

라마 글랜은 서양사람이지만 달라이라마 법제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글렌 멀린이라는 이름 앞에 라마 글렌이라 하지만 보통 라마라 불리웁니다. 그렇다면 티벳불교에서 라마(, lama)는 어떤 의미일까요?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는 사원의 지도자나 위대한 스승에게만 붙였지만, 오늘날 존경받을 만한 승려라면 누구나 이러한 경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1
세기 아티샤는 직접적인 스승의 가르침만이 올바른 이해를 보증한다고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이 더 중요하다고 답한 후 라마는 더욱더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어갔다.


몇몇 라마는 선조들의 화현으로 여겨지는데, 이들은 스스로 정신적 수련을 쌓아 높은 경지에 올라 존경을 받게 되는 '수도' 라마와 구별하여 '튈쿠 라마'로 불린다.


화신 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계통은 달라이 라마의 계통이다. 달라이 라마란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종파인 게룩파의 최고 지도자에게 붙이는 칭호인데, 그는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여겨지고 있다.” (라마, 다음 백과)

 

 

다음백과에 따르면 라마는 위대한 스승에게 붙여 주는 칭호라 합니다. 오늘날에는 존경할만한 승려하면 라마 칭호를 붙일 수 있다고 합니다. 라마 글렌의 경우 유발의 재가자임에도 라마 칭호를 붙여 준 것은 그 수행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달라이라마의 법제자로서 라마 글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무상, 공성, 평화

 

두 시간에 걸친 라마 글렌의 관정법회에서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비(慈悲)’입니다. 모두에 샨티데바의 기도문 중에 하나인 이 세상이 남아있고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으로 시작되는 게송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보살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남김 없이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라마 글랜 법문 역시 이러한 자비라는 키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신, , 의 삼업에 대한 관정의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라마 글렌은 가장 먼저 고, 무상, 공성, 평화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네 가지를 바탕으로 법회한 것에 대하여 사비관음관정식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고, 무상, 공성이라는 말은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무상, , 무아와 유사합니다. 그리고 평화는 사법인에서 열반적정과 유사합니다.

 

라마 글렌은 가장 먼저 고(dukkha)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라마 글랜이 말하는 고는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고와는 개념이 다릅니다. 관정법회에서 말하는 고는 불만족입니다. 무엇에 대한 불만족인가? 그것은 깨달은 자가 되지 못한 불만족입니다. 내가 부처가 아닌 것에 대한 불만족이 고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깨달은 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말하는 무상입니다. 무상에 대하여 관하는 것입니다.

 

무상을 관한다는 것은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만일 무상하지 않다면 우리는 영원히 깨달은 자, 부처가 되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무상하게 변하기 때문에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 관해야 할 것이 공성입니다.

 

라마 글렌은 공관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 했습니다. 공하다는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기심이 없어서 개별체가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러한 공성을 알게 되면 깨달은 자가 될 것이라 합니다. 이런 깨달음에 대하여 용수는 머리카락 굵기의 차이라고 합니다. 중생에서 깨달은 자가 되기란 머리카락 굵기만큼이나 차이가 없음을 말합니다.

 

누구나 현생에서 깨달을 수 있다

 

라마 글렌은 누구나 현생에서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팔십 먹은 노인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마지막 제자 수밧다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현생에서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설령 깨닫지 못해도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서방정토에 태어날 것이라 합니다.

 

라마 글렌은 내가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불만족에 대하여 관하고, 부처가 될 가능성에 대한 무상을 관하고, 부처가 되는 공성에 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깊은 차원의 공성에 대해서는 용수의 공성과 무착의 보살행이라는 두 가지 전통이 합쳐진 것이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샨띠, 즉 평화를 관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앞서 세 가지를 관하고 난 다음 결과로서 주어지는 즐거움이라 합니다.

 

자비의 관정식

 

라마 글렌은 오늘 관정법회에 대하여 자비의 관정식라 했습니다. 왜 자비의 관정식이라 했을까? 이에 대하여 법명 마이트리아를 언급하며,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순수한 사랑과 보편적 자비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라마 글렌이 자비의 관정이라 한 것은 이어지는 관정식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밀교의 전통에 따라 스승이 제자에게 관정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라마 글렌은 탄트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티벳불교, 즉 금강승불교에서 말하는 탄트라는 용수와 무착의 가르침이 혼합된 것이라 합니다. 용수와 무척을 존중하여 현교와 밀교가 결합된 것이 관정의식이라 합니다. 이런 관정의식은 티벳불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던 것이라 합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시작되어서 대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 관정의식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관정의식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이날 관정법회에서 세 가지 관정의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신체적 관정식, 언어적 관정식, 정신적 관정식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마치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신, , 의 삼업을 정화하는 것 같습니다.

 

관정식은 스승의 지혜와 힘을 제자에게 곧바로 주는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대단히 자비로운 행위일지 모릅니다. 스승이 깨달은 것을 전수 해주는 행위 자체에 자비의 마음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라마 말렌은 이날 관정식에 대하여 자비의 관정식이라 말했을 것으로 봅니다.

 

스승의 힘으로 깨달음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는 스승을 필요로 합니다. 또 깨달음을 얻어서 윤회를 끝내고자 하는 자 역시 스승을 필요로 합니다. 스승 없이 괴로움이나 윤회를 끝내고자 한다면 헤메이기 쉽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되는데는 4아승지 하고도 10만겁이라는 무량한 세월이 걸릴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스승에게 직접 지도 받으면 현생에서도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탄트라입니다.

 

스승은 제자와 비교하여 측량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자비로 나타납니다. 지혜로운 자는 동시에 자비도 가지고 있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하는 자나 현생에서 깨달음을 이르고자 열망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줍니다. 그것이 티벳불교에서 말하는 관정식입니다. 스승의 힘으로 깨달음을 이룩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탄트라(밀교. 티벳불교)에서 스승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이런 관정식은 신체적인 것, 언어적인 것, 정신적인 것,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관정(灌頂)이란?

 

관정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관정(灌頂)이란 정수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 고대인도에서 제왕의 즉위식 때 태자의 정수리에 부어 사해를 장악할 것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이를 채택하여 수행자가 입문하거나 도를 깨달았을 때 이 의식을 행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관정의식은 고려시대때 성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원나라 간섭시대에 티벳불교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 관정식했다는 기록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진각종 등 밀교계통의 종파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밀교에서 행해지는 관정은 비밀관정이라 하여 신비적인 가르침을 전수하는 일종의 비밀의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사이이 인연을 맺는 결연관정(結緣灌頂), 법을 배우는 학법관정(學法灌頂), 그리고 법을 전하는 전법관정(傳法灌頂) 등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날 라마 글렌이 행한 관정은 자비관정이라 하여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힘을 참여자에게 주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라마 글렌에 따르면 관정식은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 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이 관정이라는 형식으로 제자에게 전수되는 것을 말합니다. 탄트라에 따르면 신체적 전승방식, 언어적 전승방식, 정신적 전승방식 이렇게 3단계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보병과 몸의 관정

 

라마 글렌은 몸에 대하여 고의 기반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고물 자동차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은 또한 자비를 표현하는 도구라고도 합니다. 설령 신체적으로 죄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깨달은 자의 자비로 눈 녹듯이 죄업이 사라짐을 말합니다. 죄업 덩어리의 몸이 순수한 빛으로 변함을 말합니다. 마치 구름에 가려진 달을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몸의 관정에 대하여 앙굴리말라를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맛지마니까야에 앙굴리말라의 경(M86)’이 있습니다. 연쇄살인자 앙굴리말라는 부처님과 만나면서 극적으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부처님은 폭력을 일삼는 앙굴리말라에게 수행자여 멈추어라, 수행자여 멈추어라.”라며 지금 당장 멈출 것을 말했습니다. 이에 앙굴리말라는 폭력을 멈추고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모든 번뇌를 소멸하여 아라한이 된 앙굴리말라는 이런 게송을 읊습니다.

 

 

“예전에는 방일하여도

지금은 방일하지 않은 자

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저질러진 악한 일을

선한 일로 덮으니

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참으로 젊은 수행승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M86)

 

 

게송에서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 부처의 마음은 푸른 하늘처럼 티없이 맑지만 중생의 마음은 구름이 잔뜩 끼여 혼탁하다고 합니다. 앙굴리말라 역시 폭력을 행사하여 신체적인 악행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서 눈녹듯이 신체적 업이 청정해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라마 글렌은 불성의 발현으로 보았습니다. 마치 구름에 가려진 달을 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라마 글렌의 몸의 관정식이 거행됐습니다. 라마 글렌이 참여자 모두에게 관정을 해 주어야 하지만 다 할 수 없어서 주지 도현스님이 정병을 들고 참석자 모두의 머리에 관정의식을 해 주었습니다.

 



 

자훔밤호(jah hum bam hoh)

 

몸의 관정을 할 때 보병을 머리 위에 얹습니다. 이때 하나의 주문을 외는데 그것은 자훔밤호(jah hum bam hoh)입니다. 주문 자훔밤호에 대하여 검색해 보니 모든 여래의 지혜를 갖춘 지혜존들은 마치 물방울이 대양에 녹아 들어가듯이 금강살타의 성스러운 가슴으로 기쁘게 녹아들어가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몸의 관정을 할 때 먼저 보병을 머리에 얹습니다. 이때 자비의 빛이 들어 오는 것을 관상하라고 합니다. 스승의 지혜와 힘이 나에게 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봅니다. 이는 마치 테라와다 자야망갈라가타에서  이 위신력으로 승리와 축복이 제게 임하소서. (Ta tejasā  bhavatu  te  jayamagalāni””라는 구절을 떠 올리게 합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승리와 축복을 바라는 게송으로서 수호경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몸의 관정에서는 가장 먼저 지혜의 빛을 관상하라고 합니다. 지혜의 빛이 들어와 신체를 정화하게 하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훔밤호 주문을 깨달을 때 까지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런 몸의 관정에 대하여 라마 글렌은 몸은 자비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과 같은 것이다.”라 합니다. 이렇게 알아 차렸을 때 내 몸은 관세음보살이 되고 이 세상은 정토가 될 것입니다.”라 합니다.

 

우리 몸을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합니다, 우리 몸은 무수한 자비를 먹고 살아 왔다고 합니다. 부모로부터 몸을 받았고 조상과 연결 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먹을 것과 입을 것 등 모두 자비심으로 여기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 몸은 관세음보살이고 이 세상은 서방정토라는 사실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라마 글렌은 몸의 관정을 할 때 자훔밤호를 하면서 동시에 티벳 요령을 흔들었습니다.

 

옴마니반메훔과 말의 관정

 

말의 관정을 할 때는 주로 옴마니반메훔진언을 했습니다. 진언을 하면서 하얀 빛이 보병으로 나오는 관상을 하는 것이라 합니다. 라마의 가슴이 우리의 가슴으로 오는 관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있는 달모양의 디스크에 와 닿는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지혜와 자비가 합일 되면 깨달은 상태가 될 것이라 합니다. 말의 관정을 할 때 모두 옴마니반메훔을 21번 했는데 라마 글렌은 몸의 관정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티벳식 요령을 흔들었습니다.

 

여의주와 마음의 관정

 

마음의 관정은 관세음보살의 상징물로서 여의주를 관하라고 합니다. 두 손을 합장 했을 때 붙이지 말라 합니다. 두 손안에 여의주가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라마의 마음이 빛으로 되어 나가서 마음의 가피를 입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의 관정을 하면 성냄이 없어지고 자비심이 충만할 것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관정에 대해서는 염화미소로 설명합니다.

 

염화미소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대승불교에 따르면, 부처님이 연꽃을 들었을 때 마하가섭이 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은 것에서 유래합니다. 깨달은 자의 가르침은 문자나 언어가 아닌 마음과 뜻으로 스승과 제자사이에 전수 됨을 말할 때도 사용됩니다. 라마 글렌은 마음의 관정에 대하여 염화미소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현생에서 깨달음을, 못해도 정토에

 

두 시간에 걸친 라마 글렌의 관정법회와 관정의식이 끝났습니다. 처음 접해 보는 티벳불교입니다. 그것도 탄트라라 불리우는 밀교의식입니다. 공개적인 가르침이라 볼 수 있는 현교와 달리 밀교는 비밀스런 가르침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와 자비가 구족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전수 받는 것입니다.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관정을 받습니다. 이런 세 가지 방식은 선불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깨우칠 때 ()’()’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할은 고함소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깨우침을 주는 것을 말하고, 방은 몽둥이를 뜻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알려 주기 위한 방편이라 합니다.

 

할과 방에 대하여 반문자주의와 반지성적이라고 비난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라마 글렌의 법회에 따르면 탄트라에서는 지혜와 자비입니다. 몸과 말, 그리고 마음으로 관정하는 것의 공통점은 빛입니다. 스승의 지혜와 힘이 빛으로 들어 오는 것을 관하는 것이라 합니다. 머리의 정수리에 보병을 댄다거나, 입으로 주문을 외우거나, 마음으로 여의주를 관하면 지혜의 빛이 들어와 탐, , 치가 소멸되어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관정의 공통점은 스승의 지혜가 빛으로 들어 오는 관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몸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되고 세상은 정토가 됩니다. 눈 밝은 스승을 만나 관정하게 되면 현생에서 깨달음에 이르게 되고 못해도 정토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 라마 글렌의 말입니다.

 

예지몽을 꾸는 방법에 대하여

 

라마 글렌은 법회 말기에 달라이라마와의 인연도 말 했습니다. 1973년에 처음 달라이라마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때 당시 크리스천 문화권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있다.”라는 말이 좋았다고 합니다.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불자가 되기 보다는 부처가 되겠어.”라고 발원했다고 합니다.

 

라마 글렌은 오늘 법회에서 몸과 말과 마음으로 받은 관정에 대하여 하나의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밤에 잠을 잘 때 나누어 준 빨 간 끈을 손목에 묶고 자라는 것입니다. 잠을 자긴 자되 부처님처럼 오른 쪽 옆구리로 하여 모로 누워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예지몽을 꿀 것이라 합니다.

 

백련사에서 매주 일요일에

 

라마 글렌의 관정법회는 정혜사에서 한번 열리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11 4일 남양주 정혜사를 시작으로 11 5일에는 서울 백련사에서 열립니다.

 

한겨레신문 조현기자가 운영하는 휴심정 사이트에서 마이트리아상가 라마글렌 2017 가을-겨울법회일정에 따르면 백련사에서 11 5() 천수천안 관세음 관정식 (자비)를 시작으로 매주 열린다고 합니다. 참고로 향후 일정을 보면, 11 12() 오렌지색 문수 관정식 (지혜), 11 19()  Vajrapani 집금강보살 (, 자신감)/ Garuda가루다/ Hayagrive마두왕 관정식,  11 26() 따라불모 관정식 (불처님의 불업),  12 9() 아미타바 관정식이 공주 금륜사 에서 오후 1, 12 16 ()에는 법련사에서 이번 관정식 중 유일한 무상요가인 야만타카 관정식이 매주 열린다고 합니다. 티벳불교와 탄트라에 관심 있는 불자들은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청정한 연잎밥으로 점심을

 

관정법회와 관정의식이 끝났습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점심메뉴는 연잎밥입니다. 연잎에 쌀과 콩 등 갖가지 재료를 넣고 찐 것입니다. 정혜사 부근이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청정지역인데 강 주변에서 연재배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부근 연재배농가에서 가져 온 것이라 합니다.

 



 

니까야강독모임 멤버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매번 보는 얼굴이지만 이렇게 식사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역시 같은 니까야강독모임 멤버인 정혜사 주지 도현스님의 정혜사 관정법회가 인연이 된 것입니다.

 

도현스님의 찬불가

 

점심식사후에는 2부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정혜사에 준비한 콘서트입니다. 음악회 명칭은 관세음보살님의 행복한 가을입니다. 부제는 그대가 있어 행복합니다입니다. 구 경춘도로 바로 아래에 무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쌀쌀한 날씨이긴 하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법회에 참석한 정혜사신도들과 강독모임 법우님들, 그리고 부근 군부대 병사들을 합하여 칠팔십명 가량 참석했습니다.

 

이날 사회는 도현스님 조카가 보았습니다. 배우이자 오페라 가수이기도 한 스님의 여조카는 사회를 매우 능숙하게 보았습니다. 한달 후에 결혼한다는데 부군도 소개 했습니다.

 

음악회에 앞서 도현스님은 먼저 인사말을 했습니다. 스님에 따르면 이 절에서 종교를 초월한 문화행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종교를 초월했다는 것은 각불교전통을 초월했다는 의미로 받아 들입니다. 스님의 절 정혜사에서는 스리랑카 빅쿠도 머물고 티벳스님도 머무는 절입니다. 각불교 전통의 스님들이 머무는 도량이어서 종교를 초월한 문화행사를 하겠되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또 하나는 음악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종교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더구나 라마 글렌과 같은 선지식 법회도 있었기 때문에 스님은 오늘 다 이루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도현스님의 찬불가를 시작으로 음악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도현스님의 노래소리는 성악가 수준입니다. 그런데 여배우이자 오페라 가수인 조카는 도현스님이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분이라 했습니다. 다름 아닌 일란성 쌍둥이라 합니다. 그래서일까 생긴 모습도 똑같지만 목소리도 똑같아서 놀랄 때가 많다고 합니다.

 



 

이날 음악회는 클라리넷, 오카리나, 뮤지컬 가수의 노래, 시낭송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BBS불교방송의 프로듀서이었던 장대송님은 도현스님과의 인연을 소개 했습니다. 도현스님이 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라는 프로의 사회를 십년 가량 진행했다고 하는데 그 때 프로듀서였다고 합니다.

 

라마 글렌의 무대, 옴따레뚜따레뚜레소하(o tāre tu tāre ture soha)

 

음악회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흥겨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전에 관정법회와 관정의식을 한 라마 글렌의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라마 글렌은 불교에 입문하기 전에 영화관련 일을 했다고 합니다. 후에 티벳관련 영화가 제작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문화예술 분야에 밝어서일까 기타도 수준급입니다. 마이트리아상가 회원들과 함께 옴따레뚜따레뚜레소하(o tāre tu tāre ture soha)를 매우 흥겹게 불렀습니다.

 





 

옴따레뚜따레소하는 티벳불교에서 녹색타라를 노래한 것입니다. 타라보살은 티벳에서 관세음보살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여성보살입니다. 타라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중생에 대한 자비의 눈물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타라는 산스크리트 명이고 티벳어로는 돌마라고 하는데 돌마는 티베트에서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타라보살은 고통의 강을 건네주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또한 모든 중생의 소원을 들어 주는 성취와 성공의 화신으로도 표현됩니다.

 

라마 글렌은 오전에는 관정식을 하고 오후에는 무대에 섰습니다. 이런 상반된 모습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스님이 법문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법문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어쩌면 노래를 하고 무대에 서는 것도 자비로운 행위에 속할 것입니다.

 

라마 글렌의 책을 사고

 

무대 한켠에서는 라마 글렌의 책을 판매 했습니다. 여러 권 중에 신비한 환생의 유산 위대한 지도자’(민족사)라는 책을 샀습니다. 라마 글렌이 열네 분 달라이라마의 삶과 가르침에 대하여 영어로 쓴 책입니다. 이 책을 김영로님이 옮겼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한 김영로님은 학원강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험생용 저서도 있는데 김영로 Vocabulary’가 유명합니다. 지금은 금강승 수행을 하면서 수행자로 살고 있습니다. 법명은 아찰라(不動)’입니다. 이날 오전 관정식 말미에 아찰라님이 준비한 샨티데바의 기도문을  준비 해 와서 같이 독송한 바 있습니다.

 

지역 특산품 표고버섯

 

관정법회와 작은 음악회가 열린 날 작은 장이 서기도 했습니다. 지역 특산물을 한켠에서 판 것입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된장, 고추장, 감 등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 표고버섯이었습니다. 크기가 어른 주먹만한 것으로 보기에도 먹음직해 보였습니다. 실제로 생으로 먹어 보니 맛있었습니다. 버섯을 약간 구매했습니다. 거의 다 팔렸기 때문에 약간 남은 것을 산 것입니다.

 



 




함께 한 법우님은 2만원 주고 샀는데 한푸대 되는 것 같습니다. 대단히 만족해 합니다. 그것은 시장에서 파는 버섯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크기도 다를 뿐만 아니라 맛도 차이가 났습니다. 시장에서는 어디에서 났는지 누가 생산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크기도 작을 뿐만 아니라 중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하여 팔린다고 합니다.

 

버섯을 재배하는 젊은 부부에 따르면 자신들은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 아는 사람들에게만 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락처를 남겨 주었습니다. 직거래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연락처를 보니 삼장원 생명농장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농장주인은 매우 기억에 남는 말을 했습니다. 버섯을 사서 다 못먹을 것 같으면 주변 사람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관정식에서 말한 자비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자비심 때문에

 

정혜사에서 오전과 오후 행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관정법회를 하고 음악회를 보는 동안 날씨는 쌀쌀해지고 해는 뉘엇뉘엇 서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라마 글렌은 왜 힘들게 관정법회를 하고 도현스님은 어렵게 음악회를 개최 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자비라 볼 수 있습니다.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거침 없이 진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자비심이 없다면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편하고 안락하게 홀로 잘 살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시간과 돈과 정력을 들여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없으면 이루질 수 없는 것이라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물건을 팔아 주는 것도 자비심에 해당될 것입니다. 버섯농장을 하는 부부가 버섯을 사서 혼자만 먹지 말고 주변에 나누어 주라는 것도 자비심에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이 안락과 평화와 행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불행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행복과 불행,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이익과 불이익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입니다. 나에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업생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또는 과거생에 지은 행위의 결과가 지금 여기에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게으름피며 살아갑니다.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샨티데바의 기도문

 

지혜와 자비를 구족한 자들은 끊임 없이 알려 주려고 합니다.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 자체가 자비입니다. 힘만 들고 시간과 정력만 낭비할 것 같은 일은 자비심 없이 할 수 없습니다. 라마 글렌과 도현스님의 가을 행사가 그렇습니다. 아찰라 김영로님이 번역한 샨티데바의 기도문이 중생에 대한 한량없는 자비심을 가장 잘 표현한 게송이라 생각합니다. 오전 관정법회에서 모두 낭송한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샨띠데와의 기도문

 

어디에서나 몸과 마음이

고통 받는 이들이 모두

저의 공덕의 힘으로

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얻게 하소서!

 

그들이 윤회 속에 남아있는 한

그들의 금생의 행복이 줄지 않고

모두 종국에 가서는

부처님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병을 앓는 이들이 모두

즉각 모든 질병에서 벗어나고,

중생들을 괴롭히는 모든 질병들이

즉시 모두 사라지게 하소서!

 

언제나 보리심과 헤어지지 말고

항상 보살님들의 길을 걸으며

부처님들의 가호를 받아

마군의 행()을 버리소서!

 

이 세상 모든 곳이

여의수(如意樹) 정원으로 바뀌어

부처님, 보살님들의 감미로운

가르침의 소리로 울려 퍼지게 하소서!

 

이 세상이 남아있고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저도 계속남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몰아내게 하옵소서!

 

모든 중생들의 고통이

완전히 저에게서 익고, 그들이

보살님들과 함께 함으로써

모두 모두 행복하소서!

 

고통의 유일한 치료제요

모든 안락과 행복의 원천인

부처님의 가르침이 존중받으면서

오래 오래 이 세상에 남아있게 하소서!”

 

 

 

2017-11-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