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온 스님께서” 진주선원사람들과 함께

담마다사 이병욱 2018. 5. 5. 11:35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온 스님께서진주선원사람들과 함께

 

 

목이 칼칼합니다. 자꾸 헛기침이 나옵니다. 감기초기 증세 같습니다. 늘 건강에 신경쓰지만 찾아 오는 것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늦은 밤 오후 10시 대 4호선 오이도행 지하철안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장거리 여행의 피로감도 겹쳤습니다. 꼼짝없이 서서 가야 했습니다. 늦은 밤 사람들이 내 뿜는 열기가 더욱 더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인덕원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신선했습니다.

 

5 4일 진주에 다녀왔습니다. 진주선원 개원을 축하하기 위하여 아내와 함께 갔습니다. 그런 진주선원은 특별합니다. 지난 1월 초 원담스님을 비롯한 진주선원 불자들과 89일 동안 인도성지순례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해서인지 수십년 사귄 친구들 보다 더 친밀한 것 같습니다. 비행기를 함께 탔으니 생사를 같이 한 것이고, 성지순례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괴로움도 있었으니 고락을 함께 한 것입니다.

 

진주천리길

 

예로부터 진주천리길이라 합니다.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 돌고 돌아 갔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러나 요즘은 내륙을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바람에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진주까지 3시간 30분만에 주파합니다. 진주천리길이 아니라 진주 세시간 반길이 된 것입니다.

 

오전 11시 진주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진주는 처음입니다. 아직도 가보지 않은 도시가 많은데 진주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첫 인상은 깨끗하다입니다. 그리고 안정된 분위기입니다. 그런 진주는 인구가 얼마일까? 검색해 보니 인구가 34만 가량 되는 중형사이즈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문화가 있는 도시입니다. 수도권의 위성도시나 베드타운 성격이 아니라 지역의 중심지입니다. 한때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이기도 했습니다.

 

남강을 따라

 

진주선원사람들과 약속장소는 문화회관 부근에 있는 인도식당 카시강가입니다. 터미널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입니다. 남강변을 따라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처음 본 남강은 매력적입니다. 가장 먼저 대숲이 반겨줍니다. 강을 따라 긴 대숲이 형성되어 있는데 하늘로 죽죽 뻗은 것이 시원시원하게 보입니다.

 

 




 

강물이 넘실넘실 거립니다. 장마철도 아닌데 물이 가득합니다.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주변은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강에서 보는 것처럼 인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를 이루어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카시강가에서

 

약속장소 카시강가에 도착했습니다. 원담스님과 인도에서 고락을 함께 했던 법우님 등 팔구명 가량 모였습니다. 특히 평일임에도 소식을 듣고 달려 오신 법우님들도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잠시 들른 것입니다.

 

 



인도식당 카시강가는 전망이 좋습니다. 원담스님에 따르면 진주에서 최고로 전망이 좋은 곳이라 합니다. 무엇보다 남강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나 손님들 오면 접대장소처럼 활용한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이 머지 않아서인지 남강변에 아기부처님 장엄등이 보입니다.

 

 


 

카시는 바라나시를 뜻합니다. 강가는 갠지스강을 뜻합니다. 카시강가라 했을 때 갠지스강변에 있는 바라나시라는 뜻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초 인도성지 순례 갔었을 때 혼돈속의 바라나시를 목격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작은 도시 식당에서 인도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신도들의 힘으로

 

카시강가에서는 인도식으로 식사 했습니다. 닭고기와 카레, 그리고 빵처럼 생긴이 곁들인 식사입니다. 인도순례 후 4개월만에 다시 만나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새로 개원한 선원입니다.


선원은 남강 건너 선학산 기슭에 있습니다.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것입니다. 바로 이전에는 아파트선원이었습니다. 아파트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단독주택을 구입하여 선원으로 개조했다고 합니다.

 

이동중에 카풀해 주신 법우님에게 선원에 대하여 이것 저것 물어 보았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자금입니다. 단독주택을 구입했다면 비용이 꽤 들어 갔을 것입니다. 과연 그 돈은 어디서 났을까?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법우님에 따르면 신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것이라 합니다. 그 중에는 큰 금액을 맡긴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 신도들의 힘으로 오늘날 선원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로 개원한 선원

 

선원에 도착했습니다. 비탈길에 있는 허름한 주택입니다. 축대 위에 세워져 있고 이층구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창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직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부는 지금도 공사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꽤 넓직합니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서인지 깨끗합니다. 커다란 거실은 법당으로 사용됩니다. 별도로 불상은 없고 대신 티벳불화가 걸려 있습니다. 한켠에는 빠알리니까야 번역서가 가득합니다. 불단에는 향, , 과일, 조화 등 공양물이 올려져 있습니다. 선원 분위기에 맞는 소박한 불단입니다.

 

 




 

방이 여러 개 있습니다. 원담스님은 안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손님이 머물고 갈 수 있도록 객실도 있습니다. 두 개 객실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습니다. 한 객실을 보니 하루 밤 묶어 갈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곳 진주에 오면 머물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합니다.

 

 





선학산 자락 진주선원은 4 30일 개원했습니다. 개원한지 5일만에 방문한 것입니다. 그 사이에 허정스님과 선일스님이 하루 밤 묵어 갔다고 합니다. 진주선원 최초의 손님이라 합니다. 아직 공사가 덜 끝난 상태에서 개원 했는데 개원 하던 날 법회와 축하모임을 진주선원 카페 진주선원 집들이 축하모임 2018.4.30 에서 보았습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습니다. 모두 행복한 것 같아 보입니다.

 

예경을 하고

 

절에 가면 절의 예법에 따라야 합니다. 새로 개원한 선원에서 간단히 예불의식을 진행했습니다. 몇 명 되지 않은 인원이지만 여법하게 예경문부터 삼귀의, 오계, 삼보예찬 순으로 빠알리 예경 했습니다. 그리고 10여분간 입정했습니다.

 

 



빠알리 예경하면 신심이 더 나는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한자용어 보다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이 사용하던 말로 하는 것이 더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고저장단 운율로 예경하니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매일 똑 같은 예경문을 반복합니다. 지리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하는 것은 반복하다 보면 몸에 익숙해지듯이 생활화 하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하루를 마지막처럼

 

예불이 끝나고 원담스님의 간단한 법문이 있었습니다. 먼저 멀리서 천리길을 마다 하고 참석한 것에 대하여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올린 글을 빠짐 없이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약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구 갈기다 시피한 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어제 올린 글 네죽음을 기억하라에서 인용한 경전의 게송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지금 이순간은 다시 돌아 오지 않습니다. 지금 좋았던 느낌도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비슷한 느낌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때 그때 조건이 다릅니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지각이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현현한다.”(Vism.8.216)라 합니다. 명상중에 갖가지 체험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는 이유라 합니다. 명상 할 때 마다 다름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순간 이만남은 마지막입니다. 그래서일까 아침이 되면 매일 보는 부부사이라도 마지막 만남처럼 인사나누라고 합니다.

 

명차 지리산의 눈물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하여 약 30분 가량 예불과 법문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차담을 가졌습니다. 주방 식탁이 차담장소입니다. 원담스님이 팽주가 되어 참석자들에게 차를 한잔씩 따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차의 양이 매우 작습니다. 찻잔에 매우 소량만 따라 줍니다. 차를 훌쩍 마시지 말고 입속에 넣은 후 맛을 보라고 합니다. 지리산이 응축된 것이라 합니다. 하루밤 머물고 간 선일스님이 선물한 차인데 일명 지리산의 눈물이라 합니다.

 

 





지리산의 눈물은 아홉 번 덖은 것이라 합니다. 새순을 따서 덖은 것으로 소량만으로도 그윽한 맛이 납니다. 마치 위스키를 입에 머물고 향과 맛을 음미하듯이, 지리산 전체의 맛이 담긴 차맛을 보았습니다.

 

촉석루 관광

 

다음순서는 촉석루 관광입니다. 서부경남의 문화도시 진주에서 자랑할만한 명승지입니다. 도착하니 잘 가꾸어진 공원입니다. 신록의 오월에 싱그러운 날씨입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부드럽습니다. 축복받은 빛나는 날에 원담스님과 진주선원불자들과 함께 산책 했습니다.

 

 



촉석루는 넓직합니다. 촉석루는 밀양의 영남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이라 합니다. 넓직한 대청마루에는 관광객들이 이곳 저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왜 촉석루라 했을까? 원담스님에 따르면 진주에는 촉석이 많다고 합니다. 삐죽삐죽 높이 솟은 돌을 촉석(矗石)’이라 하는데 진주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남강변에 삐죽삐죽 튀어 나온 촉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촉석루는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충무공이라 불리우는 김시민 장군은 진주대첩으로 유명합니다. 또 하나 세간에 알려진 것은 논개입니다. 세간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기생출신이 아니라 합니다.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라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촉석루 아래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를 의암(義巖)이라 합니다.







사당뒤에서 만납시다

 

진주는 역사의 고장입니다. 진주사람들은 진주성이 있어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촉석루와 의기사가 이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논개를 모신 사당 의기사(義妓祠) 뒤에는 명소가 있습니다. 일종의 비밀의 장소와 같습니다. 원담스님에 따르면 사당뒤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하면 다 안다고 합니다.

 

의기사 뒷편에 서니 남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바로 앞에는 수백년 된 듯한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시끄럽고 번잡한 도심의 카페가 아닌 편안하고 안은할 뿐만 아니라 툭 터진 공간입니다. 이야기하면 잘 통할 것 같은 최적의 약속장소라 보여집니다.

 

 



진주는 아름다운 도시

 

남강 변을 산책했습니다. 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걸으니 다른 나라에 온 듯합니다. 마치 일본에 온 듯 합니다. 지난 4월초 일본 나가노 금강사 순례에 갔었습니다. 내륙에 위치한 나가노현의 도시들은 매우 친환경적이었습니다. 특히 하천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도시하천과는 달랐습니다. 자연 그대로입니다. 조깅코스나 자건거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강물과 수초가 경계선입니다. 남강이 그랬습니다.

 








진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안정되어 있습니다. 수도권 도시처럼 과밀하지도 않고 아파트 숲도 보이지 않습니다. 남강이라는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도시입니다. 그래서일까 진주선원 불자들은 모두 친절하고 온화하고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온 스님께서

 

진주천리 먼길을 갔습니다. 선원 개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생사고락을 함께 한 인연이 있어서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가서 크게 환대 받았습니다. 과분할 정도로 대우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사람의 원력을 확인 했습니다.

 

4 30일날 선학산 진주선원이 개원하던 날 진주선원 카페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하나 보았습니다. 모임순서를 소개하는 글에서 “2012.4.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온 스님께서 비봉산 아래 세명빌에 머무시면서 경상대병원 법당에서 수간호사도반님들을 대상으로 명상센터 운영으로 시작되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스님을 민들레 홀씨에 비유했습니다.

 

카풀한 법우님에게 이런 얘기 들었습니다. 스님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가진 것은 트렁크 하나뿐이라 합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왔다가 인연이 다 되면 훌쩍 떠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신도들은 스님을 스승처럼 모십니다.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세 번 모인다고 합니다. 모여서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 특히 요가의 효능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스님은 젊은 시절 해외로 오랫동안 구도여행했다고 합니다. 남방불교국가에서 남방불교를 접하고 히말라야에서는 티벳불교를 접했다고 합니다. 안거때가 되면 선방에서 정진하기도 합니다. 스님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한철 정진하고 한철 포교하는 것이라 합니다. 오로지 선방에만 다니지 않고, 오로지 포교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합니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일년에 한차례는 선방에서 안거합니다.

 

서울담마와나선원

 

요즘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한국테라와다불교입니다. 창립된지 10년 가량 되었지만 아직 까지 서울에 법당이 없었습니다. 장충동에 있는 우리는 선우법당을 빌어 법회를 보았습니다. 2017년 도이법사 초대로 참석한 적 있습니다. 이에 법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한국테라와다불교와 빤냐와로삼장법사(2017-04-19)’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런데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하여 청파동에 법당을 마련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신도들이 힘을 합하여 법당을 마련하고 스님들을 초대하여 법문 듣고 수행지도 받는 다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무소유를 지향하는 스님들 입장에서는 머무를 수 있는 법당이 있어서 좋고, 신도들 입장에서는 우리법당이라는 주인의식이 있어서 좋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출재가의 역할분담이 명확한 것입니다.

 

한국불교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득과 명예와 칭송에 눈이 먼 권승들이 돈벌이 되는 주요사찰을 장악하고 또한 종단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익을 추구하듯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부패와 타락이 따릅니다.

 

대다수 스님들은 무소유로 살아갑니다. 거처가 없어서 떠돌고 있습니다. 이럴 때 지역에 사는 불자들이 힘을 모아 법당이나 선원을 건립해서 모신다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스님들은 거주하면서 법을 펼치고 수행지도합니다. 모든 재정이나 관리, 행사들인 신도들이 운영합니다. 이런 롤모델이 진주선원과 한국테라와다불교 서울담마와나선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오월 아침에

 

차분하고 평온한 어린이날 아침입니다. 어제 늦은 밤 숨막힐 듯한 만원 전철, 일종의 지옥철의 경험이 끔찍합니다. 그러나 진주에서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 눈녹듯이 사라집니다. 싱그런 오월 진주에서 청정한 스님과 자애로운 불자들과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2018-05-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