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오늘 또 내일 이대로 또 천년, 석양에 불타는 각연사(覺淵寺)의 찬란한 단풍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0. 28. 10:06


오늘 또 내일 이대로 또 천년, 석양에 불타는 각연사(覺淵寺)의 찬란한 단풍

 

 

석양의 단풍은 찬란한 슬픔

 

가을이 깊어 갑니다.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로수로서 은행나무에는 서서히 노란 빛깔이 짙어져 갑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느티나무와 벚꽃나무에서는 점차 붉은 빛으로 변합니다. 이제 3-4주 지나면 모두 우수수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앞둔 노년기와 같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춘하추동 사계가 뚜렷합니다. 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장년의 계절, 가을은 노년의 계절이라고 보면 틀림 없습니다. 새싹이 돋아 꽃이 피는 봄은 청춘의 계절이자 젊음의 계절입니다. 여름이 되면 신록이 점차 짙어져 나무가 무성해 지는데 이는 인생의 절정기라 볼 수 있는 장년을 연상케 합니다꽃이 피면 열매가 맺습니다. 하늘은 높고 햇볕이 적당할 때 곡식과 과일은 익어갑니다. 이제 수확을 앞둔 가을철의 들판은 인생의 노년기와 같습니다. 그럼 겨울은? 겨울은 죽음의 계절입니다. 모든 것이 스러지고 낙엽이 진 거리를 보면 황량하기만 합니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긴 휴식기간을 필요로 합니다.

 

가을이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마치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마지막 용트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단풍으로 나타납니다. 나무가 벌겋게 변하는 것은 마치 황혼에 일시적으로 세상을 벌겋게 달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내 넘어가고야 말 태양이지만 서산에 넘어 갈 때 세상은 온통 벌겋게 됩니다. 석양의 햇볕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번들거릴 때 아름답다기 보다 찬란한 슬픔을 봅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석양의 햇볕에 울긋불긋 단풍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케 합니다.

 

각연사 가는 길에

 

10 25일 충북 괴산에 있는 각연사(覺淵寺)’에 갔었습니다. 평일에 간 것입니다. 일이 있어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런 각연사는 매우 생소한 절입니다. 한국에 전통사찰이 800여개 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가 본 곳은 백 곳 가량 밖에 되지 않습니다. 평생 보아도 못 볼 절이 아직까지 많은 것입니다. 각연사에 가게 된 것은 일을 본 곳과 가까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전통사찰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석조비로자나불이라는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연사는 충청도 오지에 있습니다. 한반도 내륙 깊숙한 곳에 있어서 전쟁이 나도 이곳 만은 전쟁이 났는지 안났는지 모를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각연사 역시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각연사 가는 길은 깊은 산중으로 가는 길입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단풍은 점차 짙어집니다. 산중에는 고도가 높고 기온이 낮아서일까 지금이 이때가 단풍이 절정입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도중에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절에 가서 본 단풍을 보니 마치 선수가 링에 오르기 전에 몸풀기 하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풍에 불타는 각연사

 

각연사에 도착했습니다. 수요일 오후에 찾은 각연사는 그야말로 한적했습니다.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나와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산이 높은 깊은 산중에 한적 하다 못해 적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단풍은 불타고 있습니다.

 
















단풍이 불탄다고 합니다. 벌건 잎파리가 산중에 가득하니 온산이 불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해질녘 서쪽하늘이 일시적으로 벌겋게 밝아 지듯이 앞으로 2-3주 있으면 모두 떨어지고 말 잎파리들이 붉게 석양에 빛나고 있습니다.

 




각연사는 어떤 절일까? 백곳 가량 되는 사찰순례를 다녔지만 각연사가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각연사에 가면 보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 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웅전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각연사는 충북괴산에 있습니다. 괴산은 내륙 깊숙이 있어서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오지 중의 오지에 있는 절이 각연사입니다. 그런 각연사 역시 천년고찰입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915년에서 975년 사이에 통일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찰 대부분이 원효대사 아니면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통일대사가 창건했다 하니 정말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대웅전에 앞에 서 보았습니다. 이제까지 보아 오던 방식과 다릅니다. 대부분 절이 팔작지붕형태입니다. 그런데 각연사 대웅전은 맞배지붕형식입니다. 맛배지붕형식으로 유명한 것이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그런데 맞배지붕형식으로 된 전각은 대개 오래 된 것이기 쉽습니다. 각연사 대웅전 역시 오래 된 것입니다. 상량문에 따르면  영조시대에 중건(1748)되었다 하니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된 건물입니다.

 

 










목조로 된 전각은 화재에 취약합니다. 화재나 전란 등으로 불타 버리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합니다. 복원 되면 다행이지만 잊혀지면 석탑만 우두커니 서 있는 폐사지가 됩니다. 각연사 대웅전이 10세기 통일대사에 의해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보고 있는 대웅전은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보물,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彫毘盧遮那佛坐像)

 

각연사는 보물이 두 개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비로전에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입니다. 보물 제433호라 합니다. 전통사찰에 가면 불상 대부분이 철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돌로 만들어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비로자나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각연사 보물인 비로자나불은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만일 비로자나불을 상징하는 수인이 없다면 일반불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각연사 비로자나불은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됩니다. 각연사 창건과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천년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돌로 된 것은 천년 갑니다. 그러나 목재로 된 것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알 수 없습니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비로전은 중수기록에 따르면 인조26(1648)이라 합니다. 지금지금부터 350년된 건물입니다.

 





 

두 번째 보물, 통일대사탑비(通日大師塔碑)

 

각연사에 가면 천년 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통일대사탑비(通日大師塔碑)입니다. 각연사에서 산길을 약 10여분간 올라 가면 한적한 곳에 있습니다. 부도탑이 절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 없는 곳에 있듯이 통일대사탑비 역시 사람의 눈길 닿지 않는 곳에 숨은 듯 있습니다. 그러나 탑비로 가는 안내판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단풍이 좋아 계곡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통일대사탑비는 보물 제1295호로 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433호인 석조비로자나좌불과 함께 각연사에는 두 개의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설명문에 있습니다. 설명문에 따르면 도괴(倒壞)된 흔적이 없이 각부의 보존이 양호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괴라하면 건물따위가 붕괴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만든지 천년된 탑비가 천년 동안 한번도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지금까지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통일대사탑비는 건립연대가 고려 광종 958년에서 96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지금지금부터 1050년전에 건립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년세월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그렇게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연사를 창건한 통일대사는 어떤 스님이었을까요? 통일대사(通日大師)에 대하여 검색해보았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금석고》에 실린 비문내용에 의하면, 통일대사의 속성은 김씨로 선조는 계림인이며, 고려초에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왕실에서 불법의 진리를 강론하는데, 대사의 법문을 듣고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입적하자 고려 광종이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한림학사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명하여 탑비가 세워졌다. 김정언은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전남 광양, 《옥룡사 동진대사탑비》를 찬술하기도 하였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위키백과)

 

 

위키백과에 따르면 통일대사는 중국유학파입니다. 고려초기라면 송나라시대입니다. 송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왕실에서 강론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외국에 나가서 선진문물을 배워온 엘리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대로 또 천년을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 10월 말 평일에 각연사를 다녀 왔습니다. 절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스님들이 사는지 안사는지 모를 정도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평일임에도 가끔 찾아 오는 불자들이 보입니다. 단풍철을 맞이하여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 봅니다. 특히 각연사입구길은 주변이 온통 단풍 천지여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그러나 각연사 내부의 단풍과 비교하면 하찮은 것입니다.

 



 

각연사에 단풍이 절정입니다. 사람이 자주 찾지 않아서일까 심산유곡에 있는 각연사는 자연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산도 벌겋게 달아 오르고 절도 벌겋게 달아 올랐습니다. 각연사는 석양에 벌겋게 불타고 있습니다. 비로전의 석조비로자나좌불은 천년동안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적한 숲길에 숨어 있듯이 있는 통일대사탑비는 역시 천년동안 그 자리에 한번도 무너짐 없이 서 있습니다. 도중에 보는 부도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스카이라인은 10년이 멀다하고 자주 바뀝니다. 그러나 깊은 산중에 있는 것들은 천년 동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상징하는 연기법이 부처가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세상의 원리로서 확정되어 있듯이, 세상이 4차 산업혁명시대가 되어 에이아이(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고 해도 좌불과 탑비는 또 천년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각연사에 가을이 깊어갑니다.

 

 



 

2017-10-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