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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돈이 아니라 자원(資源), 주어진 시간에 비상(飛上)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17. 8. 3. 10:14

 

시간은 돈이 아니라 자원(資源), 주어진 시간에 비상(飛上)해야 

 

 

시간은 돈이다

 

시간을 돈이라 합니다. 노래방에 가면 시간 세팅을 해 놓습니다. 시간이 다 되면 해당 시간에 대한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금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은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일을 하고 급료를 받는 것도 해당됩니다. 일당이 있어서 업계에서 통용되는 룰에 따라 지급됩니다. 편의점 알바생이라면 시급이 지급되는데 이것도 시간은 돈이다라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됩니다.

 

한평생 시간속에서 살아갑니다. 사회통념상 시간속에서 태어나 시간속에서 살다가 시간속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한존재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소위 기대수명대로 살아 갑니다. 길어야 백년 안팍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기대수명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도중에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각종 사고사 등으로 인하여 제명에 못사는 사람들이 통계적으로 사분의 일에 달한다고 합니다.

 

시간은 유한합니다. 시간은 마구 흘러 갑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길어야 백년 안팍을 살다가 죽어갑니다. 사람은 길어야 백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은 태어나자 마자 시간이 감소하는 쪽으로 카운트 됩니다. 기대수명이 80년이라면 지금 60이 된 자에게는 앞으로 남은 시간은 20년입니다. 지금 70인 사람은 불과 10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중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어야 6개월 정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시간을 절감할 것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시간이 한없이 남아 도는 것처럼 느꼈을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느꼈을 때 초조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잊고 살아 갑니다. 쾌락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오욕락에 빠지면 시간이 금새 지나갑니다. 노래방에서 한시간을 세팅해 놓고 신나게 노래 부르다 보면 시간이 훌쩍지나갑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살았을 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분노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평생 가족과 세상의 분노로 산 자에게 있어서 시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분노에 매였을 때 십년, 이십년, 평생이 훌쩍 지나갈 수 있습니다. 질투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로 평생을 보낼 수 있습니다. 시간과 관련하여 법구경 48번 게송에 다음과 같은 인연담이 있습니다.

 

 

이 시가 설해진 데는 이와 같은 인연담이 있다: DhpA.I.363-366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싸밧티 시에 계실 때, 빠띠뿌지까와 관련된 이야기(Patipujikavatthu)이다.

 

한때 서른 셋 신들의 하늘나라에 말라바린(Malabhalin)이라는 하늘아들이 천명의 선녀들에게 둘러싸여 정원에 들어갔다. 오백 명의 선녀들이 꽃을 따서 던지면 오백명의 선녀들이 꽃을 주어 하늘아들을 치장했다.

 

그런데 한 선녀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몸이 등불처럼 꺼져서, 싸밧티 시의 한 고귀한 가문에 태어났다. 그리고는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전생을 기억했고. ‘하늘아들 말라바린의 아내이다.’라고 회상하며, 자라서는 꽃공양과 향공양을 하면서 전 남편의 곁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을 공경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빠띠뿌지까(Patipujika)라고 지었다.

 

그녀는 열여섯에 다른 가문에 시집을 갔다. 그리고 그녀는 수행승들에게 식권으로 먹는 음식과 보름의 음식과 우기의 음식을 공양하며 천상의 남편과 만나길 발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열달 후에 한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걸을만하자 두 번째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걸을만하자 또 다른 아들을 낳고 해서 어느덧 네 아들을 낳았다.

 

어느날 그녀는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수행승들에게 회향하고 가르침을 듣고 계행을 지키고는 그날 저녁에 갑자기 질병으로 죽어서 다시 천상계에 화생했다. 천상계에서는 여전히 선녀들이 말라바린에게 꽃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늘아들 말라바린이 ‘오늘 아침부터 당신이 안보이던데, 어디 갔다 왔소?’라고 물었다. ‘여보, 저는 죽었습니다.’ ‘무슨 소리요?’ ‘주인님, 사실입니다.’ ‘어디서 태어났소?’ ‘싸밧티 시의 한가문에 태어났습니다.’‘얼마나 그곳에서 오랫동안 지냈습니까?’ ‘주인님, 열달만에 저는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 열여섯 살에 다른 가문에 시집가서 네 아들을 낳아 기르며,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시중을 들며 다시 돌아오기를 서원하여 당신 곁에 온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주인님, 백년입니다.’‘그렇게 짧습니까?’ ‘주인님,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 태어나서 산다면, 시간을 빈둥거리며 방일하게 보냅니까?’ ‘주인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인간들은 늙음과 죽음이 없이 무수한 세월을 사는 것처럼 방일합니다.

 

그러자 말라바린은 크게 동요하며, ‘당신이 말한 대로 인간들이 태어나 겨우 백년을 사는데(인간의 백년은 서른 셋 신들의 하늘나라의 하루 밤낮에 해당한다. 신들의 수명은 천상년으로 천년이고, 인간년으로 환산하면, 3 6백만년에 해당한다)빈둥거리며 방일하게 보낸다면, 언제 그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겠습니까?

 

한편 지상에서 다음날 수행승들은 이 사실을 부처님께 알렸다. 부처님께서는 천상계의 일을 수행승들에게 설명하고 ‘이 세상의 모든 뭇삶의 목숨은 짧다. 그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채워지기도 전에 죽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시로써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의 마음이 빼앗기면, 욕망이 채워지기 전에 악마가 그를 지배한다.(Dhp48) 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 등을 성취했다.

 

(법구경 48번 게송 인연담, Patipujikavatthu-빠띠뿌지까와 관련된 이야기)

 

 

 

 

 

 

 

인연담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인간들은 늙음과 죽음이 없이 무수한 세월을 사는 것처럼 방일합니다.라는 구절입니다. 천상에서 하루는 인간의 백년에 해당되는데, 마치 인간들은 천년 만년 살 것처럼 게으름피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을 사고 팔 수 있다면

 

시간을 물쓰듯 하는 자가 있습니다. 남는 것은 시간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교도소 다큐를 보면 어느 수감자는 여기서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어요라 합니다. 중죄를 저질러 30, 40, 50, 평생을 평생을 보내야 하는 자에게 있어서 남아 있는 시간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버리고 싶은 것일지 모릅니다.

 

이등병은 힘든 내무생활을 감내하면서 이 순간에도 국방부시계는 돌아간다라고 자위합니다. 엄청난 시간이 남은 죄수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저 어서 지나갔으면하는 바램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야말로 금쪽같습니다.

 

최근 케이블채널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시간을 사고 파는 인타임이라는 영화입니다. 마치 시간을 돈처럼 사고 파는 것입니다. 입장할 때도 물건을 살때도 시간으로 계산합니다. 시간을 쓰다 보면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마침내 제로가 되었을 때 죽습니다.

 

영화에서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는 부자이고 권력자입니다. 또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는 시간을 물쓰듯 씁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자는 늘 불안합니다. 자꾸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확인하면서 근근히 살아 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자는 시간을 물쓰듯 하는 자를 보면서 내가 당신처럼 시간이 많다면 낭비하지 않을 겁니다라 합니다.

 

업만 잔뜩 짊어지고

 

시간이 돈인 세상입니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있어서 시간은 시급 만원이 꿈일지 모릅니다. 고액의 연봉을 받는자에 있어서 시간은 그야말로 돈입니다. 부동산 임대업으로 매달 꼬박꼬박 입금된다면 시간이 돈입니다. 한평생 돈벌기에 올인하여 마침내 매달 따박따박 거액의 돈이 들어 온다면 엄청나게 축적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기대수명대로 산다고 했을 때 고작 몇 년 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거액의 돈은 무의미합니다.

 

여기 한평생 돈벌기 선수가 되어서 천문학적 재산을 모은 자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종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습니다. 재산의 금액만큼 지은 업도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하니 중병걸린다는 말이 있듯이, 중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몹시 억울할 것입니다. 그는 천문학적 재산을 가져 갈 수 없습니다. 큰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시간이 돈이라 하여 돈버는 일에 올인 했지만 아무 것도 가져 가지 못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지은 업만 잔뜩 짊어지고 갑니다.

 

돈이 많이 있는 자는 돈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황금만능주의입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어느 재산가라도 자신에게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허()와 무()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자원

 

초기경전에서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천년 만년 살 것 같은 젊은 청춘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세월은 스쳐가고 밤낮은 지나가니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S1.4)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세월이 청춘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지금 이 순간을 즐겨요라며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지만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습니다. 빛나는 청춘도 한번 지나면 다시 되돌아 오지 않습니다. 마치 세월이라는 폭류에 휩쓸려 가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청춘을 버리듯이, 세월은 중년을 버리고, 노년을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쓸려 가다 보면 마침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세월은 우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세월은 청춘도 중년도 노년도 모두 스쳐지나갑니다. 마치 타이머가 시간이 다 된 것처럼, 길어야 백년을 산다고 보았을 때 백년을 다 써 버린다면 폐기처분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시간은 소중한 재산이고 소중한 자원입니다.

 

시간은 돈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자원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은 산소나 질서처럼 자원입니다라는 대사를 보았습니다. 시간을 자원처럼 본다면 물쓰듯 낭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매우 소중하고 금쪽 같은 시간이 됩니다. 아무리 천문학적 재산을 주어도 남아 있는 시간과 맞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자원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비상(飛上)해야

 

시간을 돈으로 본다면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한시간 노동한 대가로 받는 시급은 한시간을 주인에게 바친 것이 됩니다. 월급을 받는 자는 한달이라는 시간을 바칩니다. 일생을 돈벌기에 올인 하는 자는 축적된 재산이 시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평생 바쳐 형성된 재산을 가져 갈 수 없습니다. 더구나 말년에 중병이라도 걸린다면 병원비로 다 써버릴지 모릅니다. 설령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상속자 좋은 일만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연다큐를 보면 새가 부화하여 비상하기 까지 불과 세 달 가량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는 눈도 뜨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지만 어미새가 부지런히 날라다 주는 먹이를 먹고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비상할 때쯤 되면 늠름한 날개를 갖추게 됩니다. 마침내 비상합니다. 태어나서 비상하기 까지 부지런히 성장한 것입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백년 안팍을 살아 가는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새가 부화하여 비상하는 것처럼 시간의 지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유한한 자원으로 알아 시간을 금쪽같이 활용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비상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즐기는데 사용하면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즐기면 즐길수록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려서 남아 있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듭니다. 오로지 즐기는 삶만을 살았을 때 시간은 청춘을 버리고, 중년을 버리고, 노년을 버리게 되고 마침내 우리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자는 시간을 함부로 허비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지배자가 되어

 

여기 날지도 못하는 새가 있습니다. 날개가 있지만 날 수 없습니다. 부지런히 성장하여 비상해야 하지만 성장을 멈추었을 때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합니다. 유한한 자원인 시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 즐기는 삶을 살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마침내 죽음을 맞았을 때 날지도 못하는 새와 같습니다.

 

시간의 속성을 꿰뚤어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처님제자들입니다. 부처님 제자들은 밤낮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시간 속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세속의 자양을 버리고 고요함을 원하리.”(S1.3) 라 했습니다.

 

부화한 새가 비상하듯이,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자는 시간의 지배자가 됩니다. 더 이상 시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대자유인에게 있어서 시간은 덤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테라가타에 따르면 죽음을 기뻐하지도 않고 삶을 환희하지도 않는다.”(Thag.606) 라 했습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2017-08-0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