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리더는 아무나 하나? 겸청(兼聽) 그리고 배려와 인내

담마다사 이병욱 2017. 9. 2. 21:16


리더는 아무나 하나? 겸청(兼聽) 그리고 배려와 인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수는 기득권 세력으로서 많이 가지고 있고 이권 때문에 부패할 수밖에 없고, 진보는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으로서 가진 것이 없지만 견해차이로 인하여 분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이럴 때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은 아마 겸청(兼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높이와 동등한 배려


겸청, 경청이 아니라 겸청입니다. 이 말은 EBS 인문학 강좌에서 들은 말입니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말이라 합니다. 겸청은 겸손과 경청의 약자입니다. 리더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이라 봅니다. 그런데 겸손과 칭찬이라는 말은 이미 불교경전에 실려 있는 말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대중을 세존께서 가르쳐주신 네 가지 섭수의 토대로 이 대중을 섭수합니다. 1) 저는 ‘이 사람은 보시를 베풀어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면, 그 사람을 보시를 베풀어 섭수합니다. 2) 저는 ‘이 사람은 사랑스런 말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사랑스런 말로 섭수합니다. 3) 저는 ‘이 사람은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합니다. 4) 저는 ‘이 사람은 동등한 배려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동등한 배려로 섭수합니다.(A8.24)







대승불교의 실천수행법 중의 하나인 사섭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사섭법은 초기경전에 이미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동사(同事)의 경우 대승에서 말하는 고락을 함께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초기경전에서 동사는 배려입니다. 그것도 동등한 배려입니다. 상대방 눈높이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도 해당됩니다.


초등학생에게는 초등학생의 눈높이로, 중학생에게는 중학생의 눈높이로 보아야 합니다. 키가 작은 초등학생을 대할 때는 눈높이에 맞추어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동등한 배려, 즉 동사(同事)입니다. 사장은 직원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배려 해야 하고, 성직자는 신도의 눈높이 맞추어 배려해야 합니다. 정치인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배려 해야 합니다. 이때 또 하나 요구되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청(兼聽)의 리더십


부처님은 사섭법을 설명하면서 그 훌륭한 가문의 아들은 겸손하다.” (A8.24)라며 칭찬했습니다. 경에 따르면 핫타까 알라바까는 500명의 재가신도를 거느린 재가의 리더이었습니다. 대중을 섭수할 수 있는 리더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있고, 계행을 지키고, 부끄러움을 알고, 창피함을 알고, 많이 배우고, 관대하고, 지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조건에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자신에게 있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A8.24)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사섭법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리더의 조건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계행이 바탕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학식과 지혜가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여덟 번째로 겸손을 추가했습니다. 이때 겸손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선행공덕에 대하여 티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에 대하여 자신에게 있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A8.24)라 했습니다.


중국 고전에 나온다는 겸청의 리더십은 군주에 대한 것입니다. 두루 들으면 명군이 되고 한쪽 말만 들으면 혼군이 된다는 말입니다. 겸청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조직이나 단체의 리더가 되는 자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불교에서는 사섭법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리더가 될 수 있는 조건 중에 동등한 배려와 겸손이 그것입니다. 동등한 배려는 눈높이 맞추어 들을 수 있는 경청에 해당되고 겸손은 자신의 공덕을 티 내지 않음을 말합니다.


힘 있는 자가 참아야 한다


겸청과 함께 리더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리더십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제석천의 리더십이 될 것입니다. 상윳따니까야 제석천상윳따에 따르면 오랜 옛날에 하늘사람과 아수라와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수라 대왕 베빠찟띠는 먼저 시로서 겨누자고 제안했습니다. 아수라대왕은 제어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면, 어리석은 자들은 전보다 더욱 화를 내네. 그러므로 강력한 처벌로 현자는 어리석은 자를 눌러야 하리.”(S11.5) 라 했습니다. 아수라대왕은 강력한 처벌로 다스려야 함을 말합니다. 마치 독재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신들의 제왕 제석천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없는 자에게 인내하네.

그것을 최상의 인내라 부르네.

힘 있는 자는 항상 참아내네.”(S11.5)


 

신들의 제왕 제석천은 인내를 강조했습니다. 힘을 가지고 있는 자일수록 더욱 더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을 가졌다고 하여, 그 넘쳐 나는 힘을 주체 하지 못하여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에게 엄한 처벌로 다스린다면 원한을 낳을 것입니다. 그 결과 싸움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자가 인내하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없는 자에게 인내하네” (S11.5) 라 했습니다.


진정으로 강자라면 그 힘을 과시하거나 남용하기 보다는 절제하고 인내합니다. 이것이 제석천의 리더십입니다. 오늘날 조직이나 단체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자는 힘 있는 자들입니다. 힘이 있다고 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한다면 아수라의 리더십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승종권은 아수라리더십


세상에는 두 가지 리더십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수라리더십이고 또 하나는 제석천리더십입니다. 아수라리더십은 힘으로 제압하는 권위주의적 방식입니다. 또 아라수리더십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유신시대나 5공시대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요즘 한국불교에서 조계종 자승종권의 리더십이 아수라의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넘쳐 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일까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비판적 언론에 대해서는 출입금지, 광고금지, 접촉금지 등 이른 바 오금조치로 대응합니다. 이는 강력한 처벌로 현자는 어리석은 자를 눌러야 하리.”(S11.5) 로 표현되는 전형적인 아수라의 논리에 해당됩니다.


리더의 역량에 따라


진정으로 힘 있는 자는 겸손하고 경청할 줄 압니다. 힘이 있어도 힘을 행사하지 않고 인내합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배려해 주었을 때, 그것도 동등한 배려를 해 주었을 때 내 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비판적이라 하여, 자신을 싫어한다고 내친다면 주변에 적만 많아 질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적대적 세력이 많아 졌을 때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는 리더가 있습니다. 리더의 역량에 따라 조직이나 단체가 발전하기도 쇠퇴하기도 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든지 불협화음이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아수라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분열할 것입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힘을 가진 자가 인내하며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높이 맞추어 자세를 낮추고 잘 경청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입니다.



201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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