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명상음악

죽기 보다 살기가 더 어렵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사는 이유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0. 3. 12:06


죽기 보다 살기가 더 어렵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사는 이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면 어떻게 행위 해야 할까? 지금 죽음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강도를 만나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흉학한 자에게 살려 달라고 자비를 요청해야 할까? 죽음의 공포보다 더 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죽은 목숨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살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한번 죽음의 공포가 몰아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전쟁광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라며 병사들을 독려 할 것입니다. 반대로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한번뿐인 목숨이다.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라며 충고할 것입니다.

 

케이블채널에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2001)’를 보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 101 공수사단 이야기입니다. 적의 후방 깊숙이 낙하산을 타고 투입된 최정예부대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 죽음의 두려움에 떠는 보충병이 있습니다. 이에 선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둘 중 하나이다. 죽거나 멀쩡하거나.”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죽은 목숨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전쟁터에서 사람 목숨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습니다. 나머지는 운에 달려 있습니다. 총알이 나를 피해 간다면 다행이고 총알을 맞는다면 불운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살아 남은 자들은 천수를 누리며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 갑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그것으로 단절입니다. 다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인신공양의 희생양으로

 

죽어서 어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념이 있는 사람들은 내생을 확신합니다. 반드시 바라는 곳으로 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초연한 자가 있습니다. 삼장법사의 일대기를 책으로 엮은 현장 서유기가 있습니다. 현장스님이 인신공양을 하는 강도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몸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묘사한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장스님의 소원은 미륵보살에게 왕생하여 유가사지론을 배우고 나서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유가사지론을 가지고 이제 막 자신을 죽이려는 이 떼강도들을 교화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원을 다 빌고 나서, 현장스님은 일심전념으로 선정상태에 돌입했습니다.”(현장서유기, 321)

 

 



현장스님은 인신공양의 희생양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자신이 믿는 신을 애타게 찾는 등 광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장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일심으로 미륵보살이 있는 곳에 태어나기를 발원했습니다. 아마 내생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앉은 자세로 입정하여 선정에 들어간 것입니다.

 

현장스님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은 예기치 못한 돌풍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급작스런 자연의 변화로 인하여 강도들은 인신공양의 희생양을 죽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음의 순간에 입정에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의 순간 입정에

 

죽음의 순간에 입정에 들어 갔다는 이야기는 초기경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상윳따니까야 참사람과 함께의 경(S1.31)’에 따르면 싸뚤라빠 무리의 하늘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 천신들은 배가 풍랑에 침몰 했을 때 한꺼번에 삼십삼천에 태어난 자들입니다. 주석을 보면 상인들이 바다를 건너는데, 폭풍우가 몰아쳐서 배가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각각 자신의 수호신을 외쳐대며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결가부좌한 채 동요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Srp.I.54)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폭풍우 치는 대양도 항해합니다. 선원을 가득 실은 커다란 배가 대양에서 폭풍우를 만나 침몰 위기에 처했습니다. 모두 죽을 운명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을 때 각자 믿든 신을 찾았습니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신에게 도와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을 믿는 한 선원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가부좌를 튼 것입니다. 한 동승자가 태연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승단에 공양을 드리고 귀의했으므로 어떤 두려움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려달라는 동승자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백명 단위로 일곱 그룹으로 나누어 차례로 오계를 가르치고 오계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확실히 귀의하도록 했습니다. 배는 점점 기울어 마침내 가라 앉아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에게 귀의한 동승자 칠백명은 가르침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평온을 유지한 채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 결과 모두 삼십삼천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들을 싸뚤라빠 무리들이라 하는데 깊은 밤중에 부처님 앞에 나타나 찬탄 게송을 읊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송합니다.

 

 

참사람과 함께 지내며

참사람과 함께 사귀어라.

참사람의 참다운 가르침을 알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네.”(S1.31)

 


참사람(Sappurisa)은 진리를 따르는 진실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쌍팔배의 성자를 말합니다. 또 참사람은 참다운 가르침(Saddhamma: 正法)’을 아는 자를 말합니다. 삿담마는 오계, 사념처, 사성제, 팔정도와 같은 부처님 가르침을 말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진실한 사람들 만이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했습니다.

 

죽기 보다 살기가 더 어렵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요즘에는 웰비잉(Wellbeing)과 웰다잉(Well dying)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죽는 것 보다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이야 죽는 것으로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세상이 파괴되어 버리지만, 산 자에게 있어서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세상은 계속됩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죽는다고 하여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업의 원리가 작용하는대로 다시태어남이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일상입니다. 대부분 욕망에 충실한 삶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는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성장이 청소년기를 지나면 딱 멈추어 버리듯이, 정신적 성장도 어느 시점에서 멈추어 버립니다. 아니 나이를 먹을 수록 육체가 노화되듯이 정신도 퇴보합니다. 자신을 향상으로 이끌지 않는 삶,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사는 이유

 

죽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살아 가는 것이고, 살아 가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을 향상으로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이고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Reason Behind Your Birth

당신이 태어난 이유

 

There is a reason behind your birth

It`s not by chance you`re here on earth

Who you are is how you have been

The law of karma tirelessly spins

 

당신이 태어난 이유가 있다.

당신이 여기 이 땅위에 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신이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냐가 현재의 당신을 있게 만들었다.

까르마의 법칙은 이렇게 끊임없이 돌고 돌게 만든다.

 

 

Dharma is perfect and just

With a cause the effect  is cast

Though in life no one escapes pain

This sad human state, need not always remain

 

인과법은 완전하고 공평하다.

원인이 결과를 낳기에

누구도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이 슬픈 인간존재가 언제까지나 지속되라는 법은 없다.

 

 

Break free from this cycle that binds

Leave your earthly selfish concerns behind

Cultivate wholesomeness in your thought, speech, and deed

And surely you`ll live in peace

 

당신을 속박하고 있는 이 윤회의 바퀴를 부숴라.

세속에 붙들린 이기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나라.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선한 자질을 계발하라

그러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이 확실해진다.

 

 

Look inside your heart, and you will find

A nature that  is pure and kind

Let your heart  be noble and true

Let your mind be calm and stable, too

 

내면을 주시하라 그러면

본성이 순수하고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당신의 가슴을 고귀하고 정직하게 하라.

마음을 평온하고 안정되게 하라.

 

 

Break free from this cycle that binds

Leave your earthly selfish concerns behind

Cultivate wholesomeness in your thought, speech, and deed

And surely you`ll live in peace

 

당신을 속박하고 있는 이 윤회의 사이클에서 벗어나라.

당신의 세속에 붙잡힌 이기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나라.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선한 자질을 계발하라

그러면 평화롭게 사는 것은 확실하다.

 

 

To see the wholesoness increase

day by day is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It is a journey which unfolds ever fresh landscape endlessly.

How fortunate human existence is

not to remain unchanged as it was!

 

나날이 선법이 증장되는

것을 일러 의식의 진화라 한다.

의식의 진화란 끝없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여행이다.

인간이 과거에 얽매여 구태의연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한가! (원담스님역)

 

 



 

 

2017-10-0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