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이 없지?” “왜 일이 없을까?” 시주(施主)에게 고개를
“왜 일이 없지?” “왜 일이 없을까?” 요 몇 일 고민했습니다. 일거리가 끊어진지 3일 정도 지나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또 3일이 지나면 이제 초조의 단계에 들어가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일주일을 넘기면 속으로 입버릇처럼 “왜 일이 없지?” “왜 일이 없을까?”라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 옵니다. 스마트폰에서 견적문의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로서 안도합니다. 일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일거리가 생기면 그 때부터 생기가 돕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하고, 대양에서 폭풍우가 치기 시작했을 때 선장이 선원들에게 이리저리 지시하며 분주히 움직이듯이 활력이 넘쳐납니다. 일을 손에 잡았을 때 뿌듯합니다. 손끝에서 마우스를 수천번 수만번 클릭하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면 결과로서 기대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과 대면했을 때
자영업자에게는 연휴는 반갑지 않습니다. 밤낮없이 주말없이 연휴없이 일이 있으면 일하는 사람이 자영업자입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연휴와 같이 최장 10일을 쉬게 되었을 때 절대적 영업일수 부족으로 인하여 생계에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오일제와 징검다리 연휴를 즐기는 자들은 해외로 나가 달러를 펑펑 쓰며 즐기지만 영업일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영업자는 어서 연휴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요즘 ‘왜 일이 없지?’ ‘왜 일이 없을까?’라며 고민하던 차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하고 있는 일은 대면(對面)없이 이메일과 전화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공장을 한번 방문해 달라고 합니다. 일인사업자로서 움직이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방문요청을 받았을 때는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곳이 백리이든 이백리길이든 도시이든 농촌이든 자동차를 몰고 지도를 보며 찾아 가야 합니다. 다행히도 지역에서 멀지 않은 시화공단에 있는 업체이었습니다.
고객을 대면했을 때 실망감을 줄지도 모릅니다. 전화로만 소통하다가 실제로 얼굴을 마주 했을 때 대부분 깜짝놀랍니다. 목소리와 얼굴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소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직접 대면해 보면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대개 “목소리는 젊은 것 같은데 나이가 많이 드셨네요”라 합니다. 머리가 반백인 자가 인사를 할 때 속으로 놀라는 눈치 인 것 같습니다. 시화공단에 있는 업체의 젊은 연구원도 그랬었을 것 같습니다.
사오정이 되었을 때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큰회사를 다니며 상품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이후 중견기업, 소기업, 벤처기업 등을 전전했지만 늘 개발자로서 일했기 때문에 대우받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첨단기술을 따라 갈 수 없었습니다. 그에 따라 입지도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나중에는 2년이 멀다 하고 직장을 옮겨야 했습니다. 더 짦은 기간도 있었습니다.
직장을 옮겨 다닐 때 마다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새로 사귀어야 했고 분위기와 환경에도 새로 적응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월급을 주는 자는 월급을 주는 만큼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 일년간은 참아 줍니다. 그러나 일년이 넘어도 성과가 나지 않을 때는 퇴출의 대상이 됩니다.
회사생활한지 만 20년 되었을 때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수 많은 회사를 전전하다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졌을 때 퇴출로서 끝이 납니다. 그래서일까 흔히 ‘사오정’이라 불리는 때 퇴출이 많이 되는 듯합니다.
200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곳 저곳 이력서를 내 보았지만 오라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력서 내면 오라는 것이 있었는데 확실히 나이가 문제 되는 것 같았습니다. 사오정이라는 나이에 갈만한 곳이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황야에 버려져
사오정이 되었음에도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 방도를 찾아야 하나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실업급여입니다. 지난 20년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최고 상한치에 달하는 금액을 탈 수 있었습니다. 비빌 언덕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일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탈 수 있습니다.
실업급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청하면 매달 꼬박꼬박 지급되는 돈이 입금 되어서일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업급여가 죽을 때까지 나온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업급여가 끊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황야에 버려져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생전 해 보지 않은 일에 도전도 해 보았습니다. 난간이나 옥상에 매달려 안테나를 설치하는 일이나 지하에 랜케이블을 까는 일 등을 해 보려 했으나 도저히 맞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디. 그러던 차에 취업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새까만 후배에 해당되는 나이의 사람들이 운영하는 작은 벤처이었습니다. 나이는 많고 그렇다고 첨단 기술을 따라 갈 수 없는 입장에서 앉아 있기가 괴로웠습니다. 또 다시 몇 개월만에 그만 두었습니다. 그것이 월급생활자로서는 마지막 이었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실업급여도 끊어지고 다시는 취직을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렇다고 소위 3D 업종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입장도 못 되었습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참으로 갑갑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2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개발자로서 있었을 때 회로패턴설계에 대한 일입니다. 이를 PCB(Printed Circuit Board)설계라 합니다.
PCB 아트웍이라 불리는 일은 투자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됩니다. 프로그램은 크랙버전 사용하면 됩니다. 어찌 하여 관련설계업체에서 두 달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개발자로서 일할 때는 몰랐던 것들을 전문설계업체에서 비록 짧게 경험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인연으로 지금까지 먹고 살고 있으니 이제 평생기술이 된 것 같습니다.
일인사업자로 산지 만 12년이 되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을 보니 2005년 11월 3일로 되어 있습니다. 2005년 20년 동안 전전하단 여러 회사를 그만 두고 자신의 이름으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사무실에 있게 된 2007년부터 안정화 되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수 많은 일을 했습니다. 동시에 수 많은 글을 썼습니다. 한 곳에 오랫동안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봅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요즘 선잠을 자면 종종 악몽을 꿉니다. 직장 다닐 때는 군대에 끌려 가는 꿈을 주로 꾸었습니다. 군대에 갔다 왔음에도 또 영장이 나왔다고 하여 또 다시 군대생활하는 꿈입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이런 꿈을 많이 꾸고 있으리라 봅니다. 끔찍한 군대생활이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꿈에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 두고 더 이상 취직이 안되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며 고민하는 것도 커다란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꿈을 꾸면 새로 들어간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꿈을 꿉니다. 2년이 멀다 하고 옮긴 직장에서 적응 하기 힘들었던 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군대에 재징집되어 끌려 가는 꿈을 꾸면 갑갑하기 그지없습니다. 군대에 분명히 갔다 왔는데 국가의 명령이라 하여 또 다시 징집되어 군대 생활 할 때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꿈입니다. 너무 생생한 꿈이어서 꿈이 생시인 것처럼 착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꿈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거의 20년은 반복되는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꿈도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재징집되었을 때 아무 소리도 못했으나 나중에는 “저 군대 갔다 왔어요”라고 항의하는 단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더 이상 재입대하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제대한지 3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먹고 사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대개 직장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 하는데 마치 실력이 들통난 것처럼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을 때 또 다시 쫒겨 날 것 같은 안타까운 꿈입니다.
악몽을 꾸는 것은 몸과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을 때 꾸게 됩니다. 자는 등 마는 등 선잠을 자게 되었을 때 옛날의 정신적 상처가 꿈에서 나타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그러다 꿈이 깨면 현실에 안도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군대트라우마가 크게 작용했던 것 같고 나이가 들어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커다란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영업자라면 누구나 일이 없으면 누구나 ‘왜 일이 없지?’ ‘왜 일이 없을까?’라 할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왜 손님이 없지?’ ‘왜 손님이 없을까?’라며 고민할 것입니다. 이런 고민은 꿈속에서도 나타납니다. 대개 막막하고 꽉 막힌듯한, 도저히 탈출구가 없을 듯한 답답함입니다. 만일 현실이 그렇다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꿈속에 나타나는 답답함은 이미 경험했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재징집 꿈을 꾼다는 것은 꿈속에서와 같이 군대생활이 힘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안절부절 하지 못한 꿈을 꾸었다는 것은 실제로 직장생활에서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한민국 가장이라면 이런 트라우마는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일인사업자로서 10년
일인사업자로서 10년 살아 왔습니다. 예전에는 2년이 멀다 하고 옮긴 것과는 매우 비교되는 삶입니다. 한 곳에서만 내리 10년 있다 보니 삶이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해서 부자가 되고 재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 좀 된다 하여 직원을 둘 생각도 없습니다. 단지 유지하고 살기만 하면 됩니다.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노는 식입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일 없을 때 글쓰기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부터 썼으니 지난 11년 동안 쓴 것이 3,600개 넘습니다. 매일 하나씩 쓴 꼴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마구 쓰지 않습니다. 이전에 글이라고 써 본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지만 인터넷에 올리는 글은 가급적 형식을 갖추어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글 쓸 때부터 책을 낼 것을 염두에 두고 논리적 글쓰기를 하겠다고 다짐 했기 때문입니다.
일하기와 글쓰기를 양립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일을 합니다. 일이 없을 때 시간이 철철 남는데 그 시간에 글쓰기 하면 시간도 잘 가고 한번 써 놓은 글은 공유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이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10년간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이제 생활화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배기지 못할 정도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이전에 20년동안 월급생활자로 산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퇴출되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만시간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루 서너시간씩 10년간 몰입하면 ‘프로페셔널(專門家)’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인사업자로 10년 동안 살면서 글 쓴지 10년이 넘었으므로 글은 이제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어쩌면 제2의 천성이 된 것 같습니다. 월급생활자로 살 때는 꿈에도 꾸지 못한 것입니다. 글쓰는 것은 남의 일처럼 여겨 졌으나 철철 남는 시간에 글을 쓰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글로 인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했다는 사실입니다. 초기경전을 열어 보면 삶의 활력을 느낍니다.
키워드 광고를 하는데
일감을 얻기 위하여 따로 영업하지 않습니다. 키워드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홈페이지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작은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홈페이지 만든지 10년 되었습니다. 따로 영업활동하지 않아도 키워드 광고를 하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걸어 옵니다.
키워드 광고를 하기 전에는 일일이 전화로 문의 했습니다. 또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위 아가씨단계에서 차단 당했습니다. 마치 잡상인 취급하듯이 경비나 전화교환 여종업원 단계에서 차단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자 방법을 달리 했습니다. 누군가 키워드 광고를 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키워드 광고시작한지 10년 되었습니다.
홈페이지는 10년 전 만든 것 그대로입니다. 문구도 10년전에 만든 것입니다. 아트웍 작품을 올려 놓았는데 어떤 것은 조회수가 만회에 육박합니다. 이런 것도 꾸준히 하다보니 많이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홈페이지가 영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모델도 10년 전 그대로입니다.
시주(施主)에게 고개를
‘왜 일이 없을까?’라며 고민하던 차에 연락이 왔습니다. 장사치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달려 가고, 이득을 위해서라면 폭풍우치는 대양을 항해한다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안산 시화공단으로 우중에 차를 몰았습니다. 젊은 연구원에게서 오더를 받았습니다. 일감이 생긴 것입니다. 이에 “잘 해드리겠습니다.”라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가격과 품질면에서 잘 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청정도론에 자애수행편이 있습니다. 자애수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여러 단계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는 보시하는 것입니다. 선물도 일종의 보시입니다. 그런데 선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뇌물이 아닌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았을 때 자연히 고개가 숙여질 것입니다. 주문도 마찬 가지입니다. 젊은 연구원이 설계의뢰를 요청했을 때 고개가 “잘 해드리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에게 일감을 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시물(施物)을 받는 자는 시주(施主)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청정도론 자애명상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보시는 조어되지 않은 사람을 조어하고
보시는 모든 이로움을 성취시킨다.
보시와 상냥한 말씨를 통해서 [시주자는]
편안해지고 [시물을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인다.”(Vism.9.39)
2017-10-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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