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0. 17. 20:39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게으름과의 전쟁입니다. 추분(秋分)도 지나 밤의 길이가 갈수록 길어지고 있습니다. 오전 6시에도 밖의 날씨는 캄캄합니다. 하지철에는 4시대가 되면 동이 텄으나 동지로 점점 다가감에 따라 어둠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동시에 늦게 일어납니다.

 

눈을 뜨면 즉각 알아차려서 자기전의 알아차림을 유지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잠자기전이나 잠에서 깬 후나 깨어있음에 전념함을 말합니다. 근면한 자라면 늘 깨어 있음에 전념할 것입니다. 잠잘 때도 깨어 있음에 전념해야 합니다.

 

어떻게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가? 앙굿따라니까야 불퇴전의 경(A4.37)’에 따르면 밤의 중야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여 올바로 알아차리며 다시 일어남에 주의를 기울여 눕는다.”(A4.37)라 했습니다.

 

깨어 있음의 절정은 깨어 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사띠가 잠들기전에도 유지되고 잠에서 깨어나도 유지됨을 말합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도 깨어 있어야 하지만 잠자면서도 깨어 있는 다는 것은 부지런한자가 아니면 하기 힘들 것이라 보여집니다.

 

누가 게으른 자인가

 

잠에서 깨자 마자 알아차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게으른자는 편안하고 안락함을 즐길 뿐 좀처럼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합니다. 해가 떠서 주변이 훤하게 밝아져도 자리에 누워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게으름으로 시작하면 하루종일 게을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게으른자라도 즐기는데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오욕을 즐기는데 있어서 게으른자는 매우 부지런한 자가 됩니다.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알고, 졸리면 잘 줄 아는 자를 말합니다.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자는 게으른자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욕망을 여의는 삶을 사는 자는 부지런한 자입니다. 그런데 욕망은 불선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욕망은 분노와 어리석음과 함께 대표적인 불선법입니다. 이러한 불선법을 빠알리어로 아꾸살라(akusala)라 하고 또 다른 번역어로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라 합니다.

 

불선법을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라 한다면, 선법은 착하고 건전한 것(kusala)’이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멀리하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선은 유일신교와 달리 상대적입니다. 그것은 불선과 상대적이라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선행은 착하고 건전한 것을 증가시키고 반대로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감소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악행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증가시키는 것이고 반대로 착하고 건전한 것을 감소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부지런한 자는 선하고 건전한 사람이고 게으른 자는 악하고 불건전한 자라 볼 수 있습니다.

 

네 가지 노력이 있는데

 

불교에서 근면함은 선법을 증장시키는 것이고게으름은 불선법을 증장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근면한 자는 탐욕이나 성냄 등 불선법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자라 볼 수 있고, 게으른 자는 탐욕이나 성냄 등 불선법으로 살아가는 자라 볼 수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노력의 경(A4.69)’에 따르면부지런한 자, 근면한 자에 대하여 제어, 버림, 수행, 수호라 하여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정근 정형구를 근간으로 하는 가르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제어의 노력이란 무엇인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은 생겨나지 않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여 노력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제어의 노력이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버림의 노력이란 무엇인가? 이미 생겨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은 버리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여 노력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버림의 노력이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의 노력이란 무엇인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착하고 건전한 것들은 생겨나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여 노력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수행의 노력이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수호의 노력이란 무엇인가? 이미 생겨난 착하고 건전한 것들은 유지하여 잊어버리지 않고, 증가시키고 확대시키고 계발하여 충만하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여 노력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수호의 노력이라고 한다.”(A4.69, 전재성님역)

 



 

제어의 노력(Savarappadhāna)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불선법에 대한 것이고, 버림의 노력(pahāappadhāna)은 이미 생겨난 불선법에 대한 것이고, 수행의 노력(bhāvanappadhāna)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법에 대한 것이고, 수호의 노력(anurakkhaappadhāna)은 이미 생겨난 선법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에 대하여 네 가지 노력(cattārimāni  padhānāni)’이라 하며 한역으로 사정근(四正勤)이라 합니다.

 

네 가지 노력은 부지런한 자, 근면한 자에게 해당됩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어느 하나도 해당되는 항목이 없습니다. 게으른 자는 부지런한 자와 반대로 살기 때문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는 불선법에 대한 제어와 버림도 없고, 또 선법에 대하여 수행과 수호도 없습니다. 게으른 자는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에 수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탐욕이나 분노 등 14가지 불선법이 있고, 불탐(不貪)이나 부진(不瞋)과 같은 25가지 선법이 있습니다. 불선법이면 억제하고 버려야 하며, 선법이면 수행하고 수호해야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불선법이면 쳐내야 하고 선법이면 증장해야 함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지런한 자, 근면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지런 한 자만이 가능한 것

 

네 가지 노력 중에 수행의 노력(bhāvanappadhāna)이 있습니다. 이를 아직 생겨나지 않은 착하고 건전한 것들은 생겨나도록하는 것이라 합니다. 수행(bhāvana)이라는 말이 막연하게 마음 닦는 것이라 하는데 사정근에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선법을 생겨나게 하는 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필수선법은 믿음, 새김, 부끄러움, 창피함, 불탐, 부진, 평정, 몸의 경안, 마음의 경안, 몸의 가벼움, 마음의 가벼움, 몸의 부드러움, 마음의 부드러움, 몸의 적합함, 마음의 적합함, 몸의 능숙함, 몸의 올곧음, 마음의 올곧음 이렇게 19가지를 말합니다. 탐진치가 없는 것과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한 것이 필수선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평안하면 가장 행복한 상태입니다.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아 투명하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아침에 잠에서 깨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한데 이는 필수선법의 상태라 볼 수 있습니다. 새벽의 그 기분이 죽 유지된다면 그 날 하루는 성공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일과가 시작됨에 따라 산산조각이 나 버립니다. 해질녘 저녁이 되면 불선법에 지배되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침의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사정근에서 수호의 노력(anurakkhaappadhāna)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침의 마음을 저녁까지 잠잘 때까지 유지한다면 그날 하루는 성공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 탐욕, 성냄 등 수 많은 불선법이 생겨납니다. 이럴 때 게으른 자라면 불선법에 쉽게 넘어 갈 것입니다. 그런 불선법은 제어의 대상이고 버림의 대상이라 했습니다.

 

지금 불선법과 마주 하고 있다면 제어해야 합니다. 어떻게 제어하는가? 초기경전에 따르면 계행을 갖추는 것과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는 것과 음식을 먹을 때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과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이다.”(A4.37)라 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만이 가능합니다. 밥먹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글을 씁니다. 설령 일이 세 개, 네 개가 겹쳐 있어도 한 두 시간 틈만 나면 글을 씁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쓰지 않습니다. 형식과 내용을 갖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글을 쓰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의무적인 글쓰기를 했다하여 부지런한 자라 볼 수 있을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게으른 자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오늘 해야 할 일을 한 자는 부지런한 자라 볼 수 있습니다. 일을 하고 짬을 내서 글을 쓰는 행위는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에 부지런한 자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에 열중해야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 것인가?

대군을 거느린 죽음의 신

그에게 결코 굴복하지 말라.(M131)

 

 

해야 할 일에 대한 가르침은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테라가타에서 “해야 할 일을 행했고, 즐길만한 것을 즐겼으니, 지복은 행복을 따라 왔다.(Thag.63)라 했습니다. 여기서 ‘해야 할 일(kata kicca)’은 네 가지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깨달아야 할 것(), 닦아야 할 것()을 통해서 열 여섯 가지 해야 할 일” (ThagA.I.155)을 말합니다.

 

수행승이 알아야 할 것을 알고, 닦아야 할 것을 닦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렸을 때 깨달은 자(Buddha)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아라한선언문을 보면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D2)라 했는데,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친 자가 깨달은 자입니다.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과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

 

해야 할 일을 다한 자는 아라한이고 깨달은 자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하는 것도 글쓰는 것도 해야 할 일이지만 진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성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선법과 선법에 대한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법이라면 제어의 노력을 해야 하고, 이미 일어난 불선법이라면 버림의 노력을 해야 함을 말합니다. 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이라면 수행의 노력을 해야하고 이미 일어난 선법이라면 수호의 노력을 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일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상태를 그 때 그때 잘 관찰하는 것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고귀한 침묵은 사유와 숙고를 멈춘 뒤 내적인 평온과 정신의 통일과 무사유와 무숙고와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에 드는 것”(S21.1)이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고귀한 침묵은 불수념 등 사마타명상주제와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부지런한 자만이 가능합니다. 평생을 두고 해도 부족한 공부입니다. 부지런한 자에게 무료, 권태, 지겨움, 하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해야 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보면 향상과 성장이 없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게송에서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 수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친 자에게 죽음의 신은 두렵지 않습니다. 늘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과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 오늘 해야 할 일입니다.

 

 

2017-10-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