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기본소득제가 대안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불교적 평등주의로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1. 11. 14:50


기본소득제가 대안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불교적 평등주의로

 

 

매주 목요일은 한양대 가는 날입니다. 인문관 311호실에서 인류문명의 지속과 불교적 해법에 대한 강연이 있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밝히는 총 11강 중에서 네 번째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동국대 장성우 교수의 빈곤의 실상과 원인 그리고 대책이라는 타이틀입니다.

 

빈곤에 대하여

 

준비된 자료는 총 14페이지에 달합니다. 프린트물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강연이 진행됐습니다. 강연 타이틀이 말해 주듯이 키워드는 빈곤입니다. 먼저 빈곤은 실상은 무엇인지, 빈곤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빈곤극복의 대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빈곤문제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빈곤에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있습니다. 절대적 빈곤이란 하루에 1.25달러로 살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계적으로 절대적 빈곤은 감소하는 추세로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적 빈곤입니다. 상대적 빈곤이란 사회에서 보는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가지지 못한 삶의 조건으로 정의됩니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한 자가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소득이 줄어 들었을 때 빈곤하다고 느꼈을 경우도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문제는 부의 양극화로 나타납니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는 미국 전체 가계소득의 19.3%를 차지 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가계소득의 22%를 차지합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갈수록 심화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를 내버려 둔다면 1% 99%사회가 아니라 미래 어느 시점에서 0.1% 99.9%사회가 될지 모릅니다.

 

부의 불평등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지구촌 상위 1%의 부자들의 재산이 지구상 나머지 전 인구의 재산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전 세계인구 중 소득 하위에 50%에 해당하는 36억명의 재산과 맞먹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0.1% 99.9프로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부의 불평등이 극심하게 되어 하위층이 도저히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분노가 폭발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될 경우 혁명적인 상황이 발생되어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될지 모릅니다. 부의 불평등은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모두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의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본소득제가 대안이다

 

빈곤하게 사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개인의 능력문제입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열등하다거나 장애가 있을 때 빈곤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구조적 문제입니다. 산업화가 되지 않았을 때 전체적으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습니다. 그것도 신자유주의입니다.

 

무한경쟁 했을 때 정신적으로 월등한 자 그리고 자본이 많은 자가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라면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입니다. 더구나 성장이 멈춘 시대에 일자리가 없는 자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내버려 둔다면 커다란 사회불안요소가 될 것입니다. 가진 자의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 했을 때 하나의 대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소득제입니다.

 

흔히 일한만큼 벌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놀게 된다면 국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직장을 가진 자에게만 복지혜택이 돌아 간다면 직장을 잃은 자나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장기간 노는 사람들은 복지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대한 해법이 기본소득제입니다.


기본소득제 개념은 가난한 자에게나 부자에게나 공평하게 일정금액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매월 천만원을 번 자에게 소득의 50% 5백만원을 세금을 내게 하고, 5백만원을 버는 사람에게는 40% 200만원을 세금을 내게 하고, 150만원을 번 사람에게는 30% 45만원을 세금을 내게 합니다. 총 걷힌 세금은 745만원입니다. 이를 세 명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3분하여 248만원 지급하는 것이 기본소득제의 개념입니다. 이렇게 일률적으로 248만원씩 공평하게 지급하면 천만원 버는 사람은 748만원의 수입이되고, 5백만원 번 사람은 548만원, 150만원을 번 사람은 353만원이 실소득이 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소득이 늘어납니다. 더구나 가난한 자는 번 돈 보다 기본소득제로 가져 가는 돈이 더 많아 생계걱정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기본소득제는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을 기본개념으로 합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부자에게도 돈을 주는 것입니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금액을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모두가 승리(Win-Win)하는 제도입니다. 미래는 기본소득제가 빈곤문제의 해결 대안입니다.

 

기본소득제 개념은 획기적입니다.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일정금액을 마치 월급의 기본급을 지급하듯이 국민모두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은 시대상황에 따른 것입니다. 성장의 시대에 만들어진 복지시스템이 저성장 내지 마이너스 성장시대에는 들어 맞지 않기 때문에 혁명적인 발상이 나온 것입니다.

 

기본소득제는 앞으로 뜨거운 논란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본소득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청년에게 청년수당을 주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에서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기득권층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그래서일까 장성우 교수는 연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본소득제의 도입과 시행을 추진할 수 있는 권력자원을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강력한 연대를 말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진 자들의 도덕적 의무

 

기본소득제는 파격적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극대화된 자본주의 모순에서 발생한 시대가 요청한 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기본소득제는 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자나 세금을 많이 내는 자나 적게 내는 자나 일정금액을 차별 없이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기본소득제는 가진 자들의 도덕의 의무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많이 가진 자가 많이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될수록 불교에 해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하여 장성우교수는 개별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개별적 차원입니다.

 

빠알리니까야야라 불리우는 초기경전을 보면 우리가 고민하는 모든 해법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84천 법문은 깨달음에 대한 것이나 수행에 대한 것도 있지만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것도 많습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경제에 대한 것입니다.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진 자들이 베풀어야 합니다. 정당하게 번 것을 자신 보다 처지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아낌 없이 내 놓았을 때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빈곤의 개별적 해법에 대하여 돈을 버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고, 올바르게 벌어서 올바르게 써야 한다.”라고 요약했습니다. 이에 대한 가르침은 앙굿따라니까야 알맞은 처리의 경(A4.61)’에 있습니다.

 

 

장자여, 세상에 고귀한 제자는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 완력으로 모으고, 이마의 땀으로 벌어들인, 정당한 원리로 얻어진 재물로 다섯 가지 헌공, 즉 친지에 대한 헌공, 손님에 대한 헌공, 이미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헌공, 왕에 대한 헌공, 신들에 대한 헌공을 합니다. 이것이 그 재물을 세 번째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고 알맞은 처리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A4.61)

 


부처님은 재산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다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왕에 대한 헌공은 오늘날 세금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가진 자라면 이웃과 주변에 올바르게 사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진자의 의무이자 도덕적인 삶의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입니다.

 

빈궁한 자를 구제하지 않으면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가 가장 기본적입니다. 다음으로 국가에서 제도화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의식개혁과 제도개혁이 동시에 시행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빈곤문제 해결하는 것에 대한 불교적 해법이 있습니다. 장성우 교수는 장아함 전륜성왕수행경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정의롭게 통치하는 전륜성왕은 외롭고 늙은이나 빈궁한 자를 구제해야 한다.”라는 내용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빈궁한 자를 구제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또한 온갖 사악한 것으로 넘쳐 나서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디가니까야 전륜왕 사자후의 경(D26)’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몽둥이와 칼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정법으로 전세계를 정복한 전륜왕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재물을 훔친 자들 용서해주고 오히려 잘 살 수 있도록 재물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후대로 감에 따라 이런 원칙은 무너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하면서 재물없는 자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지 않자, 빈곤이 늘어났다. 빈곤이 늘어나자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이 늘어났다.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이 늘어나자 무기가 늘어났다. 무기가 늘어나자 살아 있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 늘어났다. 살아 있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 늘어나자 뭇삶들의 수명도 줄어들고, 용모도 퇴락했다. 뭇삶들의 수명도 줄어들고, 용모도 퇴락하자 수명이 팔만사천 년이었던 인간은 자손대에 와서 사만 년이 되었다.”(D26)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열등하고 장애를 가진 자나 능력이 부족한 자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데, 우월하고 부자인 자들이 이들을 내버려 둔다면 정의로운 사회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몽둥이와 칼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정법으로만 통치하는 전륜왕은 먹을 것이 없어서 훔치는 자에게 오히려 재물을 주며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복지제도와 같은 것입니다. 또 최근 논의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와 같은 것입니다.

 

경에서는 몽둥이와 칼로 다스리는 시대가 되었을 때 배가 고파 담을 넘은 자들을 가혹하게 처벌 했을 때 악순환이 일어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빈곤으로 인하여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았을 때 오계를 어기는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진 자가 베푸는 삶을 살지 않았을 때 무기가 늘어나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됩니다. 초기경전에서는 마치 오늘날 신자유시대의 빈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왜 연대해야 하는가?

 

빈궁한 자는 구제되어야 합니다. 가난을 구제하지 못하는 지도자라면 무능력자라 할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는 베푸는 삶이 요청됩니다. 팔의 힘과 이마의 땀으로 정당하게 벌어들인 재물을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도개혁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기본소득제와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성우교수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상대적 빈곤의 심화는 이제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과 국가와 세력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무엇이 정의이고 보편적인 진리[正法]인지 지혜를 모으고 새로운 경제시스템과 국제질서를 창출하여 계기를 마련하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장성우 교수)

 

 

장성우교수에 따르면 빈곤은 신자유주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제약없이 무한경쟁한다면 많이 가진 자나 능력 있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내버려 두었을 때 모두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해법이 있지만 불교적 해법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소욕지족의 삶과 베푸는 삶이고 국가적으로는 빈곤한 자도 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가장 현실적 대안은 기본소득제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대해야 합니다. 그것도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에서 불교적 평등주의로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정체 내지는 마이너스성장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평등주의입니다. 현재와 같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미래는 암담하고 절망적입니다. 이럴 때 불교적 해법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평등주의입니다.

 

불교는 평등사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상윳따니까야에 따르면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야 하리.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에도 지혜로운 현자가 생기네.”(S7.9)라 했습니다. 고급전단나무를 땔감으로 한 것이나 소똥을 말려 땔감으로 한 것이나 불이 붙습니다. 어떤 땔감이든지 화염과 광채, 그리고 빛깔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마찬가지로 불가촉천민이라도 가르침을 접하면 사쌍팔배의 성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불교의 평등사상은 상가(sagha)에서도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상가는 사성계급에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불가촉천민이라도 상가에 들어가면 모두 평등합니다. 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밧디야는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저희 싸끼야 족들은 교만합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이발사 우빨리는 오랜 세월 우리의 하인이었습니다. 그를 먼저 출가시켜주십시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 맞이하고, 합장하고, 공경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우리 싸끼야족들의 싸끼야족 교만이 제거 될 것입니다.(율장소품 7장 참모임 분열의 다발, 여섯 명의 싸끼야 족의 출가)라 했습니다. 왕족이나 이발사나 상가에서는 모두 평등함을 말합니다.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더 이상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성장의 시대에서는 자본주의가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한계 내지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안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잘 사는 평등사회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집단이 상가입니다. 상가가 비록 수행자 집단이기는 하지만 소욕지족과 베푸는 삶, 그리고 지혜로운 삶과 자비로운 삶 등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공동체가 대안입니다. 이제 시대는 자본주의에서 평등주의를 요청합니다.

 

 

2017-11-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