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막행막식할 것인가 채식할 것인가,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1. 17. 12:16


막행막식할 것인가 채식할 것인가,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에 대하여

 

 

맛을 알고부터

 

이 세상은 맛을 알고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판 창세기라 볼 수 있는 디가니까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D27)’에 따르면 맛의 갈애로 인하여 남녀가 생겨나고, 맛의 갈애로 인하여 계급이 생겨 났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맛의 갈애로 인하여 업을 짓고 업의 과보로 인하여 세세생생 윤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맛의 갈애는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요?

 

디가니까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D27)’에 따르면 맛의 갈애 대한 극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는 극광천에서 기쁨을 먹고 사는 존재였습니다. 극광천(ābhassara)은 색계2선천에 있는 천상으로서 빛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경에서는 그들은 거기서 정신으로 이루어진 자로서, 기쁨을 먹고 지내고, 스스로 빛을 내고, 허공을 날며, 영광스럽게 오랜 세월을 산다.”(D27)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고 하늘을 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기 때문에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기쁨을 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이는 색계 2선천이 희열과 행복과 평온만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사는 하늘의 존재도 공덕과 수명이 다하면 어떤 세상에 태어날지 모릅니다. 미얀마속담에 빛나던 범천도 돼지우리에서는 꿀꿀거리네.”라는 있다고 하듯이 윤회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영광스런 존재가 아래 세상으로 떨어짐으로써 공겁기가 끝나고 성겁기가 시작 됩니다. 가장 먼저 왔으므로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를 창조주라 여깁니다. 나중에 태어난 자들은 먼저 와 있는 자에게 이 존귀한 자는 하느님, 위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다.”(D1)라며 창조주로 여깁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여기 먼저 태어난 자를 보았고 우리는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D1)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겁기가 시작되었을 때 남자도 여자의 구분도 계급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천상에서 떨어진 존재들이 땅이 있는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땅조각 하나를 입에 대 보았습니다. 일종의 땅조각 쿠키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그것은 아름답고 향기롭고 맛이 있었다.”(D27)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천상에서 기쁨을 먹고 살던 존재가 최초로 맛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맛을 알게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맛있는 땅조각을 손으로 맛보자 그것에 매료 되어 갈애가 그를 엄습했다.”(D27)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번 맛을 알아 버리게 되자 다시 찾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맛의 갈애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혀 끝에 놓인 것만으로 칠천 개의 미각신경이 퍼져나가 마음에 드는 상태가 되어 갈애가 생겨났다.”(Smv865)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번 맛을 알아버린 존재는 맛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더 맛있고 달콤한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맛에 탐닉할수록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용모는 거칠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이전 생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허공을 날며 기쁨을 먹고 살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맛에 탐닉하다 보니 몸은 무거워지고 용모는 추악해졌습니다. 마침내 남자에게는 남자의 특징이 나타나고 여자에게는 여자의 특징이 나타나 남녀가 구별 되었습니다. 그런데 맛에 대한 갈애는 성적 갈애로 전개됩니다. 경에 따르면 그러자 여자는 남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탐애가 생겨났고 몸이 달아 올랐다. 그들은 몸이 달아 올라 성적교섭을 행했다.(D27)라 되어 있습니다, 맛에 대한 갈애가 마침내 성적갈애로 전개된 것입니다. 식욕이나 성욕이나 갈애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식욕과 성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모두 욕망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근원을 따져 가면 맛의 갈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맛을 알고부터 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맛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욕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깊고 그윽한 육육우동의 맛

 

맛에 대한 갈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번 맛을 본 우동의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양대 앞에 있는 가조쿠우동입니다. 벌써 다섯 번째 찾았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 불교인문학 강연 참석에 앞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육육우동으로 했습니다. 이전에 한번 맛을 보았기 때문에 또 찾은 것입니다. 얼큰하고 국물 맛이 일품입니다. 깊고 그윽한 맛입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먹어 보면 알 수 있다.라 일 것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이런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정평불 다섯 번째 강연을 듣고

 

정의평화불교연대의 다섯 번째 강좌는 맛에 대한 것입니다. 사찰음식전문가 김현진 대표의 식량  음식문화의 위기와 채식사찰음식라는 주제의 강연입니다. 김현진대표는 오신채를 쓰지 않는 다는 사찰음식전문점 마지마지아카데미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11 16일 저녁 7시에 한양대 인문관 311호실에서 열렸습니다. 매주 목요일 마다 열리는 불교인문학강좌입니다.

 

 



 

 

사찰음식에 대하여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박람회에서 본 사찰음식은 보통불자가 보기에는 매우 고급으로 느껴졌습니다. 한마디로 스님들이 정말 저렇게 먹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고기만 없을 뿐 진귀한 식재료를 사용한 사찰음식을 보면 황제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종종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비구니스님들의 법문을 듣습니다. 한결 같이 말하는 것은 사찰음식이 수행의 한방편이라 합니다. 그러나 불교박람회에서 본 왕의 식탁과 같은 사찰음식을 떠 올렸을 때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찰음식은 고급요리로서 보통불자들은 근접할 수 없는 것이라는 선입견입니다. 불자들이 접하는 사찰음식은 부처님오신날 절에 가서 얻어 먹는 비빔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지 김현진대표의 강연을 듣고 음식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마지 김현진 대표는 사찰음식과 채식이라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파워포인트를 스크린 자막으로 띄어 설명하는 형식입니다. 그런 김현진 대표는 사찰음식전문점 마지와 마지아카데미 대표일 뿐만 아니라 종교음식전문가와 살림큐레이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동국대 불교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명과 평화의 밥상

 

김현진대표는 먼저 채식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김현진대표가 말하는 채식은 한마디로 생명밥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생명과 평화의 밥상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염원하는 것이라 합니다. 불교로 말한다면 불살생의 원칙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매일 잔칫날이고 매일 파티날과 같습니다. 식탁에 고기가 끊이지 않음을 말합니다. 불과 삼사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기를 먹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치킨(Chiken)지옥이라 불리울정도로 치킨이 상품화 되었습니다.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을 찍어 내듯이 공장식 축사에서 상품처럼 출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치킨()은 엄연히 생명입니다. 생명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즐겁게 즐기는 것이 현대인들입니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육식을 즐깁니다. 수백명이 식사하는 카페테리아에서는 고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고기가 끊긴다면 항의가 들어 온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잔칫날이고 매일매일 파티날과 같은 식탁입니다.

 

채식을 생명과 평화의 밥상이라 합니다. 고기가 들어 가지 않고 채식으로 이루어진 식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단백질 공급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음식재료이든지 미생물이 들어 있기 때문에 미생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소는 풀만 먹고도 몸집을 거대하게 불려 갑니다. 이는 “소는 풀만 먹지만, 풀을 소화하기 위해 미생물을 이용하고, 그 미생물이 발효한 산물들을 소화, 흡수해서 단백질과 같은 필요한 양분을 얻는다. 풀만 먹는 소가 몸무게 500kg에 이르는 덩치로 자라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풀만 먹는 소는 미생물을 먹고 덩치가 커졌다, 미디어붓다 2016-03-28)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채식만으로도 단백질이 공급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콩이나 된장과 같은 식재료가 좋다고 합니다. 된장이 들어간 밥상은 생명과 평화의 밥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에 대하여

 

매일매일 돤장국을 먹고 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8개월 째입니다. 그동안 몸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몸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면 불편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몸에서 거부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채식을 하면 이런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합니다.

 

채식을 한다는 것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자극적인 것을 먹지 않음을 말합니다. 양념을 넣지 않는 것도 해당됩니다. 또 마늘이나 파와 같은 자극이 심한 식재료를 쓰지 않는 것도 해당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요리하는 자의 마음 자세라 합니다. 요리하는 자가 탐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리과정이 수행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먹는 것 역시 수행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하여 김현진 대표는 마인드풀 이팅(Mindful Eeating)’으로 설명했습니다.

 

마인드풀이팅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용어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알아차라면서 음식먹기라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 마음챙김 또는 알아차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띠(sati)하는 것이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만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먹을 때도 사띠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인드풀이팅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이미 검색어로서 등록 되어 있습니다. SBS에서는 마음챙김먹기, 마인드풀이팅(Mindful Eating)’이라는 제목으로 2016 7 3일 방송을 탄 바도 있습니다. 주로 다이어트에 대한 것입니다. 방송에서는 마인드풀이팅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해 알고 언제 먹어야 하고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라 했습니다. 음식을 단지 허기를 채우는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마인드풀이팅은 스님들의 식사법이라는 책의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팃낫한 스님은 식사를 할 때 음식을 접할 때 관하고 음식을 씹을 때 관하는 식으로 마인드풀이팅을 했다는 것입니다.

 

알맞은 분량을 안다는 것은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노동하는 사람은 많이 먹어야 합니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노동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합니다. 하루 세 끼는 기본입니다. 농촌에서는 새참으로 하여 오전과 우후에 두 번 먹기도 했습니다. 모두 합하면 다섯 끼가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종종 간식을 먹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끊임 없이 입을 놀리지 않는 듯합니다. 이렇게 끝없이 먹는 것은 맛에 대한 갈애 때문일 것입니다. 더 맛있는 것, 더 자극적인 것을 찾다 보니 고기와 술이 음식이 되었습니다.

 

식탁의 기름진 반찬을 접했을 때 먹는 재미를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고기를 먹었을 때 자연과 환경은 파괴 되고 자원은 고갈됩니다. 그래서일까 일주일에 한번 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았을 때 자동차가 500만대 운행을 하지 않는 효과 등이 있다고 합니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구달여사가 기후변화를 염려하여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것도 좋은 예라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인드 이팅과 같은 가르침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은 음식절제를 강조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에서 세 가지 원리로 설명했는데 “ 1) 감각의 문을 수호하는 것, 2)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 3) 깨어 있음에 철저한 것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원리를 지키면 “번뇌를 부수기 위한 효과적인 기반을 얻는다.(A3.16)라 했습니다. 여기서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안다.(bhojane mattaññū hoti)’ 는 것은 마인드풀이팅과 같은 개념일 것입니다.

 

식사를 할 때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은 다름 아닌 수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외동아들 라훌라에게도 선한 친구와 사구어라. 인적 없이 외딴 곳, 고요한 곳에서 거처하여라. 그리고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라.”(stn.339)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초기경전 도처에서 음식절제를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고행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몸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섭취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식사할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안다는 것이라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은 ‘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괴로움을 제거하고 새로운 괴로움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것이다.’라고 깊이 성찰하여 음식을 섭취한다. 수행승들이여, 식사할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안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A3.16)

 

 

부처님은 음식을 대할 때 놀이나 사치 등으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음식을 즐기며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치료가 될 때까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또한 예를 들어 짐을 옮길 수 있도록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S35.239)라 하여 몸에 기름칠 할 정도로 음식을 섭취하라고 했습니다. 음식에 적당량을 청정한 삶을 이루기 위해 수행의 차원에서 먹어야 함을 말합니다.

 

맛에 대한 갈애가 일어나면

 

누군가 음식을 즐기며 먹는다면 고기와 술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삶의 낙인 사람이라면 먹는 재미로 살 것입니다. 맛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니들이 이 맛을 알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맛의 갈애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처럼 맛에 탐닉 하는 잘의 끝은 어디일까요? 영원히 욕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계를 벗어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또 괴로움과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본래 빛으로 된 몸을 가지고 허공을 날아 다니며 기쁨을 먹고 영광스럽게 사는 존재들이 어느 순간 맛의 갈애를 알게 되어 맛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니 한끼만 굶어도 죽을 듯이 괴로워합니다.

 

음식을 즐기는 자들은 다른 것도 즐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욕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식욕과 성욕이라는 본능대로 살다 보니 세세생생 윤회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 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음식에 적당량을 아는 것입니다. 음식을 대할 때 즐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음식을 대할 때 아들고기를 대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사막에서 굵어 죽기 일보 직전의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아들의 고기를 먹기로 했습니다. 그 부모과 죽은 아들고기를 먹을 때 맛을 즐기며 먹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테라가타에서 브라흐마닷따존자는 맛에 대한 갈애가 일어나면 아들의 고기에 대한 비유를 생각하라.”(Thag.445) 고 했습니다.

 

푸드마일리지가 짧은 것을 먹어라

 

수행자라면 고기를 접할 때 아들고기를 접하는 심정으로 먹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탁발로 연명했기 때문에 주는 대로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를 먹을 때는 맛으로 자양분으로 먹지 말고 아들고기를 대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탁발전통이 사라진 동아시아서는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위주가 되었습니다. 고기를 금하는 범망경 계율도 절에서 음식을 해 먹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 합니다.

 

마지 김현진 대표의 강연을 듣고 채식과 사찰음식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습니다. 이전에는 사찰음식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불자들이 생각하는 사찰음식은 비빔밥이나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스님들은 황제식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교박람회나 사찰에서 행사에서 볼 수 있는 사찰음식은 전시일 수 있습니다. 모든 스님들이 다 그렇게 진수성찬을 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음식은 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가 짧은 것이라 합니다. 푸드마일리지가 가장 긴 것이 어류라 합니다. 먼 바다에서 우리들 식탁에 오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데 방부제 처리 등을 하여 독소를 먹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합니다. 오래 보관된 고기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제철에 주변에서 나는 것이라 합니다. 사찰 뒷산이나 앞의 밭에서 채취한 나물이나 채소를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는 것 보다 재래시장이 더 나을 것입니다. 재래시장 보다 동네 입구에서 제철에 나는 나물과 채소를 파는 할머니의 좌판이 가장 안전할 것입니다.






 

내 몸을 예민하게 만들어야

 

매일매일 된장국을 먹고 있습니다. 된장국에는 호박, 버섯 등 제철에 나는 온갖 식재료를 투입합니다. 특히 동네 좌판의 할머니 것들을 팔아 줍니다. 고작 이삼천에 불과하지만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는 할머니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먹거리를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약 8개월 지속했더니 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몸이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음식전문가이자 살림큐레이터인 마지 김현진 대표에 따르면 채식을 통하여 내 몸을 예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 했다는 사실입니다.

 

채식을 하여 몸을 예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길거리에서 사먹는 음식이나 패스트푸드나 고기반찬, 그리고 음주를 다반사로 한다면 몸이 둔해진다고 합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도 무시하고 기름진 음식과 술을 일상화 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합니다. 몸의 신호를 무시했을 때 몸이 신호보내기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둔한 몸이 되었을 때 나중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채식으로 몸을 민감하게 만들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캐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김현진 대표의 사찰음식과 채식에 대한 강연을 듣고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막행막식(莫行莫食)’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행자라면 음식을 수행의 측면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번뇌를 소멸하기 위하여 “1) 감각의 문을 수호하는 것, 2)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 3) 깨어 있음에 철저한 것”(A3.16)라고 세 가지 조건을 말씀 하신 것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2017-11-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