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번역비교

수행자의 열 가지 성찰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2. 19. 17:14


수행자의 열 가지 성찰에 대하여

 

 

두 종류의 번역이 있습니다. 번역자가 달라서일까 똑같지 않습니다. 대의는 같을지라도 각론에 들어 가면 차이를 발견합니다. 어느 경우에는 정반대의 번역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원문과 대조하며 보면 드러납니다. 영역을 참고 해도 됩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열 가지 원리의 경(Dasadhamma sutta, A10.48)’에 대하여 번역비교 해 보았습니다.

 

경의 제목은 ‘Dasadhamma sutta’입니다. 전재성님은 열 가지 원리의 경이라 번역했습니다. 초불연 대림스님은 경우 경이라 번역했습니다. 출가한 빅쿠가 자주 성찰해야 할 열 가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담마라는 말은 ‘doctrine; nature; truth; the Norm; morality; good conduct’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전재성님은 원리라 했고 대림 스님은 경우라 했습니다. 빅쿠보디는 ‘things’라 하여 것들이라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열 가지를 차례로 나열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계급의 여윔을 반조해야

 

1) “Vevaṇṇiyamhi ajjhupagato”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원문)

2) 출가자는 나는 계급을 여의었다.’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전재성님역)

3) ‘나는 저열한 상태에 이르렀다.’라고 출가자는 반조해야 한다.(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I have entered upon a classless condition.’(빅쿠보디역)

 

 

차이는 계급을 여의었다저열한 상태에 이르렀다입니다. 이는 빠알리어 ‘Vevaṇṇiyamhi ajjhupagato’를 번역한 것입니다. ‘vevaṇṇiyadisfiguration; discolouring’의 뜻으로 계급외의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Ajjhupagata ‘arrived; reached; consented’의 뜻입니다.

 

두 번역은 다릅니다. 한편에서는 계급을 여의었다라 하고 또 한편에서는 저열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빅쿠보디는 classless condition’라 하여 계급이 없는 상태라 했습니다. 초불연 번역만 다릅니다. 초불연 각주를 보면 생활필수품등의 저열한 상태를 알아야 한다.”라 했습니다. 출가자가 탁발을 하는 등 저열한 상태에 떨어진 것을 수시로 반조해야 함을 말합니다.

 

빅쿠보디의 각주를 보았습니다. 긴 각주에는 두 가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사성계급 등 계급을 여읜 것을 말하고, 또 하나는 초불연 각주와 같이 주석의 견해입니다. 문맥상 전자가 바른 견해입니다.

 

2. 생계를 반조해야

 

1) rapaibaddhā me jīvikā"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의 생계는 타인에 의존한다.’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내 생명은 남에게 달려있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y living s dependent upon others’(빅쿠보디역)

 

 

차이는 생계생명입니다. 이는 빠알리어 jīvikā’를 번역한 것입니다. ‘Jīvikā’‘living, livelihood’의 뜻입니다. 빅쿠보디는 ‘living’으로 번역했습니다. 대림스님이 생명이라고 번역한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더구나 내 생명은 남에게 달려있다.’라고 반조할 것을 말했는데, 탁발 등 생계에 대한 것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출가자는 일을 하지 않지 않기 때문에 일에 대한 대가로 급여를 받지 않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거처, 약품 등을 재가자에게 보시받아 살아 갑니다. 따라서 타인에게 의존하여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생계는 타인에 의존한다.’라고 자주 성찰해야 함을 말합니다. 대림스님이 내 생명은 남에게 달려있다.’라고 번역한 것은 마치 나의 목숨이 남에게 달려 있다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3. 달리 처신해야

 

1) "Añño me ākappo karaīyo"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는 달리 처신해야 한다.’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내 행동은 [재가자들과] 달라야 한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My deportment should be different. (빅쿠보디역)

 

 

출가자는 외양으로 구분됩니다. 삭발한 머리와 가사를 걸친 모습은 출가자임을 나타내는 징표와 같습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어디에 가든 늘 시선을 의식해야 합니다. 설령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처신을 달리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출가자의 처신에 대하여 빅쿠보디는 I must walk with calm sense faculties, with a calm mind, with slow and measured steps, like a cart passing through water or a rough place.”(2055번 각주)라 각주 했습니다. 마차가 물이나 거친 곳을 지나가는 것처럼 마음을 고요히 하며 걸어야 함을 말합니다.

 

4. 계행을 반조해야

 

1) "Kaccinu kho me attā sīlato na upavadatī"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는 스스로 나의 계행 때문에 가책을 하지는 않는가?’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내 마음은 계행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Do I reproach myself in regard to virtuous behavior? (빅쿠보디역)

 

 

자신의 계행을 끊임 없이 반조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번뇌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자기가 가장 잘 압니다. 계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계행은 은폐되기 쉽습니다. 남이 보지 않았다고 하여 은폐할 수 있지만 자신만은 속일 수 없습니다.

 

대림스님은 내 마음은 계행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가?’라고 했는데 원문에 마음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재성님은 ‘me attā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라 했고, 빅쿠보디 역시 ‘Do I reproach myself’ 하여 나 스스로로 번역했습니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빅쿠보디는 “Here and in the next reflection the intended sense is conveyed more clearly in English if na is not translated.”(2056번 각주)라고 각주 했습니다. 부정어 ‘na’를 번역하지 않는 것이 더욱 더 의미가 드러남을 말합니다.

 

5. 동료수행자들이 비난하지 않아야

 

1) "Kaccinu kho ma anuvicca viññū sabrahmacārī sīlato na upavadantī"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양식있는 동료수행자들이 나를 계행 때문에 비난하지는 않는가?’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지혜로운 동료수행자들이 나를 자세히 살핀 다음 계행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 않는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Do my wise fellow monks having investigated, reproach me in regard to virtuous behavior? (빅쿠보디역)

 

 

가장 큰 차이는 ‘anuvicca’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말은 ‘having known or found out’의 뜻입니다. 양식있는 동료수행자(viññū sabrahmacārī)가 나의 계행을 알고 비난하지 않은지 살펴 보라는 것입니다. 대림스님과 빅쿠보디는 원문 그대로 번역하여 동료수행자들이 나를 자세히 살핀 다음이 했지만, 전재성님은 양식있는 동료수행자들이라 하여 축약했습니다. 계행은 은폐 될 수 있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살 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6. 애착을 갖지 말아야

 

1) "Sabbehi me piyehi manāpehi nānā bhāvo vinābhāvo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는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하고 떠나야 한다.’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내가 좋아 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모든 것은 변해 버리고 없어져버린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I must be parted and separated from everyone and everything dear and agreeable to me. (빅쿠보디역)

 

 

차이는 헤어져야 하고 떠나야 한다.’변해 버리고 없어져버린다.’입니다. 서로 다른 말입니다. 원문을 보면 ‘vinābhāva’라 되어 있는데 이는 ‘separation’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자와 헤어질 수밖에 없고 즐거운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테리가타 로히니경에서는 마을에서 떠날 때에 아무것도 살펴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납니다.”(Thig.282)라 했습니다.

 

 빅쿠보디는 be parted and separated’라 하여 헤어져야 하고 떠나야 한다.’라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대림스님이 변해 버리고 없어져버린다.’라 한 것은 지나친 의역이라 봅니다.

 

7. 업이 나의 주인임을 반조해야

 

1) "Kammassakomhi kammadāyādo kammayoni kammabandhu kammapaisarao ya kamma karissāmi kalyāa vā pāpaka vā tassa dāyādo bhavissāmī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는 업의 소유자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을 모태로 삼는 자이고,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고,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로서 내가 지은 선하거나 악한 업을 상속받을 것이다.’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건, 업을 지으면 나는 그것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I am the owner of my kamma, the heir of my kamma; I have kamma as my origin, kamma as my relative, kamma as m y resort; I will be the heir of whatever kamma, good or bad, that I do. (빅쿠보디역)

 

 

업자성정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행위를 하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은 업의 상속자라 했습니다. 덧붙여서 업은 친지와 같고, 업을 의지처로 해서 산다고 했습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어떤 업이든 나는 업의 상속자라고 끊임없이 반조해야 함을 말합니다.

 

8. 불방일정진해야

 

1) "Katha bhūtassa me rattindivā vītipatantī"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는 어떻게 낮과 밤을 보내야 할까?’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내가 무엇이 되어있건 낮과 밤은 지나가버린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How am I spending my nights and days?' (빅쿠보디역)

 

 

차이는 어떻게무엇이 되어있건입니다. 이는 빠알리어 ‘Katha bhūtassa’에 대한 번역입니다. 여기서 Kathahow’의 뜻이고, bhūta‘become; existed’의 뜻입니다. 대림스님은 직역하여 무엇이 되어있건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전재성님과 빅쿠보디는 어떻게(how)’로 번역했습니다.

 

이 구절은 상윳따니까야에서 세월은 스쳐가고 밤낮으로 지나가니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S1.4)라는 게송과 유사합니다.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즐기는 삶을 살고 노년에 수행하며 산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꿰뚫어 보는 자는 모든 자양을 버리고 고요함을 원하리.” (S1.4)라 했습니다.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함을 말합니다.

 

9. 빈 처소에서 기쁨을

 

1) "Kaccinu khoha suññāgāre abhiramāmī"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는 과연 이 빈 처소에서 기쁨을 발견하는가?’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 ‘빈 집에 거주 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가, 아닌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Do I take

delight in empty huts?' (쿠보디역)

 

 

 

부처님은 니까야 도처에서 선정에 들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아난다여, 여기 나무 밑들이 있고, 여기 텅 빈 집들이 있다. 아난다여, 방일하지 말고 명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대에 대한 나의 가르침이다.(M152)라 했습니다. 그런데 빈 집에서 명상할 때는 기쁨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 처소에서 기쁨을 발견하는가?’라 했는데, 이는 내가 외딴 곳에서 모든 행동의 자태[行住坐臥]를 취할 때, 홀로 있으면서 과연 즐길 수 있을까?”(Mrp.V.40)라는 뜻입니다.

 

10. 부끄럽지 않을 탁월한 경지에

 

1) "Atthinu kho me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adassana viseso adhigato soha pacchime kāle sabrahmacārīhi puṭṭho na makubhavissāmī"ti pabbajitena abhiha paccavekkhitabba. (원문)

2) 출가자는 나는 훗날에 동료수행자들이 물으면, 부끄러워하지 않을, 인간의 상태를 초월하여 고귀한 분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앎과 봄에 도달하였는가?’라고 자주 성찰해야 한다. (전재성님역)

3)‘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했는가? 그래서 나는 죽을 때 동료 수행자들이 물으면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것인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대림스님역)

4) One who has gone forth should often reflect: 'Have I attained any superhuman distinction in knowledge and vision worthy of the noble ones, so that in my last days, when I am questioned by my fellow monks, I will not be embarrassed?' (쿠보디역)

 

 

차이는 부끄러워하지 않을의기소침해지지 않을입니다. 이는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방일하지 않고 정진한 자라면 인간의 상태를 뛰어 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함을 말합니다. 경에서는 세 가지 명지를 증득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초월적인 경지에 이르렀을 때 동료수행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빅쿠보디는 not be embarrassed’라 하여 부끄럽지 않음이라 번역했습니다

 

두 종류의 번역을 접하면

 

수행자의 열 가지 성찰에 대하여 두 종류의 번역서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보통불자가 주제 넘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스님이 번역한 것과 재가자가 번역한 것에 대한 편견을 듣고 나서부터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보면 알 수 있듯이, 두 종류의 번역에 대하여 원문과 대조하고 또 영역과 비교하면 금방 드러납니다. 그렇게 번역비교해 놓은 것이 3년에 걸쳐서 195편에 달합니다. 블로그에서 니까야번역비교폴더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두 종류의 니까야번역서가 있습니다. 가르침에 목말라 하는 불자들에게는 축복이라 봅니다. 세계적으로도 두 종류의 번역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두 종류의 번역서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줍니다.

 




두 종류의 번역을 접하면 번역 비교도 될 뿐만 아니라 의미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번역자마다 일장일단이 있어서 서로 보완됩니다. 의미가 불분명할 때 다른 번역서를 열어 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한번역서만 고집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잘못 번역된 것도 있을 수 있고 중요한 설명을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르침을 분명히 알고자 한다면 두 번역서를 참고 하면 좋습니다. 여기에 빠알리원문과 영역본까지 합하면 금상첨화입니다.

 

 

2017-12-1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