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었네, 인연 없는 중생의 대명사 우빠까
아직도 니까야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직도 니까야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니까야를 늘 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일가견이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알 수 없습니다. 불교에 니까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니까야는 빠알리대장경을 줄여서 말한 것입니다. 빠알리어로 기록된 율장, 경장, 논장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원음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의 직설이라고도 합니다. 동아시아불교에서는 아함경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을 중시하는 중국불교에서는 가장 하위의 경전으로 취급했습니다.
니까야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남방불교가 소개 되고 나서부터입니다. 한국불교에 한계를 느낀 자들이 미얀마 등 테라와다불교국가에서 수행법을 배워 오고 나서부터 입니다. 또 빠알리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나서부터 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니까야라는 말이 회자 되기 시작한 것인 불과 이십여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 ‘니까야가 뭐꼬?’라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빠알리니까야에 근거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생활화 되어 있기 때문에 매일 니까야를 보고 있습니다. 수십권에 달하는 방대한 니까야는 정보의 보고입니다. 모르고 살았던 것을 일깨워 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청정해져서 니까야를 접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수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주변에 니까야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소개로 그칩니다. 아직 인연이 안된 것입니다.
인연 없는 중생의 대명사 우빠까
인연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말을 물가로 데려 갈 수 있지만 마시는 것은 말이 합니다. 니까야를 소개 시켜 주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인연 있는 자만이 가능합니다. 우빠까(Upaka)도 그랬습니다.
흔히 우빠까에 대하여 인연없는 중생의 대명사로 간주합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고 난 후 처음으로 가르침을 펼치려 유행을 떠 났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 우빠까입니다. 우빠까는 부처님의 상호를 보고서 보통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감관이 맑고 청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등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부처님은 ‘나는 일체지자입니다’ ‘나는 무한승리자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경에서는 “벗이여, 그럴지도 모르겠지요”라고 말하고 머리를 흔들고 샛길로 사라졌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율장대품에서 전재성박사는 반신반의 하는 우빠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각주해 놓았습니다.
Evaṃ vutte upako ājīvako "huveyyapāvuso"ti vatvā sīsaṃ okampetvā ummaggaṃ gahetvā pakkāmi.: B. M. Barua의 The ājīvikās. P, 50에 따르면, ‘그럴지도 모르지(huveyya)’라는 것은 사명외도의 표현 방식으로 빠알리어로 인정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러겠지(bhaveyya)’의 방언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긍정적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머리를 흔들고(sīsaṃ okampetvā)’도 ‘가로세로로 흔들고’가 아니라 ‘위아래로 끄덕이고’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Bd.IV.12에 따르면, 이 문장은 우빠까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비구에게서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림에 대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ThigA.220; Pps.II.189에 따르면, 그 후에 우빠까가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에 빠지자 다시 부처님에게 돌아와 승단에 들어와서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성취한 것으로 보아 분명한 것이다.(율장대품 96번 각주, 전재성)
우빠까는 부처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럴지도 모르겠지요’라 했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B. M. Barua의 The ājīvikās. P, 50’를 근거로 하여 긍정적인 표현이라 했습니다. 반신반의 하는 것이지만 긍정에 더 가깝게 보는 것입니다. 우빠까는 부처님의 말에 긍정 했지만 따라 가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흔들고 샛길로 사라진 것입니다. 이때 ‘고개를 흔들다’는 좌우위아래로 반신반의 하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끄덕인 것이라 합니다. 반신반의 하지만 긍정에 가까운 반신반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불연에서는 ‘ “도반이여,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고서 머리를 흔들면서 다른 길로 떠났다.’(M26)라고 번역했습니다. 빅쿠보디는 ‘ ‘May it be so, friend.’ Shaking his head, he took a bypath and departed.’라고 번역했습니다. 두 번역 ‘머리를 흔들었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이구절과 관련하여 빅쿠보디는 “According to MA, Upaka thereafter fell in love with a hunter’s daughter and married her. When his marriage turned out to be an unhappy one, he returned to the Buddha, entered the Sangha, and became a non-returner. He was reborn in the Aviha heaven, where he attained arahantship.”(MDB, 310번 각주)라 되어 있습니다. 우빠까의 이후에 대한 행적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테리가타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후 우빠까의 운명은?
우빠까는 어쩌면 부처님의 첫번째 제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준비 안된 수행자였습니다. 우연하게 부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가르침을 받아 들일 인연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인연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을 한번 뵈었다는 그 사실이 또 인연이 되어 필연이 된 것입니다. 비록 그 때 당시에는 인연이 익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지요?’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샛길로 사라졌지만 멋 훗날 부처님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인연없는 중생의 대명사 우빠까는 율장대품(Vin.I.8)과 맛지마니까야(M26)에서 딱 한번 등장합니다. 부처님이 일체지자 무한승리자라 했을 때 이를 반신반의하며 샛길로 사라진 우빠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테리가타에 등장합니다. 우빠까의 처가 읊은 게송의 인연담에 그 후의 우빠까의 행적이 실려 있습니다. 테리가타 ‘짜빠 장로니의 시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짜빠: 전남편 우빠까]
“예전에 지팡이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지금은 사냥꾼이다.
욕망 때문에 무서운 수렁에 빠져
나는 피안으로 갈 수 없다.”(Thig.291)
짜빠(Capa)는 우빠까의 아내입니다. 우빠까는 이전에 아지비까교도의 수행자였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사나운 소들이나 개들 등을 돌보기 위해 지팡이를 손에 들고 유행했습니다. 사냥꾼의 딸 짜빠와 결혼하고 난 후에는 고기를 나르는 허드랫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빠까는 처자식을 가진 것에 대하여 ‘욕망 때문에 (āsāya)’라 합니다. 감각적 욕망의 수렁과 견해의 수렁에 빠져 사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우빠까와 짜빠의 인연담
부처님의 첫번째 제자가 될 뻔 했던 우빠까는 “그럴지도 모르겠지요”라며 머리를 끄덕끄덕 흔들며 샛길로 사라졌습니다. 이후 행적에 대하여 테리가타 짜파 장로니의 이십연시의 인연담에 실려 있습니다. 주석에 실려 있는 인연담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Cāpa: ThigA.209에 따르면, 그녀도 이전의 부처님들 아래서 덕성을 닦고 이러저러한 생에서 해탈을 위해 착하고 건전한 것을 쌓으면서 점차로 해탈의 자량을 키워서 고따마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방가하라(vaṅgahāra) – 마가다국의 남쪽 – 지방의 한 사냥꾼 마을에 원로 사냥꾼의 딸로 태어나 ‘짜빠’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때 사명외도 우빠까(Upaka)가 보리수좌로부터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바라나씨 시로 가는 스승을 만나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색은 지극히 맑고 깨끗합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또 누가 가르침을 설합니까?’라고 묻자, 세존께서는 ‘나는 모든 것에서 승리한 자, 일체를 아는 자, 모든 상태에서 오염되는 것이 없으니 일체를 버리고 갈애를 부수어 해탈을 이루었다. 스스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하겠는가.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그와 유사한 것도 없고, 천상과 인간의 세계에서 나와 견줄만한 것이 없다. 나는 참으로 세상에서 거룩한 님, 위없는 스승이고, 유일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로서 청량한 적멸을 얻었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하여 까씨 성으로 간다. 눈 먼 세계에서 불사의 북을 두드리리라.’라고 말했다.
스승께서 자신이 일체지자인 부처님이 되어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실 때에 그는 청량한 믿음의 마음을 내었으나, ‘벗이여, 그럴지도 모르지. 그대는 무한승리자가 될 만합니다.’라고 말하고 샛길로 간 뒤에 그곳을 떠나 방가하라 지방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한 사슴사냥꾼의 마을에서 지냈다. 거기서 한 우두머리 사슴사냥꾼이 그에게 시중을 들었다. 그가 어느 날 멀리 사슴사냥을 가면서 ‘우리의 거룩한 님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라고 자신의 딸 짜빠에게 시키고 아들들과 형제들을 데리고 갔다.
그의 딸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사명외도 우빠까가 탁발할 때에 사냥꾼의 집에 갔는데, 시봉하기 위해 다가온 짜빠를 보고, 탐욕에 사로잡혀,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누어준 탁발음식을 가지고 처소로 돌아와서 음식을 한 쪽에 내버리고, ‘내가 짜빠를 얻는다면, 살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음식을 먹지 않고 누웠다.
칠일 째 사슴사냥꾼이 와서 딸에게 ‘우리의 거룩한 님에게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하루는 이곳에 왔는데,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슴사냥꾼은 그의 처소를 찾아가서 ‘존자여, 어디가 불편합니까?’라고 발을 주무르며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신음하며 돌아누웠다. 그는 ‘존자여,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빠까는 한 법문으로 자신의 의도를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존자여, 당신은 어떤 기술이라도 압니까?’ ‘아니요, 모릅니다.’ ‘존자여, 어떠한 기술도 모르면서 가정에서 살 수 없습니다.’ 우빠까는 말했다. ‘저는 아무 기술도 모르지만, 당신들을 위해서 고기를 운반하고 고기를 팔 수 있습니다.’ 사냥꾼은 ‘그것은 우리에게는 맞습니다.’라고 말하고, 그에게 외투를 주었다. 자신의 친구집에 며칠 살게 하고 어느 날 집으로 데려와 딸을 주었다. 그후 때가 되자 함께 살면서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그 아이를 수밧다라고 불렀다.
짜빠는 아이가 울 때면, ‘우빠까의 아들, 사명외도의 아들, 고기운반자의 아들, 울지마라, 울지마라.’라고 아들을 달래면서 우빠까를 비웃었다. 우빠까는 ‘짜빠여, 그대는 나에게 보호처가 없다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나에게는 무한승리자인 친구가 있다. 나는 그에게 가겠다.’라고 말했다. 짜빠는 ‘이것이 그를 괴롭힌다.’라는 것을 알고 거듭해서 그와 같이 말했다.
그는 어느 날 그녀가 그와 같이 말하자 화가 나서 떠나려고 준비했다. 그녀가 이러저러한 말을 했지만, 이끌리지 않고 설득되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고 서쪽을 향해 떠나갔다. 세존께서는 그때 싸밧티 시의 제따바나 숲에 계시면서 수행승들에게 ‘오늘 ‘무한승리자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여기 와서 묻는 자가 있으면, 내 앞으로 데려오라.’고 말했다.
우빠까는 ‘어디에 무한승리자가 있을까?’라고 여기저기 물으면서, 점차로 싸밧티 시에 가서 정사로 들어가 정사의 가운데 서서 ‘어디에 무한승리자가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수행승들은 그를 세존께 인도했다. 그는 세존을 뵙고 ‘세존이시여, 저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 나는 알고 있다. 그대는 그동안 어디서 살았는가?’ ‘세존이시여, 방가하라 지방입니다.’ ‘우빠까는 그대는 출가하기에 나이가 들었다.’ ‘세존이시여, 출가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한 수행승에게 ‘수행승이여, 오라. 이 분을 출가시켜라.’라고 명했다.
그 수행승을 출가시켰다. 그는 출가하여 스승에게 명상주제를 받아서 수행에 전념하면서 머지않아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확립하고 죽어서 ‘성공으로 타락하지 않는 신들의 하느님의 세계(avihadeva: 無煩天)’에 태어나서 태어나는 순간에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성공으로 타락하지 않는 신들의 하느님의 세계’에 태어난 일곱 명이 거룩한 경지를 얻었는데, 그는 그 가운데 한 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 이와 같이 설해졌다. ‘일곱 수행승이 해탈하여, 성공으로 타락하지 않는 신들의 하느님의 세계에 태어났다. 탐욕과 성냄을 완전히 없애고 세상에 대한 애착을 건너갔다.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땅인 진흙의 늪을 건넌사람은 누구이며 사람의 몸을 버리고 하늘의 멍에마저 내려놓은 자는 누구인가? 우빠까와 팔라간다와 세 번째로 뿍꾸싸띠와 밧디야와 칸다데바와 바후랏기와 삥기야는 사람의 몸을 버리고 하늘의 멍에마저 내려놓았다.’(SN.I.35,60)
한편 우빠까가 떠나가자, 절망한 짜빠는 아이를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이전에 우빠까가 간 길을 따라서 싸밧티 시로 가서 수행녀들에게 출가하여 통찰수행을 닦아 길을 실천하며 거룩한 경지를 얻고 나서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면서 예전에 우빠까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언급했던 내용을 감흥어린 싯구로서 읊으면서 아래의 스물한 편의 시(Thig.291-311)를 읊었다. (테리가타 862번 각주, 전재성님역)
우빠까에게는 시절인연이 필요했다
우빠까와 짜빠의 인연담을 보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사명외도 우빠까가 시절인연이 되지 않아 부처님이 ‘나는 무한승리자이다’라 했지만 ‘그럴지도 모르지요’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샛길로 샛습니다. 이후 우빠까의 행적을 보면 사냥꾼의 딸과 결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욕망이 발동되어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결혼입니다. 이는 우빠까가 읊은 게송 “욕망 때문에 무서운 수렁에 빠져” (Thig.291)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빠까는 사냥꾼의 딸의 미모에 빠져 수행자의 본분을 버리고 사냥꾼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살아갔습니다. 수행자에서 고기운반자라는 천한 직업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단지 감각적 욕망 때문에 마치 빛에서 어둠의 세계로 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우빠까의 추락에 대하여 짜빠마저 비웃었습니다. 짜빠가 둘 사이에 난 아들을 달랠 때 “우빠까의 아들, 사명외도의 아들, 고기운반자의 아들, 울지마라, 울지마라.”라고 달랬기 때문입니다.
우빠까는 자신을 비웃는 짜빠에게서 떠났습니다. 욕망의 씨앗인 아들도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어찌 보면 대단히 무책한 것 같습니다. 어는 날 훌쩍 떠나 버린 것입니다. 무한승리자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한번 맺은 인연을 찾아 간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인연이 없었지만 이제서야 시절인연이 된 것입니다.
마침내 우빠까는 무한승리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출가하여 아나함이 되었는데 죽어서 무정천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SN.I.35,60’에 이름이 나온다고 합니다. 찾아 보니 상윳따니까야 ‘가띠가라의 경(S1.50)’에 우빠까의 이름이 나옵니다. 각주에서는 부처님이 초전법륜을 위해 가야로 가는 도중에 만난 그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빠까는 율장대품과 맛지마니까야, 상윳따니까야에 간단히 소개 되어 있습니다. 대개 인연 없는 중생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맺은 인연은 필연이 된 듯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우빠까는 길에서 만난 무한승리자를 항상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욕망으로 결혼 했지만 가정생활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 이전 수행자는 다시 수행자로 되돌아갑니다. 재출가한 것입니다. 마치 영화 ‘삼사라(Samsara, 2001)’를 보는 듯 합니다.
우빠까는 인연 없는 중생이 아닙니다. 다만 시절인연이 필요 했던 것입니다. 탐욕과 성냄과 미혹으로 가득찬 외도수행자에게 무한승리자를 길에서 만났지만 인연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혼하여 처자식을 두게 되었을 때, 세상에서 천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 가게 되었을 때, 아내에게 비웃을 당했을 때 비로서 욕망에 따른 삶이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빠까에게는 인연이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짜빠 장로니의 이십연시를 보면
테리가타가 장로니들의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긴 하지만 우빠까의 아내 짜빠와 관련된 이십연시에서는 우빠까의 게송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에서 갈등에 대한 것입니다. 나중에 비구니교단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우빠까의 아내 짜빠의 이십연시에 우빠까가 마치 보조 출연한 것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짜빠 장로니의 이십연시를 모두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짜빠: 전남편 우빠까]
“예전에 지팡이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지금은 사냥꾼이다.
욕망 때문에 무서운 수렁에 빠져
나는 피안으로 갈 수 없다.”(Thig.291)
[짜빠: 전남편 우빠까]
“내가 아주 반해 있다고 생각하며
‘짜빠’는 아들을 행복하게 키우고 있다.
‘짜빠’의 속박을 끊고
나는 다시 출가하고 싶다.” (Thig.292)
[짜빠]
“위대한 영웅이여, 나를 화내게 하지 마시오.
위대한 성자여, 나를 성내게 하지 마시오.
분노에 사로잡힌 자에게 청정이 없으니,
어찌 고행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Thig.293)
[짜빠: 전남편 우빠까]
“나는 날라 마을을 떠나겠습니다.
누가 이 날라 마을에 살겠습니까?
가르침에 입각하여 사는 수행자들을
여인들은 여인의 모습으로 속박한다.” (Thig.294)
[짜빠]
“깔라여, 오시오. 돌아오시오.
예전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깁시다.
나는 그대에게 복종하고,
나의 친지들도 또한 복종합니다.” (Thig.295)
[짜빠: 전남편 우빠까]
“짜빠여, 그 사분지 일이라도
그대가 말한 대로라면,
그대에 대한 탐욕에 물든 남자에게
그것은 실로 굉장한 것입니다.” (Thig.296)
[짜빠]
“깔라여, 산봉우리 위에 있는
가지가 뻗은 꽃핀 아카시아 나무와 같고,
활짝 핀 석류수 넝쿨과 같고,
섬 한 가운데 빠딸리 꽃나무와 같으니.” (Thig.297)
[짜빠]
“사지에 노란 전단향을 바르고
최상의 바라나씨 산의 의상을 걸친,
아름다운 자태의 저를
당신은 어째서 버리고 가려합니까?” (Thig.298)
[짜빠]
“새사냥꾼이 새를
사로잡기를 원하는 것처럼,
그대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를 사로잡지 않을 것입니까?” (Thig.299)
[짜빠]
“깔라여, 이 나의 아이의 열매는
그대에 의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아이가 딸린 저를
당신은 어째서 버리고 가려합니까?” (Thig.300)
[짜빠: 전남편 우빠까]
“지혜로운 님들은 자식을 버리고
이어서 친지를 버리고 그리고 재산을 버린다.
코끼리가 결박을 자르듯,
위대한 영웅은 결박을 자르고 출가한다.” (Thig.301)
[짜빠]
“만약에 당신의 이 아이를
이제 몽둥이나 칼로
땅바닥 위에 때려눕힌다면,
아들에게 대한 슬픔 때문에 가지 않겠지요.” (Thig.302)
[짜빠: 전남편 우빠까]
“가련한 여인이여, 만약에
아이를 승냥이나 개에게 던지더라도,
아이 때문에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지 못할 것이오.” (Thig.303)
[짜빠]
“이제 그대에게 행복이 있기를!
그대는 어디로 가려합니까?
어떠한 마을이나 읍내나
도시나 왕도로 가려합니까?” (Thig.304)
[짜빠: 전남편 우빠까]
“예전에 무리의 우두머리로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라고 생각했으니,
나는 마을에서 마을로
도시에서 왕도로 유행했었다.” (Thig.305)
[짜빠: 전남편 우빠까]
“그러나 세존이신 부처님께서
네란자라 강변에서
일체의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
뭇삶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나는 그의 앞으로 가겠다.
그가 나의 스승이 될 것이다.” (Thig.306)
[짜빠]
“이제 세상의 수호자에게
위없는 님께 예경을 전해주시오.
오른 쪽으로 돌고나서
그대가 공양을 바쳐 주시오.” (Thig.307)
[짜빠: 전남편 우빠까]
“짜빠여, 그대가 말한 대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것이오.
세상의 수호자에게
위없는 님께 그대의 예경을 전하고
오른 쪽으로 돌고나서
내가 공양을 바치겠소.” (Thig.308)
[짜빠: 송출자]
“그래서 네란자라 강을 향해
‘깔라’는 떠났다.
그는 올바로 깨달은 님께서
불사(不死)의 길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Thig.309)
[짜빠: 세존]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초월
괴로움의 지멸로 이끄는
고귀한 여덟 가지의 길이 있다.” (Thig.310)
[짜빠: 송출자]
“그의 두 발에 예경하고
오른쪽으로 돌고나서
‘짜빠’의 예경을 전하고
그는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세 가지 명지가 이루어졌고
깨달은 님의 교법이 실현되었다.” (Thig.311)
긴 게송을 보면 우빠까와 짜빠, 그리고 송출자와 부처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부니까에서 볼 수 없었던 우빠까의 이후 삶에 대한 행적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게송에서 ‘깔라여’라 한 것은 우빠까의 얼굴이 검기 때문입니다. 빠알리어 kāḷa는 ‘black; dark. (m.), black colour’를 의미합니다. 신체적 특징에 대하요 별칭으로 부르는 것인데 마치 ‘깜둥아’라며 경멸하는 듯 합니다.
우빠까는 자신을 비웃는 아내 짜빠의 곁을 떠나 부처님을 찾아 갔습니다. 남편이 처자식을 두고 떠나자 짜빠 역시 그 길을 따라 출가하게 됩니다. 테리가타는 장로니의 게송이기 때문에 짜빠는 비구니 교단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영화 삼사라(Samsara,2001)에서
마치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우빠까와 짜빠의 이야기를 보면 영화 삼사라를 떠 올리게 합니다. 삼사라에서 주인공은 재출가했습니다. 어려서 절에 맡겨져 자란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감각적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동굴에서 수 년간 명상수행을 했지만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 여인을 보고 반하여 마침내 환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만류에도 환속하게 된 것은 “깨우치기 위하여 몰라야 될 것도 있지만...포기 하기 위하여 알아 둘 것도 있죠”라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환속이유로서 ‘포기하기 위하여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욕망을 욕망으로 다스리겠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환속하여 예쁜 아내와 함께 아들 하나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속의 사람들의 평균치 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녀를 강간하는가 하면 저울을 속이는 등 오계를 어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자신이 절에 맡겨진 나이와 비슷했을 때 재출가 하게 됩니다.
영화 삼사라(Samsara,2001)
주인공은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내와 아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또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내와 자식을 버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게송에서는 “지혜로운 님들은 자식을 버리고 이어서 친지를 버리고 그리고 재산을 버린다. 코끼리가 결박을 자르듯, 위대한 영웅은 결박을 자르고 출가한다.” (Thig.301)라는 게송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한 것은 괴로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왕자의 지위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출가했습니다. 그런데 우빠까는 단지 아내가 싫어서 출가한 듯 합니다. 아내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삶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기억을 떠 올려 무한승리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에게서 안식처를
우빠까는 부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인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남아 있는 오염원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인연을 막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전에 무리의 우두머리로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라고 생각했으니”(Thig.305)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라고 생각한 것’은 주석에 따르면 “악을 제거하지 못했는데, 악을 제거한 자처럼 생각하고”(Thig.A.214)의 뜻입니다. 마치 깨달음을 사칭하는 자처럼 아지비까 교도의 우두머리로 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위선적인 태도가 부처님 첫번째 제자가 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한 듯 합니다.
우빠까는 멀고 먼 긴 길을 돌아 마침내 부처님에게 왔습니다. 그 사이에 처와 자식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욕망으로 쟁취했으나 나중에는 ‘뭐, 별거 아니네’라며 시큰둥 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단맛과 쓴맛, 신맛 등 온갖 것을 다 맛본 것입니다. 인생이 풀리지 않자 그제서야 무한승리자가 생각난 것입니다.
우빠까가 재출가를 감행한 것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자식을 두고 집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과감하게 박차게 된 동기는 예전의 무한승리자를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게송에서 “나는 그의 앞으로 가겠다. 그가 나의 스승이 될 것이다.” (Thig.306)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빠까는 부처님과의 처음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다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빠까는 인연없는 중생이 아닙니다. 단지 시절인연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인생에서 온갖 것을 다 맛 본 그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부처님을 의지처로 한 것입니다. 부처님에게서 안식처를 얻은 것입니다. 그의 아내 짜빠도 부처님에게서 안식처를 얻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2017-12-2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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