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쾌는 어디서
대체 이 불쾌는 어디서 오는 걸까?
전화 한통과 문자 메세지가 전부입니다.
단지 문의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쾌가 하루종일 갑니다.
불안이 엄습합니다.
문자를 보냈는데 답신이 없습니다.
‘혹시 삐진 것은 아닐까?’라며
온갖 상상을 다 해봅니다.
불쾌와 불안, 혐오와 초조가 교차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사람과의
호불호(好不好)의 관계에 따른 것입니다.
불쾌함은 싫어함에 기반하고,
불안함은 좋아함에 기반합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 좋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불쾌가 일어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짜증내면 불안해집니다.
그 사람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좋아함, 싫어함, 유쾌함, 불쾌함,
아련함, 애잔함 등 순간적 이미지입니다.
한번 형성된 이미지는
여간해서 바꾸기 어렵습니다.
한번 아닌 것은 아닙니다.
아닌 것을 ‘아닌 것이 아니다’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부처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유신견(有身見)이 있습니다.
오온을 자아와 동일시 하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느낌이 생겨 났을 때
‘이 느낌은 나의 것이고,
느낌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느낌이 있고,
이 느낌은 나의 자아이다.’
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좋아함, 불쾌함, 유쾌함, 아련함,
애잔함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느낌을 자아로 여기는 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불쾌해도 내가 불쾌한 것이고,
불안해도 내가 불안한 것입니다.
자아가 개입 되어 있는 한
불쾌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분노에서 자애로 극적인 전환입니다.
지혜를 가진 자만이 가능합니다.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이라도
무상을 지각하는 자만이 가능합니다.
2018-01-1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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