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이꺼 자존심이 뭐길래
그 사람이 화를 냅니다.
화나니까 화를 낸다고 합니다.
배고프니까 밥을 먹는 것이고
졸리니까 잠을 잔다고 합니다.
본능에 충실한 삶입니다.
화나는데 화 낼 줄 모른다면
바보천치이거나 아라한 일 것입니다.
바보도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알고
아라한도 졸리면 잘 줄 압니다.
아기를 천진불(天眞佛)이라 합니다.
모욕당해도 수모당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자아관념이 없는 아기는 부처님입니다.
아기가 자라서 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되면 화를 냅니다.
자아개념이 생겨난 것입니다.
아라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모욕을 주어도 수모를 당해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자아관념이 소멸 된 자에게
분노는 명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원한은 원한으로 갚아지지 않습니다.
원한을 내려 놓을 때 원한이 사라집니다.
화 낸다고 하여 해결 되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는 풀리겠지만
원한의 감정의 골만 깊어집니다.
화내는 이에게 화내지 말라 합니다.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감정에 충실 했을 때, 본능에 충실 했을 때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되어 버립니다.
화내는 것으로 화가 사라진다면
현자들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근심한다고 근심이 사라진다면
슬기로운 자들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슬퍼한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진다면
지혜로운 자들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분노에는, 근심에는, 슬픔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성냄을 뿌리로 하는 잠재성향입니다.
천진불같은 아기에게도
탐욕의 잠재성향, 성냄의 잠재성향,
어리석음의 잠재성향이 남아 있습니다.
자아가 성장함에 따라 질풍노도(疾風怒濤)합니다.
도인(道人)과 돌인(乭人)은 겉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모욕과 수모를 겪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감정에 충실한 삶,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면
돌인, 또라이가 되기 쉽습니다.
그까이꺼 자존심이 뭐길래, 화내서
화가 사라진다면 화가 없어져서 좋겠네.
도대체 내가 뭐길래, 근심해서
근심이 사라진다면 근심이 없어져서 좋겠네.
그까짓거 내가 뭐길래, 슬퍼하여
슬픔이 사라진다면 슬픔이 없어져서 좋겠네.
2018-01-2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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