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공양이란 무엇인가? 꾸시나라 열반당앞에서
(인도성지순례 16)
인도성지순례팀은 쿠시나가르로 향했습니다. 2018년 1월 4일 오전 일찍 바이샬리에서 대림정사 순례를 마친 원담스님과 함께 하는 진주선원순례팀의 다음 여정은 쿠시나가르 열반지입니다. 바이샬리에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쿠시나가르는 230키로미터의 거리로서 자동차로 4시간걸립니다.
케사리아(Kesaria) 스투파
쿠시나가르로 이동 중에 케사리아(Kesaria) 스투파가 차창밖으로 보였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할 때 삭발처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지로 가는 여정에서 릿차비족들과의 작별지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님이 베살리를 떠나 열반지로 향할 때 릿차비족들은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임을 알았습니다. 릿차비족들은 마지막 길을 아쉬워하며 계속 따라 갔습니다. 부처님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강을 만들고 발우를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릿차비족 사람들은 발우를 봉헌한 스투파를 건립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전체둘레가 427미터이고 높이가 46미터 되는 거대한 스투파입니다.
돌아 오지 않는 강, 간다크강(Gandak River)
부처님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릿차비사람들에게 더 이상 따라 오지 못하도록 신통으로 강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케사리아스투파에서 남서쪽으로 사오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강이 있습니다. 위성지도로 확인해 보니 ‘간다크강(Gandak River)’입니다.
간다크강을 경계로 하여 오르쪽은 릿차비인들이 사는 곳이고, 강건너편은 열반지로 가는 길입니다. 릿차비인들은 저 강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 오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일까 산치대탑의 부조를 보면 릿차비인들이 강을 건너 가는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눈에 대고 우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강은 이별의 상징입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것을 죽음으로 본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도 보시하며 베풀고 산 사람에 대하여 “지옥의 베따라니 강을 뛰어넘어, 죽을 때 하늘나라로 간다네.”(S1.33)라 하여 강을 건너는 것을 죽음으로 묘사했습니다. 기독교 찬송가에도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요단강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간다크강을 건넜습니다. 다시는 돌아 오지 않는 강을 건넌 것입니다. 그런데 간다크강은 무척 큰 강입니다. 강폭도 넓고 수량도 풍부하여 바다같이 넓습니다. 건기임에도 강물이 많은 것은 아마 발원지가 히말라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강 한켠에서 화장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차창밖에서 화장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어서 연기가 새까맣게 하늘로 치솟습니다. 별도의 화장시설이 있어서 화장 하는 것이 아니라 강변이 화장터로 사용되는 듯 합니다. 강에서 화장하는 것은 인도의 전통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강 저 건너편으로 보내는 듯합니다.
왜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들었을까?
쿠시나가르는 불교 사대성지 중의 하나입니다. 탄생지 룸비니, 정각지 보드가야, 초전지 사르나트와 더불어 쿠시나가르는 열반지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들었을까?
쿠시나가르는 초기경전에서는 꾸시나라(kusināra)라 합니다. 부처님 당시 꾸시나라는 변방이었습니다. 이는 디가니까야 ‘마하쑤닷싸나의 경’에서 아난다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 작은 도시, 불모의 도시, 변방의 도시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지 마십시오.”(D17)라고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작은 도시, 불모의 도시, 변방의 도시라고 말하지 말라.”라 하시면서 전생에 보살로 살았을 때 이곳 꾸시나라와 인연이 있었음을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아난다여, 나는 여섯 번이나 이 지역에서 몸을 버렸다. 그리고 나는 일곱 번때로 전륜왕, 정의로운 법왕, 사방을 정복한 자, 일곱 가지 보물을 지닌 자로서 몸을 버렸다. 그러나 아난다여, 나는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하느님들의 세계,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몸을 버릴 곳을 찾지 못한다.”(D17)
부처님은 마가다나 꼬살라의 수도에서 열반에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부처님의 탄생지나, 정각지, 초전지에서 열반에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변방에서 열반에 든 것은 전생에 보살로 살았을 때 일곱 번이나 이곳 꾸시나라에서 몸을 버렸기 때문이라 합니다. 여덟 번째인 현생에서도 이곳 꾸시나라에서 몸을 버릴 것이라 했습니다.
꾸시나라에서 몸을 버린 세 가지 이유
부처님이 꾸시나라를 열반지로 선택한 것은 전생의 인연도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우다나 주석을 인용하여 부처님이 꾸시나라에서 몸을 버리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Because it was the proper venue for the preaching of the Mahā-Sudassana Sutta; (2) because Subhadda would visit him there and, after listening to his sermon, would develop meditation and become an arahant while the Buddha was still alive; and (3) because the brahman Dona would be there, after the Buddha’s death, to solve the problem of the distribution of his relics (UdA.402f; DA.ii.573f6).
부처님이 꾸시나라에서 몸을 버린 것은 첫째는 마하쑤닷싸나의 경에 실려 있는 대로이고, 두번째는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 수밧다를 그곳에서 교화하기 위한 것이고, 세번째는 부처님 사후에 사리분배를 책임질 바라문 도나 존자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열반당을 향하여
꾸시나라는 부처님에 의하여 열반지로 선택되었습니다. 오늘날 꾸시나라는 탄생지 룸비니, 정각지 보드가야, 초전지 사르나트와 함께 열반지로서 전세계 불교인들이 찾는 사대성지중의 하나입니다. 진주선원순례자들은 미리 준비해온 황금빛깔의 가사를 이운하여 열반당으로 향했습니다.
둥그런 돔 모양의 열반당을 향하는 순례자들은 분위기가 무거웠습니다. 탄생지, 정각지, 초전지와 달리 열반지로 향하는 불자들 얼굴은 숙연합니다. 그러나 이날 꾸시나라의 날씨는 매우 맑았습니다. 늘 안개 낀 듯 뿌연 하늘만 바라 보다 푸른 하늘에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일까 공원처럼 잘 가꾸어진 유적지 공원에는 청춘남녀들이 잔디밭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가족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룩하고 평안한 모습
순례자들은 둥그런 돔 모양의 열반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오른쪽으로 하여 누워 있는 열반상을 보았습니다.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본 것과 다릅니다. 현지에서는 시각을 포함하여 오감으로 접하고 분위기로 보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은 거룩하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수 많은 와불상 을 보았지만 이곳 쿠시나라 열반상만 못합니다. 2013년 중국 돈황에서 거대한 열반상을 보았지만 역시 이곳만 못합니다. 마치 불상중에는 보드가야 대탑안에 있는 금강좌불이 최고이듯이, 이 세상에서 꾸시나라 와불상만한 것이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기도
순례자들은 열반상을 세 번 돌았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황금빛깔의 가사를 공양했습니다. 가사를 공양하고 열반상 앞에 앉아 예경했습니다. 빠알리 예경문과 관련된 경을 독송했습니다. 예경은 오래 이어졌습니다. 정과 성을 다하는 예경에 어느 불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예경이 끝난 후에 십분 가량 입정했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세상도
사람들은 부처님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열반’입니다. 그것도 빠리닙바나(Parinibbāna)라 하여 ‘반열반(般涅槃)’ 또는 ‘잔여가 없는 완전한 열반’이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입니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향하듯이, 모든 가르침은 열반으로 향합니다. 그런 열반에 대하여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Dhp 204)라 하여 열반이야말로 궁극적 행복이라 했습니다.
열반은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은 있어도 열반에 들어간 자는 없다고 합니다. 누군가 ‘내가 열반을 체험했다’라는 말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열반을 체험한 자가 아닙니다. 지각과 느낌이 소멸된 상태에서 열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어야 세상이 있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세상도 없습니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세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지각하고 느낄 수 있는데 마음의 대상이 없어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세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숫따니빠따에서 학인 아지따는 부처님에게 “명색은 어떠한 경우에 소멸합니까?”라며 물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의식이 없어짐으로써, 그 때에 그것이 소멸합니다. (Viññāṇassa nirodhena etthetaṃ uparujjhati)”(Stn.1037)라고 답했습니다.
의식(viññāṇa), 즉 마음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정신-물질(nāma-rūpa: 名色)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번뇌가 다한 성자는 재생의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임종순간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나지 않아 새로운 태어남이 없습니다.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가는 가르침
부처님은 정각을 이룬 후 45년 동안 설법했습니다. 그러나 정각을 이룬 다음에 진리를 설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에 대하여 욕망의 세계에 사는 자들이 조건발생적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역류도(逆流道)입니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가르침입니다. 욕계에서 모두 욕망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욕망을 내려 놓아라’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이해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Vin.I.5)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자 악마 빠삐만이 나타났습니다. 악마 빠삐만은 “올바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지금 완전한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바로 지금 완전한 열반에 드실 시간이 되었습니다.”(D16)라며 재촉하듯이 말했습니다. 악마의 권유대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면 불교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라한의 삶과 죽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아라한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는 테라가타 “나는 죽음을 바라지도 않고 나는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Thag.606)라 했습니다. 이것이 아라한의 인생관입니다. 아라한은 다만 “나는 고용된 자가 보수를 바라듯, 나의 시간을 기대한다.”(Thag.606)라 했습니다. 월급생활자가 월급날자를 기다리듯이 아라한도 완전한 열반의 순간만을 기다립니다.
번뇌가 모두 소멸된 자에게 있어서 삶은 덤이나 다름 없습니다. 나머지의 삶은 행복입니다. 아라한은 유여열반의 삶이기 때문에 법구경에서와 같이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Dhp.204)라 하여 항상 최상의 행복한 상태에 있습니다.
아라한은 죽지 않습니다. 오온에 대한 자아의 관념이 떠나 버린 아라한에게 있어서 육체의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오온을 내것이라고 집착하는 자에게 오온의 죽음은 죽음이지만, 오온의 집착을 놓아 버린 무아인자에게 오온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불사(不死)입니다.
불사인자에게는 당연히 태어남도 없습니다. 완전한 열반에 들면 태어남도 죽음도 시설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번뇌를 부순 거룩한 자, 즉 아라한에 대하여 “나의 삶도 축복이고 나의 죽음도 축복이다.”(Ud.45) 라 했습니다.
완전한 열반을 유예한 이유
만약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후에 악마 빠삐만의 말대로 곧바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오늘날까지 가르침은 전승되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가르침을 펼치시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르침의 수레바퀴가 오늘날까지 굴러 왔습니다. 부처님은 유혹하는 악마 빠삐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빠삐만이여, 나의 수행승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훈련되고 두려움이 없고 속박에서 벗어나 안온을 성취하고, 많이 배우고 진리를 수호하고,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고 바른 방법으로 실천하며 가르침을 맞게 행하며, 스스로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그것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시설하고 확립하고 개현하고 분석하여 명확히 밝히고 다른 사람들과의 논쟁을 여법하게 잘 논박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가르침을 설하기까지 나는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D16)
부처님은 사부대중, 즉 수행승들, 수행녀들, 남자재가신도들, 여자재가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기 까지는 열반에 들어 가지 않을 것임을 천명합니다. 정각후 곧바로 완전한 열반에 들 수도 있지만 완전한 열반을 유예한 것입니다. 그 유예기간은 45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도선언에서
부처님은 45년 동안 길에서 보냈습니다. 이는 위대한 보살정신입니다. 전생에서도 보살로 한량없는 세월동안 보살도를 행하며 살았는데 정각을 이루고 나서도 보살행을 하고 산 것입니다. 마침내 몸을 버릴 때가 되었을 때 한적하고 외진 변방에서 최후를 맞이 했습니다. 부처님의 45년 일생은 전도선언대로 입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이 60명 되었을 때 전도선언을 했습니다. 전도선언문을 보면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S4.5)라 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명령입니다. 누구든지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가르침을 널리 알려야 하는 의무를 말합니다. 가르침이 좋은 것이라면 자신 혼자서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런 바탕에는 자비심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아는 자라면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알리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깊은 산중에서 신선처럼 산다면 그는 가르침을 제대로 모르는 자이기 쉽습니다.
청정한 삶(Brahmacaria)을 살아야
가르침을 알았을 때 자연스럽게 자비의 마음을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선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이 핵심일지 모릅니다.
전도선언에서 이어지는 구절은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삶을 살아라.”입니다. 부처님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훌륭한 가르침을 설하라고 당부하면서 ‘청정한 삶(Brahmacaria)’을 강조했습니다. 전도선언에서 청정한 삶이 가장 핵심입니다. 청정한 삶을 살아 모범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청정한 삶을 살았을 때 자연스럽게 전도가 될 것입니다. 청정한 모습을 보고서 관심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완전한 열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라한 선언’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청정한 삶의 완성입니다.
청정한 삶을 산 자는 더 이상 윤회하지 않습니다. 오온의 죽음과 함께 불사(不死)가 되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갑니다. 부처님은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부처님이 만약 완전한 열반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영원히 살고 있다면 완전한 열반이라는 말은 시설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반당 앞 살라(Sāla)나무
부처님의 열반지 꾸시나라에는 살라(Sāla)나무가 있습니다. 열반당을 들어 가는 입구에 커다란 살라나무 두 구루가 있습니다. 살라나무는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 때 의지하던 나무입니다. 이는 부처님이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열반당 앞에 있는 두 구루의 살라나무가 그때 당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후대에 이곳이 부처님의 열반지라 하여 심어 놓은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런 살라나무 잎파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잎사귀가 넓은 활엽수입니다.
최상의 공양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초기경전에 따르면 두 구루의 살라나무에서는 때 아닌 꽃이 만개 했습니다. 꽃들은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해 부처님 몸에 떨어졌습니다. 천상에서는 만다라바 꽃들이 공중에서 흩날렸습니다. 천상의 음악소리도 울려 퍼졌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아난다를 불러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했습니다.
“그러나 아난다여, 이러한 것으로 여래가 존경받고 존중받고 경배받고 예경받고 숭배받는 것이 아니다. 아난다여, 수행자나 수행녀나 남녀 재가신자가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최상의 공양으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경배하고 예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그대들은 ‘우리는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하리라.’라고 배워야 한다.”(D16)
부처님은 ‘최상의 공양(paramā pūjā)’에 대하여 설했습니다. 최상의 공양이란 다름 아닌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금강경에도 재보시보다 법보시가 훨씬 더 수승하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에게 공양한다고 하여 부처님 앞에 꽃, 향, 초 등 물질적인 것만 공양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공양도 해야 함을 말합니다.
진정한 공양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양을 여읜 공양(nirāmisapūjā)이 나의 가르침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Smv.579)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물질적 정신적 자양분을 여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여 부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여 괴로움과 윤회를 끝내는 것이 최상의 공양임을 말합니다.
2018-02-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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