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완전한 열반은 가르침의 절정, 라마바르 다비터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8. 2. 6. 17:52


완전한 열반은 가르침의 절정, 라마바르 다비터에서

(인도성지순례 17)

 

 

다비터 가는 길에

 

꾸시나가르에서 다비터는 열반당에서 불과 1.4키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차로 2분 여 거리입니다. 열반당을 순례한 진주선원불자들은 라마바르 스투파(Ramabhar Stupa)라 불리는 다비터로 향했습니다. 그곳을 무꾸뜨반단 쩨띠야(Mukut-Bandhan Chaitya)’ 라고도 합니다.

 

 


 

어느 성지이든지 입구 정문에는 기념품을 파는 행상들과 돈을 요구하는 걸인들이 있습니다. 빈궁해 보이는 어린아이들까지 동원하여 우리말로 석가모니불하거나 원달러를 외칩니다.

 

 



 

라마바르 스투파(Ramabhar Stupa)

 

라마바르 다비장 날씨는 상쾌하고 청명했습니다. 인도에서 1월은 늘 안개끼고 우중충한 날씨인데 이날 만큼은 햇볕도 나고 공기도 맑았습니다. 특히 다비장을 들어가자 마자 키높은 야자수가 반겨줍니다. 늘씬한 야자수가 보기에도 시원시원스런 모습입니다.

 

 




 

라마바르 스투파는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었을 때 이곳 까지 운구하여 화장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된 스투파입니다. 반구형으로 되어 있는데 직경이 42미터에 달하고 높이가 34미티로서 작은 동산같습니다.

 

순례자들은 다비장 앞에서 예경했습니다. 그리고 오계와 삼보예찬을 했습니다. 또 진주선원의 날마다 하는 기도문에 실려 있는 여러 가지 예경문을 독송했습니다. 비교적 한적한 라마바르 다비장에서는 향을 사르는 짙은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습니다.

 



 


 

초기경전에 묘사된 화장장면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大般涅槃經, D16)’에 부처님 다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하 깟사빠 존자는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꾸시나라 시에 이르는 큰 길을 가다가 부처님 열반소식을 들었습니다. 마하 깟싸빠가 도착하여 화장하는 장면에 대하여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습니다.

 

 

그 후 존자 마하 깟싸빠가 꾸씨나라 시의 마꾸반다나 라는 말라 족의 탑묘에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한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합장하여 세 번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 쪽으로 돌아, 하단부를 열고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또한 오백 명의 수행승들도 한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합장하여 세 번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 쪽으로 돌아,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존자 마하 깟싸빠와 오백 명의 수행승들이 절을 올리자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는 저절로 불타올랐다.”(D16)

 

 

다비터에 마하 깟사빠 존자가 도착하자 비로소 화장이 시작된 것입니다. 도착 하기 이전에는 불이 타오르지 않았습니다. 네 명의 말라족 지도자들이 화장용 나무더미에 불을 붙이려고 시도 했으나 불이 붙지 않은 것입니다.

 

말라족들은 원인을 몰라서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자 아누룻다 존자는 하늘의 신들의 뜻이라 하면서 존자 마하 깟싸빠가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불을 지펴서는 안된다.”(D16)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다비는 마하 깟사빠 존자가 도착하자 불이 붙어 시작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늘의 신들이 마하 깟사빠 존자가 도착할 때 까지 불이 붙지 않게 한 것은 마하 깟사빠 존자가 부처님의 제일의 법제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가사의 경(S16.11)’에서 부처님이 깟싸빠여, 그대는 내가 입고 있는 삼베로 된 분소의를 입어라.”(S16.11)라고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르침의 상속자(dhammadāyāda)

 

부처님은 마하 깟사빠에게 가르침의 상속자로서 분소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하 깟사빠 존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부드러운 헝겊조각을 이어 만든 하의를 부처님께 드렸습니다. 이렇게 옷을 교환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스승이 그에게 자신의 옷을 넘겨주었다는데서 깟싸빠는 부처님의 열반 이후에 승단을 이어갈 여법한 계승자였음을 보여 준다.”(Srp.II.199)라 했습니다.

 

중국 선종사에서 가사와 발우를 물려 받은 자가 계승자가 됩니다. 이는 오조 신수대사가 혜능대사를 불러 가사와 발우를 전해 주면서 이제 너는 육조가 되었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마하 깟사빠 존자에게 분소의를 주었다는 것은 가르침의 상속자로 인정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마하 깟사빠 존자의 말로도 확인 됩니다.

 

 

벗이여, 만약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세존의 아들로 그분의 입에서 태어났고 가르침에서 태어났으며 가르침에 의해 형성되었고 가르침의 상속자이며 삼베로 된 분소의를 입었다.’ 고 말한다면, 그는 나에 대하여세존의 아들로 그 분 입에서 태어났고 가르침에서 태어났으며 가르침에 의해 형성되었고 가르침의 상속자이며 삼베로 된 분소의를 입었다.’ 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S16.11)

 

 

마하 깟사빠 존자는 가르침의 상속자(dhammadāyāda)’라는 말을 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가르침의 상속자는 아홉 가지의 출세간적인 상태인 구차제정(九次第定)의 유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구차제정이란 첫 번째 선정에서부터 열반의 상태인 상수멸(想受滅)에 이르기 까지의 아홉가지 선정의 단계를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구차제정을 닦으면 누구나 가르침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하 깟사빠 존자를 가르침의 상속자로 본 것은 세존의 아들로 그 분 입에서 태어났고 가르침에서 태어났으며 가르침에 의해 형성되었고 가르침의 상속자이며 삼베로 된 분소의를 입었다.” (S16.11)라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곽시쌍부(槨示雙趺)이야기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 화장된 곳이 마꾸따반다나(makuabandhana) 탑묘입니다. 오늘날 쿠시나가르 라마바르 스투파가 있는 곳입니다. 붓다고사에 따르면 마꾸따반다나는 말라족 지도자들이 축제를 위하여 장식품을 놓아 두었던 홀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은 잘 장식된 탑묘(cetiya)이었던 곳입니다.

 

말라족의 마꾸따반다나 탑묘에서 다비가 있었습니다. 마하 깟사빠 존자가 도착하자 불이 붙어서 화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역 장아함경에서는 다르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중의 하나인 곽시쌍부(槨示雙趺)의 원형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한역장아함경에서 곽시쌍부에 대한 것을 보면 대가섭은 향더미로 향해 걸어 갔다. 바로 그때 부처님께서 겹곽 속에서 두 발을 내미셨는데, 발에 이상한 빛이 있었다.”(장아함경)라 되어 있습니다. 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디가니까야에서 하단부를 열고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D16)라 표현되어 있는 것과 너무도 다른 내용입니다.

 

완전한 열반에 드신 부처님이 마하 깟사빠가 도착하지 두 발을 내미셨다라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디가니까야에서는 마하 깟사빠 존자가 하단부를 열고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렸다.’라 했는데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디가니까야와 한역 장아함경을 확연하게 차이 나게 해주는 것이 곽시쌍부이야기입니다.

 

사리(sarīra)에 대하여

 

부처님의 유체는 화장되었습니다. 유체가 화장되면 타다 만 것들이 남습니다. 이것을 사리(sarīra)라 합니다. 사리와 관련하여 그래서 세존의 존체는 외피와 내피와 살점과 힘줄과 관절액이 다 타버리자 거기에는 재도 연기도 남지 않고 오직 사리만 남았다.”(D16)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유체가 타 버린 것에 대하여 버터나 참기름이 타면 재도 연기도 남지 않듯이 사리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사리가 분산된 것도 있고 분산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리가 분산되지 않은 것은 네 개의 이빨, 두 개의 경골, 육계 이렇게 일곱 가지는 분산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나머지는 분산되었는데 가장 작은 사리는 겨자씨앗 만한 크기가 있고, 큰 사리는 가운데 나뉜 쌀알 크기의 사리가 있고, 아주 큰 사리는 완두콩만한 사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부처님 진신사리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위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스리랑카 불치사에 가면 부처님 치아 사리가 있다고 합니다. 또 최근 중국에서는 부처님 정골사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 이외는 진위를 알 수 없습니다.

 

춘다의 마지막공양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 접하는 부처님은 인간적인 부처님입니다. 신격화된 부처님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부처님입니다.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에 묘사 되어 있는 부처님은 팔십 노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인간적인 부처님은 무엇보다도 열반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만일 부처님이 죽어서 부활 했다거나 영원히 살았다면 오늘날 불교는 성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완전한 열반을 보여 주심으로서 불교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는 우다나에서 마지막 공양을 한 춘다의 이야기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다나에 춘다의 경(Ud.81)’이 있습니다. 이 경에는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춘다의 가책에 대한 것입니다.  춘다가 쑤까라맛다바라는 요리를 해서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렸으나, 결국 이 공양으로 인하여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가책하는 춘다에게 부처님을 깨달음에 이르게 한 수자타의 공양보다도 훨씬 커다란 과보와 공덕을 가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 공양을 들고 여래가 잔여 없는 열반의 세계로 들었다면, 그 두가지 공양은 동일한 과보, 동일한 공덕을 가져 오는데, 다른 공양 보다 훨씬 커다란 과보, 훨씬 커다란 공덕을 가져온다.”(Ud.81)라 했습니다.

 

춘다의 공양은 매우 크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춘다의 공양이 큰 의미가 있을까? 주석에서는 부처님의 격려의 말씀을 들은 춘다가 이렇게 외쳤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마지막 탁발음식을 올렸다. 나에 의해 가르침의 절정이 수호되었다. 나의 음식을 들고 부처님은 오랫동안 원하던 잔여 없는 열반의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UdA.406)

 

 

부처님은 완전한 열반에 들어 감으로써 나에 의해 가르침의 절정이 수호되었다.”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지 않고 죽었다가 부활 했다든가 수 겁을 살았다면 열반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교에만 있는 열반(nibbana)

 

열반(nibbana)은 오로지 불교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고대인도에서 해탈이라는 말은 있어도 불이 꺼짐을 뜻하는 열반이라는 말은 불교에만 있는 말입니다. 조건발생하고 조건소멸하는 연기법에서만 가능한 것이 열반입니다.

 

불교에만 통용되는 열반은 불의 꺼짐으로 설명됩니다. 우다나에서는 열반에 대하여 쇠망치로 쳐서 튕겨나와 반짝이는 불꽃이 차츰 사라져 가니 행방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이(Ud.93)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이 열반입니다.

 

열반은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단멸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바라문 베란자가 “존자 고따마께서는 단멸을 설합니다.”(A8.11)라며 부처님을 단멸론자로 몰았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단멸을 설합니다.” (A8.11)라 했습니다. , , 치를 뿌리로 하는 오염원을 제거 했을 때 더 이상 재생이 되는 업을 짓지 않아 완전한 열반에 들어 감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대장장이 아들 춘다에게 가책을 제거해주고 이런 게송을 읊었습니다.

 

 

베풀면, 공덕이 늘어나고

자제하면 원한은 쌓이지 않고,

착하고 건전하면, 악한 것은 끊어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부서지면, 열반에 든다.”(Ud.81)

 

 

다비터에서 본 승려들

 

예경을 마친 순례자들은 다비터를 세 바퀴 돌았습니다. 직경이 42미터에 달하는 다비터는 면적이 넓습니다. 세 번 도는 동안에 다비터 뒷편에 앉아 있는 승려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승려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모습이 매우 진지해 보입니다. 어떤 승려 앞에는 돈이 보이기도 합니다. 순례자들이 스투파를 돌면서 보시한 것이라 보여집니다.

 








스투파 주변에 있는 승려들이 진짜승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인도에서는 물건을 강매하다시피 하는 행상이 있는가 하면 원달러를 외치는 걸인들도 많습니다. 성지주변이나 성지안에서 가사를 걸친 삭발자들은 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부좌하며 조용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상큼한 향내가

 

어디선가 상큼한 향내가 났습니다. 예경할 때도 스투파를 돌 때도 향을 사르는 냄새가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했습니다. 꽉 막힌 공간이 아닌 탁 트인 야외에서 나는 향내입니다. 찾아 보니 스투파 앞과 뒤에 향이 피워져 있습니다.

 

 




 

누군가 향을 피워 놓았습니다. 오색의 불교도기 위에는 꽃다발과 연꽃 몇 송이가 놓여 있습니다. 상큼한 향냄새는 동그란 쟁반위에서 마치 쌀겨 타듯이 향겨에서 타는 냄새입니다.

 

 

2018-02-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