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 가는 길에
(인도성지순례 18)
1월 4일의 순례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바이샬리의 릿차비사리탑과 대림정사를 순례하고, 전세버스로 4시간 이동하여 쿠시나가르에서 열반당과 다비터를 순례했습니다. 그리고 룸비니가 있는 네팔 룸비니가든호텔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쿠시나가르에서 룸비니가든호텔까지는 약 177키로미터의 거리로 4시간 30분 가량 걸립니다.
강행군 순례
버스로 이동 중에 법우님들과 많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여행 가면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밥 한번 같이 먹으면 금방 친해집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여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버스로 이동하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친숙해집니다. 더구나 진주선원 불자들은 원담스님 하안거 때 한번 상견례 한 바 있기 때문에 구면입니다.
인도 성지순례는 이동이 대부분입니다. 성지에서 머무는 시간은 두 시간이 넘지 않습니다. 짧게는 삼십여분이고 1시간에서 1시간 반 가량 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한정된 일정에 되도록이면 많은 곳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보여집니다.
만약 전세버스 없이 베낭여행하면 어떻게 될까? 이동하는데 훨씬 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기차나 버스를 타는 시간 못지 않게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제 때에 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은 더 많아 집니다. 그러나 전세버스로 다니면 마치 자가용으로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현지사정을 잘 아는 운전 잘하는 현지인이라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습니다.
안전은 운전기사에게
전세버스를 운전하는 인도인 운전기사의 실력은 놀랍습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울퉁불퉁한 길을 가지만 목적지에 늦는 법이 없습니다. 인도에는 도로에 교통신호등도 없고 안내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고 교통경찰도 없습니다. 다들 알아서 운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적을 울리는 것은 실례가 아니라 오히려 장려 해야 될 것입니다. 경적을 울리지 않아 사고라도 난다면 경적을 울리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됩니다.
인도인 운전기사는 운행할 때 연신 경적을 울려댑니다. 노래가락이 있는 경쾌한 경적입니다. 그런데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거칠기가 그지 없습니다. 경적을 울려서 비켜라 하며 추월하기 일쑤입니다. 도착시간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신호위반으로 걸리지 않습니다. 과속해도 과속단속 카메라도 없고 신호위반을 적발하는 경찰도 없습니다.
현지기사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아찔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고를 염려 하지 않습니다. 추월을 예사로 하며 좁고 거친 도로에서 과속하며 미친듯이 질주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안전벨트는 매야 합니다.
진주선원의 ‘날마다 하는 기도문’
운전기사는 열심히 운전하고 순례자들은 이동 중에 예경을 하고 기도합니다. 교재는 진주선원에서 만든 ‘날마다 하는 기도문’입니다. 도향스님이 엮었고 원담스님이 개정한 기도문은 100페이지 가량 되는 소책자로 되어 있습니다.
기도문은 대승불교와 테라와다불교와 티벳불교가 망라된 것입니다. 진주선원 불자들이 매일 독송하는 기도문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예경문과 자비심을 낼 수 있는 게송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기도문을 독송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기도문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기도와 염불은 우리의 생각을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어 마음이 바뀌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우리가 독송하는 내용을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하면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와 염불을 하면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고 합니다. 마치 길을 자주 다니다 보면 길이 크게 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문에는 착하고 건전한 가르침들이 많기 때문에 매일 독송하면 마음을 청정하게 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매일 기도하고 독송하면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기분 좋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과 관계 없이 매일 꾸준히 한다면 습관화가 될 것입니다. 기도와 독송이 일상화 되었을 때 지혜와 자비로 가득하게 되어서 삶이 풍요로워질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매일 기도문을 독송해야 하는가? 그것은 불자들의 삶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불자들은 현실을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을 떠나 세상을 떠나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살아 갈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세상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탐, 진, 치로 살아 가기 쉽습니다. 이럴 때 기도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는 기도문’ 서문에는 “기도는 마음을 올바르게 쓰는 법을 보여주기에, 그 기도를 따라하면 우리들도 스승들과 똑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라 합니다.
이동중에는 늘 기도문을
이동중에는 늘 기도문을 독송했습니다. 성지에서는 삼귀의, 오계, 삼보예찬 등 주로 빠알리 예경문을 독송합니다. 그러나 차로 이동 중에는 대승불교와 티벳불교의 기도문을 주로 독송합니다. 한번 독송하면 거의 한시간 정도 걸립니다.
기도문 중에 중론 찬탄게송이 있습니다. 용수보살의 팔불중도에 대한 것을 우리말로 풀어 놓은 것입니다. 이동중에 기도문 독송하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여래께서 의존되고 관계에서 생하는 것 없다 멸하는 것 없다. 끊어지는 것 없다. 항상하는 것 없다. 오는 것 없다. 가는 것 없다. 다르지 않고 같지 않다. 희론을 멸한 적정 설하셨다.”라 되어 있습니다.
기도문 중에는 천수경도 있습니다. 신심있는 불자라면 조석으로 독송하는 생활경전입니다. 이동중에도 천수경 독송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문이 아닌 한글로 풀이 된 것을 독송합니다.
기도문독송할 때는 원담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진행합니다. 거의 한시간 가량 걸리는 기도시간에 진언도 빠지지 않습니다. 진언 중에는 금강살타보살 백자진언 같은 티벳불교의 진언도 있습니다.
원담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독송할 때는 힘이 넘쳐납니다. 평소에는 매우 점잖은 것 같은데 기도할 때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고 박력이 넘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말을 조심스럽게 가만가만 하는 스타일인데 염불하고 기도할 때의 목소리는 180도 다른 것이어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딴 사람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버스로 이동중에 진주선원 법우님들과 많은 얘기 나누었습니다. 진주선원불자들은 진주선원에서 신행하는 것에 대하여 대단히 만족하는 듯합니다. 스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했더니 결과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로서 요가를 들고 있습니다. 스님이 지도하는 요가를 말합니다. 요가를 했더니 몸과 마음이 너무 좋아져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라 합니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인도
이동 중에는 날마다 하는 기도문을 독송했습니다. 특히 세 시간 이상 되는 이동중에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쿠시나가르에서 네팔까지 룸비니까지 이동은 4시간 이상 걸립니다. 도중에 큰 도시를 지나갔습니다. 지도로 확인 하니 ‘고락푸르’인듯 합니다. 그런데 큰 도시 사거리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코끼리에 짐을 싣고 가는 장면입니다. 이런 장면은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도 보았습니다.
인도에서는 소와 개가 인간과 공존합니다. 길거리에 주인 없는 소가 돌아 다니지지만 아무도 잡아 먹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개가 돌아다니지만 쫓아 내지 않습니다. 인도에서는 우격(牛格)과 견젹(犬格)이 존중되는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소를 인간 못지 않게 대우해준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유를 주기 때문이라 합니다. 소의 우유는 다른 동물의 것과 달라 사람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합니다.
인도에서 코끼를 보는 것은 행운이라 합니다. 룸비니로 이동중에 한번 보았고 델리에서 한번 보았습니다. 특히 수도인 델리에서 짐을 싣고 이동 중에 코끼리를 보았을 때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평원에 왠 굴뚝?
버스로 이동 중에 보는 인도는 어느 곳이나 대동소이합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인도는 매우 빈궁한 모습입니다. 쳐다 보기가 미안할 정도로 빈궁한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불행해 보이지 않습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자급자족하며 살아 가는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 버스로 이동하다 보면 끝없는 평원의 연속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1월의 인도의 들판은 초록입니다. 노란 유채꽃도 피어 있어서 우리나라 봄날씨 같습니다. 그런데 종종 긴 굴뚝을 보게 됩니다.
굴뚝은 공장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난하다는 비하르주와 UP주의 경우 공업시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곳곳에 굴뚝이 있습니다. 나중에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것은 벽돌공장입니다. 산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는 벽돌밖에 없습니다. 벽돌을 생산하기 위한 굴뚝인 것입니다.
국경을 넘어 네팔로
룸비니로 가기 위해서는 국경을 통과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네팔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멀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와 네팔의 경계 부근에 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통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팔비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리원칙대로 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대기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럴 때 여행가이드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여행사 사장이 능숙하게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날이 완전히 컴컴해진 밤에 네팔 국경을 넘었습니다. 숙소는 네팔 가든호텔입니다. 캄캄한 밤에 또 다른 나라에 가니 또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지도를 찾아 보았습니다. 룸비니 가든호텔은 룸비니 구역 바로 옆에 있습니다.
인도여행에 쿡(Cook)이 필요한 이유
룸비니호텔에 저녁 8시 정도에 도착했습니다. 일반호텔이라면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인도에는 도로나 식당 등 인프라가 매우 열악합니다. 식사는 주로 호텔에서 하는데 시간을 놓치면 식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례팀과 함께 하는 쿡(Cook: 料理師)가 있어서 안심입니다. 요리사 두 명은 승용차를 이용하여 현지 호텔에 미리 도착하여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는 호텔의 협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럭나우 같은 대도시 호텔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인도에서 쿡을 사용하는 것은 현지 사정 때문입니다. 이동이 많은 여행에서 마땅히 식사 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도로 휴게소 마다 식당이 있고 또 도로 곳곳에 음식점이 있어서 밤이나 낮이나 아무 때나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설이 열악한 인도에서는 식당이 없어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호텔에 늦게 도착하면 역시 식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세버스와 더불어 승용차가 하나 더 있는데 식사를 해결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우스님을 만나고
룸비니 가든 호텔에서 지우스님을 만났습니다. 현재 대구 관오사 주지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에 22명의 불자들과 함께 인도성지 순례 왔다고 합니다. 옆에는 인도스님도 있었습니다.
지우스님과 인연이 있습니다. 2004년 서울강남 능인선원 불교교양대학 다녔을 때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한번 들은 바 있습니다. 그때 스님은 능인선원에 머물면서 국녕사 임사체험 등을 지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에서 인상에 남는 것은 반야심경을 보고서 발심출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님에 대한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2010년 이후의 일입니다. 스님이 대구 보현사 주지소임을 맡고 있을 때 각묵스님의 초기불교강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잘 매칭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승불교의 스님으로 알고 있었는데 초기불교강좌를 연 것입니다. 사진으로 보니 틀림 없는 지우스님이었습니다.
룸비니 가든호텔에서 지우스님과 많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오후불식이라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감기기운까지 있음에도 호텔 로비에서 한참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서로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님은 이미 글로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자 룸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지우스님의 룸을 방문했습니다. 인도스님과 한방을 쓰고 있었습니다. 인도스님은 지우스님이 태국에 있었을 때 인연 맺은 스님이라 합니다. 그런데 인도스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도에는 불교인들이 15%라 합니다. 인도에서 불자수는 공식적으로 1%라 하지만 이는 힌두교를 고려한 발표라 합니다. 무슬림의 경우 20%라 합니다. 70년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되었었을 때 인도에서의 무슬림은 제로에 가까웠으나 70년 만에 20%라 합니다. 앞으로 몇 세대만 지나면 무슬림들이 70%가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인도스님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에 불자수가 15%라 하는 말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불자수가 통계상 불자수와 정서적 불자수가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인도에서도 정서적 불자가 상당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스님은 20대 부터 화두 참구 수행과 교학을 연마했는데 30대 중반 어느땐가 부터 의구심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부처님만의 깨달아가는 독특한 어떤 방법이 있을텐데, ‘도대체 그 길이 어떤 길일까? 부처님은 어떤 방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쳤길래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지혜가 생길 수 있게 되었을까?’라며 깊게 숙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0일간 집중 수행에 참여하여 자애명상 4성제 8정도 4념처의 실제 수행 체험으로 큰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약 3년 가량 미얀마에서 수행 했는데 현재 불자들에게 수행과 교학을 동시에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우스님은 매우 학구적인 것 같습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데 노트북에는 사부니까야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틈 날 때마다 열어 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빠알리어 사전을 이용하여 확인하기도 합니다. 지우스님과는 주로 두 종류의 번역서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지우스님은 매우 소탈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말을 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듯합니다. 스님으로서 권위라든가 ‘스님상’이라는 아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출재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스스럼 없이 다가 설 수 있는 스님입니다. 누구든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스님이라 생각됩니다.
차분하고 평화로운 룸비니의 아침
이튿날 룸비니에서 날이 밝았습니다. 1월 6일은 금요일로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 해야 하는 날입니다. 룸비니에서 스라바스티(기원정사)를 거쳐 럭나우로 이동해야 하는 긴 여정입니다. 이른 아침 룸비니는 매우 차분하고 평온했습니다.
2018-02-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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