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졸업과 세상의 졸업
기술은 삶의 방편일 뿐
기술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 직장 다닐 때 배워 놓은 기술입니다. 캐드(CAD_를 이용한 전자회로패턴설계업입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설계하는 것도 일종의 기술일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으로 나름대로 노우하우를 가지고 있다면 기술이라 볼 수 있는데 그런 범주에 들어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삶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만족할 수 없습니다. 기술은 삶의 방편일 뿐 진리의 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 일과 중의 반은 글쓰기로 보냅니다. 일인사업자로 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직장을 다닌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십삼년전 직장을 그만 두고 홀로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이라는 것은 오로지 고객만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작업을 해 왔지만 고객 이외에는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면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이 됩니다. 고객을 위한 일은 대가를 받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쓰기에는 대가가 없습니다.
일과 글쓰기를 양립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일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많이 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오로지 일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결국 나중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일을 많이 하긴 하지만 통장에는 잔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어 있다면 허(虛)와 무(無)를 느낄 것입니다. 보통불자에게 있어서 기술과 일은 삶의 방편일 뿐입니다.
일하지 않는 즐거움
일 하는데 올인 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일은 생계 유지의 수단으로 만족합니다. 그대신 글을 씁니다. 하루 일과 중의 반을 글쓰기로 보내는 것은 남기 때문입니다. 글은 돈과 달리 써 놓으면 남는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글을 쓰지만 무엇 보다 진리에 대한 갈증 때문입니다.
일을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일이 없어서 노는 것 보다 일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일에 매여 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알코올 중독자가 되듯이, 일을 매여 살면 즉 ‘일중독자’가 됩니다.
일에 매여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개발자로서 삶을 살았던 이십년간입니다. 그러나 보람 있었습니다. 개발한 제품이 생산라인에서 양산되어 펑펑 쏟아질 때 마치 농부가 수확한 것처럼 뿌듯했습니다. 비록 월급생활자의 삶에 불과 했지만 개발한 제품이 생산 되었을 때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해외로 수출되어 외화를 벌어 들였을 때 ‘이것이야말로 애국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일중독자로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끔찍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창 일할 때인 1997년에 책을 하나 샀습니다. 그것은 ‘일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입니다. 그때 당시 북미 베스트셀러였다고 합니다. 그 책을 보면 하루 일과 중에 일은 반만 일하라고 했습니다. 하루 8시간 일한다면 4시간만 일하고 4시간은 여가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처음 ‘일하지 않는 즐거움’을 읽었을 때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라며 의문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주말없이 휴가없이 일을 하던 시기에 남의 이야기처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1년이 지난 현 시점에 그 책에 있는 것ㅜ그대로 된 것 같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글쓰기였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좋은 여가
‘일하지 않는 즐거움’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은 TV시청, 술이나 마약에 취하기, 습관적으로 먹어대기, 드라이브, 쇼핑, 돈쓰기, 도박, 운동경기 관람으로 보낸다고 합습니다.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사람들은 여가 보낼 줄 모름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가를 보낼 줄 아는 사람들은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악기연주, 춤추기, 강습받기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이중에서 ‘글쓰기’라는 말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일하지 않는 즐거움’을 읽었을 때가 1997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1년전입니다. 인터넷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아주 초기단계 였습니다. 그런데 글쓰기가 좋은 여가라 합니다. 여러 여가 중에 글쓰기라는 말에 강하게 필이 꼽혔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라며 의문했습니다.
캐드설계업을 하는 일인사업자로 살고 있습니다. 하루에 반은 일하고 반은 글쓰기로 보내고 있습니다. 아니 일이 있으면 하고 일이 없으면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글쓰기 합니다. 이런 세월이 십이년 되었습니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전자상품 개발자로서 생명이 끝나 버렸습니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가치가 있었으나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따라 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인사업자의 삶을 살게 되었는데 이런 삶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글을 쓴다고 하여 책을 냈다거나 등단을 한 것은 아닙니다. 2006년 이래 매일 꾸준히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여기에는 2000년대 본격적인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블로그 시대가 열린 것도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목마릅니다.
어떤 기술이 최상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진리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 갑니다. 초기경전을 근거로 하여 글쓰기 하는 것도 일종의 진리에 대한 갈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또는 “배우고 나니까 쉽게 못 떠나는 거에요.”라는 말이 있듯이 일을 배워 놓으니 쉽게 못 떠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어떤 기술이 최상일까?
우다나에 ‘기술의 경(Sippasutta)’(Ud.31)이 있습니다. 수행들이 탁발에서 돌아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어떠한 기술이 기술가운데 최상인가?”가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수행승은 코끼리 다루는 기술이 최고라 합니다. 아마 그때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말 다루는 기술, 수레 만드는 기술, 활 쏘는 기술, 무기 다루는 기술, 무드라 다루는 기술, 숫자 세는 기술, 셈하는 기술, 글 쓰는 기술, 시 짓는 기술, 궤변의 기술, 정치의 기술이 나옵니다. 각자 언급한 기술이 최상이라 합니다.
경에서 언급된 12가지 기술 중에 ‘글 쓰는 기술’도 있습니다. 그런데 글쓰기도 기술이고 정치하는 것도 기술이라 합니다. 한마디로 세속에서 업으로 삼고 있는 것은 모두 기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요즘으로 따진다면 첨단기술이나 ‘사’자 들어 가는 직업이 최상의 기술에 해당될 것입니다.
수행승들이 해야 할 일은?
부처님은 수행들이 잡담하듯이 말하는 것을 지나가다 들었습니다. 수행승들이 세상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거나 관심 갖는 것은 ‘악작죄(惡作罪)’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수행승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세속적인 일을 하지 않는 수행승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로서 밑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이 그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수행들이여, 그대들은 모여 앉아서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것, 그 둘 중의 하나를 실천해야 한다.”(Ud.31)
부처님은 출가자가 세속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속을 떠나 진리의 길에 들어선 수행승이 해야 할 일은 세상사에 대한 잡담이 아니라 법담(法談), 즉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dhammī vā kathā)’를 나누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 잡담을 하려거든 ‘고귀한 침묵을 지키라(ariyo vā tuṇhībhāvo)’라고 했습니다. 명상주제를 가지고 정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과 졸업 세상과 졸업
세상속에서 세상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세상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진리의 세계에 가 있습니다. 요즘은 ‘졸혼(卒婚)’이라 하여 함께 배우자와 사는 것도 졸업한다고 합니다. 나이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때가 되면 학교에 가고, 때가 되면 직장을 잡고, 때가 되면 결혼합니다. 때가 되면 정년이 되어 직장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또다시 일자리를 찾게 되고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일을 하며 평생을 살거나 아무 하는 일없이 평생 살기도 합니다.
누구나 돈 버는 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에 매여 돈 버는 선수가되어 평생을 사는 것 보다 일과 졸업하는 것도 꿈꾸어 봄직합니다. 마치 졸혼하듯이 일과 졸업 하는 것입니다. 그 전단계로서 일을 하긴 하되 반만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도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일과도 졸업하고 세상과도 졸업 하는 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술을 여의고 가뿐하게 살고 유익을 원하고
감관을 제어하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집없이 다니며 나의 것을 여의고 소망도 여의고
자만을 버리고 홀로 걷는 자, 그가 수행승이다.”(Ud.31)
2018-02-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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