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 앞에 출가와 재가 구분없다
부처님 가르침 앞에 출가자와 재가자는 평등합니다.
가르침 앞에 출재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르치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자들은
모두 부처님의 귀중한 제자들입니다.
부처님에게 여든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는 출가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든 명의 으뜸제자를 보면 빅쿠와 빅쿠니 뿐만 아니라,
우빠씨까(靑信士)와 우빠싸까(靑信女)로도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님이 “빅카베(Bhikhave)”라 했을 때
반드시 비구승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구니를 포함하여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모든 제자들에게 해당됩니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 가르침은
오로지 비구승들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대상입니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설령 초기경전에서 해탈과 열반을 설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출가비구승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재가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출가하라고 말한다면 우문(愚問)입니다.
출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머리를 깍고 승단으로 출가(僧出家)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재가의 삶을 살면서
마음으로 출가(心出家)하는 것입니다.
어느 출가이든지 가르침 앞에 평등합니다.
부처님 당시 출가는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도피형이나 생계를 위한 출가가 아닙니다.
부처님 설법을 들은 재가자가 감동을 받아 출가했습니다.
“세존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을 알면 알수록,
재가에 살면서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소라껍질처럼 잘 연마된 거룩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자,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깍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이 어떨까?”(M82)
출가동기를 보면 먼저 가르침을 아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모르고 출가하면 도피형이나 생계형이
될 수 있고 도중에 환속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법을 듣고 출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불교인들은 가르침을 알아야 합니다.
가르침을 알아야 출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출가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 마음으로 출가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는 멀리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승, 그 성자에 미치지 못한다.”(stn221)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출가의 길이 가장 빠릅니다.
재가자는 처자식을 부양하고 생업에 종사하거나
가업을 잇는 등 번거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해탈과 열반의 길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출가자는 결과가 매우 빠릅니다.
오로지 정진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해탈과 열반의 길에 빨리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제 갓 출가한 사미승에게 예(禮)를 올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출가자가 재가자가 되고
재가자가 출가자가 됩니다.
출가했어도 환속하면 재가자가 됩니다.
재가의 삶을 살아도 출가하면 출가자가 됩니다.
출가자는 재가자에서 나옵니다.
환속하면 재자자로 살아갑니다.
재가는 출가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출가자는 재가에서 나옵니다.
출가와 재가의 길은 달라도
가르침 앞에서는 모두 평등합니다.
모든 재료에서 불이 붙듯이,
깨달음 앞에 출재가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랑스런 부처님 제자들입니다.
2018-03-1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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