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잉볼(Singingbowl) 놀이
이제 알았습니다.
싱잉볼 소리 내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의 일년만 입니다.
작년 불교박람회에서 산 것입니다.
싱잉볼 하울링(Howling)은 신비롭습니다.
처음 타종하면 울림이 높낮이를
거듭하며 서서히 소멸해갑니다.
에밀레종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싱잉볼의 진가는 봉처리에서 나타납니다.
봉을 싱잉볼 바깥부위를 스치듯이
돌리면 신비한 소리가 납니다.
소리와 소리가 만나면 커지기도 합니다.
싱잉볼은 노래(Singing) 하는
주발(Bowl)이라는 뜻입니다.
봉을 돌리면 스스로 소리를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싱잉볼을 자세히 보면 바깥 면에
세 개의 홈이 파진 테두리가 있습니다.
그 부위에 봉을 돌리면 소리가 생겨납니다.
마치 노래 하듯이 장단과 고저가 있습니다.
손뼉을 치면 “탁”하고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소리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소리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두 손바닥과 의도가 있어서 소리가 난 것입니다.
싱잉볼 소리도 조건이 맞아
떨어져 소리가 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싱잉볼과 봉과 의도가 있어서 소리가 난 것입니다.
선사들이 고함을 치고 몽둥이질을 합니다.
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리를 맞는 순간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자비의 방편이라 합니다.
할(喝)을 하고 방(棒)을 하는 것은
번뇌망상에서 깨어 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언어와 문자로는 진리를 알 수 없고
마음과 뜻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라 합니다.
벼락 같은 고함소리에 상근기의 제자는 깨닫습니다.
모든 것이 분별망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진리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마음과 마음으로,
뜻과 뜻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전승되어 왔다고 합니다.
선사들의 할과 방을 보면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자비롭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반지성주의와 반문자주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테라와다불교와 매우 대조적입니다.
테라와다불교에서도 소리의 비유로 법을 알려줍니다.
청정도론에서 실려 있는 세 가지 세간적 통찰입니다.
견청정(見淸淨), 도의청정(度疑淸淨),
도비도지견청정(道非道智見淸淨)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르침은 언어와 문자로 잘 전승되어 왔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승된 가르침은 변질 되기 쉽지만
언어와 문자로 전승된 가르침은 변함 없습니다.
청정도론에서 명색(名色)에 대한 개념이 이를 말해 줍니다.
견청정은 명색에 대한 개념정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중표 교수식으로 명색을 ‘이름-형태’로
규정하면 전혀 다른 불교가 되어 버립니다.
견해가 청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접촉까지의 다섯은 시각으로부터도
형상으로부터도, 또한
그 양자 사이에서도 생겨나지 않는다.
원인을 조건으로 유위가 생겨난다.
예를 들어 큰북을 두드려 소리가 생겨나는 것과 같다.”
(Vism.18.33)
명색은 정신-물질로 보아야 합니다.
큰북을 조건으로 소리가 일어나듯,
색(물질)을 조건으로 명(정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명색을 이름-형태로 보는 것은 사견(邪見)입니다.
명색을 이름-형태로 보면
죽음도 없고 내생도 없고 윤회도 없습니다.
모두 언어와 문자로 개념화 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분별망상이라 합니다.
명색을 정신-물질로 보면
오온의 생성과 소멸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조건발생과 조건소멸을 보면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삼세의혹이 해소되어 도의청정(度疑淸淨)이라 합니다.
법을 설하는 자가 종을 칩니다.
인과와 연기와 공(空)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래 없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명색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 남자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 남자는 길을 잘 알지 못하고
한 남자는 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길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았습니다.
“여보시오, 이 길을 따라 가시오.
이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두 길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왼쪽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가십시오.”(S22.84)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방향이 우측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른쪽은 바른 길을 말합니다.
다름 아닌 팔정도의 길입니다.
명색을 이름-형태로 보는 것은 왼쪽길이고,
정신-물질로 보는 것은 바른쪽길입니다.
길을 달리 했을 때 목적지도 다릅니다.
정견을 가져야만 열반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싱잉볼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없던 곳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조건에 따라 소리가 발생하고 소멸합니다.
2018-03-1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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