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건축불사보다도 이제는 인재불사를, 폐사지 보원사지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8. 7. 25. 10:07

 

건축불사보다도 이제는 인재불사를, 폐사지 보원사지에서

 

 

인도성지순례에서

 

인도성지순례 다녀 온 사람이 말 했습니다. 그 순례자는저는 붉은 벽돌밖에 보지 못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대성지 또는 팔대성지 등 가는 곳 마다 붉은 벽돌만 남은 폐허를 본 것입니다. 다만 보드가야를 제외하고 일 것입니다.

 

보드가야에 가면 부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불교입니다. 벽돌만 남아 있는 성지와는 달리 보드가야대탑의 위용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순례자들이 보드가야대탑 주변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보원사지에 도착하니

 

정의평화불교연대 순례자 네 명은 이학종 선생의 사저에서 차담을 마치고 보원사지로 이동했습니다. 늦은 오후 임에도 햇살은 따갑습니다. 도시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이지만 산중에 있는 폐사지는 견딜만합니다. 온통 콘크리트로 도배하다시피한 도시와는 달리 태양열을 흡수할 수 있는 대지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보원사지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은 보원사지 복원불사 현장입니다. 일반 가옥처럼 보이는 한옥에 보원사 복원을 위한 임시법당입니다.’라는 글씨로 알 수 있습니다. 보원사 복원 기와불사라는 글도 눈에 뜨입니다.

 



 

보원사지에는 보원사가 있습니다. 보원사 복원을 위하여 임시로 가설된 절과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원사 비구니 스님이 아침에 마애삼존불상 앞에서 아침예불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보원사 복원불사를 간절히 바라는 기원일 것입니다.

 

주춧돌 기단과 기와파편

 

보원사지는 광대합니다. 좁은 골짜기를 지나자 갑자기 툭터진 공간이 나옵니다. 이정도의 공간이라면 인구 수만명이 사는 도시가 형성될 정도로 드넓은 초원입니다. 그럼에도 마을도 없고 논밭도 없이 광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초원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바위무더기와 기와무더기입니다.

 



 

한곳에 모아 놓은 바위를 보면 주춧돌도 있고 기단도 있습니다. 다양한 용도의 돌무더기를 한곳에 모아져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기와 파편을 모아 놓았습니다. 인도성지 순례를 가면 붉은 벽돌만 보고 왔다는데 한국의 폐사지에 가면 주춧돌 기단과 기와파편을 보고서 이곳이 절터 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초원의 보원사지 오층석탑

 

신심 있는 불자들은 순례를 자주 다닙니다. 한국의 전통사찰 숫자는 구백여곳이라 합니다. 작은 탑하나만 있어도 전통사찰이라 합니다. 일주일에 한곳씩만 가더라도 20년 가량 걸립니다. 한달에 한번 간다면 75년이 걸립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평생 걸려도 다 볼 수 없습니다.

 

불자들은 폐사지에 잘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양주 회암사처럼 유적이 널려 있어서 볼거리가 있는 폐사지가 아니라면 탑만 덩그렇게 하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이 찾지 않습니다. 이곳 보원사지도 백제시대 석탑양식이 벌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평원 한가운데 있는 석탑으로 향합니다. 도시는 폭염과 무더위의 날씨에 한증막처럼 더울지 몰라도 푸른 초원은 햇볕만 따가울 뿐 사뿐사뿐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마침내 석탑 앞에 섰습니다. 오층석탑입니다.

 



 

석탑 옆에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현재 보물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초로 보이는 전형적인 석탑양식입니다. 특히 백제계 양식이라 합니다. 이는 옥계석 끝 부분이 살짝 들어 올려져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백제가 망하고 신라시대 세워진 석탑이지만 백제의 정신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을 보면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보는 듯합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원사지 오층석탑과는 시대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이미지는 비슷합니다. 백제는 망했어도 백제불교의 흔적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위로 된 것들은

 

보원사지는 광대합니다. 이렇게 넓은 평원이라면 논농사 지을 땅으로 바뀌었을 텐데 유적지로 관리 되고 있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보원사지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보원사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습니다. 용현리에는 용현천이 있어서 여름 피서철이 되면 계곡에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보원사지는 조선시대인 16세기까지 절이 유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절이 언제 세워 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길게는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간다고 합니다. 이곳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중에는 철불이 있는데 국립박물관에 옮겨져 있다고 합니다.

 

보원사지에는 바위로 된 것들만 남아 있습니다. 나무로 된 건물은 모두 불타 없어졌을 것입니다. 바위로 된 석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법인국사탑만 덩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바위로 된 것들은 천년, 이천년, 아니 바위가 닳아질 때까지 수년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원불사의 꿈은 이루어질까?

 

폐사지에 가면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원불사입니다. 석탑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는 너른 폐사지에 그 옛날 처럼 여법한 가람을 꿈꾸는 것입니다. 이곳 보원사지에서도 한때 영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보원사에는 한때 승려 숫자가 3천명 있었다고 합니다. 밥지을 때가 되면 쌀뜨믈이 허옅게 하천을 따라 떠내려올 정도로 대찰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옛영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복원불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세월에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불자들이 기와불사나 불전함에 보시금을 넣는 것도 불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시주(大施主)가 나타나지 않는 한 요원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지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원사 복원불사를 바라는 비구니 스님은 마애삼존불 앞에서 매일 아침 예불을 올립니다.

 



 

왜 경전을 사보야 하는가

 

불사라는 것이 반드시 건축물 불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건축불사에만 매진한다면 우람하고 웅장한 성전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불에 타버려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보원사도 한때 3천명의 승려가 사는 대가람이었지만 폐허가 되어 이제 초원 위에 오층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건축불사도 좋지만 인재불사를 해야 합니다. 건물은 화재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지만 인재불사를 하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르침이 후대로 전승되기 위해서는 역경불사도 해야 합니다. 부처님 그 분이 누구인지, 부처님 그 분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초기경전을 접해야 합니다.

 

인재불사를 하려면 경전불사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현재 한국에서는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빠알리니까야가 번역되어 있습니다. 율장뿐만 아니라 논장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번역된 책은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천권을 찍어내면 소진하는데 10년 걸린다고 합니다. 일년에 고작 백권 가량 팔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불자들이 불사를 하는 것은 공덕짓는 행위입니다. 건축불사 등에 거액을 내지만 정작 경전 사보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인색합니다. 이제 건축불사에 어느 정도 공덕을 쌓았다면 경전을 사보아야 합니다.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이고,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경전에 불사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은 출가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경전을 구입해 놓으면 잃어 버리지 않는 한 닳아 없어질 염려는 없습니다. 황제식과 같은 음식은 목구멍으로 넘어 가는 순간 똥으로 되어 나오고, 고급 와인은 먹구멍을 넘기는 순간 오줌이 되어서 나옵니다. 그러나 잘 번역된 경전을 사놓으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과연 그들은 출가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이곳 보원사지에도 한때 3천명 가량의 승려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출가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초기경전에 이런 정형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라문 까씨 바라드와자는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제자들이 그러기 위해 올바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위없이 청정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그는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았다. 마침내 존자 까씨 바라드와자는 거룩한 님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Sn.1.4)

 

 

부처님 당시 제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했습니다. 생계형이나 도피형 출가가 아니라 가르침에 감명을 받아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입니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마침내 청정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때 스스로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아라한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출가의 목적이고 출가의 이유일 것입니다.

 

건축불사보다도 인재불사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이 시대에는 경전이 스승입니다. 부처님 원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전을 스승으로 하여 궁극의 길로 갑니다. 건축불사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재불사야말로 이 시대에 실천해야 할 진정한 불사입니다.

 

불자들은 불전함에 돈을 넣고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때로 거액을 들여 죽은 자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신행생활의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 때 아난다여, 수행승이나 수행녀나 남녀 재가신자가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최상의 공양으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경배하고 예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D16.108)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최상의 공양은 우리 불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육법공양이라 하여 초, , , , 과일, 쌀만을 공양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공양입니다. 건축불사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경전을 사보고 경전의 내용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건축불사보다도 인재불사가 요청됩니다.

 

 



폭염에 폐사지에 섰습니다.

옛날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석탑과 돌기둥만 우뚝 서 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돌무더기와 만났습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라고

정등각자가 말했습니다.

동쪽 끝 한반도 깊숙한 산골 초원에도

부처님의 향기가 있었습니다.

 

다시 옛날의 영화를 돌이킬 수 없을까?

목탁을 손에 쥔 스님은 마애삼존 앞에

매일 아침 예경 올립니다.

언젠가는 여법한 가람을 보게 되리라고.

 

건축만이 불사가 아닙니다.

인재불사를 해야 합니다.

전승된 가르침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지금은 인재불사와 경전불사를 해야 할 때입니다.

 

건물은 타버리면 폐허가 됩니다.

보원사지가 이를 말해줍니다.

부처님 원음을 접하면 파괴되지 않습니다. .

가르침을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이시대의 진정한 불사입니다.

 

 

2018-07-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