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의 가르침

계율은 묶여 있어야, 율장비구계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을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8. 8. 4. 12:19

 

계율은 묶여 있어야, 율장비구계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을 보고

 

 

부처님의 교법이 오래 지속되기를!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도 사라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과거칠불이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부처님이 출현 했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과거칠불이라 소개 되어 있지만 주석서에서는 과거 25불까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량 없는 겁 동안 부처가 출현하곤 했었음을 말합니다.

 

과거불이 출현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교법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율장비구계를 보면 사리뿟따가 세존이시여, 어떠한 존귀한 부처님의 청정한 삶이 오래 가지 않습니까? 어떠한 존귀한 부처님의 삶이 오래 갑니까?”(Vin.III.7)라며 물어 봅니다. 이에 부처님은 세존이신 비빳씬과 세존이신 씨킨과 세존이신 벳싸부의 청정한 삶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싸리뿟따여, 세존이신 까꾸싼다와 세존이신 꼬나가나마와 세존이신 깟싸빠의 청정한 삶은 오래 갔다.” (Vin.III.7)라 했습니다.

 

과거 칠불 중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을 빼고 여섯 분의 부처님 중에 세 분의 시대는 오래 갔고 또 세 분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비빳씬과 씨킨과 벳싸부의 시대에는 교법이 오래 가지 못했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세존]

싸리뿟따여, 세존이신 비빳씬과 세존이신 씨킨과 세존이신 벳싸부께서는 제자들에게 상세히 가르침을 전하는데 피곤함을 몰랐다. 그들에게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전생담, 미증유법, 교리문답이 거의 없었다. 제자들에게는 학습계율이 시설되지 않았고, 의무계율도 부과되지 않았다.”(Vin.III.8)

 



 

세 분의 부처님 시대에 교법이 오래 가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른바 구분교(九分敎)라 불리우는 경, 응송, 수기 등이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는 학습계율과 의무계율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만약에 경전과 논서를 잃어버리더라도 계율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교계는 언제나 지속합니다.”(Vin.I.98)라는 율장대품의 게송에 따른 것입니다.

 

묶어 놓지 않아서

 

비빳씬 등 세 분의 부처님의 시대에 교법이 오래 가지 않은 것은 설한 가르침이 구전으로든 문자로든 후대에 체계적으로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봅니다. 또한 학습계율이나 의무계율 역시 후대에 체계적으로 전승되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세존]

싸리뿟따여, 예를 들어, 여러 가지 꽃들이 나무판위에 실로 잘 묶이지 않고 놓아두면, 그것들은 바람에 흩어지고 부서지고 해체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것은 실로 묶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Vin.III.8)

 

 

비빳씬 등 세 분의 부처님 시대에도 교법은 전승 되었을 것입니다. 계율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묶어 놓는 것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여러 꽃들이 있지만 묶어 놓지 않으면 흩어져 없어져 버리듯이, 가르침과 계율 역시 묶어 놓지 않으면 분실되고 망실 되어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을 말합니다.

 

수범수제(隨犯隨制)에 대하여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는, 특히 초기에는 제자들이 모두 아라한이었습니다. 이는 율장대품에서 야사의 오십명의 친구들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자 그들의 마음은 집착없이 번뇌로부터 해탈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때 예순한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Vin.I.20)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율장대품을 보면 부처님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모두 61명의 아라한이 탄생했다고합니다. 그런데 아라한에게는 계를 설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청정한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학습계율이나 의무계율을 시설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처님의 과거 여섯 분 부처님의 이야기를 들은 사리뿟따는 조급한 마음에 청정한 삶이 오래 지속되도록 학습계율을 시설해야 하고 의무계율을 부과해야 한다면, 세상에 존귀한 님이시여, 그것은 참으로 시기 적절한 것입니다.” (Vin.III.8)라며 재촉하듯이 말합니다.

 

부처님은 사리뿟따의 조급함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싸리뿟따여, 기다려라. 싸리뿟따여, 기다려라. 여래는 그것에 대해 그때를 안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세존]

싸리뿟따여, 여기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참모임 안에 나타날 때까지 스승은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지 않고 의무계율을 부과하지 않는다. 싸리뿟따여, 여기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참모임 안에 나타날 때, 그때에 스승은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을 몰아내기 위해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고 의무계율을 부과한다.” (Vin.III.9)

 

 

입법과정을 보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음에도 필요할 것을 가정하여 법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계율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두 청정한 삶을 사는 자들만 있다면 법 없이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갖가지 성향을 가진 자들이 교단에 들어 왔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때 계율이 만들어집니다. 이를 수범수제(隨犯隨制)라 합니다.

 

수범수제는 잘못이 먼저 발견되고 나중에 잘못을 바로 잡는 계율이 만들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참모임 안에 나타날 때까지 스승은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지 않고 의무계율을 부과하지 않는다.”라 한 것입니다.

 

교단의 규모가 커지면

 

학습계율과 의무계율을 시설할 수 있는 조건은 모두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참모임 안에 나타날 때까지이고, 두 번째는 참모임이 세월의 연륜에 도달하기 까지이고, 세 번째는 참모임이 모임의 광대화에 도달하기 까지이고, 네 번째로 참모임의 이익이 극대화에 도달하기 까지이고, 마지막으로 참모임의 배움이 극대화에 도달하기 까지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조건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참모임 안에 나타날 때까지에 대한 주석을 보면 맛지마니까야 밧달리의 경(M65)’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밧달리여, 교단이 규모가 커지지 않는 한, 교단에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밧달리여, 교단이 규모가 커지면, 교단에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면 스승은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제자들을 위한 학습계율을 세운다.”(M65)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든지 처음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잘 아는 사람들 몇 명이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질적인 존재들이 가세합니다. 통제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서 을 만듭니다. 모임의 회칙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승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아라한 61명의 교단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교단이 확대 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 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이라 했습니다. 이어지는 가르침을 보면 구체적으로 교단이 세속적 소유의 절정에 이르고, 명성의 절정에 이르고, 번쇄한 학문에 이르고, 오랜 세월에 이르면, 교단에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면 스승은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제자들을 위한 학습계율을 세운다.”(M65)라 했습니다.

 

아들 하나만 낳아 달라는 어머니 말에

 

율장비구계에서 말하는 번뇌의 뿌리가 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이어지는 계율이 승단추방죄법입니다.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려 18페이지에 걸쳐서 최초로 시설된 음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깔란다까뿟따입니다.

 

깔란다까뿟따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했습니다. 출가 과정에서 떼 쓰는 장면을 보면 맛지마니까야 랏타빨라의 경(M82)’과 유사합니다. 출가한 깔란다까뿟따는 탁발하러 갔을 때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아, 그렇다면 자식을 만들어 달라.”라며 전처와 성적교섭 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깔란다까뿟따는 어머니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율장비구계에 따르면 깔란다까뿟따는 전처와 세 번 성적교섭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부처님 귀에 들어가자 어리석은 자여, 오히려 맹독을 지닌 독사뱀의 아가리에 그대의 성기를 집어넣을지언정, 결코 여인의 성기에 집어 넣지 말라.” (Vin.III.21)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깔란다까뿟따를 견책했습니다. 그리고 수행승이여, 수행승이 성적교섭을 행한다면,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함께 살 수 없다.” (Vin.III.21)라고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을 최초로 시설했습니다. 이것이 불교역사상 최초로 시설된 음계에 대한 학습계율입니다.

 

빠져 나갈 구멍 없이 촘촘하게

 

율장비구계를 보면 깔란다까뿟따에 대한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을 시작으로 승단추방죄법 제1조에 대한 것이 무려 430페이지에 달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이 암원숭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여인에 대하여 성적교섭을 금한다고 하자 어떤 비구는 암원숭이와 성적교섭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행승이 성적교섭을 행한다면, 심지어 축생과 행하는 것조차,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함께 살 수 없다.” (Vin.III.21)라 했습니다. 이렇게 여법하지 못한 행위가 발생될 때 마다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을 보면 매우 구체적입니다. 성적교섭에 대한 세 가지 방식, 항문과 성기와 구강으로 성적교섭을 행한다면,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라 했습니다. 어느 한 곳 빠져 나갈 구멍 없이 촘촘하게 만들어진 학습계율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교섭을 하지만 즐거움을 느끼지 않으면 무죄라는 것입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입니다. 이에 대한 경우의 수가 수도 없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정법이 오래 가지 않는 이유는

 

과거칠불 이야기를 보면 정법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한량 없는 시간 속에서 언제 어느 때인가 부처가 출현하지만 정법이 머무는 기간은 극히 짧습니다. 마치 캄캄한 밤하늘에 깜박였다가 사라지는 불빛과도 같은 것입니다.

 

정법이 오래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법의 변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설한 가르침이 자꾸 변해서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렸을 때 정법이 사라졌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법은 부처님 당시에 설한 가르침이 가장 완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대로 내려 갈수록 변질되고 추가 되었을 때 전혀 다른 불교가 되어 버립니다.

 

정법이 오래 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학습계율과 의무계율을 지키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범수제라 하여 그때 그때 계율이 만들어 져서 율장이 성립됐습니다. 그럼에도 기후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고 하여 지키지 않는다면 정법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탁발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오후불식이라도 하여 율장정신만이라도 지켜 가야 할 것입니다.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율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정법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습니다. 가르침뿐만 아니라 율장에 따른 승가도 성립되어 법의 바퀴가 지금까지 굴러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르침은 있지만 실천하지 않고 율장은 있지만 지키지 않는다면 정법은 사라져서 암흑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한량 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비빳씬 등 세 분의 부처님의 시기에 정법이 일찍 사라진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전생담, 미증유법, 교리문답이 거의 없었다. 제자들에게는 학습계율이 시설되지 않았고, 의무계율도 부과되지 않았다.”(Vin.III.8)라고 말했습니다.

 

삼보를 피난처로 하여

 

불자들은 부처님의 교법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승된 가르침을 지니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승가에서는 학습계율과 의무계율을 역시 지니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런데 가르침(Dhamma)만 있고 계율(Vinaya)가 없다면 정법이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율장대품에 따르면 경서와 논서를 잃어 버려도 율서만 있으면 정법이 오래 유지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유지되려면 계율을 지키는 승가가 있어야 합니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에서 성자가 출현합니다. 불자들은 부처님과 가르침은 물론 성스럽고 고귀한 승가를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합니다. 부처님의 교법이 오래 지속되려면 불자들은 율장과 경장과 논장을 항상 지니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2018-08-04

진흙속의연꽃